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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엑소시즘 | 2000년 10월 18일 수요일 | 김응산 이메일
본인이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잠시동안 '종말론'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했었다. 공중파 방송의 9시 뉴스에서도 그 문제를 보도했을 정도니까 그 여파가 얼마나 심했었는지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세기말이 다가온다는 심리적 불안감과 당시 사회안팎의 모순들을 등에 업고서 종말론과 같은 비합리적인 현상들이 기세를 떨쳤던 것 같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이제 2001년(허나 동양 문화권에서는 2000년을 기점으로 세기가 바뀐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2001년을 그 기점으로 삼고 있다)을 앞둔 지금, 이와 같은 종말론은 현실에서 그 고개를 떨군 듯 싶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벗어난 스크린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종말론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종말론 및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다룬 영화들 중 생각 외로 우리와 친숙한 영화들이 많다. 먼저 76년 작 '오멘(Omen)'을 들 수 있겠다. A급 배우들을 기용하는 등 제작비를 아끼지 않은 것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악마가 (일단은) 승리하는 그 결말부 때문에 이 영화가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 내재한 종말에 대한 공포,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일이 아직 다가오지 않았음(이 영화는 76년작이다)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 등등에 '찜찜한' 결론부까지 덧붙여져서 이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반응은 거의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였다고 한다. 후속작, 특히 3편만 나오지 않았더라면 더할 나위 없는 공포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오멘'보다 먼저 제작된 68년작 '로즈마리의 아기(Rosemary's Baby - 우리 나라에는 '악마의 씨'란 제목으로 소개되었다)'는 '오멘'과 같은 걸작 영화가 나오는 데 획기적인 기여를 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악마의 씨를 잉태한 소시민 여성이 겪는 처절한 자기 부정과 아픔은 이 영화를 단순히 공포 영화로만 볼 수 없게 만들며, 특수효과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분위기'와 '배우의 연기'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이후 심리 공포 영화들에 좋은 귀감으로 남게 된다. 뭐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개봉한 지가 좀 지나긴 했지만 '엔드 오브 데이즈(End of Days)' 역시 적그리스도/사탄과 세계 종말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형편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세기말에 맞추어 개봉한 점만큼은 매우 훌륭한 프로모션 전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쨌든 세기말이 끝난, 혹은 (서양의 경우처럼) 끝나 가는 이 시점에 또 한 편의 세기말 영화를 만난다는 것이 본인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모두들 새 천년, 새 시대를 부르짖고 있는데 영화판 한 구석에서는 세계 종말과 적그리스도와 같은 소재가 아직도 통할 수 있을 지를 시험해 보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를 외쳐대는 이런 류의 영화들이 시대착오적인 것인지 아니면 관객들의 취향이 아직까지 고전적인 것인지 모를 일이다.

서론이 많이 길었는데, 이 영화 '로스트 소울'도 그 기본 컨셉을 종말론과 적그리스도(Anti-Christ)로 두고 있는 영화이다. 종말론이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세기말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고, 적그리스도 및 카톨릭 엑소시즘이 나오는 것에서 크리스챤 호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공포영화 팬들이라면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영화가 한 편 있을 것이다.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Alex De La Iglesia) 감독의 '야수의 날(El Dia de La Besta)'이 바로 이 영화와 컨셉이 비슷한 영화로 들 수 있는 좋은 예다. 그러나 소재면에서의 유사함만으로 두 영화를 묶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야수의 날'이 보여주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희비극(예를 들어 악마를 만나기 위해 나쁜 짓을 일부러 해대는 카톨릭 신부의 일화라든지 악마의 모습이 중세 기독교 회화에서 따온 듯한 산양의 얼굴과 발굽을 갖고 있다든지 하는..)이 영화를 단순한 호러가 아닌 주목할만한 포스트모던 컬트영화로 만드는 것에 비해, '로스트 소울'의 시놉은 너무나 엉성하고 단선적이라 실망스럽다. 미국의 언론에서도 이 영화에 호된 평을 해대면서 그 주된 이유로 '질 나쁘고 엉성한 시나리오'를 꼽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들과 기술진이 나쁜 시나리오 때문에 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영화에 대한 악평을 소개해서 미안한 감이 있긴 하지만 본인이 봐도 시놉이 단순한 건 사실이다. 지난 프리뷰 기사에서 '좋은 영화는 돌고 돌기 마련'이라고 했었는데 이 영화 역시 이전 영화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설명했다시피 앞서 언급했던 종말론 영화의 소재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면서 '엑소시스트(the Exorcist)'의 엑소시즘과 귀신들림을 베껴왔다. 악마가 인간을 통해서 자신의 악한 목적을 달성시키려 한다는 것은 파우스트(Faust) 전설 이래로 수없이 변형에 변형을 거친 고전적인 소재이다. 또한 이 영화는 '고맙게도' 이런 류의 영화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순결하고 독실한 기독교 여인'을 희생양으로, 또한 그 반대로 구원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건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역시나 (감독이 이름 난 촬영감독 출신이라서 그런지) 훌륭한 촬영 기법과 그로 인한 효과일 것이다. 카톨릭의 엑소시스트들을 카메라로 잡아내는 장면에 슬로우모션을 사용하면서 이루어내는 몽환적 분위기라든가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십분 활용한 촬영술 등등은 얄팍한 시나리오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차피 공포영화의 삼분의 일은 비쥬얼한 효과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볼 때, '멋진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야기일까

신실한 젊은 여성 마야 라킨은 어느 날 악마의 표적이 되지만,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일군의 카톨릭 엑소시스트(exorcist)들의 노력으로 악마는 쉽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악마는 자신의 목표를 젊은 작가 켈슨으로 돌리고, 자신의 다음 희생양을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한편 그러던 중 적그리스도(Antichrist)인 악마의 원하는 바가 하나둘씩 밝혀지고 '선한 무리들'은 그의 뜻을 막기 위해 싸우게 된다.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

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 마야 라킨 역
벤 채플린 (Ben Chaplin) - 피터 켈슨 역
존 비어즐리 (John Beasley) - 마이크 스미드 역
필립 베이커 홀 (Philip Baker Hall) - 제임스 신부 역
존 허트 (John Hurt) - 라로 신부 역
엘리아스 코테아스 (Elias Koteas) - 존 타운센드 역
새라 윈터 (Sarah Wynter) - 클레어 반 오웬 역

영화를 만든 사람들

감독 - 야누슈 카민스키 (Janusz Kaminski)
촬영감독 - 야누슈 카민스키 (Janusz Kaminski), 모로 피오레 (Mauro Fiore)
제작 - 피어스 가드너 (Pierce Gardner), 벳시 스탈 (Betsy Stahl), 멕 라이언 (Meg Ryan), 니나 사도브스키 (Nina R. Sadowsky)
각본 - 벳시 스탈 (Betsy Stahl), 피어스 가드너 (Pierce Gardner)
원작 - 포피 브라이트 (Poppy Z. Brite)

official site: http://www.deliverusfromevil.com/

2 )
ejin4rang
그럭저럭 무섭다   
2008-11-12 09:35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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