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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그러나 희망적인 가능성을 증거하다
원더풀 데이즈 | 2003년 7월 24일 목요일 | 임지은 이메일

<원더풀 데이즈> 만큼 관객들의 반응이나 작품 내적인 면에서 호불호, 혹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갈리는 영화도 흔치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해 장점이 확실한 만큼 단점 또한 크게 두드러지며, 성과가 큰 만큼 아쉬움도 크다. 사실 영화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은 애초에 너무 컸다. <원더풀 데이즈>를 말하며 늘상 따라붙었던 물음을 새겨본다면 좀더 이해하기 쉬워질 것. “<원더풀 데이즈>가 국산 애니메이션의 부흥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영화 한 편에 맡겨지기에는 분명 과한 책임이었으나, 스스로 ‘애니메이션의 <쉬리>’를 표방했던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난제는 하나만이 아니었다. <원더풀 데이즈>는 그간의 극장용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나은 퀄리티를 보여줌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이라는 특화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한 편의 영화로서 다른 영화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 대다수의 관객들이 장르의 문제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것,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택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120억 원 이상(영어버전 제작비와 예비비 등 포함)의 제작비가 투자된 이 초대형 애니메이션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들은 극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혹은 그 이상의 오락성과 완성도를 기대했다.

뚜껑을 연 지도 근 2주 째 되어가는 지금, <원더풀 데이즈>는 진부한 표현 그대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홈페이지와 각종 포털사이트에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영화를 두세 번, 많게는 일고 여덟 번까지 봤다는 매니아들이 생겨나는 한 편, 다수의 의견은 “비주얼은 기대 이상이지만 시나리오의 취약함이 아쉽다”는 반응들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 그간의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시나리오의 수준을 논할 것까지도 없이 조악한 결과물이 태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확실히 발전이다. 그만큼 <원더풀 데이즈>의 시청각적 장점은 두드러진다. 미니어처의 질감, 합성의 자연스러움, 원색을 배제한 디지털 칼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세련된 느낌을 창출해냈다. 대표적으로 제이가 바이크를 몰고 질주하거나 글라이더가 실사 촬영으로 질감을 살린 하늘 위를 나는 장면은 관객을 압도할만한 미적 쾌감을 전달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영화를 더없이 효과적으로 보완하면서 귀에 척척 와 붙는 원일의 음악 역시 메리트로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다만 이 ‘쾌감’으로―혹은 비주얼의 발전상에 대한 만족감으로― 러닝타임 내내 버텨나가기에는 부족하다는 것, 문제는 그 지점일 것이다. (물론 관객층에 따라 그 안에서 티켓값 7,000원 혹은 그 이상의 즐거움을 뽑아가기에 충분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재미없다. 실망스럽다”는 사람들과 “이런 작품을 보게 되어 감격스럽다”는 사람들이 동시에 생겨나고 양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각 게시판에서 치열한 싸움을 방불케 하는 설전을 벌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이 <원더풀 데이즈>의 장점, 혹은 개가라 한다면 단점으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무미건조하다는 것. 영화의 배경인 미래사회가 담고 있는 메마른 분위기 탓으로 돌리기에도 등장인물들은 확실히 개성이 없다.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너무 적으며, 사건은 인물에게 채 감정을 몰입하거나 호기심을 가지기 전에 진행된다.

일례로 “푸른 하늘을 보고싶다”는 수하의 동기는 지나치게 막연하며―수하는 이상주의자로 설정되어 있지만, 동기의 막연함을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시몬이 벌이는 사투, 제이가 겪는 마음의 갈등 역시 치열함이 부족하다. 제이를 감독이 설명하는 의도대로 방황하는 자아로 설정한다면, 오랜 시간 제이를 지켜봐 온 시몬은 발딛고 서있는 현재이며 수하는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이상일 것이다. 변해가는 현재―에코반이든, 혹은 제이라는 여성이든―를 붙들려하는 시몬이 느꼈을 절박함, 수하라는 이상 혹은 미래에 대한 곧 과거가 될 현재로서의 열등감 같은 것들. 영화 말미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수하와 시몬의 대립은 아마 이 지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필연적인 갈등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 적게 제공된다. 수하를 보더라도 마찬가지. 마르와 에코반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수하는 아웃사이더이며, 극단적으로 말해 한 번 배신당하고 죽었던 사람이다. 영화는 수하라는 인물의 행위에 좀더 납득할 만한 동기를 부여하고, 나아가 현실이 아닌 이상을 사는 자가 내재하고 있는 문제점까지도 생각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에코반과 마르 두 지역이 상징하는 권력관계는 첫눈에 보기에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가시적이다. “오염물질을 에너지로 하는 도시가 거기 거주하는 특권층만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빈민 거주지역을 불태운다”라는 설정에 대해 과학적인 질문을 던져보기 이전에, 영화가 이미 가지고 있는 기본 설정들을 캐치하기에도 난관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수하가 꿈꿔온 이상향 지브롤터가 실은 그들이 발딛고 살아가던 바로 그 땅이었다는 정보가 영화 안에 제시됨에도 설명 없이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것. 작품 외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가 뒷받침되었다면 시행착오에 의한 제작비 손실도 대폭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비주얼과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 점에 더해 취약점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원더풀 데이즈>가 보여준 성과는 크다. 그러나 장고 끝에 관객을 찾아온 이 애니메이션이 그 자체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발전한 현재가 되기를 바랐던 관객들의 아쉬움 또한 지당한 부분. 그러나 비록 한달음에 뛰어넘을 거리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향점이 그리 멀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영화는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애니메이션 장르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라면 <원더풀 데이즈>는 절반의 장점만으로도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해 볼 가치가 있다.

4 )
gaeddorai
비쥬얼은 완벽했지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들은 뭐가 이렇게 진지한건지 모르겠다   
2009-02-22 15:18
ejin4rang
정말 잘만들었고 한국애니메이션의 발전을 보여줬다   
2008-10-16 09:54
lesrftg
정말 정확한 비판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감명깊게 이 영화를 보았지만 역시 부족한 점을 잊을 수 없더군요. 영화발전을 위한 비판 감사드립니다.^^*   
2007-02-27 01:35
js7keien
이 애니의 실패는 한국 애니메이션 투자 위축으로 이어졌다   
2006-10-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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