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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명의 웬수들
코미디라고? 가족호러겠지! | 2004년 2월 10일 화요일 | 이선생 이메일

풍수지탄(風樹之嘆). 식사 중에도 사고는 그치지 않는다.
풍수지탄(風樹之嘆). 식사 중에도 사고는 그치지 않는다.
이건 공갈협박이 아니다. 독자님들의 정신건강을 염려하는 진심어린 충정에서 하는 말이다. 만일 당신이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식 날 잡아놓은 예비신부님이시면,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우황청심환을 준비하는 게 좋다. 자식 뒷바라지에 좋은 세월 다 보내고 남은 건 주름살뿐이라고 종일을 한숨으로 지새우는 중년의 아버님, 어머님이라면 청심환 대신 눈물 훔칠 손수건 한 장 준비하면 되실 게고. 아직 아내, 남편, 엄마, 아빠 보다 아들, 딸이라는 지위에 익숙한 푸릇푸릇한 연세시면 맨몸으로 들어가 배꼽 간수나 잘 하다 나오면 되시겠다.

영화 <열두 명의 웬수들>은 말 그대로 딱 한 다스의 자식을 둔 미식축구 코치와 소설가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1950년 작의 리메이크지만 독창적인 작품으로 봐도 좋을 만큼 많은 개작이 이루어졌다.

시골 고교팀 코치였던 톰은 어느 날 모교인 시카고의 대학축구팀에 스카웃된다. 한편, 결혼과 동시에 임신, 출산, 육아로 잠시도 집을 떠나지 못했던 케이트는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소설로 출간하면서 홍보여행을 제의받는다. 톰은 늘 희생만 해온 아내를 이제는 자신이 보필하겠다며 케이트를 떠나보낸다. 하지만 철딱서니 없는 12명의 자식들과 수십 명의 제자들을 동시에 건사하는 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아이들은 전학 간 학교에서 완전히 촌닭취급을 받으며 점점 삐뚤어져가고, 톰은 자식 뒤치다꺼리 하느라 팀을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퇴출위기에 처한다.

정력 좋은 아버지 ‘톰’ 역엔 다정다감하지만 적잖이 치사한 구석이 있는 팔불출 꼰대 캐릭터로 할리우드 가족영화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스티브 마틴이 출연, 전에 없던 열연...이라기보다 늘 해오던 연기(좋건 나쁘건 간에)를 선보인다. 무려 17년 동안 꾸준히 출산을 했다는 경이로운 어머니 ‘케이트’ 역은 <쥬만지> <그린마일>의 보니 헌트가 맡았다.

또한, 어중간한 규모의 할리우드 영화는 엊저녁 먹다 남긴 찬밥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한국 땅에서야 순식간에 비디오용 영화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자국에선 톡톡히 재미를 봤다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의 숀 레비 감독과 파이퍼 페라보, 힐러리 더프, 애쉬톤 커쳐 등 청춘스타들이 크레딧을 메우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가족영화로서 이만 하면 꽤나 화려한 진용.

때문인지 이 영화는 <콜드 마운틴> <페이첵> <피터팬> 등의 대작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리며 박스오피스에서 맹위를 떨쳤고, ‘<반지의 제왕> 빼고는 모조리 제쳤다’라는 카피가 해외마케팅의 포인트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 미국식 슬랩스틱 코미디와 따뜻한 가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친근한 각본과 감독 특유의 발랄한 연출 감각이 큰 몫을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얼굴이 생명이야. 연기가 안되니까!”라는 명대사로 작은 배역이지만 큰 인상을 남기는 애쉬톤 커쳐.
“나는 얼굴이 생명이야. 연기가 안되니까!”라는 명대사로 작은 배역이지만 큰 인상을 남기는 애쉬톤 커쳐.
영화는 미국 시골 마을의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톰 베이커 가족이 맞이하는 어느 아침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식전 댓바람부터 활기가 충천한 꼬마 녀석들은 우르르쿵쾅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화장실에서 사춘기 누나의 꽃단장이 진행되는 동안 아우들은 문고리에 매달려 오줌 싸겠다며 소리를 질러대고, 음침한 아들 녀석 하나가 기르던 개구리는 전등갓에서 식탁 위로 점프, 온 가족의 얼굴에 음식 폭탄을 날린다. 그 뒤로도, 기가 막힌 동선으로 전개되는 아크로바틱한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폭소를 자아낸다. 아이들이 큰 누나의 밉살스런 애인(애쉬톤 커쳐)을 골탕 먹이는 장면이나 이웃집 파티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장면 같은 데서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매력적인 장면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기는 뒷맛은 개운치가 못하다. 일생을 자식 건사에 바친 중년 여인이 모처럼 자아 찾아 나선 걸 가족에 대한 배신으로 매도하고, 가장이 하루 몇 시간 직장 나가는 걸 두고 자녀에 대한 방임이라고 몰아세우는 열두 명의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관객의 입장(예컨대, 결혼제도에 반감에 품고 있는 리버럴리스트들 같은)에 따라 모골이 송연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급기야 일보단 가정이라며 자신들의 꿈을 모두 팽개치고 낙향하겠다는 부모의 결정에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쌍수 들고 환호하는 자식들의 모습은 ‘웬수’라는 애교스런 표현으로 어물쩍 넘어가기엔 문제가 많아 보인다.

가족공동체에 대한 지지와 애정이야 나무랄 까닭이 없다. 하지만 무한정 이기적인 자식들과 무한정 희생적인 부모상에 대한 이 영화의 편파적이고 맹목적인 묘사방식은 달갑지가 않다. 가정을 위해 사회인으로서의 욕구와 책무까지 내팽개친 톰 베이커와 케이트 베이커의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라스트 신은 할리우드식 가족주의의 위선과 폭력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게다가 잠시도 쉬지 않고 사고를 쳐대는 열두 명의 아이들과 이 통제불능의 말썽꾼들 때문에 패닉상태에 빠진 아버지의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교훈은 ‘자녀는 적당히 낳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2 )
ejin4rang
코믹하고 가족영화다   
2008-10-15 17:15
callyoungsin
코미디를 가장한 가족호러? 영화ㅋ   
2008-05-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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