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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셀로판 III
이영순 칼럼 from USA | 2003년 3월 31일 월요일 | 이영순 이메일

이제 영화 속에서 조연인생을 살아가는 마지막 이들 이야길 해줄게.

이번에 영화 <프리다>에서 아카데미 메이크업상을 받은 베아트리체 드 알바, 존 E. 잭슨 이들이야. 이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도 가려진 이들이지만 영화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냈거든. <프리다>는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인 프리다 칼로(1910-1957)란 여자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야. 이 영화에서 메이크업이 중요한 건 주인공들의 감정을 얼굴에 그림처럼 담기 때문이야. 어떤 그림쟁이를 다룬 영화하나가 왜 오래 전부터 누가 만드냐, 누가 출연하냐 어떤 옷을 입냐, 어떤 그림이 나오냐로 들썩인건 앞에서 말한 <시카고>란 영화의 맥과 같아. 보다 특별하지. 전에 왜 내가 붉으죽죽한 겉표지로 된 그림책을 들고 갔더니 네가 휙 보면서 ‘ 이 여자는 여자야, 남자야. 왜 눈썹이 지렁이마냥 다 붙었어.’ 아마 그랬지. 그 여자의 삶을 둘러싸고 남편이자 동지이자 애증의 관계를 이어온 위대한 벽화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가 나와.

미국인들에겐 특별한 여자와 남자야. 이상하지. 적어도 여기선 ‘제임스 딘’ 같이 우상화된 스타급 미술가들이니. 둘의 의상과 메이크업은 보그 패션잡지에서 특별 사진전으로 다룰만큼 값이 나가고, 생뚱한 멕시코 여자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그림이 미국 기념우표로 나오고, 그녀의 옷, 머리 핀, 헤어 스타일, 시, 자서전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거대한 상품으로 팔려나가고 있으니 말야. 그녀의 그림들도 다케히로 나카지마 감독의 근사한 게이영화인 <오꼬게(Okoge,1992)>중 사요코네 집 다락방에 도배될 정도니까.

근데 그럴만큼 대단한 여자야. 영화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보통
여자는 아니거든. 로자 룩셈부르크를 닮은 혁명가였고 신체적 장애가 있었지만 보그 잡지 모델을 할 만큼 미모와 재치가 뛰어났고, 망명한 트로츠키를 애인으로 둘만큼 매력이 철철 넘쳤지만 양성애자에다 마약, 알콜 중독에다 평생을 유명한 난봉꾼인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애증관계를 유지할 만큼 엄청나게 열정적인 여자였거든. 그래. 그런 여자는 세상에 많을 거야. 그런데 이 여자를 영화로 만들고 마릴린 몬로같은 세기의 스타로 만든 건 그녀가 그 모든 불행을 단 한 가지 그림으로 승화시켰다는 거야.

그녀와 디에고의 그림을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서 보았었어. 직접 보니까 피, 억압, 분노, 저항,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강인한 얼굴과 모습들이 처절하리 만큼 다가오더라. 그걸 영화 속에서 공들여 담은 이들 중 한 그룹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야. 상 받을 만 하겠지. 이들 또한 아름다운 조연이란다.

오늘 새벽에 이거 쓰다 말고 좀 울었단다. 저번주에 아는 선배가 교통사고로 죽었어.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할 때는 목이 메여서 말도 안 나오더니 전화를 끊고 나니 눈물나더라. 결혼도 안하고 이쁜 여자만 찾더니 장개도 못가고 그렇게 쉽게 가버리다니. 꼭 마이클 무어 감독이었거든. 자신을 밟아버리는 현실에서 정치적인 영화를 찍지 않으면 뭘 하겠느냐고 성깔부리던 기개마냥 영화를 만든 건 없지만 정치판과 영화사이를 오가다가 이제야 진짜 하고 싶은 일과 인생을 맘껏 펼치던 중이였는데. 사무실을 연지 20일도 안되었다고 하더니 왜 그리 서둘러 갔을까. ‘부모님이나 세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다. 엑스트라 인생은 없는거야.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구나’ 오래 전 그 선배가 그랬는데.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누구나 화려한 조명발을 받고 싶어하지. 짧고 굵게 폼나게. 근데 우리는 누구를 위해 연기하며 사는 걸까. 나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비록 세상이 우리들을 ‘지나가는 사람 1,2’나 보이지도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미스터 셀로판(영화<시카고> 등장인물)’으로 볼지라도 우리의 인생에서 만큼은 모두 주연이 아닐까.

또 세상엔 화려한 조명발은 못 받지만 기꺼이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들이 있잖아. 정말로 빛을 발하는 이들 같아. <시카고>의 캐서린 제타 존스나 <피아니스트>의 자누스 올레니작, <프리다>의 베아트리체 드 알바랑 존 E. 잭슨마냥 그리고 화려한 생활에서 은퇴하더니 이제 아이 먹을 요구르트 값도 아끼더니 아파트를 사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예쁜 너처럼 말이야. 애초부터 엑스트라는 없던 걸 거야. 엑스트라가 있다면 남이 찍는 영화 속의 엑스트라겠지.

근데, 이걸 쓰는데 금방이라도 그 선배가 껄껄걸 웃어대며 눈앞에 나타날 것 같은 거야. 특유의 너털웃음 말야. 안 떠올리려고 해도 자꾸만 떠올라 눈물 나네. 작년에 한국 들어갔을 때 바쁘다고 핑계대지 말고 꼭 봐야했는데. 한번은 꼭 간다 했는데 이제는 볼 기회가 없네. 십 년 넘게 알고 온 형이었는데. 여기다 쓰면 선배가 볼까.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워낙 글 읽는 거 좋아하는 선배라 혹 읽을 지도 몰라서 여기다 쓰려 해....나 아직 할 말 남았는데..

선배.
이제... 거기선 절대 아프지도 말고 힘들어 하지도 말고 잘 살아야 되요.
여기서 못다 했던 것들 맘껏 멋지게 신나게 꼭 펼치세요.
선배가 말했잖아요. 선배만의 인생을 살 꺼라고. 엑스트라 인생은 없다고.
정말 멋진 주연 인생을 살아야 되요.
잘 해낼 꺼에요. 선배는 늘 멋졌잖아요.

잘생긴 그 얼굴 그대로 거기서 살았으면 여자들이 아마 많이 따를 텐데 그래도 이젠 제발 이쁜 여자말고 착한 여자 좀 찾아요.
잘생긴 선배 얼굴... 그립네요. 먼 길 떠나는데 못 가봐서 미안해요.

잘가요. 선배.

1 )
apfl529
ㅍ   
2009-09-2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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