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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남자들>이여, 과거는 마냥 흘러간 게 아니다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범위를 좁혀서 가족 또는 아내와 아이에 관해서는? 설사 한 이불을 덮고 삼년을 산 부부일지라도 서로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인데, 하물며 배우자의 과거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식 없는 상대를 찾다보면 예기치 않은 사건과 상황을 만나게 된다. 곁에 있을 땐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는 것이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무탈한 시절에야 아내와 주위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치부를 감추거나 은폐할 수 있었겠으나, 그 공간에서 이탈하는 순간 모든 것은 백일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일. 생각도 못한 고지서와 통첩장이 날아오고 난데없이 채권자가 들이닥치는 것도, 당사자가 정주하는 공간을 이탈하여 연락이 두절될 때이다. 거꾸로 이런 모든 상황을 감수하고라도 집을 나간다면, 이전까지 몰랐던 아니 상상하지 못 했던 그(녀)의 과거가 드러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방송 멘트를 통해 돌연 “친한 후배와 강릉으로 갈 것이고, 그곳에서 전화로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할 것”이라고 선언한 남자는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아내의 전화는 불통이고,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나는 이해심이 부족했고, 당신은 이해력이 부족했다”면서 “나를 찾지 말아 달라”는 아내의 편지가 배달된다. 후배와 함께 아내를 찾으러 나선 남자는 상상 못할 아내의 과거와 만날 뿐, 아내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시작되는 이하 감독의 <집 나온 남자들>은, “삼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정작 아내에 대해서는 변변하게 아는 것 하나 없는 철없는 남자의 이야기다. 한쪽면만 보고도 전체를 안다고 여기는 우매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속 깊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돌연 가출한 아내를 찾아가는 세 남자의 여정을 그리는 영화는,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면서, 가장 가까운 상대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했고 알려고 노력 하지 않은 채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길 위에 노정한다. 현재의 남편과 과거의 애인이었던 두 남자가 가출한 아내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어쩌다 우리가 이다지도 상대에게 무심하게 되었는가.’라는 씁쓸한 자기반성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이 그렇다. 그녀가 한 때 피라미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고 그 와중에 친구를 도와준 사실도, 그녀가 술집에서 일했고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결행하기 위해 자기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전력도, 그녀에게 오빠가 있다는 것조차 남자들은 몰랐다. 삼년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아내의 손목을 본 적이 없었”기에 손에 남겨진 흉터를 알았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무심한 놈들이 또 있느냐고? 천만에, 나도 당신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정장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채 가정과 부부라는 제도 하에서 혹은 연인관계 속에서 안주했을 뿐, 한번이라도 세심하게 자기사람에 대해 관찰하고 보살피려 애쓴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잘못된 현재를 만든 연원을 추적하다보면 십중팔구 과거와 만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과거사를 되짚어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이 급선무 일 터. 할리우드의 반 영웅들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역시, 자신을 괴롭혔던 적 혹은 일그러진 한 때의 자신을 만나ㅡM.푸코는 반 기억(counter-memory)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ㅡ이를 바로잡는 행위가 아니었던가. 다만 흥미로운 점은 집 나온 남자들을 자기성찰로 이끄는 것은, 그들이 아닌 가출한 아내의 반 기억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과거를 통해 지금 여기에 있는 제 모습을 반추하는 남자들은,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는 상대의 과거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다만 중요한 건 현재’라 할지라도 과거 없는 현재가 어디 있을라고.

<여교수의 은밀한 고백>에서도 그랬듯이 이하 감독이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제나 현재와 미래만을 사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일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오늘과 내일이 온전할 수 없는 법. 너도나도 장밋빛 미래만을 논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는 현실에서, 과거지사를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영화가 하나 쯤 나오기를 기대한 건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욕설 한 가득 입에 머금은 마초들의 소동극이 끝날 때 즈음, 당신이 제 아무리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분명 슬그머니 고개 돌려 지난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힐끔힐끔 곁눈질일지라도.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    

18 )
kwyok11
과거는 마냥 흘러간 게 아니죠   
2010-05-29 15:27
withyou625
잘 읽었습니당..여교수보단 재미났던거 같아요..엔딩은 좀..   
2010-05-20 05:20
qhrtnddk93
너무웃겨요   
2010-05-18 21:49
ggang003
영화는 별로...   
2010-05-17 09:35
kkmkyr
코믹하네여   
2010-05-07 21:16
wawa916
기대되요~   
2010-05-02 12:43
mvgirl
참 독특한 개성의 세 주인공   
2010-05-01 20:16
mimikong
양익준 배우님의 연기 쵝오~~~ 사람 냄새 나는 작품~~~   
2010-05-0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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