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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의 감독 나홍균, 작가 윤제균 인터뷰
나홍균, 윤제균 | 2000년 3월 22일 수요일 | 이지선 기자 이메일

결혼의 계절이라는 봄, 그래서인지 11일 개봉한 영화 [신혼여행]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미스테리에 살인극, 코미디와 멜러가 혼합된 짬뽕영화라는 점이 그렇고, 이런 혼란스런 장르의 영화가 감독과 작가의 첫 데뷔작이라는 점이 그렇다. 더더욱 그런 느낌을 부추기는 것은 영화의 제목. 新婚이 아니라 身魂이다. 결혼한 신혼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난데없이 영혼이라니, 특이하다 못해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이 영화의 감독과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약속장소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는 기자는 상당히 긴장된 상태였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인터뷰하기도 처음이려니와, 결혼에 귀신이야기, 미스테리까지 짬뽕시킨 독특한 데뷔작을 들고 나타난 신인감독과 작가는 왠지 기괴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시덥잖은) 생각 때문. 그러나 두 사람은 오히려 '떼'로 나타난 기자들에 놀란다(그날의 일행은 취재기자 1명, 무비카메라 1명, 사진기자 1명, 홍보팀장 1명까지 총 4명. 일반적 인터뷰는 취재기자 1명, 사진기자1명). 인사가 오간 뒤 두사람이 건넨 첫 질문.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개봉을 앞 둔 소감을 묻자, 나홍균 감독의 인상이 구겨진다. "컨트롤이 안 된 부분이 좀 있었어요. 시나리오 자체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서 제대로만 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텐데요. 작가한테도 미안하구요."

첫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이겠지만 지나친 겸손처럼 보인다는 말에 나감독은 "세상에 영화처럼 쉬운 게 없잖아요"한다. 영화가 쉽다니?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대답. "돈내고 들어와서 그만큼 즐기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게 극장에 들어온 관객들이잖아요. '자, 해 봐. 웃어주고 울어줄게' 그런 준비가 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만큼 쉬운 게 어딨어요. 그런데 원하는 만큼 반응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관객들이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웃음)

겸손에 넘친 나감독과는 달리 윤제균 작가는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지루한 영화 아니예요. 영화는 재미있는 것과 없는 것의 두 부류가 있다고 보는데, [신혼여행]은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각 영화가 목표하는 바를 제대로 잘 전달하는가... 그런 게 재미일텐데, 꼭 평론가나 누군가가 좋은 영화라고 해서 재미있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사람마다 일단 느끼는 게 다르잖아요. 일반 관객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겠죠." (이 부분에서 나감독이 "나도 평론가들이 좋다는 영화는 대체로 재미없더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일단 '재미있는 영화론'으로 말문을 연 윤작가는 다소 단호함이 느껴지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우리영화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 못봤어요. 왜,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듣는 반응이 진짜잖아요. 배우도 아니고 얼굴도 안 알려졌으니 모자 내려쓰고 화장실 가면 관객들의 자연스런 반응을 들을 수 있거든요. 다들 재미있다고 하더라구요. 재미없었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되려 기자가 당황했지만 신인의 패기와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그러나 영화 [신혼여행]은 시사회 이후 "재미는 있는데 좀 산만하다"는 이야기가 중평이었다. 이러한 평가를 전하자 나감독은 "더 용감해졌어야 하는데 좀 안타까워요. 앞으로는 관객과 같이보며 메모할 생각이예요"라며 대답을 대신했다.

태창흥업의 3천만원 공모전에서 당선된 윤작가는 이번 영화가 처음이란다. 그러나 학창시절부터 영화관련 활동을 쭉 해 왔고, 90년 영화진흥공사 주최의 공모전에서도 입선한 경력이 있다고 하니, 왠지 모를 '내공'이 느껴진다. 물론 공모전 당선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시나리오를 쓸 때가 개인적으로 안 좋은 상황이었어요. 본업도 따로 있었고. 하지만 시간 없어서 뭘 못한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아요"라며 웃는다.

[신혼여행]이 첫 데뷔작이긴 나감독도 마찬가지. 학창시절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것을 빼면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감독 타이틀을 걸고 영화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 등 충무로 연출부로 오랜 활동을 해 왔기에 어쩌면 그가 가진 '내공'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데뷔작으로 복합장르의 혼란스러운 영화를 선택한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요즘은 그런 영화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추세이니 이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야기하자 "제가 타란티노를 좋아하거든요.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죠"라며 선선히 받는 나감독. "그렇지만 이건 효율성에 의한 판단이었어요. 시나리오 자체도 워낙 특이했고.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라며 선을 긋는다.

"원래 따로 구상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신혼여행'은 라인업이 다 구성된 뒤에 참여했다"는 감독의 말대로, 사실 장르결정권은 감독에게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분업화된 영화제작의 전형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만큼 의견조율이라는 부분이 중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작가가 촬영내내 함께 했다고 하니, 생각의 차이를 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많이 수정하잖아요. 당선된 후에 윤작가가 많이 고쳤고. 제작 들어가면서 감독, 스텝들이 참여하는 수정작업이 있었죠. 또 촬영중에도 여건에 맞추다 보면 필수적인 과정이니까. 셀 수 없죠. 사실 작가에게 진짜 중요한 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냐가 아니라 중심이 살아있는가의 부분이 아닐까하거든요. 그것만 살아 있으면 세부적인게 좀 달라져도 전달하려는 바는 다 전달될테니까요."

어느 정도의 내용 수정이 있었다는 이야기. 시나리오의 구상부터 해온 작가로서는 불만도 있을 법 한데, 윤작가는 내내 미소만 짓고 아무말이 없다. 첫 영화인만큼 아무래도 욕심이 많았을 것 같다며 운을 뗐다. "더 많이 웃기고 야하고 무서운 영화가 되길 바랬어요. 감독님이 수위조절을 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연출력으로 멜러부분에 대한 보완도 하셨구요"라며 슬쩍 돌려 이야기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냥 생각이 많이 달랐어요. 그런데 시사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있더라구요. 사실, 시나리오상으로는 멜러적인 요소는 좀 약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자신있다고 해서 마지막에 정선경씨의 캐릭터를 강화하는 요소를 넣었죠"라며 결과물에 만족한단다. 윤작가는 "확실히 연출력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나감독을 한 번 더 추어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쪽은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한쪽은 추어올리고, 작가와 감독의 기묘한 공방이 재미있다. 그 모습이 너무 친근해보여 시비도 걸어 볼 겸, 좋은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여백이 있는 시나리오가 좋은 것 같아요. 연출자들이 시나리오를 쓰면 너무 꽉 짜여져 있어서 지루해 지는 경우도 종종 생기거든요.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니까, 여러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약간 빈 구석을 마련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끼어들 틈을 줘야죠."하며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의견을 술술 피력하는 나감독.

옆에서 여전히 웃기만 하는 윤작가에게 자신이 좋은 작가냐고 생각하냐고 했더니 역시나 웃음으로 일관한다. 시비를 붙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글쎄, 함께 하는 과정이 많았다고 하니 좋은 작가였으리라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지.

공모전 당선으로 공식 데뷔를 했으니 전업작가로 나설만도 한데, 윤작가는 생각이 좀 달랐다. "기본적으로 천억을 넘기는 헐리우드 영화와 게임이 되려면 시나리오가 좋아야죠. 우리나라에는 시나리오 전문작가가 없어요. 시나리오만 써서는 돈이 안 되거든요. 생활이 불가능하니까 영화감독 방송작가로 나서는 거죠"

"하긴 아이디어나 시나리오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편이예요.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나오는 풍토가 정착되면 헐리우드 영화도 이길 것 같아요. 환경만 받쳐준다면 인재는 많으니까요. 뭐 서울대에 영상관련학과를 만들어서 더 많은 인재를 배출해도 좋겠고" 나감독도 기본적 환경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며 윤작가의 말을 거든다.

제작과 관련된 환경이야기가 나온 김에 신인감독들의 활약에 비해 중견감독들은 제대로 영화조차 만들지 못하는 우리 풍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나감독은 "용감해질 필요가 있어요"라며 또한번 좌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생각이 있으면 16미리 들고라도 찍으면 되는 거예요. 일단 시도해야죠. 환경 문제도 크지만 이전에 했던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안 해본 것들에 도전하는 용감성이 필요하죠."한다. 환경에 대한 비판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기대밖의 이야기다. 오랜 연출부 생활에서 나오는 균형감각일까?

이야기는 한국영화 전반에 관한 것으로 화제가 점점 넓어졌다. 두 사람은 계속 진지하게 대답했지만 이야기를 모두 옮길 수는 없기에, 그들의 많은 생각들이 매우 건전했다는 것 정도만 전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이야기가 점점 무거워지는 듯 해서 분위기도 전환할 겸 촬영시의 에피소드를 물었더니 두 사람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영화촬영장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죠. 촬영하는 거 구경한다고 하다가 여기저기 끼어들어 NG내고. 경찰서 앞에서 살수차 동원해서 물뿌리는 장면에서도 그랬어요.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카메라 동선안에 들어가 있더라구요. 배부르게 욕 먹었죠"하며 웃는다. 어쨌든,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 윤작가가 등장하는 씬이 있다고 한다. 1초정도라니, 눈 크게 뜨고 찾아 보시길(나감독은 이 부분에서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기자들을 반쯤 뒤집어 놓았으나, 대개가 '베드씬 촬영'에 관한 것들이라 차마 이 자리에 못 옮겼다).

인터뷰는 두 시간을 넘겼고, 술자리에서 마저 이야기하자는 두 사람의 제안에 우리 일행은 반색을 했다. 덕분에 '다음영화에 대한 계획'이라는 성급하고 의례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감독은 "그동안 하고 있던 일도 있고 해서, 그걸 계속 추진해 볼 예정이고... 사실 아직 개봉도 안 했으니 구체적인 건 없죠. 앞으로는 뮤지컬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라며 뜻밖의 짤막한 대답으로, 역시 구체적 계획은 없다는 윤작가는 한 번 더 '재미있는 영화론'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었다.

"영화는 산업, 제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품을 팔려면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해야 하는 거고. 관객의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죠. 제작비도 마찬가지구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많은 돈은 들이지 않으면서. 신혼여행은 로맨틱 코미디로 구상했었는데 어느날 하드고어적인 영화와 합쳐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편제'랑 'ET'를 조합해 보면 어떨까요? 어쨌든 평범한 작품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인터뷰 내내 나감독과 윤작가는 서로의 대답을 보충해가며 성실하게 임했고, 덕분에 영화전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겸손하지만 진지하고 자신감 넘치는 두 사람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한 영화를 통해 만났지만 엄청나게 다르기만 한 두 사람. 10년이라는 나이차(나감독은 81학번, 윤작가는 90학번이다!) 외에도 영화 전공자와 비전공자라는 점, 영화판에서 연출부를 거친 정통파(?)와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라는 본업을 갖고 있는 것까지 차이는 무궁무진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그 때문인지 신혼여행을 만들면서 처음 만났다는 두 사람은 마치 10년지기처럼 사이가 좋아 보였다. 다른 만큼 사이좋은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면 극장에서 마저 확인해 보시길.

나홍균 감독 E-mail: nhk8927@netsgo.com
윤제균 작가 E-mail: jkyun@lgad.lg.co.kr

3 )
kpop20
기대됩니다   
2007-05-26 00:01
soaring2
저도 기대됩니다^^   
2005-02-13 23:10
cko27
윤제균 작가님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주세요~~ ^^기대됨   
2005-02-06 18: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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