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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쩌다가?!] 욘사마 <태왕사신기>를 보고 착잡한 심정에...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 이지선 영화칼럼니스트 이메일


“브루투스, 너마저!” 한때 로마제국을 호령했던 시저는 믿었던 친구 브루투스의 배신으로 죽음에 이르는 순간,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논란과 화제의 드라마 <태왕사신기> 1화를 보는 동안 내내 떠올린 것은 바로 그 대사였다. 아니 좀 더 적확히 표현하자면, “문소리 씨, 당신마저!”라고 해야 옳겠다. 연기파의 대명사였던 그녀마저 소위 ‘발연기’를 하고 있었으니, 왜 아니었겠나. 게임 동영상을 연상시키는 CG화면이나 <단적비연수>의 추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부족사회 묘사, 근래 어떤 드라마보다 많이 사용된 듯한 보이스 오버, 신인 테가 철철 흐르는 이지아의 답답한 발성, 그리고 ‘욘사마’ 배용준의 10년은 퇴보한 연기쯤은 문소리를 보며 느낀 낯선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체 어쩌다가?!!!”라는 물음표가 꼬리를 물며 대뇌를 자극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충격과 공포(?), 하워드 쇼어는 왜?!

사실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보게 된 것은 송지나-김종학 콤비에 대한 신뢰나, 호화 배역진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만화 <바람의 나라>와 관련하여 일었던 표절시비만으로 충분히 비틀려 있던 마음에 새삼 호기심을 촉발시킨 것은 그저 한 통의 문자였다. <태왕사신기 - 스페셜>이 전파를 타던 월요일 밤. 절친한 지인에게서 한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대체 하워드 쇼어가 언제부터 <태왕사신기> 음악을 담당한 거냐?” 채널은 당장에 돌아갔다.

신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이야기의 방대한 규모가 혹시나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저어한 것이 분명한 제작진들의 배려 아닌 배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제작진 인터뷰를 편집한 ‘스페셜 편’은 실제로 <반지의 제왕> 스코어와 히사이시 조의 드라마 스코어를 번갈아 사용하고 있었다. 자사 드라마 홍보에 신이 난 진행자 김용만은 “정말 대단합니다”를 거푸 외쳤지만, 어째서 그 순간 그 장면들에 <반지의 제왕> 스코어가 사용되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강화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호기심은 삶을 낭비하는 원흉이다.

<출발! 비디오 여행>의 <태왕사신기>편이라 불러도 좋을 스페셜을 시청한 뒤, 심정은 착잡했다. <반지의 제왕> 스코어의 미스터리는 차치하더라도, 무려 400억을 넘나드는 제작비가 투자된 드라마에서 <우뢰매>의 흔적이 언뜻언뜻 보이는 건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전 전작에 HD, 돌비 5.1채널 송출이라는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드라마가 실패한다면, 이거야말로 재앙이다 싶은 생각을 한 것은 어쩌면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말했던가. “어리석은 삶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모두 호기심 탓”이라고. 호들갑스럽기 그지없는 ‘스페셜 편’은 그다지 효과적인 설명이 되지는 못했으나, “뭘 보여주려고 이러나.”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드라마 시작 전 요약정리’라는 사상초유의 시도가, 따지고 보면 유효했던 셈이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와의 5회에 걸친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 방영된 5화를 모두 본 시점에서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1화는 나머지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스트랄의 극치를 선보인 신화의 세계

신화적 기록 환웅과 4신, 호족과 웅족의 이야기를 다룬 1화는 드라마로 치면 일종의 배경설명에 해당하는 이야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2화 이후의 담덕(광개토대왕의 아명)과 나머지 주요 인물들의 질긴 인연을 표현한 전생 일화라 할 수 있다. 상상력 빈곤을 의심케 하는 판에 박힌 부족사회 묘사, ‘나 악역이오’를 외치는 문소리의 의상과 연기, 외양 때문에 등장하자마자 ‘욘달프’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겨울연가>보다 후퇴해 버린 배용준의 연기, “예쁘다”는 인상 외엔 남는 게 없는 이지아의 밋밋한 연기, 새 장르 탄생인가 싶게 자주 등장해 설명하는 자막들, 그리고 안일함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보이스 오버와 내레이션의 난무, 영상을 보라는 건지 음악을 들으라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떡칠’돼 있던 히사이시 조의 스코어와 계속 삐거덕거리던 영상과의 부조화까지. <태왕사신기> 1화가 보여준 아스트랄한 면모는 일일이 나열하는 게 벅찰 수준이었다.

물론, ‘필름 룩’을 의도했다는 제작진의 설명대로 기본적인 화면의 ‘때깔’ 하나는 훌륭했다. 그레인 없이 안정인 화질을 송출했던 HD방송이라든가, 집 안에서 듣는 리어사운드의 재미 또한 색달랐다. 대충 봐도 눈에 들어오는 CG와 실사의 구분이나 만화적이기 이를 데 없는 ‘4신’ 묘사는 실소를 유발했지만, 그래도 그 화면을 만들겠다고 모니터 앞에서 날밤을 샜을 제작진을 생각하니 “발로 했냐”는 비난은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엄청난 분량을 보며 아쉬워 할 뿐. ‘이 타이밍에 <우뢰매>가 생각나면 안 되는 거잖아!’

볼 만한 판타지 드라마의 기반 닦은 아역의 공

그렇게 버럭질을 했지만, 여전히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시청하고 있다. 신기한 노릇이다. 대뇌에 구멍이라도 만든 듯 멍한 기분을 느꼈던 주제에, 쌀 한 톨 만큼도 없었던 애정이 난 데 없이 생겨났을 리, 물론 없다. ‘보고 나서 욕해주리라’는 안티(anti)적 열정으로 뭔가를 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나이. 그럼에도 TV 앞에 앉아 <태왕사신기>를 지켜본 것은, 모두 호기심 때문이었다. 비틀린 호기심은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속삭였다. 제작진의 의도와는 3만 리 쯤 떨어져 있지만, ‘보면서 웃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막상 그러고 TV 앞에 앉으니 2화 이후로 새삼 볼만해진 드라마의 장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만화적 판타지를 위해 낭비되던 CG는, 배경이나 군중 묘사 등 일부 장면에 효과적으로 이용되었고, 몇몇 전경장면에서는 정말 그림처럼 예쁜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국적 세트와 중국풍 의상은 거슬렸지만, 해외 시장을 목표로 한 드라마라니 그 정도 못 봐줄 이유도 없었다. 왕질악 도사를 떠올리게 하는 최민수의 분장과 의상에는 실소를 흘렸지만, 연기를 위해 목소리를 긁으며 발성하는 배우의 노력은 높이 살만 했다.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1화에 비해 현저히 안정돼 있었다. 같은 방송사의 선행 판타지 사극 <주몽>의 ‘안습’ 액션 연출을 생각한다면, <태왕사신기>는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었다. 무엇보다 <집으로...> 이후 부쩍 자란 유승호(담덕 역)와 이미 드라마 <황진이>에서 그 가능성을 선보였던 심은경(수지니 역), 그리고 뮤지컬 배우 출신의 김호영(연호개 역)이 보여준 훌륭한 연기는 1화의 성인연기자들을 보며 느껴야 했던 아스트랄한 혼란을 깨끗이 정리해주기 충분했다.

돌아온 그들, 비틀린 호기심은 계속 된다

4회를 넘기며 아역 연기자들의 활약은 막을 내렸다. 환웅 배용준은 담덕으로, 새오 이지아는 수지니로, 가진 문소리는 기하가 되어 돌아왔다. 깜찍한 아역들을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신화의 시대가 정리되면서 훨씬 안정된 성인배우들의 연기는 반갑다. 특히 블루 스크린에서 놓여난 3대 주역의 발전은 눈부시다. 검은 반 머리를 한 배용준은 여전히 무게잡는 경향이 있지만 긴 백발을 휘날리던 ‘욘달프’보다는 훨씬 자연스럽다. 너무 신인다워서 답답했던 이지아 또한 아역 수지니의 개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캐릭터 설정 덕분인지 꽤 발랄하게 장면을 소화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어째서 당신마저!”를 외치게 했던 문소리는,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과 연기톤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최소한 검고 붉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숲 속을 질주하던 가진 시절 보다 훨씬 그녀다워졌다. 다행이다. 앞으로 더 이상 그들의 연기를 보며 좌절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고, 대작 판타지 사극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들을 대사 한 줄에 거슬려 포기하지 않고 즐겨도 되니 다행이다.

뭐가 미스터리냐고? 하워드 쇼어는 어쩌다 <태왕사신기>에 끌려들어 왔는지, 귀엽기만 하던 ‘마수리’ 오의윤이 어쩌다 오달수가 되었는지, 떼어놓고 들으면 훌륭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왜 영상만 만나면 우스워지는지, 격투장면에서 트래킹해 버리는 과감한 카메라 연출의 숨은 의도는 뭔지, 왜 판타지라는 설정만 들어가면 현대어가 남발되는지, 그리고 정말 무엇보다 우리는 왜 돈만 들이면 이렇게 컬트적 즐거움을 남발하는 작품이 나오는 건지. 미스터리 아닌가. 그것도 아주 충분히 즐길 만한!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 글_이지선 칼럼니스트
사진제공_(유)티에스지프로덕션문화산업전문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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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luloo
jjworks라는분의 주접..운운은 좀 심하신 말인것 같네요
제가보기엔 아직 5편밖에 방영되지 않아서, 최종적인 판단을 유보하는 글인것 같은데요?   
2007-10-02 00:36
mvgirl
아직 초반이니 끝까지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지...   
2007-10-01 21:49
malbuny
태왕사신기가 대단하긴 대단한가보네요//
이곳에 이런글이 올라올 정도라니..   
2007-09-30 23:22
ih8u
(아랫글에 이어)
어느 TV 프로그램을 보니 '잔망스럽다'라는 말이 있기나 하는거냐고 펄펄 뛰던 연예인이 나오던데 님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군요.
어휘가 생소하게 느껴지는게 자랑은 아니지요. 가능하면 보다 적확 (정확 대신 적확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아시겠지요)한 표현을 위해 다른 어휘를 사용하는 게 그렇게 이해가 안 되십니까?
무협소설 말고 다른 책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차마 그런 말씀은 못하시겠지요   
2007-09-30 03:33
ih8u
jjdworks 님. 님의 다른 반론은 개인적 견해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굳이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놓여나다'를 "이 따위 쓰이지도 않는 단어나 열거"라고 하신 말씀은 어이 없네요.
뜻을 쓰신 것을 보니 님께서도 찾아보신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만
실생활 혹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라고 해서 '쓰이지도 않는 단어'라고 하신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쓰는 이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가 각각 다르고 글에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님께서 자주 접하지 않은 단어라고해서, 그 단어를 사용해 글을 쓴 이를 폄하하시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2007-09-30 03:33
lee su in
워낙 관심있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영화 전문 사이트에 드라마 비평은 좀 아닌것 같은데요.

역사드라마에서조차 배용준은 언제나 욘사마에 불과할 뿐인지...   
2007-09-29 22:56
gywns22
난 낚인거나? ㅡㅡ   
2007-09-29 22:47
nampark
드라마 방영중간에 평가를 내린다....재미나신 생각이네요..누군가 칼럼니스트의 4쪽 짜리 칼럼중에 반장만 읽고 이러니 저러니 하시는 건...좀 그렇지 않을까요?   
2007-09-2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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