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최후의 남자, 돌아오다. 홀로 공포스러운 SF영화 <나는 전설이다>
2007년 12월 10일 월요일 | 유지이 기자(무비스트) 이메일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살아야 의미가 있다.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에 인간(人間)이다.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 인간에게 홀로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공포이기 쉽다. 미국의 수퍼히어로가 진정 위대한 것은 팬티를 꺼내 입는 초인적인 패션 센스 덕분이기도 하지만, 혼자서도 능히 살아갈 수 있는 독고다이 포쓰 때문인지 모른다.

홀로 살아야 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그 자체가 훌륭한 스릴러가 된다. 황량한 곳에서 홀로 남겨진 것 만으로 빼어난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을 우리는 꽤 많이 알고 있다. 공포보다는 외로움과 사회에서 격리된 인간의 생존에 집중한 고전 〈로빈슨 크루소〉와 그 직계 자손인 영화 〈캐스트 어웨이〉, 이를 소년 모험물로 각색한 〈15소년 표류기〉와 이를 의미심장하게 변형한 〈파리대왕〉, 고립무원에 남녀를 던져 놓고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영화 〈스웹트 어웨이〉와 느슨한 각색물 〈식스데이 세븐나잇〉, 이 컨셉에 로리타적 접근을 한 변태 영화 〈푸른 산호초〉와 〈파라다이스〉를 빼놓고 보아도 여전히 많다는 이야기.

외로움을 공포로 바꾸는 작가

자타가 공인하는 ‘외로운 공포’의 일인자는 단연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다. 빼어난 공포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빼어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한 스티븐 킹의 작품 중 많은 수는 덩그러니 남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소름 끼치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경우다. 킹의 작품이 유난히 영화화 된 경우가 많은 이유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스티븐 킹의 ‘홀로 공포’물은 블록버스터보다 소규모 영화나 TV 영화에서 더 인기가 좋은데, 그 이유 역시 “홀로 공포물이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주인공과 계약해서 극을 이끌어가면 되니 이야기만 탄탄하다면 제작비가 들 것이 무어랴. 덕분에 스티븐 킹이 장기를 발휘한 ‘홀로 공포’물을 한국에서 쉽게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미개봉한 1995년 미국 B급 영화 〈맹글러〉같은 작품이 그런 킹의 장기가 유감없이 드러난 영화지만, 최근 개봉한 〈1408〉이나 곧 개봉할 킹 소설 원작영화 〈안개〉로도 스티븐 킹 표 ‘홀로 공포’물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고립무원의 대지를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나가야 하는 ‘서바이벌 공포’를 묘사하면 사실, 한국 관객의 머리를 스치는 작품에 스티븐 킹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몇몇 감동의 도가니탕 영화를 제외하면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 스티븐 킹의 지명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객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는 최근 3편이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특히 최근 개봉한 〈멸종〉은 더욱 그렇다)나 아직 한국에서는 속편이 개봉하지 않은 〈28일 후〉(속편은 〈28주 후〉),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데 뛰어다니기까지 하는 〈새벽의 저주〉같은 좀비물이 아닐까. 가뜩이나 살아남은 사람 수는 적은 판국에 주변에는 온통 이성을 잃은 괴물 뿐이니까.
 시체들이 산책하는 밤
시체들이 산책하는 밤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공포물 팬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현대 좀비 영화의 시발점에는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놓여있다. 그 유명한 ‘시체 3부작’의 시작인 이 영화는 (지금 보면 당시와 같은 강렬함은 덜해졌지만) 최신 좀비 영화가 가진 ‘홀로 공포’의 정수를 그대로 갖춘 작품이다. 가장 평가가 좋은 두번째 편 〈시체들의 새벽〉은 앞 서 언급한 인상적인 리메이크 작 〈새벽의 저주〉의 원작이기도 하며, 삼부작이 끝인 줄 알았던 영화팬들에게 2005년에 4편 〈랜드 오브 데드〉와 2007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5편 〈시체들의 일기〉로 강인한 생명력을 선보인 현재 진행형 영화이기도 하다.

공포스러운 뱀파이어 섬에 갇힌 억센 로빈슨 크루소

어쩌면 당연스럽게도 ‘홀로 공포’의 거장 두 사람 조지 A. 로메로와 스티븐 킹은 절친한 사이다. 두 사람의 감수성이 닮았기 때문에 능수능란하게 ‘홀로 공포’를 조율할 수 있었을 테고, 서로 활동 기간도 비슷하니 마주치지 않았다면 이상하리라. 첫 마주침은 로메로의 독특한 액션 영화 〈나이트 라이더〉에 스티븐 킹이 까메오 출연한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스티븐 킹 원작소설 〈크립쇼〉〈다크 하프〉를 영화화할 때 로메로가 감독했고, 킹은 〈크립쇼〉와 최신작 〈시체들의 일기〉까지 종종 로메로 영화에 까메로 출연을 함으로써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두 사람 인연의 굵은 줄은 두 사람이 모두 팬임을 밝힌 소설 〈나는 전설이다〉로 최종 연결된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공포 소설가로 유명한 리처드 매드슨의 1954년 소설 〈나는 전설이다〉가 두 거장의 연결고리라는 점은 공통점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것과 같다. 한 남자가 세상이 온통 흡혈귀로 가득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나는 전설이다〉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이후 흡혈귀물을 현대적으로 도약시킨 전기가 된 작품으로 흔히 오르내리는 소설.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흡혈귀 원맨쇼를 확립한 것이 브램 스토커라면, 리처드 매드슨은 〈나는 전설이다〉에서 흡혈귀가 온 세상을 날 뛰는 가운데 홀로 남은 사람의 공포에 집중한다. 브램 스토커 소설의 흡혈귀나 그 스타일을 이어받은 앤 라이스처럼 존재감이 강하지는 않지만, 주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서운 집단이 리처드 매드슨의 흡혈귀다. 최초로 좀비를 영화에 등장시킨 작품이 아님에도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현대) 좀비 영화의 효시라는 찬사를 듣는 것은, 리처드 매드슨이 〈나는 전설이다〉에서 묘사한 ‘홀로 공포’에 사회성을 담은 스타일을 좀비 영화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좋아한 스티븐 킹이 ‘홀로 공포’의 달인이 된 것 역시 무관하지 않다.
 흡혈귀 사냥꾼, 오메가 맨
흡혈귀 사냥꾼, 오메가 맨
 윌 스미스 고군분투 〈나는 전설이다〉
윌 스미스 고군분투 〈나는 전설이다〉

독특한 소재에 영화에 꼭 맞는 이야기를 가만 놓아둘 영화 제작자는 없다. 아니나다를까 〈나는 전설이다〉는 진작부터 영화화 러브콜을 받았다. 가장 먼저 영화화된 것은 1964년으로 훨씬 직설적인 (그래서 때로 이 제목을 최고로 치는 팬들도 있는) 〈지상 최후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소설 주인공이었던 로버트 네블은 영화 속에서 로버트 모건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주연을 맡은 이는 50~60년대 헐리웃 공포물을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였던 빈센트 프라이스.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 공포 전문 제작사를 통해 대거 리메이크된 〈박쥐〉〈헌티드 힐〉〈플라이〉〈밀랍으로 만든 집(하우스 오브 왁스)〉의 오리지널 버전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이 배우의 뚜렷하고 신경질적이며 음영이 깊은 이목구비는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상 최후의 남자〉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발한다.

원작소설에서 로버트 네블은 당당한 체구를 가진 백인 남성으로 묘사된다. 종말론적인 영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만, 튼튼한 모습보다는 위태롭고 비밀을 간직한 듯한 외모를 가진 빈센트 프라이스에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이 많았던 듯 싶다. 시간이 지나 1971년 다시 만들어진 〈나는 전설이다〉는 좀 더 상징적인 제목인 〈오메가 맨〉으로 개봉했고 로버트 네블 역은 훨씬 강인한 인상을 가진 당대 액션스타 찰턴 헤스턴에게 돌아갔다. 올드팬들에게는 〈벤허〉〈십계〉의 주인공으로 인상에 남아 있을 이 스타는 〈혹성탈출〉〈소일런트 그린〉같은 영화로 이미 ‘홀로 공포스러운 SF’ 영화 단골 주인공 출신이다. 선 굵은 얼굴과 다부진 몸매로 60~70년대의 실베스타 스텔론이었던 찰턴 헤스턴에게 로버트 네블은 잘 어울렸고, 무대를 원작 소설과 다르게 대도시로 옮긴 〈오메가 맨〉에도 잘 어울렸다.

올해 개봉하는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의 〈나는 전설이다〉는 원작 소설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최초의 각색 영화이고 소설의 세번째 영화판이기도 하다. 로버트 네블 역을 흑인스타 윌 스미스가 맡은 〈나는 전설이다〉는 예고편의 여러 장면에서 원작의 황량함과 고립된 공포를 성공적으로 블록버스터화 한 느낌을 풍긴다. 대도시를 무대로 하고 〈콘스탄틴〉의 감독이 맡은 영화인데다 무대가 대도시인 것까지 영화 중에는 1971년작 〈오메가 맨〉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짙다. 이미 예고편에서 드러난 빨간 스포츠카의 대도시 질주 장면이나 마네킹과의 대화 같은 장면은 〈오메가 맨〉을 본 관객이라면 반가운 상황일게다. 공개된 스토리라인은 원작소설을 대체적으로 따라가고 있지만 고어한 면이 있었던 원작소설의 전개는 각색을 통해 피해갔다는 후문. 흡혈귀 소굴에서 살아남는 고군분투를 기다리기 지루한 팬이라면 한 발 먼저 (미국에서) 공개된 마크 다카스코스 주연의 B급 SF 괴작 비디오 영화 〈나는 오메가다〉를 구해보며 웃고 즐기는 것도 좋겠다.

2007년 12월 10일 월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

23 )
kooshu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는..   
2009-01-02 16:39
fatimayes
마무리가 좀 아쉽죠^^   
2008-05-07 16:02
huyongman
결말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지...영 알수가 없네...   
2008-01-16 17:23
iamjo
전설 도 괸찬은 영화일듯   
2008-01-09 22:40
firstgun
윌스미스 멋졌습니다만,못내 아쉽습니다   
2008-01-06 03:07
js7keien
고독 속에서 찾고자 하는 유친동기의 디스토피아적 희망 혹은 절망   
2008-01-03 22:15
ldk209
갑작스런 종교영화로의 마무리..   
2007-12-29 16:36
qsay11tem
소재는 관심이 가요   
2007-12-27 14:25
1 | 2 | 3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