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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가 3D에 빠진 까닭
3D 가요계 |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전자업계, 3D 콘텐츠가 절실하다

지난 8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된 FIFA 월드컵을 사람들은 ‘남아공 월드컵’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전자업계에서는 ‘3D 월드컵’이라 했다. 남아공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3D로 중계됐다. 선수들이 피파컵을 놓고 격돌할 때, 장외에서는 전자업계들 간의 3D TV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외 설전 최강의 라이벌은 삼성과 소니, LG였다. 이들은 월드컵이 다가오자, 3D TV를 본격적으로 홍보했다. 보다 입체적인 영상을 원했던 소비자들이 “이청용 선수가 화면에서 걸어 나오는 TV가 뭐냐”며 구매했다. 한국의 16강 진출은 고객들의 3D TV 구매 욕구를 또 한 번 충동질 했다. 하지만 한국이 8강 문턱에서 탈락하자, 3D TV 매장 방문고객이 줄어들었다. 월드컵이 떠났다. 이번에는 판매율이 곤두박질쳤다.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 사고 싶은 사람은 ‘볼 게 없어서’ 안 샀다. 월드컵의 빈 공간을 채울, 3D 콘텐츠 개발이 시급했다. 전자업계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들은 그 무언가를 3D 열풍의 시발점인 영화 쪽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떨궜다. 3D 입체영화 제작에는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보다 효과적으로 3D TV를 홍보할 콘텐츠가 절실했다. 그게 바로, 가요계였다. 기획형 아이돌이 쏟아져 나오면서 음악은 가장 대중친화적인 장르가 됐다. <아바타>로 영화계에 입체영화 붐이 일기는 했지만, 엔터테인먼트의 대세는 ‘오빠 사랑해!’를 외치는 소녀시대가, 옴므파탈 군단 빅뱅이, 민소매 티셔츠를 찢는 짐승돌 2PM이 활보하는 음악이 쥐고 있었다. 삼성전자, 소니 등 대형 TV업체들은 대중과 친숙한 가수들이 탐이 났다. 3D 콘텐츠 확보를 위해 뮤직비디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3D 뮤직비디오는 3D 기기 및 콘텐츠의 대중적인 테스트 베드로 안성맞춤이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제작비도 매력적이었다. 비주얼을 중시하는 가수들의 역동적인 안무는 3D 효과를 높이는데도 일조했다. 가수와의 협력을 원하는 업체들이 늘어갔다.
가요계, 새로운 홍보창구가 필요하다

‘대박음반은 뮤직비디오가 만든다’ 한때 가요계에 통용되던 말이다. 무명이었던 조성모를 신데렐라로 탈바꿈시킨 ‘TO HEAVEN’ 뮤직비디오가 기폭제였다. 이후 수억 원대의 제작비와 스타 캐스팅을 내세운 ‘TO HEAVEN’ 스타일의 드라마타이즈(뮤직비디오나 cf 등에서 드라마처럼 스토리가 있게 만드는 영상기법) 뮤직비디오들이 쏟아졌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는 신곡과 가수를 알리는데 있어 더 없이 좋은 매개물이었다. 신인 브라운 아이즈가, 김범수가, SG워너비가 뮤직비디오의 인기를 타고, 음반 시장에 화려하게 연착륙했다. 인기 가수들도 뮤직비디오를 음반 판매를 위한 최종병기로 사용했다. 뮤직비디오 전쟁의 스펙터클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제작비 출혈과 전쟁은 제 살 깎아먹기였다. 삼각관계이거나, 불치병에 걸리거나, 대신 총을 맞아 주거나 하는 흔해빠진 레퍼토리도 식상했다. 마침 불어 닥친 가요 시장 불황은 대형 뮤직비디오 제작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얼마 안 가,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신하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의 관건은 인기 검색어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다. 음악성?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넘쳐나는 신곡들 사이에서 주목받지 못하면 기회도 못 얻고 사장된다. 곡을 알리기 위한 홍보수단으로 뮤직비디오 역할은 더 커졌다. 서정민갑 음악 평론가는 말한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들을 전방위적으로 소비하는 시대다. 남들보다 주목받으려면 보다 감각적인 영상을 내놓아야 한다.” 가수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 때 손을 내민 게 전자업계들이다. 보다 새롭고 보다 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가수들에게 3D 영상업체의 프로모션 제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제작비용도 전자업계 쪽에서 부담해 주니, 부담이 없었다. 이렇게 전자업계와 가요계의 빅딜이 이루어졌다.

가요계에 러브콜을 보내다

선수를 치고 나간 건 소니였다. 지난 7월 한류스타 류시원이 제작에 나선 로티플스카이가 쇼케이스를 열어 3D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소니는 3D 뮤직비디오 촬영 및 후반작업에 필요한 장비와 기술 모두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아바타> 촬영에 사용된 소니의 3D 촬영 장비가 투입된 이 뮤직비디오는 제작비만 수억 원에 달했다. 뮤직비디오 공개 후, 로티플스카이의 하늘(과거 ‘웃기네’를 불렀던)이 ‘소니 3D걸’이라는 이름으로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등장했다. ‘소니 3D걸’의 실체를 확인하려, 많은 사람들이 인기 검색어를 클릭했다. 로티플스카이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홍보요, 데뷔요, 관심끌기였다. 소니도 자사 3D 기술을 홍보하는 절호의 효과를 누렸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촬영 팀이 참여한 소녀시대의 3D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촬영 팀이 참여한 소녀시대의 3D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반격의 주인공은 삼성이었다. 강도는 강했다. 삼성은 <아바타>에 사용된 카메라가 아니라, 아예 <아바타>의 주인공을 초청했다. 훗날 ‘3D의 아버지’라 불릴지도 모를 제임스 카메론을 국내로 초빙한 거다. 삼성의 전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3D의 별’ 제임스 카메론의 기자회견 자리에, ‘동방의 별’인 동방신기 최강창민과 유노유노, 보아를 합석시켰다. 온갖 별들을 보기 위해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삼성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제작팀과 함께 보아의 정규 6집 타이틀 곡 ‘허리케인 비너스’(Hurricane Venus),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3D 콘텐츠로 제작 한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SM엔터테인먼트-제임스카메론의 MOU 체결 소식에 아직 찍지도 않은 3D 뮤직비디오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이와 동시에 SM엔터테인먼트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진취적인 얼리어답터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3D TV 시장 선점에 전력을 쏟는 삼성은 삼성대로 아시아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SM이라는 고 퀄리티 콘텐츠를 얻었다. SM에게도, 삼성에게도 밑질 것 없는 교류였다. 그리고 주목할 또 하나. 이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단순한 품앗이로 끝나지 않았다. <아바타> 촬영 팀이 참여해 만든 소녀시대의 3D 뮤직비디오가 삼성전자에 공급되자, 해당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급등했다. 소녀시대의 3D 뮤직비디오가 3D TV 구입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가능성이 포착된 것이다.

SK 텔레콤, 3D 콘텐츠에 새롭게 접근하다

그 가능성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한 건, SK 텔레콤이다. 3D TV와는 무관한 SK 텔레콤은 3D와 가요계의 만남을 제품 판촉 수단으로서의 콘텐츠가 아닌, 3D 콘텐츠 그 자체로 바라봤다. 그들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극장에서 3D 입체영상으로 즐기는 ‘라이브 in 3D’ 사업 로드맵을 그렸다. 그 첫 번째 도전 영역은 가요계. 그들은 가수 휘성의 새 싱글 앨범 쇼케이스 현장을 3D로 촬영했다. 더 나아가 휘성의 콘서트 실황을 3D로 만든 영상 <라이브 인 3D 휘성 - 잇츠 리얼>을 전국 롯데시네마 30여개 스크린으로 배급했다. SK텔레콤 김흥수 3D공연사업팀장은 말한다. “3D TV를 홍보하기 위해 뮤직비디오를 만든 삼성, 소니와 달리, 우리의 목적은 향후 3D 디바이스 업체에 고 퀄리티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 일본 등 해외시장에 진출해 콘텐츠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SK 텔레콤은 보다 창의적인 콘텐츠를 먼저 잡는 쪽이 업계 꼭대기에 앉는다고 믿고 있었다.
 ‘Live in 3D-휘성, It's real’ 포스터
‘Live in 3D-휘성, It's real’ 포스터
일각에서는 이번 시도를 침체에 빠진 가요계의 돌파구로 바라보기도 한다. 음원판매와 콘서트 수익에 의존해 왔던 가요계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했다는 게 이유다. SK텔레콤 김흥수 3D공연사업팀장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콘서트나 뮤지컬 등의 오프라인 공연들은 시간과 공간, 가격에 제약이 있다. 하지만 ‘라이브 in 3D’에서 팬들은 그런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공연을 접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고가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극장을 통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미국 아이돌 마일리 사이러스와 인기 그룹 U2의 콘서트를 3D로 담은 <한나 몬타나와 마일리 사이러스>와 <U2 3D>가 미국 극장가에서 흥행에 성공한 사례도 SK 텔레콤의 계획에 힘을 싣는다.

공들여 준비한 콘서트를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수에게도 매력적이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중심축이 기운 현 가요계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현장에 가지 않아도 공연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라는 표현은 오버지만 결코 싸지 않은 콘서트 공연을 보다 저렴하게, 그것도 입체영상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끌리는 제안이다. SK텔레콤이 3D 콘서트 콘텐츠를 중국과 일본 등 해외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도 이 때문. 해외팬들은 굳이 비행기 값 들여 한국에 오지 않아도 해당 가수의 공연을 동네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가요계 3D 콘텐츠 대중화를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서정민갑 음악 평론가는 말한다. “휘성의 3D 콘서트 영상을 극장에서 개봉하는 건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 하지만 실제 콘서트 현장에 준하는 음향을 뒷받침해줄 상영관이 얼마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음향 시설이 제대로 갖춘 곳은 시너스 이수뿐이다. 3D 콘서트의 극장 개봉이 경쟁력 있는 킬러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3D 음악영화관’ 설립과 같은 보다 구체적인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3D 뮤직비디오에 대한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3D 뮤직비디오는 일반 뮤직비디오보다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얼마 전, 걸 그룹 2NE1이 4D 뮤직비디오 쇼케이스를 개최해 화제를 모았다. 신인 그룹 남녀공학이 3D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데뷔해 눈도장을 받기도 했다. YG엔터테인먼트와 코어콘텐츠미디어라는 거대 기획사가 물심양면으로 도운 덕이다. 인디 밴드나 중소 음악 기획사 소속 가수들에게는 딴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안 그래도 불균형한 음악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4D 쇼케이스를 개최한 2NE1’과 ‘3D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데뷔한 남녀공학’
‘4D 쇼케이스를 개최한 2NE1’과 ‘3D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데뷔한 남녀공학’
가요계 3D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 보급율이 낮은 것도 문제다. 하드웨어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가요계 3D 콘텐츠에 주목한 업체들이 들으면 서운 할 얘기다. 그러니까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여유로운 건, 돈 자루를 쥔 가전업계와 3D 영상 업체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그들로서는 음악 콘텐츠에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면 그만이다. 문제는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던 가요계가 3D 환경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다. 가요계는 이미 MP3 라는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지옥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지금이 그 때와 다르다고 말하는가. 당시에도 음악 관계자들은 MP3가 바꿔놓을 미래를 간과했었다. 기회는 곧 위기라는 말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요계의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온풍일지 태풍일지 지켜 볼 일이다.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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