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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을 사랑한 소년, 팀 버튼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 최승우 이메일

인간의 상상력은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리지널의 시대는 이미 가버렸다고 단언한다면, 너무 섣부를까. 어쨌든 이제는 어떤 오리지널을 뿌리로 삼느냐, 그리고 그것을 연구해서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그것에 자신을 얼마나 투영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영화에서 오리지널이 가장 많이 나온 건 대략 1950년대 이전의 흑백영화 시기다. 그리고 <프랑켄위니>는 “너의 오리지널과 뿌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팀 버튼이 던진 선언이자 자기 확인이다.

흑백영화에 대한 팀 버튼의 애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시기상으로는 <에드 우드>에서 그 흔적을 제일 먼저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팀 버튼이 에드 우드에게 매료된 이유가 영화의 방법론이나 정서뿐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불리는 에드 우드의 인생에 통째로 감정이입을 했고, 말하자면 그를 소년 같은 순수함의 상징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그러니 우리가 <에드 우드>에서 보는 에드워드 우드는 팀 버튼의 프리즘을 통해 다시 그려진 별자리다. 자신의 세계에 과하게 빠진 에드의 캐릭터는 <프랑켄위니>의 빅터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에드 우드>에서 두드러지는 건 에드와 벨라 루고시의 관계다. 재미있는 건 <드라큘라>로 유명한 루고시가 <프랑켄슈타인>으로 스타가 된 보리스 칼로프와 라이벌―물론 미디어가 만든 허상도 한몫 했겠지만―관계였다는 것이다. <에드 우드>를 보면 영화 스태프가 칼로프의 이름을 언급하자 루고시가 버럭 성을 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프랑켄슈타인 따위 특수촬영만 있으면 되지만, 드라큘라는 연기력이 필요한 거야!” 루고시를 연기한 배우는 생전의 그와 정말로 흡사한 외모를 지닌 마틴 랜다우였는데, 그는 <프랑켄위니>에서 과학교사 리지크루스키 역을 맡으며 팀 버튼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갈매기 눈썹의 여배우 역을 맡은 리사 마리는 한때 팀 버튼의 연인이었다.
 (좌) <에드 우드> (우) <프랑켄슈타인>
(좌) <에드 우드> (우)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위니>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듯 <프랑켄슈타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물론 원작이 아니라 원작의 본질을 크게 바꿔놓은 제임스 웨일 감독의 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팀 버튼의 오랜 연모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작품이 <가위손>이다. 이 영화는 크게 보면 판타지 멜로드라마에 가깝지만, 가위손(하필이면 그의 이름도 에드워드다)의 탄생과 존재에만 초점을 맞춰보면 영락없는 고전적 호러물이다. 천재적인 과학자가 창조해낸 피조물, 온몸에 가득한 흉터,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녔지만 사회성이 결핍되어 배척받는 점 등의 전형적인 모티브는 프랑켄슈타인을 빼다 박았다. 에드워드를 창조한 박사 역의 배우가 고전 호러물의 스타 빈센트 프라이스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팀 버튼은 디즈니 애니메이터로 재직하던 시절 빈센트 프라이스를 모티브로 삼은 단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빈센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4년 만든 작품이 바로 <프랑켄위니>의 원안이 된 동명의 30분짜리 단편이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였는데, 지나치게 암울하다는 이유로 디즈니와 배급 문제로 마찰을 겪었다. 이런 관계를 돌이켜보면 팀 버튼이 거물이 된 후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디즈니를 통해 소개된 점, <프랑켄위니>의 배급사 역시 디즈니라는 점은 호사가들에게 꽤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팀 버튼이 2000년대에 만든 영화들―<스위니 토드> <다크 섀도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의 상상력을 오버클록으로 확장한 거라면, <프랑켄위니>는 그 상상력이 출발한 정신적 창고의 문을 열어젖히고, 그 안에 든 것들을 끄집어내 한데 모아놓은 완전체에 가깝다. 비교하자면 앞에서 말한 <가위손>이나 <비틀쥬스>,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같은 노선이다.
 (좌) 단편 <프랑크위니> (우) <가위손>
(좌) 단편 <프랑크위니> (우) <가위손>
<프랑켄위니>는 <프랑켄슈타인>의 주요 장면들을 거의 판박이처럼 차용하고 있다. 일단 주인공의 성부터가 프랑켄슈타인이다. 과학에 매료된 빅터의 다락방 실험실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들어낸 풍차간의 복사판이며, 흰 가운을 입은 뒷모습, 천으로 덮인 채 수술대 위에 놓인 시체, 번개 치는 밤 도르레로 시체를 끌어올리는 장면 등은 <프랑켄슈타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낯이 익다. 횃불을 들고 괴물을 뒤쫓는 마을사람들, 불타는 낡은 풍차에서 펼치는 액션 활극도 마찬가지. 그 외에도 팀 버튼은 고전공포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꽤나 디테일하게 심어놓았다. 빅터의 옆집 소녀인 엘사 반 헬싱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여주인공 엘사와 <드라큘라>의 반 헬싱을 합쳐놓은 이름이다.(공교롭게도 엘사의 목소리 연기를 한 위노나 라이더는 프랜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에서 미나 하커로 나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곱사등이 조수 캐릭터를 끌어온 빅터의 친구 이름은 에드가 E. 고어다. 이는 에드가 E. 포우, 그리고 그의 <검은 고양이>를 영화화한 저예산 호러무비의 스타 에드가 G. 고어를 합친 이름이 아닐까 추측된다.

사실 <프랑켄위니>를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 데리고 이 영화 보겠다는 부모가 있다면 말리고 싶어진다. 외양에서부터 암울함이 비어져 나오는 캐릭터들은 마치 그의 우화집 <어느 우울한 굴 소년의 죽음>에서 입체화되어 튀어나온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정상적인 성장담이 되려면 ‘소년이 상실과 죽음에 대해 배우는’ 결말로 끝났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는 얼핏 보편적인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그런 상실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년의 뒤틀린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 이명세 감독은 “영화란 영원히 영(young)한 게 영화”라고 말했다. 팀 버튼이 그렇다. 그래서 <프랑켄위니>의 결말은 슬프고 기괴한 구석이 있다. 결코 자라지 못하는, 빅터 아버지의 대사대로 “어른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우울한 소년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P.S
 2012년 <프랑켄위니>
2012년 <프랑켄위니>
1. <에드 우드>에서 갈매기 눈썹의 여배우 뱀피아 역을 맡은 배우는 한때 팀 버튼의 연인이었던 리사 마리다. 그녀는 <슬리피 할로우>에서 아이언 메이든에 갇혀 죽는 단역으로 나왔는데, 성녀를 연상시키는 이미지 때문에 그녀가 팀 버튼의 이상적인 여성상이 아닌가 하고 넘겨짚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돈 문제로 소송까지 하는 등 찌질하게 헤어졌다.
2.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고, 괴물은 별다른 이름 없이 그냥 ‘괴물’로 불린다. 그러나 속편까지 인기가 이어지면서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처럼 잘못 굳어져버린 것이다. 3. 빈센트 프라이스의 트레이드 마크는 공포영화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 유명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에서 그의 음산한 내레이션과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4. 단편 <프랑켄위니>에는 반가운 얼굴이 두 명 등장한다. <네버 엔딩 스토리>의 주인공 바렛 올리버, 그리고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이며 지금은 영화연출을 하고 있는 소피아 코폴라다.
5. 이름만 보면 동구권 출신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보리스 칼로프의 본명은 윌리엄 헨리 프래트이며 영국 출신이다. 마약 중독으로 초라한 노년을 보낸 벨라 루고시와 달리, 그는 공포영화 외에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롱런한 배우였다. 물론 팀 버튼은 <에드 우드>에서 루고시의 그런 노년까지도 아름답고 감상적으로 담아냈지만.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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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er3
프랑켄위니 얼른 보고싶습니다^^   
2012-10-23 18:43
yourwood
안타깝게도 지난 주말 챙겨보지 못했더니 막이 내렸네요 보고싶은데 아쉽네요ㅜㅠ   
2012-10-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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