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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연애행각] <연애의 온도> 우리의 연애도 남들과...
2013년 3월 28일 목요일 | 앨리스 이메일


동희(이민기)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남자다. 무덤덤한 구석도 있지만 따뜻한 면도 있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 술 먹고 욱하는 경향이 있지만 희한하게 밉지는 않다. 동희가 욱하는 데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뵌다. 영(김민희)은 겉 보기엔 똑 부러져 보이지만 사실 연애를 할 때 상대에게 많이 맞춰주는 여자다. 혼자 사는 남자의 서랍에 상비약도 챙겨 놓고, 애인의 지갑 사정도 먼저 생각해 줄줄 아는 세심한 여자. 그래서 싼 거 주문하고 데이트 전에 밥도 먹고 나가는 여자. 남자의 즉흥적인 약속에도 가만히 도시락을 싸며 준비하는 그런 여자다. 그런데, 그런 게 쌓이고 쌓이다가 폭발해서 문제다. 따귀를 치기도 하고 스토킹도 한다. 영 역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둘이 참 잘 어울린다.

영화 <연애의 온도>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연애를 이야기한다. 현실에서 만날 일 없고 일어날 턱 없는 재벌 집 아들과의 썸씽, 알고 보니 내가 시한부 인생, 이런 거 전혀 없는 리얼리티 생활연애 그 자체다. 그래서 엄청나게 웃기기도 하지만, 찔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야무진 줄 알았더니, 의외로 덤벙거리네. 무심한 줄 알았더니, 은근히 다정한 면이 있어. 즉흥적으로 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책임감 있는 타입이었나 봐! 내가 그랬듯이 모두들 그렇게 사랑을 시작한다. 삐딱하게 볼 필요도 없이 그게 자연스러운 연애다. 다만 결국에는 그 남자의 솔직함과 욱하는 성질, 그 여자의 사려 깊음이나 답답함, 그 어떤 것도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어느 순간 눈짓과 표정 하나까지도 모두 짜증나고 싫어지겠지. 뭐 이런 새끼를 내가 좋다고 만났을까, 뭐 이런 지긋지긋한 기집 애를 내가 좋다고 만났을까. 침대에 얼굴을 묻고 억장도 함께 무너질 땐 잘 생각이 안 나지만 호감을 갖고 나를 연애하게 만들었던 이유들이 바로 헤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걸 우린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 현실적인 영화는, 동희와 영이 천 번 째 연애를 끝내는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커플들이 가장 많이 이별한다는 연애 3년 차. 그 전에 이미 유사 이별을 두어 번은 겪었을 시기. 이별의 위기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올 것이 왔다는 기분뿐이다. 어쩌면 홀가분하다. 했던 말 또 하는 것도 지겹고, 나는 매번 눈치보고 참아왔는데 몰라주는 네가 밉고, 번번히 상황을 터트려놓고 헤어지자는 말만큼은 끝까지 안하고 미룬다면서 너 또한 나를 지긋지긋해 한다. 우리가 왜 만났을까? 아니, 애초에 이 싸움의 시작이 뭐였더라? 솔직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지금 중요한 것은, 너와 내가 번번히 같은 패턴으로 싸우고 같은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지. 그만해. 관둬 그럼.

끝내자고 해놓고 못다한 말이 자꾸만 떠오르는 이별은 실패한 이별이다. 그래서 동희와 영처럼 아직 할 말도 많이 남아있고 몸도 마음도 채 식지 않은 뜨끈뜨끈한 커플의 이별은 대개 한번쯤은 번복된다. 다만 그렇게 이별을 한번 겪고 나면 상당히 조심하게 되는 법이지. 사람은 잘 안 변하니까, 너나 나나 서로에게 혹했던 요소들과 바닥을 봤던 순간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너나 나나 그 면면들을 징그럽게 품고 사는데, 너의 그 성질, 나의 그 고집, 왜냐면 사람은 잘 안 변하니까, 똑같은 등장인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과연.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재결합 커플의 공통점은, 전과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는 것이다.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데,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싸우는 커플일수록 서로의 앵거 포인트를 너무도 잘 알기에 싸움을 반복하다 보면 그 이상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서로 애쓴다. 마치 멤버 간의 갈등으로 해체했다 재 결성한 왕년의 인기그룹처럼 서로의 감정을 살피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때때로 침묵한다. 그래서 평화롭다. 그런데 무료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답답함이 풀리지가 않는다. 보기엔 아무 문제 없는데 속으론 자꾸만 우리의 전성기가 떠오르는 거지. 화려했던 시절, 나의 감정을 가감 없이 내보이며, 오해하고 화해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던 시절. 그래서 또 고민한다. 우리 잘 하고 있는 건가.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 그 중에서 성공할 확률은 3%란다. 그리고 나머지 97%는 처음에 헤어졌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헤어진다고. 연애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 중에 이와 같은 확률에 놓여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결국 이 영화는 과거의 연애, 현재의 연애, 그리고 다가올 연애까지 즉 우리가 겪어왔고 또 겪게 될 보편의 연애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연애의 온도>는 오랜만에 남에게 추천하고픈 한국 영화다. 지금 한창 연애 중인 이들에게 추천하고, 연애가 끝나가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극장에 앉아 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살며시 잡고 있던 손을 놓을 수도 있고, 다시 잡을 수도 있다. 예전의 누군가가 떠올라 손을 놓을 수도 있고, 미안함에 다시 잡을 수도 있는 영화. 티 내지 않았지만 한번쯤 가졌을 마음의 권태기를 들킨 기분에 슬며시 놓을 수도 있고, 서로간의 애정의 온도를 확인하며 다시 꼬옥 잡을 수도 있는 그런 영화.

결국엔 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만 헷갈리는 게 아니었어, 우리의 연애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사이 좋게 허리와 어깨에 손을 두르고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아참, 이렇게 말하니까 심각한 로맨스 영화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드는데, 다 떠나서 사이사이 터지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 재미있다. 은행이 그렇게 재미있는 곳인 줄 알았다면 나도 은행에 입사할 걸!

2013년 3월 28일 목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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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wing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속 주인공들의 로맨스에 환상의 날개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에 놀랐었다. 대사 하나하나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이 이입되었다.   
2013-03-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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