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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자택 인터뷰! 수전 서랜든? 한국에는 김부선이 있다구!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 하성태 기자 이메일


하성태(이하 ‘하’) 선거 뒷풀이는 잘 했어요?
김부선 중앙당 갔다가 12시에 빠져나왔어요. 안 가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가보니까 아무도 없더라고. 멋있고 우아하게 웃음 잃지 않고 있다가 막판에 기자들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XX, 진보신당 노회찬 보좌관 나와서 무릎 꿇으라 그래” 그랬어요(웃음). 기자들이 자기들도 한 대 맞겠다 싶어서 카메라 철수해서 가버리는 거야(웃음). 확 도니까 너무 성질이 나서. 정말 전국으로 열심히 뛰었거든요. 언제 한 번은 이틀을 노원 쪽으로 갔어요. 근데 돌아가래. 여기는 충분히 안전빵이니까 당신은 다른 거 하라고.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참.
뉴스 검색하다 보니까, 황영조도 반대편에 다 나왔더라고. 그러면 아무리 김부선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숨어있는 김부선의 유권자들이 있거든요. 바보들이야, 그 숨은 표를 꺼내야 되는데. 미혼모, 양심적 병역거부자, 마초 및 모든 약물 중독자. 거기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요. 내 친구 딸, 아들도 그럴 수 있고. 그러니까 진보성향이라는 사람들이 사고 자체가 너무 보수적인 거 아닌가……. 김부선이 표를 깎아 먹진 않았나 피해망상에 젖어서 이틀을 너무너무 울었어요. 하지만 결과가 좋다면야……. 끔찍한 게, 둘 중에 하나는 될 줄 알았는데.

서대원(이하 ‘서’) 심상정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단일화만 됐으면 희망적이었는데, 협상이 결렬돼서 아쉬웠겠어요.
미소가 그러더라고, ‘엄마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정치판이 다 그렇다면서.’(웃음) 딸이 선거 안 한다고 했는데 설득을 한 거에요. 그래도 진보신당이 옳은 일을 하고 있고, 네가 내 나이쯤 돼서는 건강한 정당이 나올 거다. 니가 이 정당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어떤 정치인도 흉내 못내는 소수자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 아니냐.

(홍보 대사 활동 중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자원봉사였어도 분명 정당 활동이었는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우선 체력이랑 돈이 달렸고요. 제 마음 같아서는 빌릴 수만 있었다면 500만원 정도만 있었으면 싶더라고. 거기다가 영화는 많은 스탭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줄 알잖아요. 그런데 조직조차 없고 너무 늦게 시작한 신생정당이다 보니까. 애기들이 하는 일이 미숙하고 아마추어처럼 보이니까. 총선시작하면서 모든 걸 다 끊고 정치에 중독 돼서 뉴스하고 인터넷 검색만 했어요. 그러니까 쏠쏠 알아오는 동시에 분노가 같이 와요. 시대에 부름 같으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으니까 두려운 거야. 마치 종교에 빠진 광신도처럼. 정치가 그런 중독이 있는 거 같아요. 또 (연기와) 유일한 공통점이 함성에 ‘뻑’이 간다는 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맛이 간 정치인들이 많은 거 같고, 현실을 모르고 환각에 사는 사람들이 많을 거 같아요.

굳이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구의원, 시의원 출마하는 사람들 보면 많죠(웃음).
그런 게 좀 힘들었고, 그리고 지방으로 나만 돌린다는 소외감. 난 노회찬 의원밖에 몰라요. 그 분이 인권이 오빠 면회도 다녀왔는데 법사위 소속이에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인권이 오빠를 많이 이용했어요. 그 사람 순수하잖아. 근데 막상 전화하니까 보좌관 선에서 통화조차 안돼요. 사실 (노회찬 의원은) 당연한 걸 해줬는데 내가 너무 감동해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은혜를 갚아야겠다 싶었죠. 이 사회가 기형적이에요. 사실 너무 웃기고 슬픈 얘기 아니에요? 당연히 국회의원이 해줘야 할 건데 한 번 면회 가줬다고 감동하고.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 영화계 지인들이 ‘너 되도록이면 하지 마라.’ 그래요. 특히 가족, 우리 딸이. ‘그렇게 흉측하고 더럽다며 그 판이. 엄마 흉해 보기 싫어, 하지마.’ 그래요. 그래도 내가 설득했어.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너랑 나랑 서울에서 얼굴 들고 살수 있는 거 아니냐. 난 오히려 그들이 고맙고 그들이 이용해도 상관없었어요.
그럼 진보신당 홍보대사 직을 수락한 것도 순전히 노회찬 의원과의 친분 때문에?
당연히 먼저 전화가 와서 ‘도와주실 거죠?’ 그래서 “저 감방 갔다 나오면서 그랬잖아요” 그러면서 흔쾌히 수락을 했죠. 고마움이 결정적이지만 평소 노회찬 의원 활동이 두드러졌어요. FTA나 스크린쿼터 축소 집회 때도 항상 거리에서 추울 때 만났었고. 다른 국회의원 XX들은 정당 눈치보고 대중들 눈치보고 우물쭈물 했잖아요. 그때 민노당 사람들, 심상정, 노회찬 의원은 거리에 보이더라고요. 영화인들이 밥그릇 문제되니까 농민들에게까지 관심 가지는 거 당연해요. 누가 김부선이 아파트 관리비 밀리고 하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근데 내가 밥줄이 끊어지고 거리로 뛰쳐나가니까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뭉쳐지는 거죠.

이 사회가 불합리한 게 많잖아요. 또 대체적으로 가부장적 마초 정서가 많고.
그런 벽이 너무 견고하고 두텁다는 걸 현장에서 체험했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연기뿐인데. 연극을 해 보라는 권유도 주변에서 하는데 이 빈가슴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해야 될 거 같아요. 그 갈증을 현실에서나 정치에서나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과 문화, 예술인과 풀면 좋을 텐데. 대마초 문제만 해도 그래. 웬만한 인터넷 하는 사람들은 대마초가 별거 아니라는 거 다 알잖아요. 그게 더 못마땅했던 거 같아. 저게 무슨 까라면 까야지, 대마초 걸리면 여배우가 울어줘야지. 국민들 잘못 했습니다 하면서(웃음). 내가 무슨 노름을 했나, 간통을 했냐고. 우리 어머니가 대마가 마약이 아니라는 건강한 사회를 못 보고 돌아가신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개인적으로 걱정됐던 게 옥소리씨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한 발언 때문에 또 도마 위에 오르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뭐라고들 하는데요(웃음). 그것도 사실 진보신당 표 모아 보려고 한 말이에요(웃음). 사실은 굉장히 은밀한 계획이 숨어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 표현만 따옴표가 되어서 선정적으로 보도되고 비쳐지니까.
이제 걱정 없어요. 제가 무슨 말까지 들었냐면 딸하고, 아버지하고 개하고 섹스하는 년이란 란 말까지 들었어요. 4년 전에 구속 됐을 때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는데 그래서 인터넷을 하다 끔찍한 댓글을 본 거죠. 그래서 판사한테 편지를 썼어요. 지금 사회가 이렇게 끔찍하다고.

확실히 500만원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건 운동하면서 필요한 ‘실탄’을 얘기하는 건가요? 운동원들 밥값이나 교통비 뭐 이런 것들.
비례대표 후보들조차도 8일까지 명함이 없었데요. 돈도 그렇고 조직의 시스템 자체가 체계적이지 못했던 거지. 우연히 진보신당 사무실에서 만난 <황진이> 조감독이 돈이라도 내고 싶었데요. 그 사람들 명함이라도 만들고 좀 쓰라고. 그게 진보고 참여인데. 그리고 사실 누가 부산에서 그날 바로 제주도, 거기서 청주, 광주 그렇게 혼자 다니겠어요. 이 사람들이 경험이 없으니까 여기 가라면 여기 가고 저기 가라면 저기 가고. 난 그저 노원에서 노회찬의원 얼굴마담이나 할 줄 알았는데 지방으로 돌리니까 점점 영화 같았어요. 중앙에서 드라마를 해야 되는데, 저 쌈마이 지방 흥행 영화만 하고 있나. 나만의 정서랄까, 외로움이랄까.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인데, 그런 외로움은 아무래도 좀 더 스타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서운하기도 했을 텐데.
아, 그럼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고 유치하기 그지없고. 그 쌈마이 4류 정치인 못지않은 5류 더라고. 의도하지 않게 문소리랑 함께 유세를 한 적 있었어요. 원래 시간 보다 빨리 나갔거든. 나도 모르게 차에 내려서 시장 통에 숨어서 무슨 얘기하나 보고 있는데 심상정 의원이 올라오라는 거에요. 그래서 셋이 같이 올라갔는데 문소리를 그때 처음 봤어요. 그 친구도 망설이다가 유세장에 나온 거지. 그러면 저녁때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보는 거죠(웃음). 일말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대한민국 배우들, 정치적인 사안에서 몸 납작하게 엎드리는 그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싶어. 그게 건강해지는 사회 아니겠어요. 정치적인 사안은 그동안 금기였잖아. 활발하게 자기랑 의견이 맞는 당에 가서 알려야 돼요. 수잔 서랜든 얼마나 멋있어요. 내 모델이야. 평화, 녹색 대단하잖아요. 남편도 연하에다 멋있고(웃음).

앞으로 조지 클루니 같은 분을 만나야겠는데요.
오우, 예스(웃음).

사실 그런 배우들이 드물고 혼자라는 느낌에 더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유세 끝나고 보니 기사가 한 줄도 없는데, 의도 적으로 내린 건가?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게 공권력이나 사회적으로 몰매를 많이 맞다보면 저절로 혼자 착각을 하고 피해망상이 들어요. 주위에도 곤욕스러워할 때가 많고. 제 슬픈 개인사에요. 문소리 쪽에서 김부선과 같이 사진 나가는 거 원치 않는다,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을 안 하거든요. 다들 주저할 때 생소한 정치판에 나 하나만이라도, 하는 거창한 얘기 같지만 살신성인하는 마음은 있었어요.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대한민국에는 베푸는 부자들은 없고, 가난한 사람만 기부하잖아요. 가진 자들, 그리고 베풀어야 할 자들에게 우리가 모델이 되길 원해요. 그리고 우리가 사랑받는 만큼 존경을 받아야 하는 거죠.

일전에 ‘제주 4.3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때도 동참한 걸로 아는데요. 제주 출신이라 진정성이 있었던 거 같아요.
효과가 있었잖아요. 민주당이 (총선에서) 다 싹쓸이 하고. 기자들한테도 부탁을 했어요. 한나라당 찍으면 안 된다. 하늘에서 영혼들이 내려다보고 있고 제주도가 그러면 안 된다, 우리가 잊지 말자. 아직도 지금 발견 못한 시신들이 많아요. 이건 동양의 히틀러에요. 이게 공식적으로만 3만 명인데 정부 집계는 못 믿잖아요. 10만 명이라고 봐야죠. 30만 명의 3분의 1을 죽인 거죠. 무고한 노인들하고 어린 아이들을 많이 죽였어요. 그들은 그때 이미 남한임시정부에 반기를 들다 빨갱이로 몰렸었어요. 얼마나 깨어있는 앞선 의식이야. 그들이 공부를 했어 육지에 대해 알았겠어요. 순수하고 착하게 어울려서 법과 제도 없이도 평화적으로 잘 살았는데 말이죠.

제주 ‘4.3 항쟁’에 대해서는 언제 알게 된 건가요?
스물여덟에 우리 어머니 영화 같은 과거를 알았어요. 남편이 공비토벌대 장교로 제주도 와서 그 순진한 양민들 죽이는데 앞장섰고 그래서 어머니가 서너 살짜리 아들을 잃고 장터에 왔다가 우리 아버지를 만났데요. 그때 만나서 함께 산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남자에요, 나이도 서너, 살 속이고(웃음). 사실 어렸을 때는 4월 3일이 축제날인 줄 알았어요. 제사 집에 먹거리도 많고 새 옷도 사 입고. 그래서 명절 같은 축제인 줄 알았죠. 우리 아버지도 진짜 멋졌어요. 군인 출신에다 키도 186으로 훤칠하고 풍물놀이도 잘 해서 집집마다 돈 걷으러 다녔데요. 그걸 다 고아원이나 못 사는 노인들 나눠주고. 그걸 나중에 나이 드신 읍장님한테 들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또 좋은 담배, 새 양복, 와이셔츠들은 안 피고 안 입다 돌아가셨어요. 중학교 때였는데 너무 비참했죠. 삶이란 게, 죽음이란 게 뭔가. 대체 뭘 가지려고 이런 걸 쌓아놓고 남루하게 작업복만 입었을까.

끼나 외모는 모두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거 같네요.
100% 그런 거 같아요. 남 앞에 나서는 거 좋아하고, 베푸는 거 좋아하고. 태안도 31일 날 작업복 입고 딸이랑 갔는데 31일, 1일은 쉰다고 하더라고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됐을 때도 음식 싸들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갔었어요. 서로 측은하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정치인들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부자 내각의 현 장관 마누라들 10명만 이런 생각을 가져도 통일이 금방 된다고.
진보신당 활동하면서 개인적인 의견과 배치가 되는 건 없었나요?
정치인들이 항상 반 박자가 늦어요. 감각이 이렇게 대중들보다 늦어서 되겠느냐. 제가 전북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하고 처음 만나서도 홍보대사들 끼리만이라도 만나게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변영주, 박찬욱 감독, 진중권 교수, 많잖아요. 근데 그런 여지도 없었어요. 시간이 없었으니 이해를 해야죠. 우린 프로들이고 순수해요. 그들이 우리를 이용을 못 한거죠. 우리는 길만 터주면 올인 했을 텐데. 그래서 상처받는 연예인들 많았을 거예요. 두 분 다 떨어져서(웃음).

진보 신당 내에서나 민노당 당원들하고의 설왕설래도 있었잖아요. 김부선이 과연 진보신당 홍보대사와 어울리는가 하는.
좀 식상하지 않아요? 20년 된 얘기야. 배우도 바꾸고 시나리오로 바꿔야 돼. 강성 마약이나 도둑 내각으로 시나리오를 바꿔야죠. 대마초는 흥행이 안 되잖아. 민노당에서 그런 얘기하는데 살인자 역할하면 살인자 낙오를 쓰고 살아야 되는 건가요? 영화랑 현실이랑은 구분을 해야 되는데. 그 사람들은 내가 직접 변호사도 없이 작성한 헌법소원 전문을 읽어보고 비난을 해도 했으면 좋겠어요.

근데 식상해도 때만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려 지고 또 거기에 휘말리는 대중들도 적잖이 있는 것 같아요. 뻔한 얘기인 줄 알면서도 같이 흥분하고, 말려들죠.
이제 부담은 없나요? 김부선 하면 대마초 비범죄화, 진보신당을 떠올리게 될텐데. 배우가 너무 정치적으로 비춰져서도 안 되잖아요.
제발 정치적인 사람으로 인식해 주길 바라죠. ‘저 여자는 정치적인 피해자다!’ 헌법소원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 피해자에요. 미국의 피해자인 거죠. 무고한 사람들을 대량 학살 해 놓고 그걸 또 정부나 미국에서 감춘 거고. 또 5천년 동안 민초들이 사용해 왔던 대마초를 새처럼 난다고 뻥을 치고. 그런 것들이 너무 기가 막히고 당하고만 살았던 거죠. 사람들이 저보고 멋있다고 하면 ‘정치가 먼 나라 얘기인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니다. 지금 여자들이 매일 죽고 납치당하고 하지? 분하지 약 오르지 경찰이 제대로 수사 안했지? 그때 인터넷 댓글로 책임자 처벌하라고 하는 게 정치야. 그게 당신이 정치하는 거야’ 그래요. 엄마들이 장바구니 집어 던지고 청와대가서 ‘명박이 나와라’ 이러면서 참여를 해줘야지 우리나라가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이제 슬슬 영화 얘기도 해야 될 텐데요.
마지막으로 총선 결과를 봤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신문에 자주 나오는 말 있잖아요. 경악! 분노! 다시 우울증이(웃음). 제가 오늘 미장원 가서 그랬어요. 더 깨져라 국민들, 아직도 자각하지 못하는 국민들. 피 터지게 고생하고 병원비 없어서 병원 못가고 길거리로 나앉고 피 같은 혈세 팍팍 뜯기면 수 십 년 후에나 깨어 날거라고. 많이 속상해요. 우리 정치사의 보석 같은 두 사람을 잃었다고, 역사는 기록할 거라고 팬 카페에 써놨어요(웃음).

이렇게 정치적인 김부선으로 변한 계기가 있다면요.
대마관련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9명이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리는 순간 ‘야마’가 돌고 전투력이 생긴 거에요. 어떻게 재판관 전체가 똑같은 의견을 낼 수가 있어, 공산당도 아니고. 약물학자들이 대마 관련해서 근거를 세워서 처벌 수위에 대한 입법 규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해도 다들 모르쇠에요. 진짜 전문가들은 ‘에이, 무식한 놈들’ 그러면서 산속에 들어가 당신 공부나 하시고. 진짜 엉터리들이 약물 정책 잡고 있는 거예요. 타이레놀에 마약 성분 들어가 있고 남자들 ‘몸짱’ 만들어주는 호르몬제도 심각한 마약이라면서요. 얼마나 심한 마약들을 약국에서 처방해 줘요. 난 한 번 피웠다고 20년 동안 공권력에 억압과 감시를 받고 있는데. 기가 막힌 거야. 사람들은 그러지. ‘여기는 한국이다, 외국 가서 피워라’. 그럼 난 “여긴 지구다, 우린 지구인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예술 하는 사람들 중에서 한 번이라도 대마 해 본 사람들 꽤 될 거에요(웃음). 근데 그것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거나 그런 것도 없고요. 검찰들이 난리 칠 뿐이고요.
그래서 내가 요즘 재산 처분해서 이민 갈까 생각 중이에요. 5년 동안 명박이도 안 보고 영화계도 어려우니까(웃음).

따님 미소는 어떡하고요.
빨리 떨어져야지 성공하죠. 너무 끼고 살았어요. 얘랑 떨어 져야 남자라도 하나 생기는데(웃음).
요즘 문화계 분위기는 어떻게 보세요? 유인촌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말이 많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지금 유인촌이 한나라당이 만들어 놓은 법 무시하면서 문화예술인들 나가라고 할 게 아니라, 자기 개인 취향에 맞지 않다고 근거 없이 자르려는 사람들 솎아내는 게 이 정부에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창동 감독 같은 경우 스크린쿼터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제가 ‘노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청와대 앞에 가서 목소리 낸 적도 있어요. 스크린쿼터도 우리 밥줄 끊은 거지만 선일이, 이라크 파병 반대 했을 때도 우리 미래, 불행이 보였거든요. 끝내 강행해 나가는 것도 아쉬웠고. 유인촌 장관도 동네 이장 같은 짓거리 그만해야 되고요. 또 지금 한나라당에서 잡고 있는 감독협회 사람들이 다시 한 몫 해 보겠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이제 진짜 작품 얘기 해 보죠. 드라마 잘렸다는 얘기는 뭔가요?
사실 연기자들이 다 비정규직이에요. 노동자들처럼 노동 조건을 따지며 협상에서 결렬된 것도 아니고 이미 계약서에 도장 다 찍고 언론에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잘린 거죠. 게다가 윗분들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자르는 건 부당하잖아요.

정확히 어떤 드라마였길래.
오늘날 한예슬을 탄생시킨 드라마 <환상의 커플>. 사실 난 굉장히 희극 배우에요. 시트콤도 자신 있고. 순발력도 있고 애드립의 천재라는 건 감독들이 알아줄 정도죠. 거기서 지금 이미영 씨가 연기한 역이었는데 원래보다 역할이 조금 줄어들었더라고. PD한테 나 괜찮느냐고 물어봤더니 상관없다고 해서 가게도 팔고 준비도 많이 했어요. 근데 MBC가 그럴지 몰랐지. <불새>도 했었고 아침방송도 MBC만 나갔어요. 근데 드라마에서 자른 거죠. 사실 다른 중견 배우들 약간은 식상하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이 <불새>에서 김부선을 좋아했던 건 연기를 잘 해서라기보다 신선했기 때문이거든요. 그 <애마 부인>의 김부선인 줄은 세월이 너무 흘러서 모르고 연극배우인줄 알았데. 게시판이 뜨거워서 지금도 행복해요. 연극배우 같다는 말을 듣기 위해 20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면서 혼자 동숭동으로, 심야영화 보러 다니면서 배회했거든요. 내가 80년대에 연예계에 데뷔했는데 20년 만에 공연방송 출연했다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연기는 타고난 배우들이 분명 있어요. 하지만 하면 늘잖아요. 근데 할 기회가 없어서 연기를 못했다는 거죠.

방송국 쪽에서는 거절한 이유를 밝혔나요?
대마초 피우는 배우라 이미지가 안 좋다는 거죠. 사실 그 다음 <달자의 봄>이 치명적이었어요. 그때도 국장한테 방송사로 찾아 가서 얘기했어요. 당신들이 이렇게 매장을 시켰다. 그러니 기회를 달라. 나, 어영부영 사는 배우 아니니 좀 도와 달라. 국장이 하는 말이 시청자들이 왜 저런 여자를 썼느냐고 할지 모르니까 다른 방송국 가서 한 작품만 하고 오면 자기가 써주겠다고 하더라고. 근데 웃기는 건 한 달 전 출연한 KBS <드라마 시티>로 연말 연기상 후보에 올랐잖아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뛰는 감독들은 김부선 연기 좋다고 후보에도 올려줬는데 높은 사람은 자기 취향에 따라서 대마초를 핑계로 무조건 싫다고 한 거지.

수많은 연예인들이 대마나 마약을 하고 난 다음에는 접고 들어가는데 김부선씨는 ‘ING’ 형이니까 더 밀쳐내려고 하는 가 아닌가 싶어요. 이 친구는 안 접고 들어오고 아직도 강경하구나 하면서.
그 사람 자식들이 직접 고생해 봐야 돼요. 그래야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특히 대한민국 지식인들은 모두 반성하고 깨어나야 돼.

그럼 드라마가 막힌 상태라 아무래도 영화 쪽을 타진했겠네요.
아니요. 제가 <히트>랑 몇 개 잠깐 나갔어요. ‘이쯤 되면 방송도 허용된 거 아니야.’ <별순검>도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이 나와서 이제 분발 해야겠구나 희망을 가졌어요. <별순검> 직전 까지만 해도 어디서 죽어야 가족들이 덜 슬퍼할까도 생각했는데. 그래서 정신과에서 가서 1시간을 상담했는데 결론은 또 대마에요. 스스로 내가 너무 위험하다고 토로했더니 의사가 한 달 치 약을 처방해 주면서 그래요. “결국 이것도 도움 안 되는 거 아시죠?” 그래서 몇 일만에 약을 다 버렸어요. 그 똑똑한 전문의들도 대마가 우울증에 특효약이란 건 다 알고 있어요. 대마를 피고 제 사생활이 다 드러나고 언론에 공개됐을 때는……. 그거 있잖아요, 집에서 혼자 포르노 보며 혼자 자위하다 그게 만천하에 드러나고 망신당하고 집단 강단당하고. 그리고 감옥에 간 거죠. 그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요?(울먹이며) 앞으로 잘 될 거라 믿어요.

그런 아픔을 이제는 연기로 풀어야 할 텐데요.
조만간 영화인들의 창작 욕구가 풀타 오를 거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진중권씨가 하는 것처럼 개그 소재를 너무 많이 주기 때문에 정치 영화나 블랙 코미디가 많이 나올 거라고. 그러면 진짜 쌈마이 국회의원 역할 잘 할 자신 있어요(일동웃음). 한나라당에 그 누구 있잖아요? 그런 역할 맡으면 내가 거짓연기 안 하죠.

혹시 매니지먼트 쪽에서 연락오고 한 적은 없었나요.
있었죠. 대마초로 잡혀가긴 직전에 싸이더스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때 바로 잡혀가서 그 이후에 연락이 없지(웃음). 근데 어쩌겠어요. 내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언제는 있었나, 조금만 부지런하면 돈 굳는 건데, 내가 스스로 적응하지, 이러면서 자위하죠.

그럼 어떤 식으로 활동을 하고 계신 건가요?
힘들어요. 전화가 오면 1차로 인터넷으로 시나리오 보내보라고 해서 읽고 좋으면 만나는 거죠. 근데 또 일전에 MBC에서 <비포 앤 애프터 성형외과>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예전 그 국장이라 안 한다고 했어요. 기획이 예전 <환상의 커플> 때 그 책임 프로듀서더라고.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죄송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기획한 드라마 할 수 없다’고 했지. 당장 아쉬워도 난 그런 과 사람 할 수가 없다. 그게 나에요. 잠깐 숙이면 되는데 계산을 못하겠어. 근데 그건 옳지 않잖아요.

반응이 좋았던 <별순검>은 좀 남다를 거 같아요. 캐스팅은 어떻게 된 건가요?
당연히 PD에게 연락이 왔죠. 그 PD는 절 설득하려고 3시간을 얘기했어요. 이대로는 비참해서 못하겠다고. 결국은 했는데 그때 1년 동안 200만원을 벌었어요. 회당 100만원이더라고.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사실 (캐스팅 취소에 대해) 미국 같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전엔 그때 5개 정도 드라마 날아가고 1년 간 캐스팅이 안 될 때가 있었어요. 그때 <꽃피는 봄이오면>은 작가가 절 모델로 인물을 만들었더라고요. 대마초를 핀 미혼모 여배우. 근데 또 그 쪽 국장이 똑같이 김부선은 안된다고 했데요. 그래서 내용도 수정하고 캐릭터 이름만 김부선으로 나갔어요. 그래도 그때 전 기뻤어요. 작가가 제 얘기로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이 감동이었죠. 카페 ‘니키타’ 운영할 때는 풍족하진 않았지만 여유롭게 살았거든요. 근데 <환상의 커플> 이후로 딸한테 용돈 한 번 못 주고. 이런 처지라 방송국에 대해서 내가 무슨……. 그런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하고는 싶어요.

빨리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를 만났으면 좋겠는데요.
우리 딸한테 ‘밑바닥 아줌마, 처량한 한 많은 여인네들 연기해야 되는데 맨날 마담이나 들어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딸이 ‘엄마가 섹시하고 예쁘니까 그렇지’ 그래요. 엄마가 학교 왔다 간 뒤로 과 선배들이 엄마 몸매가 더 예쁘다고 했데요. ‘솔직히 엄마, 대한민국 꽃미남 청춘스타 다 만나봤잖아?’ 그래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비록 영화 속이지만 내가 추레하면 같이 붙이질 않잖아?

그럼요. <말죽 거리 잔혹사>에서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한데요.
더 윗세대에서는 여신이죠, 여신.
그렇게 가당치도 않은 꿈을 꿔요. <별순검> 시청자 의견이나 반응을 보고 내가 분발해야 되겠구나 싶고. 영화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삶이 피폐해서 그동안 영화도 못 봤어요. 거기서 하정우가 연기 참 잘했더라고요. 그 친구와의 베드신도 한 번 기대해 보면……(웃음).

예전에 비해 역할은 다양하게 들어오나요?
워낙 영화계 사정이 안 좋으니까요. 100% 절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분발해야죠. ‘가오’ 인생이라 감독님들한테 먼저 찾아가지 못하는 것도 바꿔야 되고. 오히려 나 자른 국장들한테 찾아가서 먼저 인사할까도 싶고(웃음).
여러 감독님들 만나고 하는 건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걸 20년 마다 매일 생각했어요. 감독님들과 만나서도 얘기하고 좋은 친구들도 사귀야지 하는데 너무 내 편한데 익숙해져 온 거 같아요. 근데 그건 사실이야. 타인들이 나랑 공개석상에서 만나는 거 불편하게 느껴요. 감독들도 그렇고. 실제로 <더 게임> 윤인호 감독은 탄원서에 이름 올리면서 ‘김부선 씨는 오래 전에 친할 기회가 있었는데 부러 피했다, 자기를 마약중독자 취급할까봐 그랬는데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썼어요. 지금 당신이 힘들지라도 나중에 역사가 평가 해줄 거라면서. 고맙고 그 고백이 너무 감사해요.

역시 결론은 작품으로 만나는 거 밖에 없겠는데요.
맞아요. 빨리 나를 낮추고 현실로 받아 들여야 돼요. 근데 영화계 돌아가 보면 할리우드처럼 자본이나 스탭이나 너무 변해있더란 말이죠. 그리고 제가 ‘감독님 저 일하고 싶어요’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거대 소속사를 통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정말 (작품) 들어가기가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그래서 기자들한테 항상 연기에 목마르다고 얘기는 하는데 장벽이 베를린 장벽, 38선 보다 더 커지는 거 같아요.

배우는 이미지로 먹고 살잖아요. 지금과 같은 상식적인 생각은 견지해 가면서 배우로서의 접근방법은 조금 유연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 견해들을 피력하면 할 수록 연기 생활의 입지는 좁아지고요. 문화계가 더 성숙되어야 할 거 같아요.
결국에는 내 돈도 많이 썼어요. 공소내용으로만 보자면 딱 4번 핀 건데 변호사 비용이 대법원까지 8천 만 원이 들었어요. 끝까지 전 재산을 들여서 싸우고 싶은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내가 현실적인 속물이잖아요. 배우로서 위치도 생각해야 되고. 사실 이렇게 거침없이 발언 할 수 있는 건 미혼모기 때문이에요. 내가 명망가에 며느리라면 어디 인터뷰를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가장 미안한 건 딸이죠. 자기는 정신적으로 이미 아버지 묻었다고 했어요. 끔찍하고 슬픈 일이죠.

따님은 충분히 이해할 거라 보는데요. 또 그건 잊지 마세요. 숨어있는 팬들도 많고, 지지하는 분들도 많다는 걸!
그러니까 옥소리는 나보다 더 외롭죠. 난 마이너리티로 한 평생 숨어 지냈고 민초 생활을 했지. 그 친구는 팬도 많고 CF 여왕이고 섹시하고 가정도 있었고 팬들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니 나보다 더 어렵고 외로웠을 텐데 헌법소원까지 했으니 존경스럽고 사랑스럽다는 거죠. 왜들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어(웃음). 왜들 그렇게 옥소리 침실 생활을 관여하고.

지금 활짝 웃는 모습처럼 활동 계속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럼요. 살아 낼 거예요. 작품은 또 들어오는 대로 할 거고. 초조하지 않게요.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 진행: 서대원 편집장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 하성태 기자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 정리: 하성태 기자(무비스트)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

46 )
sungmo22
연기력은 좋으나 개인적으론 비호감~   
2008-04-23 14:29
jjzang
별순검에서 잘 봤는데...앞으로 스크린에서 드라마에서 마니마니 봤으면 좋겠습니다.   
2008-04-23 12:23
kop989
숱한 오해와 편견 선입관이 김부선이라는 배우에게 존재하는 거 같군ㅇ. 아무쪼록 파이링 하시기 바랍니다.   
2008-04-23 10:26
77iris
평탄한 인생은 아니신 듯   
2008-04-23 09:50
ymsm
볼수록 아니올시다..........   
2008-04-22 23:50
ldk209
멋지다....   
2008-04-2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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