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육식을 거부하고 계속 야위어 가다가 결국에는 스스로를 나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나니 그런 부분이 잘 표현 됐던가?
아쉬웠다. 계속 아쉽기만 하더라. 살을 좀 더 뺄걸. 이왕 하는 거 더 빼고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냥 보기에도 너무 안쓰럽던데, 거기서 더 뺄려고?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남자 같다. 그래서 골격이 좀 크다보니까 살을 빼도 확 티가 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다른 배우들처럼 마루인형 몸이 아니라서.(웃음)
평소에도 마른 체형 아닌가? 거기서 8kg을 더 뺐다니 대단하다.
평소에도 마른 체형은 아니다.(웃음) 살을 뺀 건 솔직히 계속 굶어서 뺐다. 왜냐면 주어진 시간이 얼만 없었다. 그래서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운동을 하고 그럴 시간이 아예 없었다. 단기간에 뺄 수밖에 없어서 안 먹고 굶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끝나고 나니 바로 요요가 오더라.(웃음)
그렇게 급격하게 살을 뺐으니 요요가 빨리 와주는 게 오히려 좋은거 아닌가?
끝나자마자 바로 왔더라. 영화 찍는 동안 계속 먹고 싶었던 게 라면에 밥 말아서 먹는 거였는데, 그거 먹었더니 바로 원상태로 복구가 되더라. 급격한 요요에 놀랐다.(웃음)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무조건 안 먹는 시간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한 2주 조금 넘는 기간이 있었다. 근데 내가 식탐이 좀 많다. 같이 음식을 시켜놓고 있으면 배가 좀 불러와야 남을 배려하는 성격이다.(웃음) 그래서 안 먹고 살을 뺀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상대 배우인 김현성은 오히려 살을 더 찌웠다. 확실한 비주얼적 대비를 이루더라.
오빠(김현성)한테는 계속 더 먹으라고 그랬다. 너무 먹어서 나중에는 허리띠 버클이 빠질 정도였다.(웃음)
시나리오를 받아봤는데 그런 장르를 처음이었다. 이런 영화를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하고 희한했다. 읽어봤는데 재미도 있었다. 내가 하고 싶지만 누가 하더라도 쉽지 않은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욕심이 생기더라.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니저한테 바로 전화해서 다음날 감독님 미팅을 바로 잡았다. 감독님을 만나서는 시나리오 잘 봤다고 말씀 드리고, 제가 다이어트 하고 있으면 되는거죠? 라고 바로 물었다.(웃음) 그랬더니 감독님이 좀 황당해 하더라. 마치 표정은 “내가 언제 너하고 한다고 했냐?” 이런 뉘앙스였다.(웃음) 역시 감독님이 영혜 역으로 다른 배우들도 좀 보고 싶다고 하더라. 거절당한거라 실망은 했지만, 일단 각색된 시나리오도 보고 싶다고 했다. 안 뿌릴 테니 걱정 말라고.(웃음) 가는 길에 PD님한테 빠른 시일 내에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다음날 저녁에 바로 연락이 왔다. 감독님이 나랑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화 끊고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 났다. 춤까지 췄다.(웃음)
난해한 이야기이고 대사도 별로 없는 캐릭터라 표현하기 힘든 작품인데.
그래서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전에 보여줬던 부분은 너무 무거운 분위기였다. 물론 <채식주의자>의 영혜도 다소 무거운 편이지만, 어떻게 보면 되게 불쌍하고, 엉뚱하고, 귀여운 면도 있다. 처음부터 그런 걸 배제시키고 보면 안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는 비우고 와서 봐야 한다. 내가 전에 했던 역할들이 밝은 것보다 어두운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고, 영혜라는 캐릭터는 내가 했던 것들하고는 달라서 더 매력적이었다. 캐릭터를 찾아가고, 응용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서 빠른 길을 찾아갔다. 이후에 다른 캐릭터를 할 때데 많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챔피언> 이후 <외톨이> <가발> 등의 최근작들은 편향된 장르나 캐릭터의 영화들이기도 하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그 전에는 내가 캐릭터에 묻어가는 편이었다. 근데 이번에는 정말로 영혜라는 역할을 나한테 갖고 와서 짊어지고 갔다. 그렇게 가다보니까 오히려 편하더라. 옛날에는 내가 짐이 돼서 갔다면, 내가 캐릭터를 짊어지고 가니까 편하고 빠른 길도 찾게 됐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할 정도로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 동안은 바보였다.(웃음) 나한테 남다른 역할이고 20대 마지막 영화고 해서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영화를 계속 했던 배우지만 큰 흥행작이 없어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스스로 하고 싶은 역할과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노출 장면도 많고.
솔직히 노출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 남들이 안 갖고 있는 특별한 걸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 똑같은 모습이고, 영혜가 돼서 그 장면을 촬영할 때는 야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오히려 불쌍하고, 안타깝고, 애처롭고, 어떻게 보면 가서 안아주고 싶은 그런 장면도 많다. 근데 그게 야해 보인다면 그런 분들은 내가 때려줄 거다.(웃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히려 영혜가 돼서 편하게 작업했다. 여배우로서 노출 연기가 편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편했었다.
배우가 딱 하나만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어떤 작품을 하면 다른 부분을 포기해야 할 일도 생기고 그러잖나. 이런 장르를 찍었다고 다른 걸 못 찍는다고 생각하면 안 되니까. 그런 걸 문제 삼거나 그 배우를 하나의 이미지로 보면 안 된다. 만약 어떤 장면을 에로틱하게 찍었다면 그건 에로틱하게 보여야 하니까 그랬을 거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에로틱한 장르가 아니라 그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하게만 보는 건 잘못됐다. 만약 에로영화라거나 그렇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라면 그 영화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배우 스스로에게 이 작품에 대한 강한 의지가 보이는데, 작품을 끝내고 나서 만족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인가?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하루만 시간을 돌려놨으면 하는 생각뿐이다.(웃음) 그 장면 한 번만 다시 찍었으면, 그때 내가 물이라도 좀 덜 먹었으면 더 영혜 같았을 텐데, 좀 더 앙상하게 보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누구나 자기가 찍었던 영화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백이면 백 다. 나는 더군다나 이런 장르, 이런 영화는 처음 찍어봤고, 또 솔직히 스스로 너무 하고 싶어서 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남다른 느낌이 더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더 보이는 것 같다.
저예산 영화여서 촬영 진행도 빨랐을 것 같은데, 다이어트 외에 어떤 점이 힘들었나?
촬영은 한 달 조금 넘게 했다. 촬영할 때 정말 서로 도움을 많이 줘서 특별히 힘들지 않게 촬영했다. 힘든 부분이 있어도 대부분 티 하나 안 내고 더 힘냈다. 서로 협조하고 상대가 다칠까봐 더 배려하고 그랬다. 굳이 꼽으라면 좀 더웠다는 거?(웃음) 에어컨을 끄고 찍는 장면이 많은데, 더운 날씨에 조명 열기까지 있으니 무척 더웠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밤낮으로 찍으니까 지치더라. 더구나 난 먹지도 못 하니까 스트레스가 더 컸다.(웃음) 또 바디 페인팅도 8시간씩 서서 그리고 했으니 웬만한 노동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더우면 바디 페인팅이 잘 지워져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부분이 있어서 힘들긴 했는데, 분장하는 방에는 선풍기를 틀어줘서 살 것 같았다. 분장할 때는 천국이었다.(웃음) 그래도 분장을 오래하고 싶지는 않았다.(웃음)
영화 속에서 배우로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디였나?
아직 그게 안 보이더라. 아직도 많이 긴장된다. 아쉬운 것만 가득하고 마음에 드는 건 안 보인다. 개봉한 게 아니잖나. 정말 중요한 분들인 관객들이 아직 안 봤기 때문에 더 떨리고 이렇게 멍하고 긴장되고 그런다.
점점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새로운 연기에 대해서 좀 알아주던가?
시사회 끝나고 많이 느꼈다. 문자가 정말 많이 왔다. 우선 내가 그런 연기를 했다는 것에 낯설어 했다. 나한테 그런 눈빛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동안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자길 때려달라더라.(웃음) 영화 잘 봤다는 얘기들, 시사회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들도 많았다. 자기한테 그런 감성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는데 덕분에 그런 감성을 깨울 수 있어서 고맙다는 얘기도 들었다. 내 연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됐다는 얘기가 많아서 너무 고마웠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나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서 좋았다. 근데 동시에 창피하기도 했다.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촬영할 때 임우성 감독하고는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었나?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상의를 많이 해서 특별히 부딪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컷으로 이루어졌는데, 콘티에 대해 의견을 많이 제시한 편이다. 물론 감독님이 작품에 대해 생각은 많이 했겠지만, 그래도 직접 연기하는 입장에서, 영혜의 입장이 돼서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럼 촬영감독님이 두 가지를 다 찍어보고 현장 편집에서 괜찮을 걸 골라서 쓰기도 하고 그랬다.
후반부에 병실에 누워있는 장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 같더라. 눈빛은 아예 사람 같지 않더라.
내내 누워만 있었다. 누워서 감정을 많이 없앴다. 이 감정, 저 감정을 섞으면 너무 지저분하게 될 것 같았다. 표정도 그렇고. 그냥 영혜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언니 감정은 생각도 안 했다. 언니 감정을 생각하면 또 복잡해질 것 같아서 그냥 영혜 감정만 생각했다. 영혜는 그런 아이니까. 영혜만 생각하고, 영혜 감정만 따라갔기 때문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완성된 영화가 궁금하지 않았나?
편집실에 가려고 했는데, 못 가겠더라. 가면 너무 참견을 할 것 같아서.(웃음)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일 테니까. 한 번 쭉 보고 싶은데 보여주지도 않겠다더라. 근데 보고 나면 막 시비걸 것 같기도 했다.(웃음) 그래서 편집실은 못 가다가 작업이 끝날 때 즈음에 가봤고, 완성된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때 봤다. 감독님도 그걸 원했던 것 같다.
버라이이티에 나오는 모습이 실제 내 성격이다.(웃음) 원래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나 그럴 때도 그냥 가만히 있다가 불쑥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그런다. 되게 저 딴엔 생각 많이 해서 얘기하는 건데 이상하게 받아들이더라.(웃음) 그래서 맹여사라는 별명도 있고, 비슷한 별명들이 많다.
관객들이 <채식주의자> 속 영혜에 대해서 어떤 점을 발견하길 원하나?
그냥 마음 비우고 봤으면 좋겠다. 너무 알고 와서 보면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에는 몇 분 동안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다음에 잔상이 남으면 나에 대해서도 얼마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잔상이 남아야 영화니까. 스쳐지나가도 향이 남는 남자가 있잖나? <채식주의자>도 그런 영화다.
나름 새로운 연기 시도였다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되게 많은데.(웃음) 왈가닥도 해보고 싶고. 옛날 드라마 <왕초>에서 차인표씨 역할을 여자 왕초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특이하게.(웃음) 하고 싶은 특이한 건 머릿속에 되게 많은데, 그런 역할이 주어져야 하는 거니까.(웃음)
차기작에서는 원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가?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영화랑 드라마랑 보고 있는 대본은 있다. 스크린이 됐던 브라운관이 됐던 곧 다른 작품으로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