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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는 것들 <일일시호일> 오모리 타츠시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모리시타 노리코의 다도 에세이를 스크린에 옮긴 <일일시호일>은 우연히 다도를 배우게 된 스무 살 여성 ‘노리코’가 24년 동안 겪는 삶의 파고를 관조적으로 좇는다. 확신 없던 스스로를 향한 부정적인 자의식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고, 상실의 고통을 자양분으로 한층 성장하고, 상처에 새살이 돋아 단단해지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의 단면 단면을 차분히 응시한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매일이 즐거울 수 있느냐고 누군가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오모리 타츠시 감독은 말한다. 반드시 즐겁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즐거울 것이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라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새 힘을 불어넣어 주는 주문처럼 되뇌어 보라고 조언한다.


<일일시호일>은 모리시타 노리코의 베스트셀러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스크린에 옮기면서 주안점은.
원작에서 좋았던 점을 솔직하게 옮겼다. 약간의 드라마적 요소의 삽입이 필요했지만, 별로 어렵지 않았다. 영화 속 ‘노리코’(쿠로키 하루)가 아버지를 여의는 것과 다도 선생인 ‘다케다’(키키 키린)가 예전 스승을 잃은 후 상심한 것 등을 배치하며 다실의 상황과 ‘노리코’의 일상 간에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는 것들에 중점을 뒀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은 모르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어떤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다도가 죽음과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다도가 죽음과 가깝다고 생각한 이유는.
‘오모테산케’(기자 주 교토를 중심으로 한 다도 유파의 하나)라는 다도 유파가 있다. 일본에선 그 창시자를 ‘차의 성인’ 혹은 일본 차 문화를 완성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매일이 전쟁터였던 전국시대를 살아 낸 인물이다. 그가 다실에 있는 동안만은 칼을 내려놓고 평안과 평화를 찾았다고 알려져 있다. 다실의 좁은 공간과 다기 등은 아기자기하고 작은 세상처럼 보이지만 그가 찾은 세계는 죽음과 삶 등 인생의 철학이 다 담긴 큰 세계였을 터다. 그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일일시호일> 스틸컷
<일일시호일> 스틸컷

<일일시호일>은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의 흐름을 담고 있다. 긴 시간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알다시피 영화는 오랜 시간 즉 24년에 걸친 이야기를 담는다. 그 시간 동안 주인공 ‘노리코’는 사랑의 실패로 울기도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극심한 상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한 인생의 여러 힘듦에 맞닥뜨리지만, 다도 교실을 꿋꿋하게 다닌다. 난 그 한결같음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도를 처음 배우며 엄격한 형식과 규율에 지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묘미에 눈을 뜨는 것처럼 어떤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얻는 기쁨이 있을 거다.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닌 스크린으로 보는 <일일시호일>의 매력을 꼽는다면.
처음 원작을 읽고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가서 시작했고, 이후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가 영화에 들어와 작용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게 됐다. 말 혹은 글로 표현된 원작을 배우는 표정과 말투와 행동으로 구현하고 그 과정에서 변화와 새로움을 창조해낸다. 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글이 생명력을 발휘해 영화만의 생생함을 부여받는 거지. 가령, 초반 ‘노리코’가 다도 선생님께 너무 형식적이지 않냐고 반문하는 장면이 있다. 마침 촬영하는 모습을 원작자인 모리시타 선생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내가 저런 식으로 이야기했구나!” 하며 당시를 떠올리더라. 아마 글로는 그 느낌이 정확히 전해지지 않았을 거다.
 <일일시호일> 스틸컷
<일일시호일> 스틸컷

영화는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故 키키 키린의 마지막 주연작이다. 정갈한 다도 선생 ‘다케다’역에 그녀만큼 적역이 있을까 싶더라. 또, 그의 제자 ‘노리코’역의 쿠로키 하루와 호흡이 매우 좋았다.
처음 그녀에게 역할을 제안했던 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였다. 투병 중이던 그가 자기 죽음을 의식하며 작품을 골랐을 터이니 (아마도) 평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가 일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힘이 극 중 캐릭터와 싱크로율을 높였다고 본다.

‘노리코’ 역에 단지 젊고 예쁜 여배우를 데려다 놨다면 키키 키린 역시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쿠로키 하루를 캐스팅하기 전에 다른 배우를 상상해보니 너무 밋밋하고 재미없어 보였다. 키키 키린과 쿠로키 하루, 두 사람이 영상 안에 함께 있으니 비로소 힘이 생기고 좋은 그림이 나오더라. 어쩌면 내가 그 두 배우를 한 앵글 안에 담고 싶었던 것 같다.

다도는 ‘노리코’에게 있어 인생의 파고를 함께 넘은 말 없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당신에게 ‘다도’와 같은 존재가 있다면.
당연히 영화다. (웃음) 어릴 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재미있게 봤지만, 그것 외에 다양한 영화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스스로 감수성과 공감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비디오를 돌려보며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점차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영화를 알아가고 또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해의 폭 역시 더욱더 넓어지게 됐다.

 <일일시호일> 스틸컷
<일일시호일> 스틸컷


촬영하면서 다도 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텐데, 전후 다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다도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고 전혀 몰랐다. 다도 자체가 형식이 중요한데 형식 안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게 흥미로웠다. 연출할 때 내 감각과 내 방식만 고집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을 종종 하곤 했기에 더 다가왔던 지점이다. 극 중 다도 선생이 ‘노리코’에게 몸에 맡기라고 조언하는데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는 게 어떻게 보면 무서운 것 아닌가. 반대로 형식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도 문제일 거다. 형식과 감각 사이 균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자기성찰이 중요함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일일시호일>이 지난 10월 일본에서 개봉한 후 두 달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 있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가 주를 이루는 일본 영화계임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성과가 아닌가 한다.
기쁜 일이다. 그중 반 이상은 키키 키린 덕분일 것이고 한편으론 실사 영화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일본 영화팬이 많다는 방증일 거로 본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흥행과 작품성 사이 균형을 맞추는 건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건 좋지 않다. 소위 ‘잘’되는 영화를 위주로 하는 사람도 있다면 나같이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일시호일>은 데뷔작 <게르마늄의 밤>(2005)이나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안녕 계곡> (2013) 등 어둡고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했던 전작과는 상당히 다른 서사와 결을 지녔다. 연출 작품 선택 기준은.
과격하고 반사회적인 인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드라마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당신이) 말했듯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주로 했지만, 내 전작 중에는 소년 둘이 나와 수다 떠는 <세토우츠미>(2016) 같은 코믹하고 명랑한 것도 있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라서 일부러 시도하는 편은 아니다. 그때그때 관심 가는 주제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만 세상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는 그리고 싶지 않다. 모르는 것 혹은 미지의 것을 대면한 인간, 가령 죽음 등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에 흥미가 있다. 그게 지금까지 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면 주제일 것이다.

최근 당신의 생각과 시선을 사로잡은 주제는. 즉 관심사가 궁금하다. 또 차기작을 소개해달라.
차기작인 <타로우の(노) 바카> 에 온 신경이 쏠려 있다. 소년이 주인공인 폭력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영화로 현재 후반 작업 중인데 이 아이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가 관심사다. 기본적으로 내 안에 잠재된 분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스크린에 구현될 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낄지가 궁금하면서 기대된다. 데뷔작 <게르마늄의 밤>보다 더 이전에 쓴 시나리오로 젊을 때 쓴 것이니만큼 그 과격함도 크다. 지금 보니 시점과 생각의 변화가 느껴지더라.

또, 2월 22일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개봉 예정이다. 제목이 기이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슬픈, 좀 한심하기도 한 가족 이야기다.

<일일시호일> 을 본(볼) 한국 관객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관객과의 GV 가 예정돼 있는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도를 바라보는 시선도 문화도 다르니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일일시호일>은 문자 그대로 매일매일이 즐겁다는 게 아니라 현재 싫은 일 혹은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기쁜 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접근하면 좋겠다. 힘들 때 이 문구를 생각하면 그 시기를 견디는 힘이 돼 줄 것이다. 힘내서 하루를 살아보자는 주문 같은 말이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행복했던 일은.
공항에 마중 나온 관계자가 오늘 유난히 미세 먼지가 심하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좀 심하면 어떤가!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일시호일’ 인 거지! (웃음)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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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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