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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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열 번 속이면 열 번 속는 사람이에요.” 극이 의도한 범인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자칭 추리력 제로라는 손석구다. 디즈니+ <나인 퍼즐>에서 천재 프로파일러 ‘이나’와 공조해서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 ‘김한샘’으로 시청자를 찾는다. 10년 만에 퍼즐 조각과 함께 다시 살인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 무엇보다 ‘윤종빈 감독을 향한 팬심’이 이 작품을 하게 된 이유란다. 작품을 하면 할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손석구를 만났다.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는 요즘, 매체에 선택받고 그 작품 안에서 사랑받는다는 건 매우 벅찬 일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디즈니+에서 <나인 퍼즐>이 시청수도 화제성도 높다고 발표했다. 인기 요인이 무얼까.
요즘 시리즈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두각을 보이는 건 쉽지 않고,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우선 예전에는 몰랐을 감사함이 크다. 인기 이유는 장르적인 재미에 충실하고 이 장르를 보여주는 방식이 고급스러운 것 같다.
고급스러움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시청자분들도 어느 정도 동의할 거로 생각하는 건 미장센, 음악, 촬영 등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분들은 알아차릴 수 있는, 스토리보드(콘티) 등에 굉장히 시간과 공을 들인 티가 나는 작품인 것 같다.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에서도 형사 역할이었는데, 이번에도 형사다. 어떤 점에 끌려서 참여했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윤종빈 감독님 작품이라서였다.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등 내 나이 또래의 씨네필이라면 감독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아직 젊으시지만, 개인적으로 거장의 반열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분을 < D.P. 2 > 때 사석에서 뵙는데, 내 연기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팬심으로 했다. (웃음)
함께 작업해 보니 윤종빈 감독은 어떤 스타일이던가.
정말 오랜 시간 준비하신다. 특히 혀를 내두른 부분은 콘티 작업인데 이를 1년 가까이하셨다. 예를 들면 염두에 둔 장소가 섭외 안되어 다른 장소로 바뀌면 거기에 맞춰 다시 콘티 작업을 하는 식이다. <나인 퍼즐>이 11부작인데 이렇게 긴 드라마의 콘티를 끝까지 짜는 경우를 못 봤고, 장소에 따라 콘티를 변경하는 건 영화에서도 못 본 것 같다. 워낙 머리가 비상하신 분인데 노력까지 하는 분이다. 이런 이야기가 기사화되는 걸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굉장한 분’이다.
형사 역할에 있어 기존과 차별화하려 한 점이 있다면.
특별히 차별화를 두려 한 건 없다. <살인자ㅇ난감>이 공개되기 전이라 내가 가진 풋티지를 감독님께 보여드렸는데 겹치는 부분은 없었다.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는 많지 않나. 성별, 연령, 직업, 국가 등등 여러 요소인데 이 중 한 부분이 같다고 해서 굳이 차별화를 두려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누구인지에 특히 이목이 쏠렸던 것 같다. 추리하면서 글을 읽었을 텐데 어떻게 추측이 잘 맞던가.
정말 다양하게 추측하시더라. 시청자분들이 추리하는 걸 보면서 내가 이런 부분에서는 좀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꼈다. 무슨 말이냐면 내게는 그런 추리력이 없다. 극에서 누군가로 몰고가면 그 사람이 범인임을 의심치 않는다. 열 번 속이면 열 번 속는 사람이다. (웃음) 또 감독님이 모든 배우를 잠재적인 가해자로 놓고 연출하신 면도 있는 것 같다. 만드는 입장에서 하나하나 다 계산하여 추리의 끈을 놓지 않도록 연출하셨다.
평소보다 낮은 톤으로 느껴지던데 의도한 건가.
한샘은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소리지를 일도 없을 것이고. 한샘이 형사로서 수사하는 한편 ‘이나’(김다미)와의 드라마가 깔려 있어서, 이나와의 주고받음에 있어 마냥 무겁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게 톤을 잡으려 신경 썼다.
이나는 만화적인 캐릭터라 한샘이 어떨 때는 눌러줘야 할 필요도 있었을 것 같다.
음… 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한샘은 이나보다 어른스러움이 있어 그 자체로 발란스가 잡힌 것 같다. 두 사람이 소주를 함께 마시며 공조하기로 하고 베이스캠프를 차린 4화 이후부터는 한샘이 무게를 잡는 한편 허당미를 때때로 보여주려 했다.
한샘과 이나 사이의 관계가 점차 변하는데, 혹시 러브라인까지 염두에 둔 걸까.
러브라인도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그런 테이크도 있었는데 해보니까 어울리지 않더라.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극의 전개에 오히려 방해가 됐다. 한샘이 이나를 의심하는 단계에서 공조 단계까지 가지만, 그 이상의 단계로 가는 건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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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김다미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내가 목소리나 말투 같은 디테일한 부분을 물어보면 매우 디테일하게 답을 주곤 했다. ‘이런 성격이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하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 둘이 열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면, 물론 이 아이디어를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웃음) 그렇게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연기의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영화 <범죄도시2>를 찍을 때 감독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했었다. 이번은 그때만큼은 아니라도 꽤 많이 한 편에 속한다.
동료 배우로서 김다미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다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주 명확하고, 자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의심하지 않고 쭉 밀고 나간다. 그래서 지금의 김다미가 있는 것 같다. 확신에 찬 자기 연기, 이런 부분을 배웠다.
여지를 남기는 결말인데, 후속 시즌을 생각해 본적이 있나.
시즌2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시리즈를 할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부정적으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없는 걸 팔고 싶지는 않다. 시청자가 재생산하면 모를까,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 < D.P. 2 >이다. 사실 시즌2 이야기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할 때도 나왔었다. (웃음)
하는 작품마다 ‘잘’ 되고 있는데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시리즈를 많이 하면서,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요즘에 너무 많은 작품이 나오는데 그 안에서 사랑받는다는 건 굉장히 벅찬 일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같이 한 사람들에게 고맙고, 나를 써준 사람에게 고맙다. 작품을 하면 할수록 ‘내가 잘해서’라는 착각은 안 하게 된다. 어떤 한 사람의 힘으로 작품이 잘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좋은 것 아닌가. (웃음) 작품 선택 시 특히 고려하는 요소가 있나.
예전보다는 보는 눈이 조금씩 생기는 거 같긴 하다. 제일 중요한 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재미라는 것이 가벼운 단어처럼 들리지만,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 같아 재미있는 건 이런 경험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부분을 경계한다. 그래서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명쾌하게 한두 줄로 설명할 수 있으면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인 퍼즐> 같은 경우는 ‘10년 동안 프로파일러를 의심하던 형사가 그 프로파일러와 공조해서 범인을 잡아’, 이렇게 한마디로 설명할 키가 있었다.
살인자, 기자, 형사 등 다양한 직업을 해 왔지 않나. 어떤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의 해방일지>다. 무직이기도 했고!
<나인 퍼즐>은 어떻게 남을까.
굉장히 장르적인데, 장르적이라는 말이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면에서는 배우가 끌고 갈 수 있는 부분보다 배우가 어떤 장치의 도움을 받으면서 혹은 장치의 일환으로 역할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이 정도의 연기 폭을 보여줄 수 있어 라기보다 좀 더 직접적인 카메라 워킹이나 카메라의 개입, 음악, 미장센 등의 하모니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더라. 특히 추리물은 시청자가 하나하나 단서를 찾아가면서 체험하는 장르라 내가 막 도드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하모니를 완성해 나간 소중한 경험이었다. 남들과 보법을 맞춰가는 걸 배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나인 퍼즐>은 한 번에 보면 따라가는 재미가 더 큰 작품이니 빈지뷰잉을 추천한다.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과 디즈니+ <나인 퍼즐>로 동시에 시청자를 찾았다.
어쩌다 보니 겹치게 되었다. 나 역시 시청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보는데 다 아는 내용이니, 보면서 촬영했던 순간 등 많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본다.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는지 또 같이 출연한 배우분은 어떻게 지내는지 등 만감이 교차하는데 두 편이 시기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어 내 몸(감정)에 할당된 케파를 넘더라. 그래서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쉬다 보고 쉬다 보고해서 다 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김혜자 선생님과 부부로 호흡을 맞춘 소감은.
선생님은 추리물을 하셔도 참 잘하셨을 것 같다. 연기의 진솔함이 다르다. 옆에서 지켜보니 카메라는 과연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 나는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냥 했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감독님이 편집본을 보여주면서 괜찮다고 하시더라. ‘해숙’(김혜자)과 ‘낙준’(손석구)이 같이 있는 장면을 보면 연기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선생님 덕분에 가능했고, 더불어 내 연기에도 만족할 수 있었다. 특히 선생님은 혼잣말을 해도 진솔함이 묻어나온다. 매직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당신만의 아주 아름다운 삶을 사셨기 때문에 자기 필터 없이, 거짓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을 따라 가면서도 나도 모르게 연기하며 영리해지려고(계산하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치 등대 같이 비추어 주셨다. 선생님을 만난 후 많은 부분이 바뀔 것 같다.
사진제공. 스태넘
2025년 6월 19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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