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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이라는 귀인을 얻었다”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박지현 배우
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 <히든페이스>와 <동화지만 청불입니다>로 연이어 관객을 찾으며 바쁜 행보를 보인 박지현이,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으로 시청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두드린다. <은중과 상연>은 10대부터 40대까지, 두 친구의 선망과 원망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직조한 작품. 박지연은 여러 층위의 감정을 표출하는 ‘천상연’으로 분해 신들린 연기로 시청자로부터 미움과 연민을 동시에 자아냈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 멘토 같아요.” 함께한 ‘은중’ 김고은을 향해 무한대의 애정을 내뿜는 박지현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수많은 것 중 제일 큰 한 가지는 ‘김고은이라는 귀인’을 얻은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이번에 긴 호흡을 맞추며 어떻게 보면 인생의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는 박지현. 연기의 터닝 포인트라고 소개한다.


작품 공개 후, 직접 본 소감은?
오픈하기 전에 배우들에게 미리 보여주셔서, 너무 재미있게 봤다. 내 작품이지만 네 번 정도 반복해서 봤고, (웃음) 시청자의 입장에서 몰입하며 즐길 수 있었다.

아역배우들이 1화와 2화를 탄탄하게 견인했지 싶다. 너무 잘하더라.
리딩 때 보고 너무 닮아서 놀랐다. 내가 상상한 은중과 상연이 툭 튀어나온 것 같더라. 조영민 감독님에 대한 신뢰도 컸고, 아역이 1화와 2부를 잘 이끌어줘서 더욱더 몰입할 수 있었다.

‘천상연’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처음에는 굉장히 안쓰럽다고 느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어떤 캐릭터에도 다 이유와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연은 내가 더 감싸야 하고, 설득해야 할 존재라고 여겼다. 다만 ‘시청자가 봤을 때 상연의 편이 되어줄까?’라는 걱정이 한편으로는 있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만이라도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상연’의 이름에 빗대어 ‘천하의 상년’이라고 말하는 반응도 있는데 들어 봤는지. (웃음)
알고 있다. (웃음) 상연은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은중과 상연>은 은중의 시선으로 상연을 바라보는 이야기라, 시청자들이 은중의 입장에서 상연을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하의 상~’ 같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배우는 그려내는 사람이고,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는 시청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시청자의 감상이 더해져야 비로소 온전히 완성된다고 본다. 어떻게 보든, 그저 봐주신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다만 이름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다니, 정말 기발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웃음) 상연의 모든 대사와 납득하기 힘든 행동들이 역순으로 풀리기 때문에, 미워하다가도 품어주고 사랑받는 인물이 되기를 바랐다.

연대기적으로 20대, 30대, 40대를 연기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다행히도 시간대별로 촬영해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만약 뒤죽박죽이었다면 감정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배우로서 긴 시간을 표현할 기회를 만난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전사까지 다 대본에 나와 있어서 어려움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20대부터 40대를 오가면서 체중 변화가 눈에 띄던데 일부러 감량한 건가.
몸무게를 정확히 재진 않았지만, 시기별로 달랐다. 20대 때는 상연이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라 좀 더 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 당시 너무 추워서 옷 안에 내복을 여러 벌 껴입다 보니 누가 봐도 통통해 보이더라. 여름 바다에 빠지는 장면도 한 겨울에 촬영해서, 그때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핫팩, 얇은 전기방석 등 방한 아이템을 몸에 두르고 있기도! 30대는 나이살을 보이기 위해 눈바디로 느낄 만큼 좀 더 찌웠고, 40대는 아픈 환자라 어떤 느낌일지 단식을 해 봤었다. 물과 아메리카노만 마시고 3주 단식했는데, 몸은 마르는데 얼굴을 누렇게 붓더라. ‘이거다’ 싶어서 얼굴을 붓게 하기 위해서, 촬영 직전에 두세 시간 정도 일부러 많이 울고 갔었다. 사실 힘든 건 눈물을 참는 거였다. 상연은 초연하고 덤덤해야 했는데 고은 언니와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차올라서 참느라 고생했다.

40대 상연의 의상이 눈에 띄었는데, 직접 준비했다고.
대부분 사비였다. (웃음) 주변에 성공한 언니들의 패션을 많이 참고했고 또 의상팀과 스타일링을 상의해서 캐리어, 스카프, 시계, 귀걸이까지 직접 구매했다. 이런 디테일한 준비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가끔 부담될 때도 있고, ‘돈은 언제 모으지?’ 하며 너무 욕심 냈나 싶을 때도 있지만, 결과물을 보고 ‘정말 40대 같다, 의상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론 뿌듯하다. 그런데 평소엔 츄리닝만 입고 다녀서 이런 명품을 평상시엔 하고 다닐 일이 없긴 하다. 너무 화려해서 착용하지 않는다.

상연의 결핍에 공감한 부분이 있다면.
상연의 결핍은 특수해 보이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사랑과 오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오해, 한없이 해맑고 솔직한 은중에 대한 선망과 질투, 짝사랑하는 상학 선배(김건우)가 은중과 사귀는 데서 오는 질투 등 넓게 보면 사랑에 대한 결핍이 아닌가 한다.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상연은 이 감정이 증폭되면서 비뚤어졌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가 유년기에 느낀 감정을 좀 더 부풀려 생각해 보면 상연이 이해되더라. 그래서 많은 분이 은중과 상연 모두 이해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 잘못과 용서의 경험이 누구나 한번은 있지 않을까 한다.

상연의 굴곡진 인생을 표현하면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까.
촬영 자체는 너무 즐거웠다. 감정의 폭이 큰 배역을 좋아하는데, 정말 ‘판을 깔아준’ 현장이었다.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내가 출연했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팀이라 익숙했고, 고은 언니가 워낙 잘 받아주셔서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 혹시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전혀 안 한 현장이었다. 다만 촬영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면서 상연의 가치관이 내게 어느 정도 남아있다는 걸 느꼈다. 원래 역할과 내 자아를 잘 분리하는 편이고 그렇다고 생각해 왔는데, 처음으로 캐릭터와 분리가 덜 되었다고 느꼈다. 나라는 배우도 마무리와 분리가 필요하더라.

상연에게 첫사랑 ‘김상학’은 어떤 존재일까. 그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김건우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상연은 엄마와 오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의 결핍을 상학에게서 찾았다고 생각한다. 강릉 단칸방에서 고립된 상연에게 김상학은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 어려움이나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낙관적인 일면 혹은 희망적인 측면) 같은 존재였다. 삶의 끈을 잡아준 구세주 같은 인물이자 첫사랑이었다. 건우 오빠는 존재 자체로 김상학 같았다. <더 글로리>의 ‘손명오’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웃음) 현장에서 내가 장난기가 많은 편인데 이를 다 받아주고 또 감정 기복이 심해도 다 수용해줘서 너무 편하게 연기했다.

‘조력사망’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다룬 데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워낙 윤리적, 도덕적, 법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배우로서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상연을 연기하면서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인간이 적어도 태어남을 선택 못하더라도 고통의 끝에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조금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해도 되지 않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은중과 상연>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인터뷰 당시 <은중과 상연>을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삶과 죽음’이었다. 이전까지는 죽음을 멀게 느꼈는데, 상연을 통해 죽음이 삶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됐다. ‘태어나면 언제든 죽을 수 있구나’, ‘죽음을 왜 그간 부정적으로만 봤을까’ 같은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나이가 들다 보니 장례식에 갈 일도 생기고 친척 중에 아픈 분도 계시고 조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죽음이 가까이 있구나’, ‘죽음을 꼭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의미는 무얼까.
단연 ‘김고은이라는 귀인’을 얻은 것이다. 지금껏 많은 선배님 그리고 동료들과 연기했지만, 이렇게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유일한 것 같다. 많은 감독님, 작가님, 배우들이 ‘김고은과 함께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나 역시 그랬는데 이렇게 긴 호흡으로 밀접한 관계를 연기할 수 있어서 마치 ‘하늘이 주신 축복’ 같았다. 하고 나서는 인생의 변화를 느낀다. 어떻게 보면 연기의 터닝 포인트라 할 만하다.

귀인, 축복, 터닝 포인트 등 김고은에 대한 감정이 정말로 각별해 보인다. 상연의 은중을 향한 선망이 문득 떠오르기도.
처음에는 언니처럼 ‘나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는 그런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존재만으로 영화와 드라마, 예술계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언니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는 마치 ‘멘토’ 같다. 상연이 은중을 바라보는 심정과 내가 언니를 바라보는 건 결이 많이 다르다. 상연은 친구로서 선망하지만 원망했고, 나는 선망하고 동경하고 존경한다. 또 상연과 달리, 투명하고 솔직하게 나를 언니에게 다 이야기하고 내비친다. 언니 앞에 서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상연 같은 친구가 실제로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친구에 관해서는 가치관이 계속 변하는 것 같다. 100% 신뢰해야 친구라고 생각한 때도 있어서, 친구가 없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조차도 100% 못 믿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의도치 않게 주변에 상처를 주고, 미숙하게 말해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상연은 겉과 속이 다른 친구인데, 만약 나라면 은중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 아무리 소중한 친구라도 먼저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은중같이 먼저 다가서지는 못한다. 기다리는 편이라, 만약 상연 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먼저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한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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