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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싱글 라이프 <참을 수 없는.> 정찬
참을 수 없는. |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참을 수 없는.>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다. 다시 만나는 기분이 어떤가? 영화제에서 보는 거랑, 기자시사회를 통해 보는 건 기분이 다를 텐데.
일단, 1년 만에 다시 보니까, 새로웠다. 감독님이 조금씩 손을 대면서 보다 자연스러워진 부분이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엔딩도 살짝 바뀌었는데, 여운을 남겼던 이전과 다르게 보다 명확하게 결말을 내리셨더라. 그게 조금…. 뭐, 감독님 손에 있는 작품이니까.

당신은 이전 버전이 더 좋았나 보다.
이전 버전은 엔딩이 우연이었거든. 그 우연을 지금은 필연처럼 해 놓으셨더라.(웃음)

제목도 <러브홀릭>에서 <참을 수 없는.>으로 바뀌었는데.
어떤 게 더 나은가?

개인적으로 <러브홀릭>에 끌린다.
나도 그렇다.

제목이 바뀌면서 영화 톤도 달라진 느낌이다. <러브홀릭>하면 권칠인 감독님 전작 <싱글즈> 같은 풋풋함이 느껴지는데, <참을 수 없는.>은 치정극 냄새가 강하다. 이렇게 되면 관객이 영화에 거는 기대도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30대 남자 관객들 같은 경우, 에로를 기대하며 영화를 보게 될 거란 말이지.
맞다, 맞다. <러브홀릭>은 <싱글즈>처럼 느껴지는 게 있었다. 내가 “<뜨거운 것이 좋아>의 아류입니까! 감독님?” 이라고까지 얘기 했다. 두 영화 모두 작가가 주인공이기도 하니까. 또 ‘참을 수 없는’ 하면 뒤에 따라 올 것 같은 단어가 ‘욕망’ 이런 거잖나.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비슷한 제목의 영화가 곧 개봉하기도 하고. 그래서 “감독님, <참을 수 없는.>은 아니에요!” 이랬는데, 함구하시더라고~(웃음)

권칠인 감독은 여성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분이다. 이번 영화도 기본 골격은 그렇지만 접근법은 사뭇 달랐다. 지흔(추자현)과 경린(한수연)이라는 두 여성의 연대보다 지흔과 명원의 관계에 더 집중했다. 그런 점에서 명원은 권칠인 감독 영화를 통틀어 관객이 감정이입 할 여지가 가장 큰 남성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아, 그런가? 감독님도 이제 본인 염색체가 XX가 아니라, XY라는 걸 인식 한 게지. 아니면 XY이기 때문에 XX에 관심을 뒀다가, XY로 조금 돌아와야지 이러셨거나.(웃음) 감독님은 끊임없이 탐구하는 스타일이다. 당신께서 들여다 본 것 외에, 또 다른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촬영 때도 술 마시면서 한 얘기를 다음 날 현장에서 많이도 바꾸셨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 감독님. 어제 얘기 다 한 거잖아요!”이러고.(웃음) 그런데도 굴하지 않으시고, “잠깐만 생각을 더 해보자” 이러셨다. 덕분에 현장에서 바뀐 게 많다. “이럴 때 무슨 말을 할 거 같아?”라고 물으셔서, 내가 급조한 대사들도 있고.
<참을 수 없는.>은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
제의가 들어와서 시나리오를 봤다. 나는 영화를 하는 이유가 내가 하지 못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라든가, 시나리오의 진정성, 진전성 안에서 느껴지는 재미 이런 것들인데, 그게 시나리오에서 느껴지더라. 또 여백 같은 게 보이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남녀 관계나 인간사에는 답이 없잖나. 굳이 있다면 ‘탄생과 죽음’ 정도인데, 보면서 ‘아, 이거 답을 한참 찾아야겠는데?’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감독님 본인도 그렇게 작업 하실 것처럼 얘기했고. 또 정말로 현장에서 그렇게 작업 하셨다. 그런 확신이 들어서 작품에 참여 하게 됐다.

감독님 전작과 달리, 유부녀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뭐랄까. 약간… 아침 드라마 같은…
에이~ 그냥 쉽게 얘기해라. <사랑과 전쟁>!(웃음)

(웃음)맞다. 그런 느낌도 없지 않다.
나도 처음 대본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대본도 조금 글루미(gloomy) 한데, 그걸 어떤 톤으로 그려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될 거라 생각했다. 또 치정극적인 내용보다, ‘내 인생의 정답이 뭘까?’에 집중하니까 생각할 게 많은 작품이었다. 내가 처음 바라본 명원은 삶의 진정성을 정확히 모르는 인물 같았다.

삶의 진정성이라 함은?
그러니까 그가 찾으려고 했던 사회적 지위나 명예,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갖고 있는 모든 것들. 그것이 과연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한지, 그 안에 있는 진정성을 알고 가족을 구성하려는 건지에서 명원은 전자라고 생각했다. 외형적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컨트롤 하고, 그게 정답인 줄 아는 남자였던 거지. 그런 남자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깨우쳐 가는데, 그런 답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공감한다. 네 주인공의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건, 명원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렇지. 그런데 그 변화 이유가 단순히 와이프 경린의 불륜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 여자가 나랑 있을 때 행복하지 않았구나,를 느끼면서 변한 거지. 그런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하려고, 촬영 때 버전도 여러 가지로 찍었다.

‘아내가 나와 있을 때 행복하지 않구나’를 알았다고 했는데, 반대로 ‘내가 다른 여자(지흔)랑 있을 때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를 느꼈기 때문에 변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와이프와의 관계에 대해서만 그렇게 애길 한 거고, 명원이라는 인물 자체만 두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에게도 다른 인생, 다른 사랑이 있을 수 있겠구나,를 느낀 거지.

권칠인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제작보고회에서 ‘여자를 좋아하니까 공부하고 탐구하고 싶다’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걸 보고 솔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여자를 많이 탐구하시던가.
글쎄. 실생활에서는 그렇게 탐구적이진 않은 것 같다.(웃음) 감독님이 대단히 가족적이다. 캠핑 가는 장면에 나오는 장비들도 모두 감독님 거다. 그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감독 당신께서 다 설치한 거지. 그런 걸 보면서 가족적인 분이라고 느꼈다.(감독님 결혼 하셨냐는 질문에) 아, 하셨다. 중학생 자녀도 있고.
그런 분이 이런 류의 영화를 많이 만드시는 건, 혹시 싱글생활에 대한 미련일까?
글쎄. 심리적 갈증 같다. 얇은 막 밑에 꿈틀꿈틀 거리는 여러 감정들이 스크린 밖으로 스윽 스며져 나오기를 원하는 스타일 같다. 그러다보니 끊임없이 고민하더라. 그 고민이 전염되기도 하고. 장면 하나에서도 서너 가지를 보여 주려고 하신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를 다루고 있는데, 영화의 시선은 전자에 조금 더 가깝다. 결혼에 대해 호의적이진 않지.
나 역시 호의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관습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외형적인 룰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서 결혼들을 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잖나.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냥 흘러가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평범하게 살지 말자’를 노트에 썼었다.

사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건데.
그게 가장 어렵지. 그거야 말로 큰 인내와 노력을 더 필요로 하지.

결혼이라는 제도에 부담이 있는 건가, 아니면 굳이 그 제도에 편입하기 싫은 건가.
음~ 그러니까. 내가 커 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봤을 때, 부모님이 이혼 한 걸 어렸을 때 경험한 친구들은 분명 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확고히! 그런 걸 보면서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이혼이라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겠구나, 생각했다. 아이한테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아이가 없을 경우, 그런 걱정 할 필요도 없고, 그 책임을 나만 지면되잖나. 지금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 내 라이프스타일을 버리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결혼하면 아무래도 생활이 변하겠지. 희생도 따르고. 연애할 때는 어떤가?
그냥 연애만 한다. 주변 동생들이 “형, 고민 있어요” 하면서 여자 친구와의 문제를 물어오면 “야, 네가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엔딩을 생각하면서 그 여자를 만나니까, 그런 게 눈에 들어오는 거야. 그냥 연애 해! 결혼은 많은 엔딩 중에 하나일 뿐이야. 왜 상대방의 히스토리를 일일이 캐서, 네가 거기에 상처받고 술 먹고 그래? 너 만날 때의 히스토리도 아니잖아. 그런 거에 시간 낭비 하지 마. 너 계속 그러면, 나 그냥 간다.” 이런 식이다.

누군가는 당신이 가슴 절절한 사랑을 못 해 봐서 그런 얘기를 한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건 아니다. 사실 작년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이후로 싱글 라이프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싱글 라이프에 대한 ‘기다 아니다’는 없는데, 지금 당장은 결혼이란 게 필요 없다. 전혀! 네버에버(Never Ever)!

아까 자식이 끼어들기 때문에 결혼을 쉽게 못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는데, 요새는 자식 없이 사는 부부들도 많다.
그건 싫다. 그러면 결혼을 뭐하고 하나? 그냥 동거하지.

글쎄. 결혼했다고 해서 애를 낳을 필요는 없는 거잖나. 결혼이라는 관습이 싫다고 했는데, 결혼을 하면 애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관습 아닐까.
그러니까, 이런 것 같다. 사실, 나에게 아이에 대한 생각이 있는 거지. 어쨌든 나라는 인간은 결혼을 하면 애는 키우고 싶다,가 하나의 목적이다. 또 거기에 대한 책임 의식도 확고하게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 없이 살 거면, 뭐 하러 결혼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냥 동거하지. 결혼이라는 제도가 언제 생긴 건가. 결혼이라는 미명이 뭐가 그리 필요하고. 어차피 동반자인데.
사람들이 결혼을 고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늙어서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그냥 흘러가는 거다. ‘더 로드’의 작가, 코맥 매카시는 일흔 두 살에 아들을 처음 얻었다. 오두막집에서 잠든 아들을 보다가 ‘이 아이가 크는 걸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나?’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더 로드’다. 그 사람은 나이에 국한 받지 않고, 자긴 인생을 자기 발걸음대로 흘러 간 거 아닌가. 연못 위에 떠 있는 연잎이 아니라.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연잎처럼 말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누군가의 공식은 누군가의 공식이고. 나는 나만의 발걸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주간지 ‘FILM2.0’, ‘팟찌 닷컴’ 등에서 영화 칼럼을 연재 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사람으로서 내가 다른 사람의 것을 평가 한다는 게 특이할 것도 같은데.
그래서 주로 외국 작품을 많이 얘기 했지.(웃음) 국내 작품은 좋아하는 것만 얘기하고. 그리고 칼럼이라고는 얘기 안 하고, 에세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이건 칼럼 수준의 글은 아니다. 한 영화 마니아가 쓴 독백일 뿐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다.

예술이라는 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건데, 당신의 연기에 대해 타인들이 내리는 평가에 어떤가. 관대한 편이가?
내가 A를 연기해도 보는 사람이 B라면 그것은 B를 연기한 거다. 거기에다 난 A를 했는데 해봤자, 바보가 삽질하는 격 아닐까 싶다.(웃음)

(웃음)1995년도에 MBC특채로 데뷔했다. 어릴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나?
원래는 영화 쪽 일을 하려고 했다. 카메라나 조명이나 제작, 어떤 파트건. 어떤 파트건이니까 배우도 들어가는 거다. 아는 교수님 CF 프로덕션에서 일을 하다가, 배우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또 예전부터 나름, 연기 공부를 하고 있었거든. 신촌 사거리나 연대 앞에 가서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을 스케치하고 그랬다. 그렇게 데뷔하게 된 거다.

꿈꿔서 된 배우로서의 삶은 어떻던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르던가?
그 다음 행보는 파란만장하지. CF 모델이었다가, 배창호 감독님의 <젊은 남자> 단역으로 출연해 이정재씨 신은경씨랑 호흡도 맞추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쭉 온 건데. 그 사이에도 엄청난 흐름들이 있지.

그 흐름에서, 정찬 하면 딱 떠오르는 작품이 없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러게. 그런데 그걸 오히려 위안 삼는다. “그러니까 앞으로 갈 길이 많아!”이러면서.(웃음) <로드무비> 이후에 행보를 정신 차려서 잘 했어야 했는데, 나는 꼭 그럴 때마다 매니지먼트에 일이 생기고, 사건이 터지고 그랬다. 시기적으로 아쉬움이 많다.

주로 TV쪽에서 활동을 많이 한다.
생업이니까. 그런데, 배우를 ‘탤런트’, ‘영화배우’ 이런 식으로 나누는 건 별로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탤런트라고 하면 “난 그냥 배우거든요” 이런다. 아니 왜 구분을 짓지?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똑 같은데.
나누는 걸 싫어한다고 해서 이런 질문 하는 게, 조금 그런데. 활동을 보면, 당신은 탤런트에 더 가깝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배우라는 이미지도 상당히 강하다는 거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영화제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혼자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당신을 자주 봤거든. 영화제 심사위원도 한 걸로 알고 있고.
아, 그렇구나.(웃음) 그런데 그마저도 일종의 편견인 것 같다.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영화인이다 아니다’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상대적인 거거든. 예를 들어 TV 쪽에서는 배우든 스탭이든 실력이 안 되면 금방 도태된다. 너무 바쁘게 찍으니까. 대단히 빠른 시간 안에 프로페셔널하게 찍는 게, 관습화돼 있다. TV라는 무대는 그렇다. 그러다가 가끔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 찍는 곳엘 가면, 입봉해서 몇 작품 찍었다는데 도대체 아마추어인지 프로이지 모를 만한 스탭이 많이 보인다. 모를 만한 배우도 있고. 그런 걸 보면, 저러고 영화인입네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싶어진다. 물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영화만 미친 듯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모든 게 상대적인 평가가 아닐까 싶다.

영화만 미친 듯이 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촬영한 작품을 꼽으라면?
<로드무비>. 그리고 <참을 수 없는.>도 그렇다.

지난날을 돌이 켜 봤을 때, 가장 치열했던 순간은 언제였던 것 같나?
그래도 영화 작품 할 때가 가장 치열했던 것 같다. <로드무비> 찍고, <가능한 변화들> 찍고, <참을 수 없는.> 찍고. 올 여름에 촬영한 <위도>라는 영화도 그렇고. 그런데 왜 이렇게 갈수록 제작비가 줄지?(웃음) 너무 사랑하는 분야라, 기대치가 있거나 상업적인 것들은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미루게 되는 것 같다. 저예산 영화는 관객 수가 적더라도 최소한 좋은 시나리오만 고르면 인정받는 면들이 있지 않나. “다섯 편 했는데, 백만 관객도 안 되더라” 이런 얘기 듣는 것보다 “네 편 했는데, 십만도 안 되더라” 이게 차라리 낫다.(웃음)

그래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걸, 조금 더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있을 텐데.
그렇지. 그래서 이 모든 걸 공부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가지고 한두 달 길게는 석 달까지 보내는데, 그 시간들이 공부더라고. 계속 칼을 가는 거지.

배우는 나를 통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지만, 그 인물로 인해 나를 보기도 하고, 나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맞다. 그리고 스크린 속 내 모습에서 불쾌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가능한 변화들> 때 그랬다. 못해서 그런 건 아니다. VIP 시사회 때 쓱 봤는데, 대단히 불편하더라고. “아, 앞으로는 저런 배역은 하지 말자. 한번 해 봤으니까” 싶어지더라.

메시지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가?
메시지도 그랬고. 표면 밑에 있는 것들을 그 때 비로소 보게 된 거지. 내가 연기를 제대로 한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작업할 때 생각한 것과 나온 결과물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고. 내가 감독이 요구하는 깊은 내면의 내러티브를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 촬영한 씬들을 막상 붙여 보니 뜬금없기도 했던 것 같다.

작품 할 때 작품님에게 의견 개진은 많이 하나?
답답한 건 꼭 하지, 꼭. 그 때, 기분 나빠 하면 “프로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참을 수 없는’은 프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프로의식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다. 어떤 게 프로의식이라고 생각하나?
방송과 영화현장에 왔다면, 아무리 저예산이라도 출연료 또는 일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를 받는다. 즉 돈이 오고가는 현장에서 일을 한다면, 받은 만큼은 충실히 해야 하다. 또 받은 액수와 상관없이 자신의 이름을 걸리기에 완벽하게 일하는 게 프로라고 본다. 스포츠 선수가 몸을 사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부상을 당하면 선수생명에 차질이 생기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지간해서는 부상이 없지 않나. 열심히 해야지.

혹시 본인이 그 프로의식에서 벗어났다고 느낀 적. 그래서 반성을 했던 순간이 있나?
물론. 그랬기에 지금의 마인드가 형성된 거고.

올해 마흔이다. 그런데 10년 전도 그렇고 마흔이 된 지금도 그렇고, 당신은 줄곧 삼십대 남자를 연기했다. 영화 속 시간이 당신에게 멈춰 있는 느낌도 드는데.
아! 듣고 보니 그러네? 진짜 그러네? 남자배우는 자기 나이보다 5살 어린 걸 연기하는 게 가장 맞는 것 같다. 스물다섯은 스무 살을, 서른은 스물다섯 정도를 해야 맞는 것 같다.

이십대 때, 삼십대를 연기하는 것과 사십대가 돼서 삼십대를 연기 하는 건 어떤가.
많이 다르지. 일단 화면이 다르다. 세월이 흘러서 얼굴이 늙었다는 게 아니라, 함축된 게 다르다. 상대 배우나 관객들에게 돌아오는 리액션이나 피드백이 다르니까. 또 많은 걸 경험한 만큼, 나도 더 많은 걸 녹여내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이게 뭐냐. 말도 안 돼!” 이랬던 게, “말이 안 되지만, 있을 수도 있어.” 이렇게 바뀌더라. 전에 스펙트럼이 옅었다면, 그래서 빨간색 하나 밖에 못 봤다면, 지금은 레인보우 색을 모두 볼 수 있어진 것 같다.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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