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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을 자극하다 <퇴마: 무녀굴> 유선
2015년 8월 22일 토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여성스러운 외모와 달리 영화에서는 데뷔작 <4인용 식탁>부터 <가발> <검은집> <이끼> 등 선이 굵고 캐릭터가 강한 역할을 많이 맡았다.
남성 캐릭터와 대결해도 전혀 눌리지 않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로망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여전사 캐릭터를 좋아했는데 영화 속에서 남성과 대등한 에너지로 맞서는 여성이 좋다. 그래서 안젤리나 졸리나 <매드맥스>에 출연한 샤를리즈 테론 같은 배우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흥분된다.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웃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여전사가 등장하는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편이 아니다.
맞다! 강인한 여전사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많지 않다. 그나마 장르영화에서 조금 찾아볼 수 있다. 강한 캐릭터의 여성 역할을 선호해서 그런지 특정 장르를 선호하는 게 아닌데도 출연작들의 장르가 치우쳤다.

캐릭터를 기준으로 작품을 정하다 보면 선택 범위가 한정될 텐데 아쉬움은 없나?
결국 연기를 하면서 내가 부딪히는 건 캐릭터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매력있어야 작품이 끌리고 욕심이 생긴다. 캐릭터가 연기적으로 어려운 숙제가 있거나, 사건의 열쇠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감정선이 변화무쌍한 게 좋다. 그렇다고 밝은 역할이 들어왔는데 무조건 마다하는 건 아니다(웃음). 단지 스릴러나 공포영화에 많이 출연했더니 사람들이 나를 그런 장르영화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 같다. 고정된 이미지를 뛰어 넘기 위해 다른 캐릭터로의 이미지 변화도 필요한 것 같기는 하다.

영화에서 유독 어두운 역할을 많이 했다.
맞다. 사실 드라마에서는 역할이 유연한 편이었다. ‘솔약국집 아들들’ 에서는 머리를 뽀글뽀글하게 파마한 김복실 간호사 역할도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영화에서는 장르가 많이 치우쳐 비슷한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해결해야 할 숙제다.

공포영화 여주인공은 한 영화안에서 표정과 분위기 변화의 폭이 커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예전에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한 배우가 특정 장르를 떠올리면 곧바로 연상되는 배우가 된다는 건 경쟁력이라고 하더라. 예를 들어 코미디 하면 누구, 액션 하면 누구, 이런 식으로. 그 분 말대로 자신만의 특화된 장르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예전에는 왜 계속 스릴러, 호러만 하게 되는지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호러퀸, 스릴러 퀸이라는 수식어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웃음).

공포연기는 어떤 식으로 준비하나.
<퇴마: 무녀굴>은 빙의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출연하기가 두려웠다.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막상 연기를 하려니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라. 과연 내가 이 작품에 덤비는 게 옳은 일인가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데 감독님을 만나보니 믿음이 생기더라. 감독님이라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겠구나, 한 번 용기를 내보자, 라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작품을 맡게 된 순간부터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했다. 그 다음에는 대본을 많이 보면서 캐릭터 속으로 계속 깊이 있게 파고드는 방법밖에 없다(웃음).
빙의 연기를 할 때 참고한 영상이 없다고 밝혔다. 본인이 상상한 대로 연기한 건가.
혜성이가 참고 자료를 찾아봤다고 하기에 나도 봐야 하나 고민되더라. 그래서 감독님에게 다큐멘터리 영상 같은 게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빙의 자료 영상 중에는 약간의 쇼나 연기가 가미된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여주기가 애매하다고 하더라. 어떤 모습이 실제 증상인지 찾아내기가 쉽지 않으니 서로 의논하면서 빙의 증상을 직접 만들어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감독님의 말을 듣고 나도 자유로워졌다. 다만 감독님이 금주가 빙의되는 순간을 호흡으로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호흡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의 영화와 같은 패턴을 만들어냈다.

당신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걸로 알고 있는데 퇴마를 소재로 다룬 영화라는 점이 불편하지는 않았나.
성경에도 귀신 쓰인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나온다.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장면도 있다. 그래서 귀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 퇴마영화에서는 신부님의 기도로 퇴마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무속이라는 토속신앙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귀신을 퇴치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용됐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토속신앙 자체를 거부했다면 작품에 참여 못했을 거다. 다만, 퇴마를 할 때 부적과 같은 특정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은 무속신앙적 방법을 서용하는 것에 있어서는 신앙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다. 만일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귀신이 들렸을 때는 무조건 무속 신앙을 찾아가 굿을 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배운다면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다행히 <퇴마: 무녀굴>은 영화 속에 목사님이 존재하고, 기독교적인 퇴마 방법도 공존한다. 영화 속에서는 무속과 기독교가 다른 방식으로 퇴마를 하고 그것이 일종의 균형을 이뤄서 좋았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 신앙이 없는 사람, 혹은 불교 신자가 영화를 봐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감독님에게 말했더니 감독님이 적극적으로 공감해줘서 균형을 맞춰 나갔다.

오픈 엔딩은 애초부터 계획된 건가.원래는 금주가 죽는 결말이었다. 마지막에 의문을 남긴 건 속편 때문이다(웃음). 이번 작품이 잘 돼서 다음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면 그 뒤에 풀어질 이야기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웃음).

감독이 속편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나보다.
자신감보다는 기대감? (웃음)

촬영하면서 무섭지는 않았나.
<검은집>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을 했는데 <퇴마: 무녀굴>을 할 때는 그때와는 또 다른 공포를 느꼈다. 사실 연쇄 살인범이나 싸이코패스도 사람을 계속해서 죽이는 굉장히 섬뜩한 캐릭터이지 않나. 특히 <검은집>에서는 자기 아이도 죽이고 남편은 팔 잘라 죽이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악귀가 쓰이는 <퇴마: 무녀굴>은 <검은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원으로 무섭더라. 귀신이 쓰인다는 건 사람이 무서운 것보다 더 큰 공포였다. 연기를 한다는 건 캐릭터에 몰입해 이야기의 주체가 된다는 건데 작품을 준비하면서 귀신이 씌인다는 걸 계속 상상하고 공포스런 상황과 분위기를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올려야 되는 게 힘들었다. 작품을 결정하기 전에도 사실 그 부분이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실제로도 극중에서처럼 딸이 있기 때문에 혹여라도 정서적인 측면으로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 두려웠다. 지금 아이를 키우면서 따뜻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데 그런 무서운 작품 안에 빠져 들어야 한다는 게 겁이 난 거다. 과연 내가 실제 삶과 작품 속 캐릭터의 모습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갈 수 있을까, 두려웠다. 예를 들면 밤에 대본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깨서 우는 소리가 들리면 왠지 두려워서 대본을 덮게 되더라. 그런 식으로 실제 상황과 영화가 자꾸 연결됐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가급적 대본은 낮에 해가 쨍할 때 보고 캐릭터 연구는 집 바깥에서 했다(웃음). <퇴마: 무녀굴>은 일부러 캐릭터를 실제 생활과 더 분리시키려 노력했다.
공포 연기 경험이 많은 만큼 자신만의 노하우도 생겼을 것 같다.
안 생기던데? (웃음) 그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감정 연기를 할 때 나는 정말 슬픔을 느껴서 처절히 오열하는데 관객은 눈물을 안 흘리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떨 때는 나는 감정을 충분히 풀어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드는데 관객이 매우 슬퍼하는 경우도 있다. 하물며 감정신도 그런데 공포는 더할 나위 없지 않겠나. 관객과 감정의 균형을 맞춰가며 연기해야 되기 때문에 매번 힘들다. 연기는 여러 번 했다고 요령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

CG 처리가 된 장면이 많다. 상대 배우 없이 혼자 연기했어야 했을 텐데 어렵지는 않았나.
SF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더라. 할리우드영화 메이킹 영상을 보면 배우들이 혼자 허공에 대고 악당과 싸우고 있다. 그것처럼 나도 실제로는 다가오는 존재가 없는데 괴성을 지르며 주저 앉아야 했다(웃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며 연기해야 되니 그 어느 때보다 몰입과 집중이 필요했던 영화였다. 혼자 몰입해 연기하다가 컷 하고 나면 민망할 때도 있고(웃음).

상대가 없으니 연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연기에 몰입하는 끈을 놓는 순간, 머쓱해지고 연기가 어색해진다. 하루 종일 계단에서 촬영한 날이 있었는데 혼자서 비명만 질러야되니 촬영이 끝나고 웃음이 나오더라. 스텝들도 웃고(웃음). 공포에 짓눌리는 연기는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진이 모두 빠진다. 온 몸이 긴장한 상태로 촬영하기 때문에 끝나면 체력적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많다. 노상 먹으면서 충전했다(웃음).

결과물은 어떻게 봤나.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시간과 자본이 조금만 더 풍부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적은 자본을 감안하면 영화가 괜찮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영화는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고 충무로의 탑 스타들이 출연한 영화이지 않나. 그 사이에 적은 자본으로 알뜰하게 만든 <퇴마: 무녀굴>이 있는 거다(웃음). <퇴마: 무녀굴>은 많은 스텝들의 따뜻한 마음과 땀이 만든 영화다. 배우도 스텝도 조금씩 양보해서 만들었다. 그만큼 의미있는 작품이라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요즘 한국공포영화 침체기다. 그래서 <퇴마: 무녀굴>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퇴마: 무녀굴>은 가볍지 않고 스토리가 있는 묵직한 공포다. 오랜만에 개봉하는 공포영화인 만큼 관객들에게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공포가 됐으면 좋겠다.

<퇴마: 무녀굴>을 출산 후 복귀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출산 때문에 한동안 일을 못해 연기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낄 때였다. 다시 활동하려고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 시점이었는데 연기적으로 많은 걸 풀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금주는 영화 안에서 해내야 하는 숙제가 많은 역할이더라. 공포를 직접 경험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공포를 줘야 한다. 또 빙의의 주체가 되는 가운데 모성애를 관통해야 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어려운 숙제가 많기는 하지만 반갑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힘든 과제를 만나니 풀고 싶은 파이팅이 생긴다랄까(웃음). 딸을 가진 엄마로서 어두운 정서를 가진 캐릭터라는 점이나 종교적인 문제는 고민되는 지점이기도 했지만 욕심이 나서 저버릴 수 없었다.
본인이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이 못하는 것에도 계속해서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떤가.
사실 두 가지 모두 자극된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 반면 너무 어려울 것 같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 <검은집> 같은 경우는 이거 도대체 어떤 배우가 이걸 해? 그런데 이왕이면 내가 하고 싶어, 내가 할 거야, 이렇게 누구에게도 역할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시켜달라고 덤빈 작품이다. 승부욕이랄까(웃음). <퇴마: 무녀굴>도 비슷한 것 같다. 어떻게 연기할지 그림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고 실제 내 모습과 교차하는 부분은 모성애 하나 뿐이었지만 내가 한 번 풀어보고 싶었다.

힘든 걸 즐긴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것 같다. 힘든 문제를 잘 풀어 해결했을 때 희열을 느끼고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촬영을 해냈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잘 푼 건 물론 아니겠지만(웃음).

당신에게는 그런 숙제가 연기의 동력인가보다.
그렇다. 평상시에는 안정주의자다(웃음). 음식도 먹어본 것만 먹고 도전을 별로 안 한다. 가던 데만 가고, 사람 욕심도 별로 없어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는 욕심도 없다. 결혼도 10년 넘게 사귄 사람과 했지 않나(웃음). 안정적이고 편안한 걸 좋아한다. 도전 의식이나 정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연기 하나밖에 없다. 연기만큼은 새로운 걸 자꾸 해보고 싶고 낯선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게 참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꿈꾼 걸로 안다.
꼭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남들 앞에 서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마다 학예회 시간에 장기자랑을 했는데 그때 무대에 나가서 친구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걸 좋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이나 '가요 톱 10'에 나오는 가수들을 성대모사하면서(웃음). 콩트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역할도 배정했다. 집에 아이들이 놀러오면 엄마 옷을 모두 끄집어내서 역할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TV에 나오는 스타들, 연기자들, 가수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들을 따라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타고난 성향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자랐다. 그리고 자연히 배우를 꿈꾸게 됐다. 연기에 아주 꽂혀버린 거다.

데뷔시기도 늦은 편이고 학교를 오래 다닌 걸로 안다. 그러면서도 연기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건 어떤 마음에서였나.
오기다, 오기. 해내고야 만다는 오기(웃음).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 꿨으니 얼마나 조바심이 났겠나. 빨리 실현시켜보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 답답했다. 한국예술종합원에 들어갔는데 역할 몇 개를 두고 피 튀기는 캐스팅 전쟁이더라. 학교 안에서 안달복달하는 게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식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게 싫어 휴학계를 냈다. 그때는 영화 주간지에 오디션 공고가 항상 있었고 공개 오디션이 많을 때였다. 그래서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계속 낙방하더라. 그런데 1~2차에서 낙방하면 난 아닌가보다, 하겠는데 항상 최종에서 떨어지니까 영 실력이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오기가 생기는 거다. 그래서 될 때까지 해 보자! 나에게 부족한 몇 프로가 뭘까? 고민하다 어느 순간 우연치 않게 데뷔해 활동하게 돼서 졸업을 가까스로 했다. 졸업이 남자 동기들 군대 갔다 온 것 처럼 오래 걸렸다(웃음).
지금은 그 부족한 몇 프로를 찾은 것 같나.
그나마 찾았으니까 데뷔하고 배우가 된 것 같다. 지금은 배우로서 조금 더 도약하는데 내가 부족한 몇 프로가 무엇인지 찾고 있다.

유선에게 연기란 무엇인가.
나를 움직이게 한 인생의 동력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버텨내게 한 동력.

딸이 연기자가 된다고 하면 지지할건가.
연기자는 안했으면 좋겠다(웃음). 연기력을 갖춘 가수가 됐으면 한다(웃음). 연기만 한다면 안타까울 것 같다. 너무 치열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기회가 그렇게 많이 주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딸은 여러가지 재능을 갖춰 곡도 만들고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할 수 있는 가수가 됐으면 좋겠다. 다양한 재능을 다양한 방면으로 갖춰서 기회의 장이 조금 더 많이 확보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한다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연기만 한다 그러면 음악부터 배우라고 할 것 같다. 우선 악기를 가르치고 작곡을 할 수 있게 서포트를! (웃음)

만능 엔터테이너로 키우려는 의지가 보인다(웃음).
일부러 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이 관심이 있다면 조금 더 다양한 분야를 접했으면 한다. 난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어서 답답할 때가 있다. 배우라도 노래를 잘하면 뮤지컬을 한다든지 활동 범위를 확장시킬 여지가 생기는데 난 그런 걸 못하니까(웃음).

그래도 당신은 드라마, 영화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몇 안되는 여배우 중 하나다. 주변에는 아직도 기회를 못 잡아 연기를 포기하는 친구가 많다. 계속 활동을 꾸준히 하는 배우로서 당신이 느끼는 영화판의 치열한 환경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사실 그런 이야기는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신인들이 더 잘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내가 데뷔할 때만 해도 그나마 공개 오디션이 있어 아마추어 개인들이 배우로서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여지가 많았는데 요즘은 공개 오디션이 잘 없다. 할리우드 시스템 같은 경우는 기존 배우들도 블록버스터 역할을 놓고 오디션 하는 경우도 있어 인지도 없는 배우가 정정당당하게 겨뤄 주연을 꿰차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단 블록버스터다 싶으면 대본이 가는 배우들이 정해져 있다. 예산이 크면 클수록 인지도 있는 안정적인 배우로만 캐스팅 하려고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또 인지도 있는 배우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가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어릴 때부터 기획사에서 관리 받지 않는 이상 데뷔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더라.
그래도 요즘에는 가끔 실력 좋은 후배들이 불쑥불쑥 발굴되어 주목 받더라.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박소담이라는 친구가 연기를 잘하고 인상 깊어 찾아 봤더니 학교 후배더라. ‘미생’의 변요한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신인들이 차고 올라오면 역시 그래도 실력있고 능력있으면 결국 기회를 하나 둘 씩 잡아 올라오는 구나, 싶다. 변요한도 독립영화부터 시작했더라. 그런 친구들을 보면 결국은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환경이 공평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기회라도 주어지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기성 배우들도 공개 오디션을 봐야한다면 충분히 참가할 용의가 있다. <이끼>도 정식 오디션은 아니었지만 몇몇 기성 배우들을 놓고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와 간단한 대사를 시연해 보이고 캐스팅된 거다. 그런 식으로 캐스팅 되면 오히려 성취감도 있더라. 그런 기회가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
근래 들어 배우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하다.
대본이 전달되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어떨 때는 이렇게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느끼는 반면 어떤 순간에는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너무 많은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내가 더 잘되는 방법밖에 없구나, 내가 더 잘해야지! 이렇게 또 한 번 칼을 갈게 되는 게 안타깝다.

계속해서 활동하는 당신마저 그렇게 느낄 정도면 배우들의 세계는 정말 척박하겠다.
정말 척박하다. 여자 역할이 하나 있으면 모든 여배우가 달려들 정도로 피가 튀긴다(웃음).

캐스팅 하는 사람도 결국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눈도장을 찍고 배우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아 그런 것 같다.
결국 꾸준히 활동하는 방법 밖에 없다.

<퇴마: 무녀굴>은 어떤 의미를 가진 작품인가.
어려운 숙제에 도전했고 잘 마무리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또 그 과정에서 너무 좋은 팀을 만나 행복했다. 아이를 잘 낳아 키우고 나서 받은 선물 같다.

차기작 <시칠리아 햇빛아래>는 중국진출작이다.
본격적인 중국진출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다(웃음). 이준기가 남자 주인공인데 나는 시칠리아에 살고 있는 이준기의 누나로 나온다. 중국에서 제작하고 투자한 중국영화인데 배경은 중국 상하이와 이탈리아 시칠리아다. 감독과 여자 주인공은 대만 사람, 카메라, 조명, 분장, 의상은 한국 사람, 이렇게 한국, 중국, 대만, 이탈리아, 다국적 스탭과 배우가 모여 만드는 작품이라 특이했다. 이준기는 중국어와 한국어로, 나는 이태리어와 한국어로 연기한다. 좋은 경험이었다.

호러영화가 또 들어온다면 출연할텐가.
캐릭터가 정말 색다르고 매력 있어 이건 놓치면 안돼,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 쉽지는 않을 것 같다(웃음). 스릴러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공포를 표방한 호러라면 망설일 것 같다.

스릴러에 잘 어울린다. 가만히 있으면 어딘가 차가운 느낌도 들고…
물론 말하면 다르지만(웃음).

따뜻한 사람이라니까(웃음).

2015년 8월 22일 토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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