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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질적으로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사도> 유아인
2015년 9월 17일 목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우선 <베테랑>이 천만 영화가 된 걸 축하한다. 이상하게 <베테랑>은 다른 영화보다 흥행을 더 많이 응원하게 되더라.
왜? 돈이 덜 들어서? (웃음)

영화가 통쾌하니까. 류승완 감독도 이제 대박을 터트릴 때가 됐고(웃음).
20여 년의 세월을 영화에 매달린 류승완 감독님이 <베테랑>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해 기쁘다.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님의 색깔이 가장 많이 묻어 있는 작품이기도 했고.

그 세월을 감독님과 함께 한 류승완 감독의 아내자 제작사 외유내강의 대표인 강혜정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끝도 없다(웃음).

다른 인터뷰에서 <베테랑>이 천만 영화가 된 건 마치 로또를 맞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상황에 대처하는 나만의 개인적인 자세를 말한 거다. <베테랑>이 천만 영화가 된 건 정말 행운이자 선물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애를 써서 만든 영화기 때문에 단순히 행운이라고만 한다면 스탭들의 노고가 가벼워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로또 번호를 찍는 것 보다는 훨씬 오랜 기간 영화를 찍었다(웃음). 그러고 보니 영화나 로또나 둘 다 찍는 건 마찬가지다. 카메라로 찍기도 하지만 어떻게 만드는 게 맞을지를 고민해 가면서 찍는 거니까(웃음). 아, 이건 그냥 언어유희다(웃음).

걱정마라. 이해하고 있다(웃음).
하긴, 이제 척 하면 척 할 때도 됐지 않나(웃음). 어쨌든 지나치게 겸손할 필요는 없지만 잠깐 기뻐하고 금방 훌훌 털어버려야 하는 일 같다. <베테랑>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여전히 나는 젊은 배우로서 위기의식을 느낀다. CJ 영화 관계자 분들을 붙잡고 이만큼 했으면 제대로 된 청춘영화를 만들어 줄 때도 됐잖아!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웃음).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스르르 성인 배우의 세계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성인 배우로 인식되는 게 싫은가.
싫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내가 연기를 놓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지 않나. 반면,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질 거다. 그래서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위치에 대한 집착이 강렬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를 해 보이고 싶은 욕망과 갈망이 있는 거다. 배우로서 내 나이대에 <베테랑>과 <사도> 같이 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건 엄청난 행운인 걸 알지만 동시에 현재에 머물고 싶은 갈증이 있다.

<완득이> 때도 교복을 입을 수 있을 때까지 입고 싶다고 이야기 한 게 기억난다.
20대 초반 인터뷰를 읽어 보니 교복 입은 30대 배우를 매우 욕했더라(웃음). 그런데 지금은 내가 교복이 입고 싶다(웃음).

한 번쯤은 더 입어도 괜찮을 것 같다. <스물> 같은 영화에 출연해도 잘 맞을 것 같고.
<스물>을 보니 너무 부럽더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나. 내가 되지 못한 것, 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 <스물> 같이 발랄하고 귀여운, 깜찍한 청춘영화가 좋아 보이더라.
유아인의 깜찍한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웃음).
내 안에도 깜찍한 모습이 있다!

하긴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나이에 비해 무거운 작품들을 많이 해서 진지한 이미지가 굳어졌는데 그런 모습이 기특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부자연스럽거나 징그러울 수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내 안에는 틀림없이 깜찍이가 있다니까!

차기작 ‘육룡이 나르샤’도 깜찍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더라.
아니다. 생각보다 깜찍하다.

‘육룡이 나르샤’의 공개된 스틸 사진을 봤는데 분위기가 생각보다 무거워 놀랐다.
한 남자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모습을 50부작에 걸쳐 연기하는데 감독님이 어린 시절의 일상적인 모습을 연기할 때는 조금 개구쟁이 같은 느낌을 원했다. 그런데 ‘육룡이 나르샤’에서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한계도 느꼈다.

한계라니?
방금 전 우스갯소리처럼 내게도 깜찍한 구석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진지한 역할을 주로 연기하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 요즘 아이들 같이 깜찍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 벽이 느껴지더라. 기존의 연기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에 대한 해석 자체가 조금 무겁고 진지한 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사도>는 작품의 톤이나 배역의 특성이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자 했던, 그리고 이제껏 해 왔던 것들의 정점에 있는 영화다. 한마디로 끝판왕이다(웃음). 사도세자는 그 동안 내가 그려온 불안한 청춘, 그리고 반항아의 이미지가 집약된 인물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전작들에서도 청춘의 반항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역할을 많이 연기했다. 본인이 그런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건가.
그런 측면이 크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인물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와도 가장 닮은 인물이라 생각한다. 20대 배우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은 비현실적인 인물이 많다. 그런 인물들의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인 모습이 틀림없이 위로를 주는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20대 삶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사실적인 인물들을 연기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가난 전문 배우가 됐다(웃음). 가난이 평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20대는 정말 얼마나 뜨겁고 아픈 시기인가. 즐겁고 흥청망청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20대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시기인것 같다. 인생의 가장 불안한 시기인 청춘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왜 20대가 가장 불안하다고 생각하나.
생의 과도기니까. 10대 때는 엄마가 먹여주는 밥을 먹으며 뭐가 뭔지 모르고 산다. 학교만 졸업하면 힘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야 되는데 책임은 오히려 막중해진다(웃음). 주변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아직 취직을 못한 친구들을 보면 10대 때와는 완전 다르다. 드라마에서 실직한 아버지가 피시방 가는 것처럼 어디든 나가야 될 것 같은 눈치가 보여 집에서 밥 한 끼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게 20대다. 그런데 실업률은 계속해서 높아지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더라. 개인적으로 20대 배우로서 20대의 얼굴과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20대를 잘 헤아리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나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살고 있더라. 사실 일을 왕성하게 하는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그런 친구들과 지내다가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진짜 내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상황이 끔찍하더라. 인터뷰가 갑자기 시사대담 같아지는 것 같다(웃음). 아무튼 20대는 취직뿐 아니라 사랑, 자존감 등 별의별 것들이 소용돌이 치는 혼란스런 시기다.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서부터 왔나, 여러가지 고민을 시작하는 시기가 20대인 것 같다. 배우로서도 마찬가지고.

30대가 돼도 그런 고민은 여전하더라. 오히려 나이라는 무게만 추가된다. 하지만 축하한다. 웰컴 투 30대(웃음).
이거야, 원(웃음).
4~50대 배우에게 연기력을 기대하는 경우는 많아도 1~20대의 젊은 배우에게 연기력을 기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베테랑>에서 당신이 보여준 모습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사도>에서 유아인의 연기를 많이 기대하더라.
<베테랑>의 조태오는 캐릭터 상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해도 효과가 크게 부각되는 역할이다. 20대 배우의 얼굴과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정말 얄밉고 극악무도한, 소위 장르극에서 악의 축을 이루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는 장단점이 있다. 흔히들 독이 든 성배라고 이야기하는데 배역과 배우의 괴리감이 크기 때문에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독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반면, 그 이질감 때문에 영화 속 인물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진폭이 굉장히 커지는 경우도 있다. <베테랑>은 후자였던 것 같다. 사실 20대 배우에게는 연기적인 평가가 냉혹한 면이 있어 조금 손해본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베테랑>에서는 그런 선입견이 오히려 장점이 된 것 같다. 내가 실제로 연기한 것보다 더 큰 파장으로 인물의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전달된 것 같다.

그렇다 해도 20대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기대를 당신만큼 형성한 배우가 많지는 않다.
20대 배우가 연기로 신뢰를 구축하는 게 쉽지가 않다. 사실 그건 30대, 40대, 50대 배우도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동안 20대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믿음을 주고자 계속 애를 써 온 걸 예쁘게 봐 주는 것 같다. <베테랑>이란 작품이나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지 않나. 작품을 하면서 연기력이 계속 향상되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기력이 성장한다는 표현에 있어 조금 회의적이다. 연기는 배우의 기질과 잠재력, 그리고 그때 그때의 컨디션과 같은 정말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한다. 연기적으로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예전보다 조금 더 뻔뻔해져서 표현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 그리고 조금 더 내 연기에 객관화 될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어떤 면으로는 퇴보이기도 하다. 연기할 때만큼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그 어떤 객관적인 의식없이 작품 속 인물로 살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더 좋은 연기라고 어떻게 감히 이야기 할 수 있겠나.

<완득이>만큼이나 <베테랑> <사도> 이후 당신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사실 <베테랑>에 대한 평가가 좋다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완득이> 같은 연기가 정말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 힘을 주는 연기가 아닌, 인물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 숨쉬어 관객들에게 그 어떤 감정적인 불순물도 주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베테랑>의 조태오는 캐릭터 자체가 힘이 있어 관객에게 계속해서 배우의 존재를 인식하게 만든다. 그게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사도>가 참 중요할 것 같다. 사실 어찌보면 <베테랑>은 조금의 확신도 없이 이게 맞겠지, 저게 맞겠지, 감히 측량하면서 한 연기다. 나도 모르게 로또처럼 덜컥 얻어걸린 것 같은 작품이다. 반면, <사도>는 사실 내가 자신감을 가져야 되는 연기다. 사도세자가 이제껏 해왔던 연기나 그리고자 했던 모습과 같은 선상의 끝에 있는 인물이라면 태오는 앞으로 가다가 잠깐 옆으로 다리를 벌린 것 같은 번외편 같은 인물이다.

본인이 추구하는 역할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연기를 말하나.
비극의 주인공? (웃음) 사도보다 비극적인 주인공이 어디 있겠나. 20대 초반, 힘든 사춘기를 보냈는데 그때 내 안에 축척된 에너지를 모두 풀어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 폐허가 존재하지 않나. 즐겁고 유쾌한 감정은 살면서 쉽게 드러낼 수 있지만 그런 폐허는 타인에게 들춰 꺼내 보이기가 힘들다. 내가 겪은 절망의 순간, 혼란과 방황, 그리고 괴로움을 직접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배역을 통해, 그리고 내 얼굴을 통해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게 비극을 연기하는 매력인 것 같다. 그런 작품은 사실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 기회가 주어져 행복하다.

당신의 인생에 왜, 그리고 어떤 폐허가 생겼는지 말해 줄 수 있나.
질문이 훅 들어오는데? (웃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기질적인 면도 틀림없이 있는 것 같다. 사도도 기질이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세자로 태어나 자신의 운명에 질문을 던지지 않은 왕자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사도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기질에서 오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질적으로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종종 매체에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내가 공부를 썩 잘했다(웃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누구의 의지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더라. 어린 시절 그런 식으로 시작된 의문이 점점 더 커져서 만든, 세상은 왜 이러지, 내 부모는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지, 나는 어디 있지, 나는 누구지, 등의 원초적이고 기초 철학적인 의문들이 나의 폐허를 만들었다. 사람은 질문을 던지면 괴로워진다니까(웃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되는데 ‘왜’ 라고 묻기 시작하면 세상에는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괴로워지고 마음 속 폐허가 생기는 거다.
질문을 일찍 던지기 시작해 잃어버린 천진난만함이 아쉽지는 않나.
그래서 뒤늦게 지금 천진난만하다니까(웃음). 농담이다. 그런데 사실 어떤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포기해야만 다른 모습이 생겨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중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굉장히 천진난만하지만 매우 진지하기도 하다. 조태오일 수도 있지만 사도일 수도 있는 거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웃음) 나는 내 속의 그런 다양한 면면을 균형있게 길러 잘 보호하고 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가진 다양한 모습들을 잘 보호하는 거다. 내 안의 여러 모습들을 다른 무언가를 위해 버리거나 꺾어버리지 않는 것!

말은 쉽지만 그렇게 살기란 너무 힘든 일이다.
맞다. 그 동안 열 남짓한 작품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런데 내가 하는 건 단지 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심해에 빠트리지 않고 찰랑찰랑한 수면 아래 두려는 것뿐이다. 그러다 물고기가 팔딱하고 뛰는 것처럼 그걸 수면 밖으로 꺼내보이는 거다. 연기 할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연령대, 어떤 직업군의 사람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내 모습이 극명하게 다르다(웃음). 그런데 그 모든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다. 적재적소에 다양한 모습을 사용할 뿐인 거다.

인터뷰하는 모습이 예전보다 많이 여유롭고 편해진 것 같다.
천진난만해졌다니까(웃음). 여유가 많이 생겼다. 나이에 비해 많이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조숙한 소년이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어릴 적 내 모습은 나만의 고유한 모습을 만들기 위한 나도 모르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것 같다. 다른 건 못하면서 진지할 줄만 알았던 거다. 그리고 인터뷰는 나이가 들어서 편해진 부분도 있다. 나이가 들어 변했다기보다는 어릴 적엔 나이라는 선입견 안에서 불편했다면 지금은 그런 선입견에서 조금 편해진 거다. 20, 21살짜리 아이가 농담하고 장난치면 예쁘게만 봐주지 않거든. 이거 봐라. 그렇다니까. 내가 마구 휘두르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정말 많이 보는 아이다. 그리고 상처도 받았던 것 같다. 기자들과 농담하고 장난치면 기사에 ‘ㅋㄷ’ 이나 ‘ㅋㅋㅋ’ 또는 괄호 안에 너스레를 떨었다, 등 한마디라도 붙여줘야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안 되는데 맥락은 잘라내고 농담처럼 한 말을 엄청 진지한 연설이나 한 것처럼 알리는 경우가 간혹 있어 최소한의 할 말만 해야지, 하고 위축됐던 순간이 있었다.

트위터를 하면서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본 건가.
트위터 하면서도 눈치를 많이 봤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처럼 장난도 치고 속된 말이나 은어, 욕도 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두 뭉쳐진 게 나라는 사람이다. 단지 글 몇개로 대변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여러가지 단면들이 모두 합쳐진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데 하나의 단면만 툭 잘라 말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나. 그래서 다큐는 예능으로 받아 팔아먹고, 웃자고 한 이야기는 다큐로 받아 사람을 우습게 만든다고 트위터에 쓰기도 했다(웃음). 그런데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다(웃음). 방어적인 면과 공격적인 면이 동시에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사이좋게 할 수 있잖아, 라는 마음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이 생긴건가.
안 좋은 게 좋은 게 될 수는 없다. 미디어와 배우의 상생관계에 있어 전반적인 분위기는 점점 좋아지는 부분도 있고 안 좋아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서로 죽고 못 살 것 같은 관계인 것 같다가도 서로 화합해야 전체적인 발전이 이뤄지니까. 기자와의 관계가 배우와 대중간의 관계를 만들지 않나. 할리우드에서는 많은 배우들이 다른 매체를 통하지 않고 SNS를 통해 공식적인 발표를 하더라. 한국에서도 요새는 SNS를 통해서 직접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자가 중간자 역할을 한다. 그러니 기자들과 사이가 좋아야 대중들에게도 내 입장이 잘 전달된다(웃음). 어렸을 때는 기자들이 나를 예뻐해 주든지 말든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난 나야, 하면서 이 놈의 구린 세상을 차단하고 세상의 예쁜 것만 알겠다는 일종의 반항이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본인만의 온실 안에서 스스로를 키워야 되는 시기가 필요하기는 한 것 같다. 그래야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마음껏 자유로워질 수 있다. 기사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물어봐라. 이런 이야기는 안 쓸 거면서(웃음).
그렇지 않다. 충분히 기사화 할 만큼 의미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간상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겠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사도에 많이 공감했지만 <사도>는 보는 이에 따라 공감하는 인물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송강호 선배님의 위력이 대단하다. 사실 캐릭터만 보면 영조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송강호 선배님이 영조를 매우 입체적으로 창조해냈기 때문에 괴팍한 영감쟁이인데도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생기는 거다. 영화 속에는 영조와 세조의 입장차이에 따른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피해자인 사도의 입장에서 보면 영조는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비정한 아버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호 선배님이 관객들로 하여금 영조의 마음을 관객들이 헤아릴 수 있게 만든 건 위대한 일이다. 사도야 영화 속에서 계속 괴로워하며 울고 소리지르니 나의 능력치와는 상관없이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웃음).

사도와 영조의 관계는 현재 우리사회의 부모 자식간 모습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더라.
<사도>는 사극이지만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현대 사회와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물론 학원을 안간다고 아이를 뒤주에 집어넣는 부모는 없겠지말 말이다(웃음). 하지만 본질은 똑같다. 결국 내 자식을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고 ‘나’라는 기준을 더 크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넌 내 자식이니까 어땠으면 좋겠어’ 라고 기대하는 거다. 그런데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듣는 말의 태반이 학원 가라, 공부 해라, 라는 말이니 섭섭한 거다. ‘내가 바란 건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오’라는 사도의 대사처럼 말이다. 사도와 영조의 문제는 단순히 왕과 세자라는 권력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기대, 자녀로서의 기대, 그리고 서로가 가지는 실망감, 그 좁혀질 수 없는 오해와 괴리의 문제다. 결국 서로간의 애정이 저변에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어떤 교육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전)혜진 선배 붙잡고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말라고 했다(웃음). 아예 안 보낼 수는 없으니까 이것저것 시켜보고 하고 싶다는 것만 시키라고 했다(웃음). 사실 그 모든 것이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고 싶어 그러는 거다. 그런데 그런 방식은 아이를 오히려 특별하지 않게 키우는 어리석은 일이다. 다른 사람이 모두 하는 걸 똑같이 시켜서 뭐하나. 희소성이 중요하다.

정말 그렇다. 누군들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고 싶지 않겠나.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을 거다. 튀고 싶어 안달났냐는 말도 있지 않나.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들 특별해지고 싶고,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욕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라고 욕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신은 관심받고 싶지 않냐고 오히려 묻고 싶다. 그런 욕구를 드러내는 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진솔하냐의 문제지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욕망은 모두 같은 것 같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들여다 보지 못하고 본인은 아닌 양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신이 말한대로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고 눈치보게 되는 것 같다. <사도> 에서도 그토록 총명하고 자신감 넘치던 사도가 영조의 눈치를 보다 빛을 잃어가는 게 안타깝더라. 그래서인지 사도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한가’라고 말하는 대사가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사도가 실제 유아인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신의 필모그래피, 인터뷰 내용, 그리고 사회적 행방을 보고 감히 추측하는 말이다.
아휴, 눈물 난다(웃음). 맞다. 결국 모든 것이 과녁을 향해서 가느냐, 아니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날아가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모두들 10점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간다. 나도 때로는 그렇게 해 왔고. 내가 언제나 자유분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나도 사회인이고 어마어마한 쇼 비지니스 세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자유롭기만 할 수 있겠나. 사실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뭐가 더 멋있는 건지, 뭐가 더 행복한 일인지, 무엇이 진짜 성배고, 무엇이 진짜 박수인지는 알고 행동한 것 같다. 무엇이 금방 사라질 경적 같은 건지는… 조정의 역사를 보면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바보인 척 하는 후계자들도 있다. 그 사람들처럼 사도가 조금만 더 현명하게 자신을 숨겼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하지만 만일 사도가 자신을 숨겼더라면 과연 영화에서처럼 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이었을지는 의문이다. 위대한 권력자, 왕이 될 수는 있었을지언정 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건 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중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배우는 어쩌면 타인의 눈치를 가장 많이 봐야 되는 직업일 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는 자신만의 길을 잃지 않아야 오랫동안 주목받는다. 그래서 배우들이 유독 외로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배우라는 직업적인 특성상 정도가 더 심할 수는 있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눈치 보며 살고 있지 않나. 예를 들면 회사원들도 직장에서 ‘썅’ 하고 지르거나 멋지게 사표 던지고 내 길을 가리라, 해 보고 싶지 않나. 난 직장생활 안했지만(웃음).
듣고 보니 옳은 말이다. 조금 전 답변은 매우 공감했다(웃음).
감히 다른 사람을 예단하는 건방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인간적인 특성이 나만의 것은 아닐 거라는 마음으로 인물을 해석하고 연기한다. 삶에 있어서도 그런 식으로 타인을 이해한다. 정확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아무리 20대 아이들의 어둠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냥 해도 어떻게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나. 하지만 연기하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타인을 최대한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한다. 매우 어려운 일인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때때로 타인을 부정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일도 있지만 그렇게 살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사도>는 정말 완전한 공감대 안에서 연기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연민으로 해석했다. 사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현실과 다른 면이 있어 완벽하게 속이 후련하지는 않았지만 <사도>는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아까 ‘완전한 공감대’라고 했는데 ‘완전하다’라는 말은 위험한 말인 것 같다(웃음).

<사도>를 만나 행복했나 보다.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행운이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한다. 사실 열심히 했는데 영화를 좋게 안 봐줘서 서운하다는 말보다 이 작품은 행운이라는 말이 더 하기 힘든 말이다. 살면서 서운한 건 참 많지 않나. 세상에 서운하고, 엄마에 서운하고, 친구에게 서운하다(웃음). 그런데 나에게 행운이 왔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사실 많지 않다. 로또는 800만 분의 1이라고 하지 않나(웃음). 그러니 행운이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열심히 애 쓴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되는 건 아니니까.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또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어마마마 행차시다, 물럿거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의 모습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도 그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힘들게 촬영했고 감독님이 가장 크게 박수쳐 준 두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부터 감독님이 많은 신뢰를 보여줬다. 촬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잘했다고 하셨다. 나이에 비해 예전 출연작에서도 울고, 슬프고, 절망적인 순간들을 많이 표현해 온 편인데 그 작품들에서 내가 뿜어낸 에너지에 어떤 한도치가 있었다면 <사도>에서는 그 한도를 뚫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준익 감독이 칭찬한 또 다른 장면은 무엇인가.
연못 안에 뛰어드는 신! 대단한 감정신은 아니다. 사실 ‘컨디션 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웃음). 연못 신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감독님이 길에서 뽀뽀를 해줬다(웃음).

이준익 감독과는 <즐거운 인생> 캐스팅 과정에서 만난 적이 있다 들었다.
그 영화에 관한 비화를 짧게 말해 주겠다(웃음). 그때 녹음실에서 내가 녹음한 노래를 감독님이 들고 가서 듣고, 그걸로 끝(웃음)!

짧은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완벽하다(웃음). 어쨌든 그래서 <사도>를 하게 됐으니 다행 아닌가.
잠시만, <즐거운 인생>에 출연했다고 해서 <사도>를 못했으리란 법은 없다! 농담이다(웃음). 그런데 사실 누가 물망에 올랐네, 누가 스쳐갔네, 하는 캐스팅 비화는 재밌어서 하는 이야기일 뿐 배역의 주인은 오로지 그 배역을 연기한 배우밖에 없다. <즐거운 인생>은 (장)근석씨가 너무 잘 했다. 내가 했으면 나도 잘 했겠지만(웃음)! <즐거운 인생> 때 이준익 감독님 만나뵀는데 인상이 정말 좋더라. 클럽 간 이야기도 해 주시더라. 젊은 배우가 앞에 앉아 있으니 본인도 젊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나보다(웃음). 그때 이후 한 6~7년 만에 <사도>에서 만났다.

한창 연기가 무르익었을 때 작품을 통해 더 많이 보고 싶은데 군대를 가다니! 하지만 금방 지나갈 거다. 송중기도 벌써 전역했지 않나.
아직 아니라니까! (웃음) (송)중기형과 술을 몇 번 마셨는데 걱정도 많이 하고 약도 많이 올리더라(웃음).

2015년 9월 17일 목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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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hy94
비교적 어린 나이에 화려한 필모그래피와 인정받는 연기력을 갖출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모습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모습에 팬이 되었는데 인터뷰 곳곳에서 보이는 유쾌한 모습에 또 한 번 빠지게 되네요. 베테랑에 이어 차기작 사도도 응원합니다!   
2015-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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