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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답게 살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비밀> 박은경, 이동하 감독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두 분 관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박은경(이하 ‘박’): 20년 넘은 동기다.

그건 알고 있다. 혹시 개인적인 관계이기도 한가, 부부나 연인?
박: 그랬으면 아마 같이 일을 못 했을 거다. 각자 잘 살고 있다. 이 감독은 결혼해서 아들도 있고.

그럼 두 분 모두 기혼인가.
이동하(이하 ‘이’): 나는 했고 박 감독은 아직 이다.

이번 작업 뿐 아니라 공동 작업을 그간 많이 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박: 혼자 작업하다 보면 힘드니까 모여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얘기를 이전부터 많이 했었는데, 얘기하다 보니 이거면 작품 하나 되겠다 싶었다.

두 분이 시나리오를 공동 작업하는데 그 구체적 방법이 궁금하다.
박: 그때는 작업실이 없어서 카페에서 만나 얘기를 많이 했다. 계속 아이디어 내고. 어떤 부분은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얘기해보면 별로 인 부분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지면 파트를 나눠서 쭉 써보고 또 바꿔서 같은 부분을 다시 써보고. 이런 방식으로 써내려갔다.

공동작업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겠다.
박: 물리적인 시간은 많이 걸렸을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고민하는 시간은 적었다. 왜 극본 작업할 때 막상 글을 쓰는 시간보다는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길지 않나.
이: 고민할 때 서로 의견 물어보고 하니까 시간이 생각보다 안 걸렸다. 오히려 혼자 작업하는 거보다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생각 못한 부분인데 그런 장점이 있을 수 있겠다. (웃음) 인터뷰에서 보니 <비밀>의 모티브를 살인범 강연회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피해자와 가해자 양 측면을 부각시킬 생각을 했나.
박: 보통 메인 스트림 영화에서는 한 인물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인공 한 명을 중심으로 하고 주인공의 반대 세력이라고 할지 악당이라고 할지 대립 관계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부터 포맷 자체를 한 사람의 초점에 맞추지 않았다. 비극적인 사건 이후의 남겨진 사람들의 얘기를 해보자 하는 게 애초의 초점이었다. 남겨진 사람의 고통이 다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남겨진 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모습들, 그러니까 각각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나리오를 썼었다. 노부부의 이야기, 철웅(손호준 분)의 이야기, 상원(성동일 분)의 이야기, 신지철의 이야기. 신지철도 그때는 주인공처럼 한 파트를 담당했다. 정현(김유정 분)의 이야기. 이런 식으로 여섯 파트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다. 이 인물들이 겪은 사건이 중첩이 되고 중첩되는 사건들을 관통하는 사건이 있는 거다. 이 인물의 이야기에는 이 사건이 이런 관점으로, 저 인물의 이야기에는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즉 같은 사건을 인물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사건의 모습으로 보여 지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진 듯하다.
박: 시나리오 완성하고 (제작하려고)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공통적인 의견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다’ 였다. 우리가 쓸 때는 재미있었는데 새로운 시도이기도 했고.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게 소설을 내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 자본이 드는 부분이라 고집을 부리기 힘들었다. 오랜 세월 고집 부리다 꺾인 부분이 많이 있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하는지는 지금도 익히는 단계인거 같다. 우리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투자를 해주지 않을 거 같았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시나리오는 그냥 없어지는 거잖나. 영화가 되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사람들이 요구하는 거에 맞춰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최근 <영도>를 봤는데 거기서는 영도가 연쇄살인범의 자식으로서 가지는 멍에에 초점을 맞췄더라, 이번 <비밀>은 양쪽 모두에게 초점을 맞춰서 신선했다.
이: 작품적으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다룬 것은 우리 영화가 처음일 거다. 살인 사건을 다룬 보통 영화들은 통쾌하게 하든 처절하게 하든 통상적으로 사적 복수를 다루는 게 가장 많다. 용서를 다룬 영화도 종종 있고. 여하간, 그간의 영화와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두 분의 감독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박: 각색을 계속 하면서 지금 시나리오가 나오게 됐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를 붙들었다. 이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게 노부부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노부부가 겉으로 보기에는 딸의 죽음에서 금방 회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철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상생활을 잘 영위하고.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금방 잊을 수가 있겠나. 사실 노부부가 가장 보통 사람의 모습일 듯하다.
박: 그 부분은 초창기부터 꼭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노부부의 얘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 부분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노부부가 어떻게 보면 서로에게도 속마음을 속이고 있던 거다. 촬영도 아주 예쁜 길에서 하고 싶었다. 시간이 좀 더 많았다면... 3월의 벚꽃 길, 마치 봄나들이 가는데 그 길의 끝에 교도소 담벼락이 보이게 하고 싶었다.
이: 배경을 아주 찬란하고 아름답게 해서 노부부 마음속과 대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의 마음은 사실 지옥이었으니까. 처음 의도는 봄나들이 길에 나무들이 우거지는 숲속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그 속에서 마지막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였다.

감독님들이 말한 것처럼 옴니버스 식으로 에피소드를 전개해도 신선하고 재미있을 듯하다. 관객들이 알아서 겹치는 부분을 해석할 수 있도록. 요즘 영화 관객들이 수준이 높지 않나.
이: 요즘 느낀 건데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 관객의 눈 높이를 못 따라간다. (웃음)

맞다, 관객들은 더 빠르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선택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그렇다. 아쉬운 현실이다
박: 참신한 시도, 이런 게 잘 보호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점이 안타깝다

캐스팅을 보면 김유정양은 딱 그 역할에 맞는 거 같다. 나이도 그렇고 원체 연기 잘하는 아역 출신이라서. 성동일씨도 워낙 베테랑 연기자이다 보니 별로 이질감이 안 느껴진다. 그런데 손호준씨는 좀 의외였다. 영화에서 철웅의 비중이 남다르고 죄의식와 분노를 함께 품고 있는 캐릭터인데 그간 손호준씨 이미지와 잘 매치가 안 되지 않았나.
박: 알다시피 철웅역이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다. 손호준씨에 대해서 <응답하라, 1994>의 ‘해태’ 의 모습을 알고 있었는데 <꽃보다 청춘>에서 굉장히 진지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는 열심히 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기 때문에 손호준씨라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응답하라 , 1994> 하기 전에 호준씨가 <바람>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거기서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그런데 이게 호준씨가 경상도 사투리를 배워서 한 거다. 원래 전라도 출신인데. 그게 되게 놀라웠다. 얼마나 열심히 하면 모든 사람이 깜박 속을 만큼 사투리를 완벽히 구사하며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호준씨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전달했는데 다행히 시나리오를 좋게 봐줘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만나보니 어떻든가?
박: 작년 겨울쯤. 인터뷰 하는 지금 이 건물에서 처음 봤다. 처음에 문을 열고 탁 들어오는데 맨 처음 너무 멋진 얼굴이 보였다. 아, 진짜 너무 잘 생기셨더라. 완전히 뽕 가서 마주 보고 앉았는데, 왜 보통 앉고 이러면 신변잡기적인 얘기를 먼저 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얘기 하나도 안하고 딱 앉자마자 바로 캐릭터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했다. 첫 만남이다 보니 호준씨도 얼어있었고 우리도 사실 얼어있었다. 그래서 좀 분위기를 어떻게든 부드럽게 해야 했는데 그냥 시나리오와 철웅이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부터 시작하더라. 시나리오에 대해서 자신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을 듣다보니 ‘아, 이 사람이 그냥 순수하고 맑을 뿐 아니라 되게 분석도 잘하고 이지적 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철웅 캐릭터를 처음 생각처럼 그냥 가져갔다.
영화에서 보면 폐 성당이 클라이맥스인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조금 있었다. 정현(김유정분)이나 철웅(손호준분)의 감정이 너무 급변하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가.
박: 우리는 사실 폐 성당 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아프다.
이: 사실 조금 아쉬운 게 아니라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시간에 맞추다 보니 많은 부분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던 우리가 잘 못 표현한 거다.
박: 우리 시나리오가 가진 특성이 있는데 여건상 배우한테 감정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줄 수 없었다. 충분한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배우뿐만 아니라 연출, 즉 우리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시간도 부족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나 보다.
박: 그 장면이 시나리오 상에서도 굉장히 긴 분량이다. 5페이지 정도 되는. 이 장면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4일정도로 예상했는데 우리한테 맥시멈으로 주어진 시간이 이틀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는 그게 밤 장면이다. 그나마 겨울이었으니까 이틀이라도 밤 새 찍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촬영장 가보니 밤 장면으로 찍을 환경이 아닌 거다. 촬영장에 라이트를 어떻게 해도 설치할 공간이 없다보니 낮 장면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낮 장면은 해가 떠 있는 시간밖에 촬영을 못하니까, 시간이 더 한정됐다. 있는 해는 가릴 수 있어도 없는 해를 만들 수는 없지 않나.(웃음) 이틀밖에 없는 시간에서 낮 촬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줄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첫 날 비마저 내렸다.. 그래서 첫 날은 아무것도 못하고 나가리가 된 거다. 남은 하루에 나머지 분량을 다 찍어야만 했다.

하루 만에 찍었나, 대단하다!
박: 맞다. 한 7시간 정도
이: 사실 씬과 씬사이 더 많은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 상에는. 그런데 시간에 맞추다 보니 엑기스만 남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장면 전환이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 그 씬만의 문제는 아니고 시나리오 상에서 있던 씬이 없어진 것이 많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장면들이 일단 날라 가더라.
박: 저예산 영화에서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일단, 시나리오를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면을 해체 하고. 이런 작업을 먼저 했었어야 했는데 그 준비를 미처 못 했다.
사형장 씬은 어땠나.
이: 생략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자, 알아서 해석할 수 있도록. 관객에게 어떤 해석을 강요하지 말자라는 호기로운 생각도 있었다. 사형장 씬도 안타깝다. 감독 입장에서는 사형장에서 템포를 좀 줘서 성당으로 갔어야 했는데...
박: 배우들의 감정은 나쁘지 않았다. 사형장 씬이. (한숨) 배우들의 감정을 좀 살리려면 리얼한 느낌을 줘야하는데 그걸 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교도소에서 나온 모든 장면이 그날 내려가서 하루 안에 다 찍어야 했고. 다 급조할 수밖에 없었다. 익산 교도소에서 찍었는데 거기는 또 사형장이 없어서 사형장을 만들어야 했는데 만들 만한 공간이 없더라. 그나마 최대한 넓은 공간을 잡아서 하긴 했는데... 미술감독이 정말 난감했을 거다. 저예산 영화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파트가 사실 미술이다. 미술감독이 정말 눈물밖에 안 나온다고. (웃음) 구걸하고 여러 사람한테 부탁하고 해서 겨우겨우 세트를 완성했는데 아무래도 부실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여튼 사정이 많았다. 되게 속상한 장면이다.
이: 사실 매 장면이 다 아쉬운 것들이다.

원래 내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나중에 보면 저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게 있지 않나.
박: 그렇긴 한데, 만약 딱 한 장면을 다시 찍을 수 있다면 성당 씬을 재촬영하고 싶다.

내용 측면에서 보면 진경씨가 연기한 기자역할이 좀 애매하게 느껴졌다. 이 부분도 생략돼서 역할이 축소 된 건가.
이: 진경씨가 다른 영화에서 되게 카리스마 있게 나오지 않나. <베테랑> <암살> 모두.

맞다. 좀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신다.
이: 다른 작품 보면서 '우리가 좋은 배우를 참 활용하지 못 했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VIP 시사회에서 진경씨한테 다른 영화에서는 존재감 있는 역할을 했는데 우리 영화에서는 너무 밋밋한 역할을 맡긴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다.(웃음)
두 분 감독께서 영화에 대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이번 작품 <비밀>이 데뷔작이다 보니 감독 개인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많다.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 같다. 가장이다보면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고. 긴 시간 영화를 바라보게 해주는 힘은 뭘까 이런 게 궁금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이런 경험은 후배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우선 영화를 어떻게 하게 됐나.
박: 영화가 좋아서다. 영화가 좋았고 영화를 하려면 한국영화아카데미에 가야 한다고 해서 갔다. 사실 내가 연출을 희망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영화아케데미 그 시절에는 다 같이 몸으로 부딪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2년 동안 자기가 감독한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 작품에는 파트를 바꿔가면서 스태프로 참여하고. 그래서 그 때 만든 작품의 수는 단기간에 어마어마하다. 그러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되게 매력적인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동기들이랑 같이 세트도 만들고, 나르고, 그러다가 길바닥에서 쓰려져 자기도 하고, 카메라 들고 촬영도 하고. 이 사람들하고 같이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거 자체, 그 알 수 없는 열기들이 모이는 게 있다. 희열이라고 할까. 마치 배우들이 공연 후에 느끼는 것과 비슷할 거 같은데 그게 너무 좋았다. 같이 영화에 대해서 토론하고 논쟁하고 술 마시고. 처음에는 그게 쉬운 줄 알았다. (웃음)
이: 비극의 시작이지. (웃음)
박: 쉽고 금방 할 줄 알았다. 현장 경험 몇 번하고 시나리오 몇 번 하면. 마치 직장 들어가면 대리 달고 또 하다보면 차장되고 그러는 것처럼 될 줄 알았다. 또 그때 어렸을 때는 되게 유명한 감독님들 영화도 막 콧방귀 뀌면서 보고 이런 자만도 있었고(웃음). 그런데 그때 그렇게 좋아했던 게 컸기 때문에 그 이후에 까이고 부딪치고 좌절해도 끝까지 남아있게 됐던 거 같다.
이: 솔직히 말하면 대학교 1,2학년 때는 내가 영화를 업으로 삼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방학 때 독립 영화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게 내가 하는 일들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남들은 취직 준비할 때 영화 찍을 준비 했다. 그러려면 영화아카데미에 가야 된다고 해서 아카데미에 갔고, 유명한 13기(웃음)들과 영화를 찍었고. 그때 나 같은 경우는 좀 잘 풀리는 편이었다. 신춘문예도 당선됐고, 젊은 나이에 제작 지원도 되고 부산국제영화제 단편으로 감독 제안도 받고. 그랬다가 그 이후 아까 박 감독이 말했듯이, 몇 번의 엎어짐이 있었다.

KAFA (한국영화아카데미)동기 중에 유명한 감독님이 원체 많다. 또 데뷔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인데 동기들이 잘 나가면 당연히 좋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박탈감도 있지 않았나, 인간인지라. 그리고 ‘나도 저 만큼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도 들 거 같은데. 나만 그런가. (웃음)
이: 중간에 사실은 너무 힘들어서 영화를 안 한 적도 있었다. 주변에 태용이형, 규동이형 등 다들 데뷔를 하고 아카데미 동기 뿐 아니라, 내가 영화판에서 알고 지낸 나보다 더 늦게 출발했던 후배들이 (나 보다 먼저 데뷔한 경우가) 꽤 많다. 그들이 나오는 모습 보면서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중간에 드라마 대본을 쓴 적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하기도 했었다. 2007년인가 2008년 중간에 엎어지고 나서 공백이 있다. 개인적 사정도 있었고. 그러다 영화를 하니까, 해보니까 역시 이거다.
이 길이 내 길이다 싶었나. (웃음)
이: 내가 영화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딴 일 보다는 나은 거 같다.(웃음)

글쓰기에 재능이 원래 있었나 보다, 신춘문예도 당선 된 거 보니.
이: 운이 좋았던 거고 갈수록 못쓴다.(웃음)
박: 왜 자꾸 자기 비하하나. (웃음)
나 같은 경우는 동기들이 데뷔하고 이런 모습 보면서 물론 진심으로 축하는 하지만 한편으로 '왜 나는 안 되지? 나는 정말 안 되나' 이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 그런 동기들이 나를 지탱해준 힘이 됐다. 아까 지금까지 영화를 계속 해 온 힘이 뭐냐고 물었는데 그건 동기들이다. 동기들이랑 계속 끊임없이 얘기하고, 데뷔한 이후에도 두 번째 작품 만들고, 세 번째 작품 만들고 할 때 마다 우리랑 같이 상의하고 의논하는 이런 관계가 지속되어 왔다. 그 동기들이 내가 영화를 계속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줬다. 소속감을 줬다고 해야 하나. 그런 끈이 없었으면 ‘내가 지금 영화를 계속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는 그냥 백수인가’ 이런 생각을 했을 텐데. 동기들이 계속해서 자극을 주고 심지어는 빨리 시나리오 써서 자기한테 읽혀달라고 압박하기도 하고, 좌절해 있을 때 기운도 넣어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해주고, 영화 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이 해줘서 ‘아직까지 이곳에 있구나’ 라는 소속감을 그 친구들을 통해서 가지게 됐다. 아주 큰 지지가 돼 주었다.

소속감이라는 말, 되게 공감된다.
이: 지금도 동기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후배 분들한테 신세 비하를 하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웃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공동 작업을 또 할 계획이 있나.
박: 아니, 이제는 각자할 듯하다. 아마 이 감독은 훨씬 더 날개를 달지 않을까 한다.(웃음)
이: 아마, 각자의 길을 갈 거 같다. 다들 그랬으니까.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한다. 성공한 감독이 된 다음에 같이 공동 연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박: 그리고 우리가 애초에 시작을 했을 때도 ‘우리는 앞으로 공동으로 계속하자’ 이러고 시작한 게 아니라, 하고 싶었는데 각자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럼 힘을 합쳐보자’ 였다. 어떻게 보면 가수들 프로젝트 앨범 같은 개념이다.

박 감독님과 이 감독님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궁금하다.
박: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한다. 맨 처음 <아무도 모른다>부터 시작해서,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최근에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로. 부산영화제 갔을 때 그 영화를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일정에 쫓기다 보니 못 봐서 아쉬웠다. 그 감독님 영화엔 가족 얘기가 많다. 따뜻하면서도 사람들의 폐부를 건드리는 연출이 너무 좋다.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섞어서 ‘이게 가족이다’라고 보여주는 게 좋다. 결국,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따뜻하게.
이: 이상하게 난 약자, 사회적 약자가 자기 길을 가는 영화를 보면 굉장히 감동을 잘 받는다. <변호인>도 좀 그랬고. 그런 영화를 하고 싶다, 단, 액션이 있는 (웃음)

그러니까 장르는 액션이되 정의로운 영화인가? (웃음)
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액션 있는 이야기!
두 감독님의 새로운 작품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아주 전형적인 질문 하나 하겠다. 내가 전형적인 거 좋아한다. 독자들도 좋아할 거 같다.(웃음) 내 인생의 영화가 있다면?
박, 이: 처음 받는 질문이다. 이거 지금 생각해 내야 하나, 나중에 카톡으로 알려주면 안 되나.(웃음) 너무 많아서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 질문을 좀 쉽게 가자! 최근에 인상 깊은 영화는?
박: (웃음) 최근에는 영화를 잘 못 봤는데, 사실 <마션>이 너무 보고 싶은데 우리 영화랑 같이 개봉하다 보니 보러가기가 좀 그래서 아직 못 봤다. <비밀> 영화 무대 인사하러 가보면 요즘은 <마션>이 대세인 거 같던데. <인터스텔라> 도 인상 깊었다. <컨텍트> 도 그렇고. 내가 그런 SF영화를 좋아하는 거 같다. SF인데 좀 감성적인 영화들. 이성적인 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감성적인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지 포스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 사실 굉장히 많은데, 미국 사회 고발적인 다큐멘터리를 많이 찍는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를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아마 감독의 다큐멘터리 데뷔작일 거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인 GM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공장을 멕시코로 옮기니까 (공장이 있던) 그 도시 자체가 슬럼화 되는데 감독이 빙고를 해서 딴 돈으로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를 좇는 영화다. 공장이 빠져나간 후 마을 사람들이 마치 우리나라 정선 카지노처럼 도박장을 유치해서 마을을 부흥시키려고 하다 실패하고, 미국은 거의 월세를 내고 사니까 실직한 마을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수입이 없으니까 토끼를 키우는 사람도 있고, 그런 반면 GM은 점점 돈을 버는 거다. 그래서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로저회장을 만나서 이 사람들을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 계속 쫓아다니는 얘기다. 회장은 계속 피하고. 공식 석상에서 만나 주겠나, 절대 안 만나 주지! (이런 장면들을)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마지막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GM에서 사원들을 모아놓고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하며 성공했다고 자축하는데 마을 주민들은 쫓겨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한 번 찾아보겠다. 안 본거라서.
이: 그 감독이 지금도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을 많이 한다. 여하간, <로저와 나>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매드맥스>. 칠순이 된 분이 이렇게 신선하고 젊은 감독 같은 연출을 할 수 있다니…정말이지 많이 반성했다. 내가 저 나이 돼서도 저렇게 신선한 영화를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Utl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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