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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눈으로 바라본다 <더 폰> 배성우
2015년 10월 29일 목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 철종 역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웃음).
감사하다(웃음).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
시나리오 자체의 매력 때문에 선택한다. 시나리오가 하려는 이야기가 명확한지, 전개가 설득력이 있는지 등 전체적인 완성도를 본다. 당연히 배역의 분량, 중요도, 설득력과 같은 부분들도 고려한다. 배역의 설득력은 곧 배역의 매력이다. 지금까지는 배역이 나와 어울릴지 고민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배역의 매력이 나와 어울릴지도 고민한다.

연극무대에서는 어떤 배역이든지 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영화에서는 배역이 본인과 어울릴지 고민하게 됐나?
예전에는 내가 배역에 맞추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는 다르더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다작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시간 안에 내가 내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배역을 맡아야 한다. 나는 최대한 다작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놀면 뭐하겠나(웃음). 사실 연기를 하는 것도 노는 것과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촬영할 때 몰입하는 것도 즐겁다. 몰입하는 게 바로 재미다. 하다못해 게임 할 때에도 몰입해야 하잖나(웃음).
본인의 연기색은 뭔가?
나의 연기색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계속 연기를 하며 찾아야 하는 부분이다. 연기색은 미술에서 말하는 색깔처럼 빨강색이나 노란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다. 배우 배성우만이 낼 수 있는 뉘앙스나 모양새가 연기색인 것 같다. 오직 배성우만이 할 수 있는 연기의 느낌을 좀 더 명확하고 짙게 전달하고 싶다.

이제부터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배역을 고려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 폰>의 경우는 어떤가?
<더 폰>이 내 연기색을 드러내는 영화이기에 출연했다기 보다 시나리오 자체가 매력 때문에 선택했다. 앞으로 다른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도 시나리오가 재미있는지, 배역이 매력 있고 설득력을 갖췄는지를 중점적으로 볼 것이다. 나만의 연기색은 내가 배역에 오롯이 몰입해 연기할 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연기색을 의도하고 연기해봤자 그건 보는 사람들만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할 일은 결국 맡은 배역을 잘 분석하고 몰입해 표현하는 것뿐이다. 앞서 나의 연기색을 고려한다는 것은 동시에 시나리오가 여러 편이 들어올 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물론 시나리오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실업자로 지낼 수도 있지만(웃음). 내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에 제일 재밌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영화를 선택할 거다.

본인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는 편인가?
모니터링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많이 보지는 못한다. 너무 부끄럽기 때문에 모니터링 하는 게 쉽지는 않다.

왜 부끄럽나?
내가 저 신을 어떻게 촬영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촬영한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니 내가 내 연기에 잘 속지 않게 된다. 모니터링 하는 동안 내가 어떤 생각으로 저 장면을 연기했는지, 다른 방법으로 연기할 수는 없었는지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연기했던 영화 중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가 제일 좋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나는 한 영화, 한 캐릭터 안에서도 신 별로 내 연기를 본다. 어떤 신에서는 나와 배역이 잘 붙은 느낌이 들지만 다른 신에서는 배역과 내가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흥행이 잘 되고 완성도 높은 영화라 할지라도 배역과 나 사이가 떠 있는 영화는 보기가 어렵다. <더 폰>에서도 분량이 많아지다 보니 어떤 신은 잘 연기했지만 다른 신에서는 연기에 일정한 톤이 생기거나 작위적인 부분들이 느껴져서 모니터링하기가 힘들었다.
<더 폰>의 도재현 역은 어떤 설득력과 매력을 갖추고 있나?
도재현의 집요하고 스마트한 성격에 매력을 느꼈다. 대개 SF영화 캐릭터들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컨대 좀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좀비를 본 사람도 없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좀비가 나타나면 다친 사람인 줄 알고 좀비에게 괜찮느냐며 접근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한 번 믿어보면 될 것을 왜 저렇게 헤매나 싶어 답답하다. 영화 속 캐릭터들도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영화나 책, TV 드라마를 접할 텐데 말이다. 내가 만일 좀비를 발견한다면 겁이 나서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웃음). 그러나 도재현은 다르다. 도재현은 전화로 2014년의 아내가 2015년의 고동호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설정에 대해 능동적이고 스마트하게 반응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잠재적인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발빠르게 대응하는 흔치 않은 캐릭터라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또한 도재현은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니다. 그는 생활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자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도재현을 스마트하고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위험하지만 나이브하고 위트있는 인물로 설정해, 대본을 사전 리딩할 때도 농담을 쳐서 다른 사람들을 웃기면서 연기했다. 그러면 도재현의 못된 모습이 더 부각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독님이 도재현은 살인을 즐기는 살인마가 아니라 생계형 범죄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동의했다. 더군다나 요즘 스릴러 영화에는 권력자, 사이코패스같은 절대악이 자주 등장하잖나. 생계형 범죄자와 같이 필연적인 이유로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가 신선해 보였다.

도재현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도재현은 프로페셔널, 기술자로 정의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경찰 반장까지 올라갔다가 비리를 저질러서 잘린 인물로,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캐릭터다. 따라서 도재현은 사이코패스처럼 마구잡이로 싸우고 죽이는 게 아니라 메뉴얼대로 행동한다. 특히 경찰은 위협 받았을 때 어떻게 그를 제압할지에 대해 전문적으로 훈련받잖나. 내가 생각하기에 도재현은 폭력 메뉴얼에 있어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고 또한 돈을 받고 살인하는 전문가이기에 빠른 일처리를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이코패스보다는 살인 기술자가 훨씬 더 무섭다. 그렇지 않나(웃음)?

생계형 범죄자보다는 살인 기술자로서의 측면이 부각된 것 같은데?
<더 폰>의 영화적 장르상, 도재현의 애환을 드러내 관객을 감정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다루는 사건들에서 도재현은 삶의 애환을 느끼며 고뇌할 새가 없다. 도재현은 가족을 지키려는 고동호를 압박하는 인물이다. 시나리오의 초고에서는 도재현과 고동호, 두 가장의 대결구도를 강조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본 시나리오에서 도재현은 고동호와 선악구도로 대결하고 있었다. 따라서 도재현을 연기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고동호를 더 압박할 수 있을지, 내가 살기 위해 고동호를 죽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극중에서 도재현은 고동호와 그의 아내를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삶의 고뇌를 느꼈을 거다.
<더 폰>의 도재현은 ‘반장님’이라는 호칭에 집착한다. 인간적이면서도 범죄자적인 집착성이 느껴진다.
도재현은 스마트한 살인 기술자다. 처음 생각하기로는 그런 기술자이기에 경찰에서 해고돼도 미련 없이 마음을 정리할 것 같았다. 그러나 도재현은 반장님이라는 호칭에 집착한다. 또한 범죄자들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그들과 거리를 두고 차별화하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에게 살인을 사주하며 돈을 주는 사람들에게조차 까칠하게 군다. 도재현이 자신의 처지를 싫어해서 일처리를 서두르려 한다는 느낌으로 연기했다.

시나리오 상에 나와 있지 않은 도재현 캐릭터의 과거를 본인 나름대로 설정한 건가?
캐릭터의 비하인드에 대해 조목조목 생각하는 것을 지양한다. 캐릭터의 비하인드가 너무 커지면 시나리오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더라. 시나리오에 비하인드가 침투하면 캐릭터의 뉘앙스가 변하거나 심지어 시나리오가 당초 말하고자 했던 바가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대로 상황 자체에 몰입해 연기했다. 최대한 시나리오에 입각해 시나리오 안에서 표현해내는 데 중점을 둔다. 인물에 몰입하기 보다는 사건의 방향에 몰입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작품을 할 때도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몰입하지는 않는다.

<더 폰>은 손주현과 배성우가 투톱으로 이끌어가는 영화다. 악역을 하는 데 있어서 나만의 노하우나 차별점이 있나?
캐릭터의 목적에 따라 치열하게 행동해야 한다. <더 폰> 홍보를 해야 하는데 아쉬운 점을 말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다(웃음).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나는 악역에 일정한 연기 톤이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형화된 악역의 말투나 행동대로 연기하는 건 관객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뉘앙스일 뿐 가슴으로 들어오는 뉘앙스가 아니다. 작품이든 연기든 감정과 가슴으로 먼저 느껴야 한다. 세상에 웃기려고 사는 사람이 없듯이 웃기려고만 하는 캐릭터도 없다. 캐릭터도 치열하게 사는 건데 영화 속에서 웃기게 드러날 뿐이다. 가슴으로 캐릭터가 들어오면 웃게 되지만 머리로 캐릭터가 들어오면 웃기는 배역이라는 인지에서 멈춘다. 슬픈 신도 슬픈 장면으로 머리에서 인지되는 게 아니라 관객을 울려야 한다. 그런데 <더 폰>에서의 도재현은 장르적이고 단선적인 악역이다. 영화가 다소 복잡해서 캐릭터를 일부러 단선적으로 만든 측면이 있다. 시간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상황들에 관객이 의문을 품거나 사건을 놓치면 지루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따라서 관객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캐릭터를 따라올 수 있도록 조금 전형적으로 연기해서 일관성을 지키고자 의도했다. 대신 도재현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텐데 당신은 어떤 타입인가?
기본적으로 ‘내가 캐릭터의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행동할까, 내가 캐릭터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 어떤 감정을 느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내 안의 어떤 면을 끄집어낸다는 의미인가?
내가 가진 많은 결들이 캐릭터와 동화되기를 바란다. 상상력을 동원하든 취재를 하든 내가 캐릭터의 상황을 느끼고 싶다. 캐릭터가 살아있는 것처럼 다른 배역과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따라서 처음부터 어떤 캐릭터로 연기를 해야겠다, 어떤 면을 드러내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연기하진 않는다. 다만 캐릭터의 상황에 내 결들을 이입해본다. 캐릭터는 말 그대로 성격을 뜻한다. 캐릭터를 내 결과 동화시켜 그 상황을 연기하다 보면 상황 속 행동들이 캐릭터의 성격을 구축하고, 그 성격이 영화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성격이 아닌, 행동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성격이 드러나야 관객들도 캐릭터에 설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캐릭터에 몰입하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 연기를 해야 내 이미지가 소모되지 않고 깊이로서 쌓일 것이다.

관객들의 눈에 살아있는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 배성우의 연기관인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연기를 할 때 관객이 어떻게 볼 것인지 많이 생각한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는 관객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대 위 공간을 나와 상대배우의 에너지와 감정으로 잘 채웠는지를 관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내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게 어느 정도 체득이 돼 있다. 내가 아무리 심각하게 말해도 제 3자가 느끼지 못한다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제 3자의 시선은 객관적이다. 객관적인 시선에 나의 연기를 맞춰야 한다. 영화를 촬영할 때도 내가 내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해야 관객에게 무서움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캐릭터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예컨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도재현의 목표에 맞춰서 어떻게 해야 무서운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해본다.
배성우에게 연기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는 철없이, 다소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배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성공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좋겠지만 가족의 입장에서 배우는 그다지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배우는 연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연기로써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직업이다. 마구 때려 부수는 신이나 펑펑 우는 신, 깔깔 웃는 신을 연기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기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해맑은 아이처럼 살아올 수 있었다.

배성우가 생각하는 ‘잘 하는 연기’란 뭔가?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나?
‘잘 하는 연기’는 철저히 개인의 취향 문제다. 내가 좋다고 말하는 연기도, 내가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일 뿐이다. 나는 코미디나 스릴러와 같이 장르나 선악 캐릭터로 구분되기 보다 사람으로 보이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또한 설득력 있게 캐릭터를 분석해 객관적으로 내 연기를 판단하고 싶다. 관객의 눈으로 내 연기를 볼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5년 10월 29일 목요일 | 글_이지혜 기자(무비스트)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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