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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드는 행복과 행운 <그놈이다> 이유영
2015년 11월 10일 화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1년 동안 출연작이 3편이나 개봉했다. 인터뷰도 많이 했겠다.
<간신>때는 인터뷰를 안 했고, <봄> 때는 조금 했는데 이렇게 많이 하는 건 처음이다.

<봄> <간신> <그놈이다> 등 필모그래피가 다양하다. 작품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가.
그때 그때의 느낌을 따른다. 하지만 일단 시나리오가 재미있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좋다.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봐도 필모그래피가 정말 다양한 것 같더라.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웃음). 일부러 그런 작품만 고른 건 아닌데 센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것 같다. 어쩌면 연기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조금 더 도전적인 캐릭터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놈이다>의 시나리오는 어떤 면이 재밌었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물로 읽었다. 은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일지 너무 궁금했고 시은이 범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재미 때문에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읽었다. 후반부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나서는 울분이 터지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시사회에서 <그놈이다>를 영화로 볼 때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더라.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시은을 어떻게 연기할지 그림이 그려졌나.
그렇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시은이에 대한 이미지가 마구 떠올랐다. 이렇게도 해 보고 싶고, 저렇게도 해 보고 싶고, 나의 많은 부분을 보여 줄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았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를 만났다고 생각해 기뻤나 보다.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이었다(웃음). 감독님이 내가 준비한 캐릭터가 싫다고, 시은이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고 하더라.

윤준형 감독은 원하는 바가 뚜렷했나 보다.
매우 뚜렷했다. 5년 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하신 데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신 작품이라 그런 것 같다. 시은이라는 캐릭터도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라는 작품을 보고 만드셨다고 했다. 한 마디로 시은은 5년 동안 감독님 머릿속에 살았던 인물인 거다. 그런데 내가 시나리오만 몇 번 읽고 캐릭터를 만들어 오니 감독님은 기겁하셨다. 유영아, 뭔가 잘못된 생각을 많이 하고 온 것 같아, 하시더라(웃음). 흥미가 뚝 떨어지면서 길을 잃었다. 그래서 준비한 모든 걸 버리고 캐릭터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조율 과정이 배우에게는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표현에 있어 제약을 받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땠나.
처음에는 감독님이 아무것도 못하게 하시니까 굉장히 막막하고 답답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 동안 내가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하려는,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영화 전체 흐름에서 시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했다. 시은이가 너무 미친 여자처럼 보여지면 오히려 영화 전체를 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시은은 귀신이 나오는 환영을 보고 장우가 범인을 찾는 걸 도와나가는 캐릭터다. 그래서 시은이 환영을 본다는 것이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게 중요했다. 귀신을 보는 시은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잘 표현해야 될 것 같아 시은의 내면에도 집중했다.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준비했던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로 연기한 것이 여러 면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이 됐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연기했으면 시은이 너무 전형적이고 유치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시은을 구상한 건가.
외양적으로는 <꽃잎>의 이정현을 생각했다. 감독님에게도 덥수룩한 가발을 쓰겠다고 말하고 거지같은 모습으로 연기하려 했다.

지금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감독님은 시은이 조금 아파보이기는 해도 최대한 깔끔한 모습이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크 써클만 조금 그리고 얼굴의 핏기만 없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충격적인 모습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니 내가 귀신 같더라(웃음).

<꽃잎>을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이미지가 망가지는 건 개의치 않았던 것 아니었나.
그래도 솔직히 너무 못생겼지 않나?(웃음) 모니터를 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내 모습을 확인을 못했는데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웃음). 만일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외모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연기했다면 놀라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감독님이 시은은 훨씬 예쁘게 나와야 되고 어린 소녀의 느낌이 나야 된다고 해서 외모에 신경을 썼는데 그렇게 나오니 놀랐다(웃음). 포스터는 마치 내가 살인자 같이 나왔더라. 친척 언니도 포스터 속 내 모습이 무섭다며 내가 범인 아니냐고 문자를 보내 왔다.

눈동자 색 때문인지 얼굴에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어서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런 것 같다. 그 동안 내 얼굴을 착각하며 살았나 보다. 순한 얼굴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작은 광고영상을 촬영할 때, 레스토랑에서 뒤를 돌아보며 행복하게 웃어야 하는 신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더러 사악해 보인다고 하더라(웃음). 눈매가 조금 날카로워 보이나 보다.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가 연출될 수 있는 얼굴이다. 배우로서는 큰 장점이다. 평소에도 본인의 이미지를 많이 생각하는 편인가.
배우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항상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실제 성격은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털털하다. 거짓말을 잘 못하고, 생각보다 말을 먼저하는 스타일이다. 푼수기도 있다.

얼굴 선이 부드러워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강하다. 조심성도 많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보다. 사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과감한 선택이 엿보이는 부분도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편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맞다! 일단 저지르는 편이다.

그런 성격이 연기하는 데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나.
배우로서는 너무 좋은 장점인 것 같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떨 때 그런 성격이 배우로서 도움이 된다 느끼나.
작품이나 캐릭터를 선택에 있어 두려움이 별로 없다. 그리고 연기할 때도 계산하고 재는 성격이 아니라 일단 질러본다. 감독님이 원하는 것이 아닐 경우는 그때 그때 말씀해 주신다. 스스로 칭찬하는 걸 잘 못해서 스스로 나의 장점을 이야기 하기가 힘들다(웃음).

그렇다면 단점은 뭔가.
그 이외의 모든 것이 단점이다. 단점은 정말 많다.

그 중에서도 배우로서 가장 고치고 싶다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 더 이성적으로 작품 전체를 보고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 내가 우는 연기가 아니라 관객을 울릴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조금 더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캐릭터에 접근하는 눈을 길러야 될 것 같다.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라 그런지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너무 감정적이고 의욕이 앞서는 것 같다.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연기 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유지하는 배우들도 있지 않나. 한 마디로 완벽해지고 싶은 거다. 욕심이 많은 것 같다. <그놈이다> 를 촬영할 때 유해진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그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동작 하나하나 조금씩 바뀌는 디테일까지 굉장히 세심하게 준비하시더라.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이성적으로 정말 많이 고민 하시고 철저하게 준비하시는 것 같다. 나도 그런 면을 기르고 싶다.
예전에는 조금 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연기했나 보다.
맞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연기했다. 아! 얼마 전 인터뷰에서 어떤 기자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조언해 줬는데(웃음).

걱정마라. 실제로는 많이 고민하고 연기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마치 수업받는 것처럼 매 인터뷰마다 조언을 받는 모양이다(웃음).
그렇다. 또 다른 기자는 왜 아직도 인터뷰를 이렇게 못하냐고 핀잔을 줬다(웃음).

데뷔작부터 큰 상을 받고 그 이후로도 활동을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가는 중이다. 언론의 주목도 갑자기 늘어났을 텐데 그만큼 인터뷰 할 때 신경쓰이는 부분도 많을 듯 싶다.
처음에는 정말 조심스러웠다. 주위 사람들이 마음 속 이야기를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안 된다,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나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등 많은 이야기를 해 줘서 기자들이 무서웠다. 그런데 아직까지 나쁜 기자는 한 명도 못 만났다.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점점 더 편해지고 있다.

갑작스럽게 높아진 주변의 관심이 본인의 행동에 제약을 주거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은 없나.
아무래도 여배우에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다보니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같이 다니는 회사 사람들도 무슨 여자애가 사람들 있는 데서 그렇게 행동하냐고 매일 잔소리를 한다. 털털한 편이어서 치마를 입혀 놔도 씩씩하게 걸어다니고 말 하는 것도 다소곳하지 않은 편이라 그런 지적에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다(웃음). 하지만 삶의 모습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변한 부분이 없다. 최대한 내 모습을 잃지 않고 유지해 드러내고 싶다.

대중의 이목이 갑자기 집중되는 걸 경험하면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다. 그런데 아직은 주목을 덜 받아서 괜찮다(웃음). 사실 처음 연기를 시작하고 <봄>에 출연했을 때는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부담됐다. 상을 받았을 때는 너무 좋았는데 <간신>을 찍을 때 힘들더라. 연기를 잘한다고 상까지 받았는데 설중매 연기를 못하면 민규동 감독님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킬 것 같았다. 내 배우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여러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조금 못하면 어때, 열심히 했잖아, 깨질 때도 있는 거지, 하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부담감이 책임감으로 바뀌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또 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부담스럽다기보다 충분한 자질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여겨지더라. 그래서 더 감사했다.

듣고 보니, 다른 사람은 인정해 줘도 본인 스스로가 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수상여부가 연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큰 상을 받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이 절대로 나에게 독이 되는 경험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상을 받은 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으려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배우 활동을 하는 한 여러가지로 깨지는 일이 계속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고 그때마다 힘들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는 걸 잘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다. 스스로 불행해지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나.
굉장히 신기한 노하우가 있다. 안 좋은 일은 곧바로 잊어버린다. 그래서 지난 일을 잘 기억 못하는 단점도 있다. 안 좋은 일은 빨리 훌훌 털어버린다.

말한 것처럼 안 좋은 일은 곱씹는다고 해결되는 부분이 아닌 경우도 많다. 당신이 동료 배우들에 비해 빨리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당신처럼 짧은 기간에 두각을 드러낸 배우 김고은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때 또래 배우들에 비해 작품활동이 활발할 수 있는 데는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김고은에게 했다. 그러자 운이 좋았던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은교> 에 출연한 건 여배우로서 큰 결정이었고 자신이 노력한 바였다고 이야기 하더라. 수긍되는 지점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굉장히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 본 적이 없다. 운도 없고 복도 없는, 재미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이것 저것 배우고 열심히 살다보니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더라. 그리고 너무 행복하더라. 햇빛 좋은 곳에 올라가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스스로 배움을 찾고 여행도 다니는 삶을 시작하고 나서는 학교도 붙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학교도 붙게 되고, 좋은 수업도 듣게 된 거다. 그러다 보니 좋은 단편 영화도 찍게 되고, 정말 자꾸 운 좋은 일이 생겼다. 상도 1년에 3개나 받고 작품도 4편이나 했다. 평생 없던 운이 오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운을 내가 만들어간 것 같다. 고은이와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운이 생긴 거다. 운이라는 건 분명 있지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운도 없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산다는 건 사실 굉장히 막연한 이야기인데 어떤 식으로 살 때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나.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접하지 않은 클래식 피아노 콘서트에 가보기도 하고 미술이나 사진 전시회도 간다.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두꺼운 공책을 사서 그걸 채우는 걸 목표로 글도 적는다. 공연을 보고 느낀 것들을 쭉 적는 거다. 한 마디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인생에서 그냥 흘러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 거다.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혼자서 제주도를 가기도 했다.

이브에 홀로 제주도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로 여행을 떠났다(웃음).
여행 계획도 없이 카드 하나만 들고 갔다. 남자친구도 없고 할 것도 없는데 뭐하지 고민하다 나에게 선물을 주려고 제주도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어디를 갈지 책과 인터넷을 뒤지다 막연하게 게스트 하우스에 갔다. 밥도 얻어먹고 3시간을 혼자 올레길을 걷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올레길에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더라. 눈만 쌓여 있었는데 바람도 엄청 불었다. 그래서 시를 썼다. 내가 생각해봐도 조금 웃긴 것 같다(웃음). 그런데 그때는 정말 너무 행복했다. 바람이 나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3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바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걸었다. 아, 또 가고 싶다!

연기를 잘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니 그때부터 세상이 배움터로 보였나보다.
나를 계속 채우는 듯한 느낌, 내가 계속해서 조금씩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평생 연기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알차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데뷔 이후 배우로서 가장 많이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대중들의 눈을 신경쓰게 된 것 같다.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카메라와 호흡하는 법도 알게 됐다. 그리고 인터뷰 하는 법! (웃음) 연기자는 연기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옷도 예쁘게 입어야 하고 사진도 예쁘게 찍어야 하고 말도 잘해야 되더라.
연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시 영화 이야기를 조금 해 보자. 시나리오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 캐릭터에 먼저 접근하나.
나만의 특별한 방법은 아직 없다. 그런데 <그놈이다> 같은 경우는 감독님과 캐릭터에 관한 의견 충돌이 있고 나서 준비한 것을 모두 버렸지 않나. 그런 뒤, 캐릭터를 새로 만들 때는 우선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시은이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그래프로 그렸다. 그렇게 감정의 최고점이 어디인지, 어디서 얼마만큼 무서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시은의 내면을 만들었다. 또 시은이 경험하는 일들은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봄>과 <간신>과 달리 <그놈이다>는 외적인 부분도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귀신을 볼 때 시은이의 눈동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몸은 어느 정도로 긴장된 상태인지, 어느 정도로 떨어야 하는지, 호흡은 어떤지, 등을 다양하게 연습했다. 비슷한 동작을 하는 장면이 많다 보니 빙의되는 장면마다 조금씩 차이를 두고 싶었다. 어디서 호흡을 멈추고, 어디서 거친 호흡을 쉴지,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동작을 할지 아니면 참을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할지, 그런 부분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 나누며 준비했다. 비슷한 장면이 많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게 이야기와 감정의 흐름을 잘 파악하려 노력했다.

한 번 봤던 장면이 또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면 영화가 쉽게 지루해질 수 있으니 배우 입장에서는 빙의 장면이 정말 고민됐을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하게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되더라(웃음).

본인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것 아닌가.
엄격한 편인 것 같다. 촬영할 때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연기가 전에도 한 적이 있는 것 같고 조금 더 다채롭게 연기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관객들이 시은에게 더 많은 동정심을 느낄 수 있도록 연기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잠시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거기에 집중할 수도 있으니 그만 말해야겠다!

걱정이 너무 많다(웃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빙의 장면이 번복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시은이 주변 사람들이 죽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친구라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런 걸 많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반면, 시은에게 주목이 많이 가고 마음이 동하는 게 전체적인 영화의 맥락에서 좋은지는 잘 모르겠더라. 중심 인물이 아닌 시은에게 호기심이 더 많이 들어 영화의 중심이 흐려진다는 생각도 했다.
내 욕심 때문인 걸까… 그런데 현장에서 연기할 때는 정말 욕심을 버리고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연기했다. 감독님의 머릿속에 있는 캐릭터를 최대한 잘 그려내고 싶었다. 어쨌든 시은은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라기보다는 범인을 찾기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니까.

역시 본인에게 엄격한 편이다(웃음). 한예종 출신 배우들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동료 배우들의 작품을 보기도 하나.
항상 시사회에 가서 친구들의 작품을 본다. 그런데 학교에서 동기로 보던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더라. 물론 연기적인 부분이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영화에서 고은이의 매력이 잘 드러날 때는 너무 잘했다, 자기 매력을 잘 알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이야기 해 주기도 한다.
김고은이 배우 이유영에게 어떤 칭찬, 또는 충고를 해 줬을지 궁금하다.
<간신>을 촬영했을 때 고은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쨌든 배우다 보니 노출 문제에 있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시하기 힘들더라. 개인적으로는 25살의 내 모습을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에 담을 수 있는 게 정말 큰 행운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자식들에게 엄마가 이랬어, 하며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더라. 그런데 고은이가 그런 부분에 있어 남들 눈 신경쓰지 말고, 속상해 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라고 조언해 줬다. 아직 아기이면서 말이다(웃음). 연기 잘하면 아무도 뭐라고 말 못할 거야. 언니는 잘하고 있어. 설중매는 언니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역할이고, 나 같았으면 못했을 거야, 하면서. 나보다 활동을 먼저 시작한 선배지 않나(웃음).

<간신>에서 당신이 연기한 설중매는 정말 매력 있었다. 또 <봄>에서 보여준 모습과 많이 다른 캐릭터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색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정말 재밌었지만 그 작품은 사실 너무 어려웠다. 출연한 세 작품중 가장 어려웠다. 내가 얼마나 많이 걱정했으면 고은이가 그런 이야기까지 해 줬겠나. 고은이가 설중매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역할이라며 언니가 선택했으니까 잘 소화해내면 정말 멋질 거라고 이야기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알고 있던 사실이라도 그런 말을 옆에서 누가 해 주면 정말 큰 힘이 되지 않나.
맞다. 알고 있다가도 잊어버리고 그러면 또 다시 불안해 한다.

당신은 김고은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줬나.
글쎄다. 도움을 받기만 했나?(웃음) 너무 잘했다, 매력있다, 칭찬은 항상 해 줬는데 조언은 잘 기억이 안난다. 아무래도 고은이가 선배다 보니(웃음).

다음에 김고은을 만나게 되면 직접 물어보겠다.
한 번 물어봐 달라. 나는 조언을 듣기만 한 것 같다(웃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되겠다.
너무 좋다. 나중에 청춘물 같은 영화에서 함께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너무 좋고 재미있을 것 같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한국영화도 좋은 게 많지만 외국영화를 많이 좋아한다. <러브 액츄얼리>나 우디 앨런의 영화처럼 일상적이면서 행복한 기운이 도는 영화가 좋다.

마지막으로 이런 배우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나.
너무 많다. 그 중에 하나를 꼽자면, 집에만 갇혀 있는 배우들은 일반 사람들처럼 생활하기가 쉽지 않아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연기하는 게 굉장히 어색해지는 것 같다. 그러면 연기를 해도 진실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럼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나를 잃지 않는 인간적인 배우가 되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의 진실된 모습을 연기에 담고 싶다. 그런데 요즘에는 시간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영화보다 자극적인 영화가 많은 것 같다. 오래도록 생각나는 영화를 꼭 만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운을 또 만들어 가야겠지.

누군가의 인생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영화를 만나길 바란다.
그런 영화 한 편만 찍으면 소원이 없겠다.

2015년 11월 10일 화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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