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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다 <레나> 박기림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기자]

고려인 3세 여자와 녹차 밭을 일구는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레나>는 배우 박기림의 데뷔작이다. 아픔을 감수하면서 성공한 배우가 되는 것보다는 평범하지만 작은 행복이 중요하다는 박기림. 그렇기에 그녀는 성공을 위해 급히 달려가기보다 찬찬히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고 싶다. 화려하진 않아도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는 영화 <레나> 속 순수하고 솔직한 주인공 레나와 꼭 닮았다.

tvn ‘세 얼간이’에서 주최한 ‘모태미녀선발대회’에서 우승한 걸로 알고 있다. 특이한 이력인데, 출전 경위가 궁금하다.
성형을 안했음에도 코 했느니, 눈 했느니 이런 얘기가 많았다. 그러던 차에 회사로 출전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성형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럼 전혀 성형을 안 한 건가?
그렇다. 돈이 없다보니(웃음).

그렇다면 진짜 타고난 눈을 가졌다. 정말 가로, 세로 길면서 크다. 아까 처음 봤을 때 영화 속 모습보다 예뻐서 놀랐다.
<레나> 촬영한 게 2년 정도 전이다. 원체 화장도 하나도 안 한 상태로 촬영했고, 또 그때는 살도 지금 보다 좀 찐 상태였다.

<레나> 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여주인공의 비중이 큰 작품이다. 첫 영화 출연인데 역할이 커서 부담스럽진 않았나?
<레나> 전에는 단역을 주로 해서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연기를 더 잘하는 분이 맡는 게 좋겠다고 거절도 했었는데 고심 끝에 해보겠다고 결정했다. 약 한 달 전부터 감독님과 매일 만나서 준비했다.

감독님과 주로 무슨 준비를 했는지?
역할과 작품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또 연기 연습과 러시아어 공부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실제 촬영할 때 많이 도움됐다.

<레나>는 김도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감독님은 어떤 분인가?
서로 처음이다 보니 상대에 대한 믿음이 중요했다. 나도 감독님을 믿고 또 감독님도 나를 믿어주셨다. 감독님은 평소에는 정말 재밌는 분이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굉장히 꼼꼼하시다. 체격도 아주 좋으신데 덩치 큰 분이 앉아서 얼마나 섬세하게 작업을 하는지 모른다.
극본도 감독님이 직접 쓰지 않았나?
맞다. 감독님과 미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던 작업실이 내가 사는 곳 바로 아래층이었다.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싶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은?
오디션 보기 3달 전쯤 시나리오를 받았다. 대표님이 내가 좋아할 거 같다고 한번 읽어보라고 주셨다. 그래서 읽어보니 작품이 조용하고 따뜻하더라. 평소 이런 영화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기에 오디션을 보게 됐다.

<레나>는 당신이 표현한대로 조용하고 따뜻한 작품이다. 좀 슬프기도 했다. 연기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난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 앞에 나가서 뭔가 하는 걸 힘들어 했었다. 근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학예회 주인공을 시킨 거다! 막상 연극을 해보니 너무 재밌더라. 그 이후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진도 출신이다 보니 사실 영화나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예고로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했다.

진도에서 예고에 진학한 건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할 때 부모님의 반응은?
진도에는 예고가 없어서 목포로 갔다. 우리 부모님의 양육방식은 방목형이라고 할까. 공부해라, 뭐해라 이런 소리를 잘 안하신다. 연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네가 행복한 걸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부담이 없었다. 다행인지 내가 예고 1기였다. 학교가 아직 기반이 안 잡힌 상태라 수월하게 진학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순구역 김재만씨가 한참 선배인데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난다. 두 사람의 호흡이 어땠는지?
처음 리딩에 참석하기 전까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근데 막상 만나고보니 워낙 재밌고 유쾌한 분이신거다. 내가 편하게 연기하게끔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순구는 조용하고 숫기 없는 성격이다. 실제 그런 성격의 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좀 답답하다(웃음). 개인적으로 내 여자다 싶으면 강하게 잡아주는 사람이 좋다. 미안하다고, 상대를 위한다고, 보내주고 이런 건 별로다.

레나는 고려인 3세다. 카레이스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었나?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국사를 공부하긴 했지만 솔직히 우리 세대가 고려인에 대해 잘 알진 못한다. 그래서 영화를 시작하면서 자료와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직접 러시아에 가서 만나기도 했는데, 그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그들의 사연에 대해 알게 될수록 가슴이 아프더라.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했고. 사람들이 고려인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러시아 현지 촬영지는 어딘가?
블라디보스톡. 그런데 계속 이동하면서 촬영하다 보니 블라디보스톡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와 매니저 겸 친구, 감독님, 조명 감독님, 촬영 감독님 과 스탭 한 분. 아주 소박한 저예산 현지 로케였는데, 나름 재밌었다(웃음).

<레나> 의 주요 배경인 정읍의 풍경이 참 좋더라.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지?
원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다보니 정읍도 여러 번 방문했었다. 고향과 가깝다보니 전주, 여수, 순천 등 많이 다녔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마치 여행 온 거처럼 부지런히 돌아다녔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전주.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전주는 계속 먹으면서 구경 다닐 수 있어서 좋다. 강추 여행지다.
레나의 감정 연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감정을 끌어내는 방법이 있다면?
내 삶의 기억이나 경험을 많이 투영하는 편이다. 아직 작품을 고르는 입장은 아니지만(웃음) 배역이 들어왔을 때 내 삶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으면 더 끌린다. 그래서 레나역도 하고 싶었다. 연기에 몰두하다 보니 촬영 시 중간 중간 대기하는 시간에도 기분이 많이 우울하기도 했다. 고려인들이나 국제결혼 한 분들 기사를 찾아보면서 감정에 빠져보려고 했다.

실제로 당신과 레나가 공유하는 경험은 없을 듯 한데?
레나처럼 국제결혼을 했거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건 아니지만 정체 없이 떠도는 상황은 비슷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많이 아파서 서울 이모네 집에 잠시 살았었다. 그 기억이 있어서 레나의 마음이 이해됐다.

한국어를 어설프게 구사하느라, 동시에 러시아어 사용하느라 힘들었겠더라.
하도 연습하다 보니 촬영 아닌 평상시에도 말을 어눌하게 하게 되더라. 대기 시간에는 편하게 한국어 말하면 되는데도. 러시아어는 생각보다 수월한 면도 있었다. 왜냐면 영어는 워낙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내가 아주 잘해야 하는데 비해 러시아어는 조금만 해도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더라.

<레나>로 배우로서 첫 스타트를 끊었는데 다음 목표는?
급하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준비가 충분히 된 후 작품을 하고 싶다. 좋은 작품이 들어왔다고 내가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하긴 힘들 거 같다.

배우를 직업으로 하면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연예계는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세계다. 솔직히 말하면 내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내가 너무 아프면서까지 연기를 하고 싶진 않다. 즐기면서 행복하게 연기를 하고 싶다.

배우로서의 성공보다 개인적 행복을 중시하는 건가?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거 보다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 그런 게 좋다.

촬영하면서 유난히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레나가 아픈 사실을 순구한테 들키고 그 후 레나가 떠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순구가 혼인신고를 하자고 하고 레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그 장면을 저녁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촬영했다. 감독님은 그 순간의 레나가 영화 속에서 제일 슬픈 모습이길 원하셨다. 그 모습을 끌어내려다 보니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했다. 그때가 3월 말, 4월 초 정도로 꽤 추운 날씨였다. 감독님이 계속 OK를 안하시는데, 나중에는 눈물샘이 말라서 눈물도 안 나왔다. 새벽 5시쯤 되니 감독님이 된 거 같다고 하시더라. 그 후 대기실에 들어갔는데 발이 냉동 인간처럼 다 얼어있었다. 그 사실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촬영한 거다. 나만 고생한 게 아니다. 그때 감독님이 커피를 17잔인가를 드셨다. 다른 스탭들도 앞에서 졸고 있고.
당신이 닮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누군가를 따라가기 보다는 나만의 개성을 갖고 싶다. 닮고 싶다기보다는 ‘로맨스가 필요해’의 정유미 선배님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연기가 좋다. 내가 추구하는 연기가 자연스러운 연긴데 난 그게 잘 안 된다. 근데 선배님은 참 잘하신다.

어떤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영화는?
평소 CGV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잘 보러 다닌다. 따뜻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최근에 <브룩클린>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가장 인상 깊은 건 <곡성>이다. 사실 바로 어제 봤는데 진짜 무섭고 놀라웠다. 살인 사건을 둘러싼 추리극이라 생각했는데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더라. 정말 신선한 우리나라 영화였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예전에는 발랄하고 유쾌한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근데 <레나> 이후에는 내면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러니까 말이 많이 없어도 눈빛, 호흡, 표정으로 연기하는 역할들 말이다. 그래서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은데 아직까진 배역이 안 들어온다(웃음).

최근에 기쁜 일이 있다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레나>를 개봉하게 된 거. 촬영한지 꽤 됐는데 드디어 개봉하게 돼서 정말 기쁘다. 또 하나는 아주 오랜만에 동생과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한 거다. 동생이 아빠한테 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함께 술도 마셨다. 아주 철없던 남동생이 아빠 선물을 사주는데 그 모습이 기특하더라. 올해 들어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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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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