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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은 진짜 ‘나’ <범죄의 여왕> 박지영
2016년 9월 1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박지영은 <범죄의 여왕>에서 오지랖 넓지만 귀여운 ‘미경’인 평소의 자신과 꼭 닮았다고 말한다. 연기 생활 27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한 시사회에서 딸이, 남편이, 엄마가 ‘어, 엄마가, 아내가, 지영이가, 저기 있네’ 했다고. 박지영에게 스크린 속에서 실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는 건 행복한 일이고 그렇기에 ‘미경’은 선물 같은 배역이다. 더불어 일과 가정, 모두를 손에 쥐고 싶던 욕망을 다스리며, 긴 시간 욕심부리지 않고 가정과 일을 가꾸며 보낸 지난 시간에 대한 달콤한 ‘상’이다. 박지영에게 ‘미경’에 대해, ‘박지영’에 대해 묻고 들었다.

살이 많이 빠져 보인다.
<범죄의 여왕> 때보단 빠졌다. 오랜만에 일이 겹쳐서 요즘 좀 지친 상태다.

실제 보니 더 예쁘다.
이런 줄 몰랐지? 아껴두고 있었다. 길게 가야 되니까 조금씩 보여주려고(웃음). 관객들은 화면 속의 배우만 다들 기억하니까. 그래서 <범죄의 여왕>이 너무 좋다. 왜냐면 주인공 ‘미경’은 내 실제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 내가 원래 장난꾸러기고 아주 귀엽다. 내 인생 모토도 ‘귀엽게 살자’고, 집에서도 굉장히 귀여운 사람인데 지금까지 해온 역할들이 계속 세고 강한 역할이었다.

<범죄의 여왕>은 뻔할 수 있는 영화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서, 아주 재밌게 봤다.
고맙다. 대본으로 봤을 때보다 완성된 후 보니까 점점 더 좋아지더라.

<범죄의 여왕>은 규모가 작은 영환데 출연계기는?
평소 회사에 역할의 크고 작음이 중요하지 않음을 늘 얘기해 왔다. 나는 좋은 작품에 대해 열려있다. 이전에 KAFA(한국영화아카데미)의 단편도 한 적이 있다. 3D영화였는데, 아주 새로웠다. 난 나이에 비해 아주 오픈 돼있는 사람이다. ‘말만 잘 하면 공짜라도 해줘’ 이런 사람이다. 드라마도 작가들이 ‘지영씨 염두에 두고 썼어요’ 그럼 무조건 출연한다. 어떻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무모한 건지 몰라도.

일전에 이번 작품은 선물 같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내가 더디게 일하는 편이다. 배우를 일찍 시작했었고, 일찍 성공했었고, 일찍 결혼했다. 물론 쉬어가는 시간은 분명히 있었다. 뭐랄까, 조급해질 수 있는 시간을 잘 견뎌왔다. 이렇게 실제의 내가 드러날 수 있는 역할을 만난다는 건 선물이다. 왜냐면 내 방식이 옳았다는 거에 대한 증명이고, 내가 너무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니까. ‘미경’은 정말 나다. 아마 이전에 내가 쉽게 타협했다면 이 작품은 나한테 안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거 인정! 하지만 극 중 ‘미경’은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럽고, 직설적이기도 한데.
내가 직설적인 건 맞다. 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 마찬가지로 ‘미경’도 주변에 대해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밥 먹었니, 난 양미경이야’ 이런 사람이다. 실제 나도 그렇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인간 관계를 오랫동안 깊게 이어나가는 편이다.

타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면이 닮은 거다.
맞다. 난 그게 촉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있어야 촉도 발달할 수 있지 않겠나.

<범죄의 여왕>은 코미디, 스릴러 등 장르가 불분명한 것이 특징인데, 장단점이 있다. 새롭기도 하지만 집중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게 영화의 매력이다. 가족, 스릴러, 코미디를 넘나들어 B급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장르를 넘나들면서 연기하는 데 힘든 점은 없었나.
오히려 흥미로웠다. 스릴러만 있었다면 영화가 무매력이 됐을 거다. 시사회 온 동료들이 올해 영화 중 제일 재밌었다고 하길래 내가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소문 좀 내라고 했다(웃음). 하나로 규정되지 않은 ‘미경’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후배들과의 호흡이 편안하고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그건 나의 장점이다(웃음). 사실 말로 편하게 하라고 해도 저절로 편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원래도 친화력이 좋은 편이다. 내가 본 느낌을 그대로 상대에게 표현한다. 그럼 후배들도 이 선배가 그냥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임을 금방 알게 되더라.

일반적으로 작품이 끝나면 스탭들과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은데 <범죄의 여왕>은 계속 연락한다고?
스탭들이 경조사가 생기면 서로서로 챙긴다. 얼마 전에도 의상팀원 한 명의 아기가 백일이라 내가 ‘십시일반 도와주자, 내가 유모차 책임지마’ 했다. 전에 여동생한테 유모차를 사줬는데 조카가 이미 4살이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혜진아, 유모차 줘, 둘째 낳으면 내가 사줄게’ 하고 가져왔다. 난 이런 건 돈을 떠나서 굳이 새 것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 물려받고, 물려주며 키웠다. 그래야 아이들이 건강히 잘 큰다. 내가 좀 행동대장 같은 면이 있다. 다행히 후배들이 잘 따라주기도 하고.

후배들과 작업하면서 느낀 점은.
드라마, 영화 모두 대부분 후배들과 작업하게 된다. 요즘 친구들은 대사를 칠 때 자유롭게 넘나들더라. 우리 땐 전형적인 모습이 강했다면 후배는 자연스럽고 열려있다. 본인 스스로 대사를 늘리고 줄이며 만들어 간다. 그런 모습이 좋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개태(조복래 분)와 덕구(백수장 분), 하준(허정도 분) 그리고 아들 익수(김대현 분) 의 매력은?
덕구는 내가 촬영 첫날 만난 친군데, 개태를 덕구라 부를 정도로 그 매력에 푹 빠졌다. 그 다음에는 개태를 만났다. 개태를 만나니 개태가 너무 좋은 거다. 난 문어발 안 좋아한다. 좋아할 때는 한 사람만 집중적으로 좋아한다. 개태를 연기한 조복래는 대사치는 게 능숙한 맛은 없어도 너무 좋더라.

아들 익수한테는 빠지지 않았나(웃음).
아들 익수 앞에서는 철딱서니 없는 엄마가 된다. 또 하준을 만나면 또 다른 용감한 엄마가 되고. 미경은 누나였다가 엄마, 그리고 애인이 된다. 그들도 나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을 거다. 일부러가 아니라 눈을 맞추며 연기하다보면 저절로 서로에 대한 진심을 깨달을 수 있다. 덕구와 얘기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높이를 맞추려고 몸을 낮추고, 개태와 함께 있을 때는 경계하는 개태에게 자꾸 몸을 가까이 한다. 그건 머리로 생각해 낸 연기가 아니라 서로의 진심을 느끼며 저절로 몸이 만들어내는 연기다.

개인적으로 ‘엄마 해줄게’ 이 대사 좋더라. <마더>(2009)의 ‘넌 왜 엄마도 없니’ 이 대사가 떠올랐다. 물론 분위기는 다르지만.
영광이다. 개인적으로 <마더>를 너무 좋아한다. 특히 엔딩장면은 두고두고 생각나는 명장면이다. 우리 영화도 관객들이 계속 생각할 수 있는 영화가 되면 바랄 바 없겠다.

엔딩에서 개태와 미경의 모습도 재밌다.
앞에 부연설명이 있는 신이 있는데 편집됐다. 연인처럼, 엄마처럼 모호한 관계로 남은 게 오히려 좋은 거 같다.
영화는 총 몇 회차 촬영했나.
총 30회차였다. 그 중 28회차를 촬영장에 그야말로 스탭처럼 출근했다.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웃음). 3일은 개태와 만나고, 3일은 덕구와 만나고 그리고 나머지는 익수나 하준이랑 만나고.

여름에 촬영했는데 더위로 고생했겠다.
작년 촬영 때는 너무 덥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근데 올 여름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할 정도다. 올해가 보통 더운 게 아니지 않나. 또 모든 일이 지나고 나면 다 좋게 느껴진다.

촬영 중 힘든 점은?
몽타주 찍던 날이 제일 힘들었다. 원래 힐을 안 신는데 오랜만에 신어서 뒤꿈치가 다 까지고 발톱도 빠졌다. 또 개태와 처음 만난 날, 친해지기도 전에 찍다 보니 잘 하고 있나 하는 의심도 들었고.

‘미경’의 의상이 특색 있던데 직접 코디한 건지.
그렇진 않다. 감독님이 의상에 대한 확실한 생각이 있었던 듯 하다. 레트로 풍, 붉은 계열을 고수하셨다. 아, 아들과 찍은 졸업 사진 속 의상은 진짜 내 옷이다.

가족들도 작품을 봤나.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가족들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언니 얼굴이 있어” 또는 “지영아, 네 모습이 보인다”, 딸들도 “평소 엄마 같아” 이러더라. 평소 내 모습이 영화 속에서 나온 거다. 연기자가 자기 모습을 스크린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아주 드문,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의 이미지, 그러니까 세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웠나.
어느 순간은 저런 센 모습이 내가 아닌데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오래 연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차에 나와 닮은 역할을 했기에 고마운 거다. 배우가 본인의 얼굴을 만나고 그 모습을 관객들이 좋아해준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이요섭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촉이 좋은 사람. 일단 나를 캐스팅 했지 않나!(웃음). 농담이고 이런 작품을 쓴다는 거 자체가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다. 장편 상업영화에서 엄마를,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한 게 일단 대단하다. 거기다 모성애를 강조한 것도 아니고 아줌마의 극악스러움을 주제로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신하다. 옆에서 지켜보니 엄마와의 관계도 밀접해 보이더라. 그래서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거 같다. 또, 이요섭 감독은 여복이 많은 사람이다.

여복이라하면.
엄마와의 관계도 좋고, 부인도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다. 부인이 우리 영화 쿠키 영상에 나온 <소공녀>를 찍은 감독이다. 사실 우리 남편도 본인이 ‘여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다(웃음).

작업을 같이 하면서 의견 조율은 어떻게 했나.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졌다. 얼굴은 아주 사슴처럼 생겨서 확실하게 디렉션을 준다. 나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조언을 한다. 너무 조심스러웠다면 오히려 내가 부담됐을 거다. 서로 조언하고 그 결과 개선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와 ‘질투의 화신’으로 일주일 중 월화수목을 책임지고 있다.
알다시피 일을 겹치기로 안 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보보경심 려’는 사전 작업한 작품인데 이제 라인업 된 거고, ‘질투의 화신’은 몇 년 전부터 출연하기로 작가와 얘기가 됐던 거다. 또 <범죄의 여왕>은 작년에 촬영한 거고.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영화에 도움이 될 거 같더라. 아무래도 TV를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잰 왜 이렇게 많이 나와?’ 하다 보면 영화도 홍보되지 않겠나. 오래 기다렸으니 올해는 특급열차 탄 것처럼 달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영화 홍보 때문에 좀 바쁠 뿐. 사실 지금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시험 무대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 지금 그래서 약간 긴장된 흥분감을 가진 상태다.
여배우는 나이가 들면서 배역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주연에서 조역으로,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슬럼프는 없었나.
다행히 그때 신랑이 SBS를 퇴사하면서 베트남으로 이주를 했다. 그 당시 조연이 들어오던 때인데 ‘그래 뭐, 해야지’ 생각은 했지만, 머리와 마음이 같이 움직이지 않을 때다. 그때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정도였다. 처음에는 1년만 있어 보자 하고 TV를 떠났다. 감사하게 그 후 송강호 선배와 함께 한 <우아한 세계>(2007) 영화 제의가 들어왔다. 그게 내 첫 영화다. 영화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영화는 처음이기 때문에 작은 역이라도 신인의 마음으로 임하려 했다. 왜냐면 그 당시 호치민에 살면서 아이가 어려서 미니시리즈만 할 뿐 긴 프로젝트는 못할 때다. 영화를 4편정도 하면서 그렇게 12년 정도를 보냈다. 이젠 아이들도 대학교에 가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이 쉽지만은 않았겠다.
가족이 있으니까 외롭진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이 키우고 책을 좀 읽고. 어쩔땐 그냥 한국에 가서 연기를 하고 싶기도 했는데 그 시간을 인내한 거다. 그래서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선물 같다고 한 거다. 일도 하고 싶고 가정도 완벽하게 꾸리고 싶은 욕심, 모두 가지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뭔가를 잡으면 다른 거를 잡을 손이 없어진다. 그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다행히 신랑이 친구 같다. 많이 대화하면서 그 시간을 잘 보냈다.

조심스레 흥행예측을 한다면.
지금까진 그냥 잘 되면 좋고, 아님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가 잘 되면 이요섭 감독의 차기작이 그만큼 빨라질 거고, 또 연기 너무 잘하는 후배들도 더 쉽게 다른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렇기에 정말 영화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신에 대한 기대는 없는 건가.
물론 박지영한테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서 많이 보면 좋다. 꼭 내 새끼만 챙기는 아줌마가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줌마도 많다는 걸 알리고 싶다. 우리 영화가 심각하게 누굴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따뜻하지 않나. 심각하지 않고 B급 감성이 살아있는, 좀 다른 색을 가진 영화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노란색이나 파란색, 이런 색만이 다가 아니라 수박색도 있음을, 선택의 폭이 많음을 알리고 싶다. 세상이 더 다양해지길 바란다.

다행히 평이 좋다.
솔직히 언론시사회 때 너무 떨렸다. 긴장된 뒤통수를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제일 뒷자리에서 봤다. 다행히 부끄럽지 않아서 좋았다., VIP시사회는 중간 지점에서 봤는데 앞줄에 후배들이 보다가 자리를 당기면서 집중해서 보더라. 또 뒤풀이에 와서도 좋다고 얘기해줬다.

최근 기쁜 일이나 인상 깊은 일은.
VIP시사회 무대인사에서 울었다. 내가 세 번째인가로 인사를 했는데, ‘안녕하세요, 양미경을 맡은 박지영입니다’ 하니까 함성이 나오는데 눈물이 나는 거다. 기쁨의 눈물이란 걸 책에선 봤지만 실제로 내가 흘려본 적은 없다. 처음 흘린 기쁨의 눈물이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 딴 거 같은 기분이더라. 나중에 후배가 웃으면서 역대급 무대인사였다고 하는데 언제 또 그런 기분을 맛볼까 앞으로가 기대된다.

2016년 9월 1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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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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