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대중과 함께 나이 먹고 싶다 <두 번째 스물> 이태란
2016년 11월 1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스크린에 대한 갈망이 깊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를 겪고, 또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사람에 대한, 직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기에 이젠 굳이 드라마나 영화를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작품으로 시청자를, 관객을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우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선택받는 직업임을 깨달으면서 욕심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는 그녀. 롱런하며 대중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배우 이태란은 ‘세 번째 스물’을 꿈꾼다.

(본 인터뷰는 <두 번째 스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전작 <경의선>(2012)이 인상 깊었다.
박흥식 감독님이 해외 영화제 등에서 인정을 받는 거에 비해 아직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시다.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전작 <경의선>으로 토리노 영화제 참석한 경험이 이번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가 됐던 거 같다.
그때 영화제를 통해 친분을 쌓은 지인이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만들면 도움을 주겠다고 얘기가 돼서 제작하게 됐다고 들었다.

주인공 민구(김승우 분)한테 감독님의 모습이 많이 투영돼 보인다.
맞다, 눈치챘나.(웃음) 우리끼리 ‘이거 혹시 감독님 얘기 아냐’ 이런 농담도 했다. 물론 사랑에 대해선 함구하시지만. 극 중 민구의 직업이 영화 감독이고, 영화제 참석차 토리노 방문하는 등 겹치는 지점이 상당히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평소에 관심이 있었는지.
솔직히 미술에 관해 잘 모른다. 그냥 감독님을 믿고 했다. 감독님이 원체 미술에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계시다.

카라바조 그림에 대해 나눈 대사들 준비가 힘들지 않았나.
처음에는 입에 익숙하지 않아 어렵더라. 거기다 그 장면들이 다 길다. 힘들었는데 그래도 닥치니까, 또 집중하니까 다 하게 되더라. 사실 내가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또 카라바조에 대해 읊겠나(웃음). 지금은 기억이 거의 안 난다.

감독님이 화가로 카라바조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감독님이 평소 좋아하는 화가이기도 하고, 카라바조에 대한 책을 쓴 분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또 우리한테 덜 알려져서 그렇지 그는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유명한 화가다.
영화가 완성된 지 시간이 좀 지났다.
전혀 얘기가 없다가 갑자기 개봉 일정이 잡혔다고 해서 놀랐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가 좀 가물가물하기도 해서 전에 자료를 다시 찾아봤다. 또 오랜만에 인터뷰다 보니 많이 긴장되더라. 어제 잠을 잘 못 잤다.

새삼 기억을 되살린건가.(웃음) 정확히 언제 작품을 촬영했나.
작년 3월, 한달 간이다. 2월에는 국내 분량, 그러니까 오프닝과 엔딩 장면 촬영이 있었다. 90% 이상이 이탈리아에서 촬영했고, 23회차 정도로 마무리한 빡빡한 일정이었다.

두 번째 스물이란 의미가 영화를 보니 명확히 다가오더라. 타이틀을 잘 선정한 거 같다. 시나리오를 처음 본 후 느낌은.
두 번째 스물이란 마흔을 의미한다. 주인공 민하(이태란 분)의 나이기도 하다. 중년의 남녀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여행을 하면서 사랑을 하고, 그림에 대한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해서 예술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점이 잔잔하면서 좋더라. 특히 마지막 민하의 결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영화가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영화 출연한 건데.
생각처럼 기회가 많지 않다. 아무래도 드라마를 계속 했던 것도 있고.

영화에 대한 갈망은 없었는지.
분명 그런 시기가 있었다. 예전에 <어깨 너머의 연인>(2007)을 찍었던 때가 딱 그렇다. 그때는 인터뷰 중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오히려 덤덤하다. 내가 원한다고 영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배우란 건 선택을 하는 게 아닌, 선택 받는 직업이다. 꼭 영화나 드라마를 가르지 않고 그냥 작품 자체로 생각하려 한다. 그리고 드라마를 많이 해선지 몰라도 드라마가 편한 것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드는 배우들이 많다.
솔직히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되길 바랄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윤여정 선생님, 김혜수 선배 등 보면서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다. TV드라마 배우한테도 영화 출연 기회가 더 많이 열렸으면 한다. 시청자와 관객들도 선입견 없이 봐 주시면 좋겠고. 영화와 TV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지 않았나.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베드신이 있고, 불륜 소재다 보니 출연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겠더라.
지금까지 배우로서 멜로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멜로를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아닌가 했다. 극 중 민하가 내 나이와 같기도 하고. 물론 민감한 부분 때문에 갈등도 많이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포기를 했었다. 남편한테 시나리오를 봐달라고 하니까, 오히려 남편이 오케이 하더라. ‘연기니까, 갔다 와라’ 하는 거다.

첫 눈에 반해 뜨겁게 사랑을 한 연인들이 각자의 길을 간 후 재회해서 다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두 사람의 감정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내가 100%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참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공감을 못한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누구나 과거의 첫사랑이 있을 거고, 또 그들은 순간의 오해로 헤어졌기에 상대에 대해 더 애틋하지 않을까 싶더라.

민구와 민하가 나누는 대사가 적나라한 면이 있다.
워낙 어릴 때 서로 사랑했던 사이고 한편으론 친한 친구 같은 관계기도 하니까. 우리가 객관적으로 나이를 먹더라도 마음은 여전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둘 사이의 대화가 이상하지 않더라. 물론 두 사람 다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지만, 둘만 있을 때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고 느꼈다.

베드신이 힘들었다고 하던데.
시나리오를 읽을 땐 자연스런 감정의 연장이란 생각이 들어서 베드신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예민해지더라.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거다. 그때 감독님과 오랫동안 얘길 나누고 잘 마무리했다. 감독님도 나만큼이나 소심한 성격이신지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다행히 강요하지 않으시더라. 또, 김승우 선배가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셨다. 아마 중간에서 수습하려 했다면 더 어색했을 거다. 솔직히 그때 내 배우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다. ‘뭐지, 왜 이렇게 안되지?’ 이런 의문이 들더라. 또 한편으론 남편한테 너무 미안한 거다. 물론 쿨하게 ‘갔다와’ 했지만 ‘이걸 어떻게 보여주지?’ 이런 고민도 많았다.

남편의 반응은.
영화를 아직 못 봤고(웃음), 촬영 전날 전화를 했다. ‘오늘 촬영한다’ 이렇게. 그랬더니 ‘잘해! 할 수 있어’ 이렇게 무심히 얘기하더라. 그래서 맘이 좀 편해졌다. 똑같이 진지하게 나왔으면 더 힘들었을 거다.

김승우와 호흡은.
짧은 회 차에 많은 걸 촬영해야 해서 일단 물리적으로 힘들었다. 스탭도 최소한의 인원만 가다 보니 한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담당해야 했다. 김승우 선배가 정말 잘 끌어줬다. 감독님 믿고 따라간 거처럼, 선배님만 믿었다.

그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함부로(?) 상대 배우를 대한다고 하던데.
오히려 그게 좋았다. 너무 예의를 갖춰서 대했으면 어색하고 불편했을 거다. 일부러 더 털털하게 대해줘서 진짜 감사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촬영하는 게 아닌 해외 촬영인지라 더 의지가 되기도 했다.
민구와 민하가 나이 차가 있음에도 서로 반말을 한다. 연기하면서 어색하진 않았나.
사실 좋았다.(웃음) 초반엔 좀 어색했는데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되더라.

그녀(민하)가 반말하는 이유는.
그녀는 워낙 강한 여성이다. 민구와 민하의 상반된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감독님이 반말을 사용하게 끔 하신 거 같다.

극 중 민하는 현재 싱글임을 끝까지 얘기하지 않는다.
그 감정이 이해는 된다. 어쨌든 그들은 끝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선을 끝까지 지키고자 안 밝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 가볍게 해석하자면 과거의 남자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그가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왜 괜히 센척하는 거 있지 않나. ‘어, 나도 있어’ 이런 식으로. 풋풋하게 보자면(웃음)

마지막에는 민구가 알게 된다. 아까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선가.
민구가 사실을 알게 되지만 민하가 선을 확실히 한다. 아마 민구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극 중에서 보면 민하는 주장이 강하고 강단 있는 반면 민구는 묵묵히 따라주는 편이다. 그들의 관계는 계속할 수도 없고, 계속되면 안 되는 관계 아닌가. 민하의 주체적인 결단이 좋았다.

촬영 중 마흔 살 생일을 맞았다고 하던데, 마흔 살이 넘으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결혼하고 1년쯤 지난 후 영화 촬영을 했고,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났다. 내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영화를 했다면 이해도가 달랐을 거다. 물론 내가 신혼이고 상대에 대한 애정이 한창일 때라 극 중 민하와는 감정이 다르긴 하다. 결혼이란 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생활을 공유하는 거 아닌가. 결혼 초에는 정말 사소한 일로 많이 싸웠다. 자존심도 세고, 또 둘 다 막내다 보니. 그렇게 싸우다 보니 어느 순간 내려놓게 되더라.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이 저절로 생기는 거다. 감정의 폭도 넓어지고. 그건 배우로서도 아주 중요하다.
영화가 한 편의 여행기처럼 참 아름답다. 가장 마음에 든 촬영지는.
다 좋아서 선택하기 힘든데, 하나를 꼽는다면 베르나챠다. 민하와 민구가 기차 타고 가다가 내리는 작은 시골인데, 바닷가 절벽에 있는 마을이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갔는데 너무 놀라운 풍경이 앞에 펼쳐져 있더라. 촬영만 하고 와서 아쉬웠다.

영화 속 방문한 민구의 지인이 실제 감독님의 지인이라고 하던데.
맞다. 그 곳은 시에나인데, 영화에서처럼 직접 요리도 하시고 출연도 해주셔서 감사하다. 한국분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가정을 방문해서 가정식을 먹은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꿈같은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피곤해서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었는데!

여러 곳에서 촬영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아홉 도시를 계속 이동하여 촬영했다. 제대로 짐도 못 풀고 장소를 옮기기도 했고. 근데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이탈리아 음식이랑 현지 이탈리아 음식은 맛이 다르더라. 그 동안 내가 저염식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 짠 거다! 왜 힘들다 보면 심리적으로 먹는 걸로 보상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그런데 제대로 못 먹으니까, 그 점이 힘들었다. 촬영 당시 큰 식품업체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협찬해줬었다. 햇반, 멸치볶음, 누룽지 등 진짜 맛있게 먹었다.(웃음) 그거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더라.

이탈리아에 가서 햇반이라니!
아, 그리고 또 있다. 영화 속 의상은 전부 내 옷이다. 촬영 떠나기 전에 의상을 준비해 오라는 거다. 난 평소에 청바지에 티셔츠 등 아주 편한 복장을 하기에 막상 가져갈 옷이 없더라. 민하의 분위기를 살려야 된단 생각에, 몇 년 만에 백화점에 가서 부리나케 폭풍 쇼핑을 했다. 가방이랑 시계도 마련했고.(웃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쇼핑했고 아직도 잘 입고 있다.

어쩐지 트렌치 코트 등 너무 잘 어울리더라! 배우는 나이 들면서 역할의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가령 연인에서 엄마라든지.
아까 말했듯 배우란 선택 받는 직업이다. 다른 배우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역할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바란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난 롱런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배우로서 나이 들어가고 싶다. 이제는 마흔이 훌쩍 넘었으니 엄마 역할을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나중에 더 나이 먹으면 할머니 역할도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나중에 세 번째 스물도 찍을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웃음)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욕심나는 배역이 있었다면.
진짜 솔직히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 작품을 잘 보지 않는다. 평소에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는 편이고. 또, 내가 쉬고 있을 때는 일부러 안 보는 것도 약간은 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선지 몰라도 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다. 특히 젊은 친구들 보면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모르겠다. 최근 <아가씨>(2016)를 봤는데, 신인 배우 김태리의 연기가 너무 좋더라. 예전에는 ‘저런 역할 내가 해야 되는데’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런 마음이 별로 안 든다. 그냥 앞으로 잘 됐으면 싶다.
이번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까도 말했듯 굉장히 촉박한 일정이라 육체적으로 힘든 점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불평이 생기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은데. 그런 경험이 있기에 다음 작품은 더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할 수 있을 거 같다.

<두 번째 스물>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외국은 <비 포 선셋>(2004)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랑 영화가 있는 반면, 우리 영화는 중년의 멜로를 그린 영화가 별로 없지 않나. 앞으로 다양한 사랑을 그린 영화가 많아졌으면 한다. 영화관을 나가면서 관객들이 여운을 느꼈으면 좋겠다. ‘아 좋다', ‘아 사랑하고 싶다’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앞으로 계획은.
빨리 인사 드리고 싶은데 아직 결정된 건 없다.

최근 인상 깊은 일이나 기쁜 일은.
요즘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기 시작했다. 평소 ‘나 하나도 책임지기 힘든데, 강아지라니! 절대 안 키울거야’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느낀 건 ‘절대’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되겠다는 거다. 이제 5개월 된 토이푸들인데 너무 귀여운 거다. 그 아이가 말을 못하지 않나 ‘왜 짖는지, 왜 날 깨우는지’, 어제도 밤에 ‘낑낑’ 대더라.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 말을 할 수 있는 내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 우리 체리(강아지 이름) 똥 치우는 게 요즘 내 일이다. (웃음)

2016년 11월 1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_필앤플랜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