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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이제 시작이다” <재심> 정우
2017년 2월 20일 월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편하다’, ‘친근하다’, ‘동네 오빠같다’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배우로서 연기적으로 변신을 매번 꿈꾼다. 한정적인 이미지는 어쩌면 앞으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무궁무진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 나이 30대 중반. 이제 시작이다”

<응답하라 1994> 속 ‘쓰레기’ 정우. 어느 덧 4년이나 흘렀다. 이후 <쎄시봉>(2015)의 ‘오근태’ <히말라야>(2015)의 ‘박무택’으로 왕성한 스크린 활동을 해온 그는, 실존 인물 혹은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편안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번 <재심>에서도 어김없이 실존 인물인 ‘준영’을 연기했다. 자본에 물든 변호사가 ‘인간 권익’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어쩐지 ‘준영’처럼 정우도 배우로서 한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이다. 이제 남은 건 관객의 몫. 평가의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영화를 본 소감이 어떤가.
따뜻함이 느껴졌다. 촬영할 땐 실화가 바탕이라는 생각에 아무래도 분위기가 무거웠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공기나 기운은 매번 밝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그렇지 만도 않더라. 또 ‘현우’ 역의 강하늘과의 브로맨스 느낌도 나는 듯 해서 더 흥미로웠다.(웃음) 물론 진짜 브로맨스가 아닌 부드러운 우정 멜로니 오해하진 말아달라.(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어떤 시나리오든 소재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데, <재심>은 일단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땐 지금 나온 결과물보다 훨씬 더 무거운 긴장감을 가진 작품이 될 것이라고 예상 했었고 특히 사건을 재연하는 장면 장면들이 다소 잔인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나온 결과물을 보니 감독님이 이러한 요소들을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잘 조율한 것 같더라.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잔인함의 정도는 다를 테지만 내 기준에선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큰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된 듯싶어 만족스럽다.

소재를 먼저 본다고 했는데, 특별히 선호하는 소재나 캐릭터가 있는가.
소재나 캐릭터보단 기본적으로 내가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적인 이야기든, 공상적인 이야기든 관계없이 이야기에 설득될 수만 있다면, 그 작품은 하고 싶은 작품이 된다. 그 이후에 캐릭터의 매력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외에 어떤 사람들과 작업을 하는지를 살피는 편이다.

<히말라야>, <쎄시봉> 이번 <재심>까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자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굳이 실화 영화라서 <재심>에 출연한 것보단, 앞서 이야기 했지만 사실적인 이야기라서 공감할 수 있기에 더 끌렸던 것 같다. 특별히 고집하는 건 아니다.(웃음)
이번 영화에서 변호사로 나오는데, 변론 장면이 딱히 없었다. 아쉬움은 없었는지.
법정에서 변론하는 장면이 담겼다면 물론 또 다른 재미가 있었을 테지만, 솔직히 처음 시나리오 읽을 때는 왜 변론 장면이 많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지금처럼 질문을 받으면 그제서야, ‘아 그런 장면이 있어도 재미있었겠군’이라고 느끼게 된다. 결론적으로 크게 아쉽지 않다.

‘약촌오거리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가.
사실 시나리오를 받기 전까지 ‘약촌오거리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기사로만 접했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러다 촬영 중간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게 되면서 사건에 대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사건 그 자체보다 피해자의 마음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상처 받은 피해자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게 되더라. 억울함을 안고 사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함부로 헤아릴 수 있을까 싶었다. 당연히 이 작품을 촬영 했다고 해서 그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내가 느꼈던 것처럼 최소한 우리 영화를 찾는 관객 분들은 ‘현우’와 그의 어머니의 심정에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소재 자체가 아무래도 민감해서 연기할 때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 부분이 가장 신경 쓰이긴 했다. 이야기의 소재 자체가 누명을 쓴 억울한 인물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도 그렇고 감독님도 마찬가지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어떻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고민 끝에 이 묵직한 이야기를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도록, 관객들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선에서 그려보고자 휴먼드라마 장르로 설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반은 굉장히 유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인데 그에 대한 책임감도 상당했겠다.
다른 날도 아닌 첫 촬영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당시 혼자 대사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모든 스태프들이 나만 바라보더라. 그들의 시선이 다른 영화 속 스태프들의 시선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한번도 촬영 첫 회차에 혼자 연기한 적이 없었거니와 언제나 동료 배우 혹은 선배들과 함께 했었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모든 사람들이 나만 바라본다는 자체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후 첫 촬영신에서의 부담감은 영화를 찍는 내내 지속됐다, 물론 <바람>(2009)에서도 단독 주연이었지만, 그땐 독립영화였고 이번 영화만큼의 부담감은 없었던 게 사실이라서…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담감이 잠자던 내 욕망을 밖으로 끌어 올려 긍정적인 결과를 낸 듯싶다.
실제 박준영 변호사와 몇 차례 만났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일단 사건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형사를 만나는 것처럼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지은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법조인이 갖고 있는 아우라때문에 기가 눌리는 것 같더라.(웃음) 누구나 드는 느낌일 것 같기도 한데, 뭐 일종의 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눠보니 박준영 변호사는 정말 유쾌한 분이었다. 내가 편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배려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박준영 변호사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연기한 부분이 있었는가.
그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실화가 소재인 영화를 여러 번 찍었다. 그래서 실제 인물을 만난 일이 왕왕 있었다. 그중 박준영 변호사는 내게 연기적인 부분보단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준 인물이었다. 기본적으로 날 배우로서 존중 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박준영 변호사의 행동이나 몸짓을 따라 하기보단 그가 사건을 접했을 당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세세하게 듣고 그 감정을 최대한 끌어내려 했다. 그러한 감정 이외에는 기존 인물과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를 구현하려 노력했고 말이다.

극 중 헤어나 메이크업엔 큰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메이크업은 했다.(웃음) ‘준영’이라는 인물은 변호사이기 때문에 도덕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단정할 것 같은데, 난 그런 틀을 깨고 싶었다. ‘준영’을 단순히 일반 직장인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부스스한 헤어, 단추 한 두개 풀린 와이셔츠 등의 설정으로 ‘준영’만의 개성을 만들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진 않았을 듯싶다.
나 역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연기할 때 고민도 많이 했다. 오히려 감정을 과도하게 내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래도 보는 관객보다 내 감정이 앞서면 안되니까 그런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이번 영화를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특별히 연기를 하면서 지나왔던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변화된 점을 꼭 집어 이야기 할 순 없지만 확실한 건 이번 영화를 통해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보듬어줄 나이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강하늘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데 있어서 배역 속에서든 실제 선후배 관계에서든 후배를 대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일정부분 성장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문득 평소엔 어떤 성격인지 궁금하다.
밝고 명랑하고 유쾌하지만, 때때로 낯을 가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요즘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덜 어색해진 것 같다. 서른 일곱이면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기에 어디서든 형 노릇을 하게 된다. 뭐 팬들이 ‘동네 형’ 같다는 말도 자주 해주지 않는가. 그 이미지를 따라가는 듯싶다.(웃음)

<쎄시봉> <꽃보다 청춘-아이슬란드> <재심>까지 강하늘과 인연은 정말 각별하다.
<꽃보다 청춘-아이슬란드>를 찍을 때는 예능이라는 의식을 전혀 하지 않고, 하나의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촬영했다. 그 속에서 강하늘은 더욱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동생이다. 잘 알겠지만 강하늘은 평소 예의 바른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하늘이에게 ‘내겐 너무 깍듯하게 대하지 않는 게 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게 3-4년을 알고 지냈고 지금은 너무나도 편해졌다. 덕분에 <재심>에서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고 말이다.

서로 자주 연락하는 편인지.
하늘이가 요즘 많이 바빠서 만나기 힘들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기 좋다. 그런 와중에 내가 전화하면 잘 받아줘서 고맙게 생각한다.(웃음)
이동휘와는 극중 친구로 나오는데 호흡을 맞춘 소감은.
연기 성향이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이나 브라운 관으로 볼 땐 느끼지 못했는데, 실제로 호흡을 맞춰보니 여러모로 느린 친구더라. 평소 말할 때든 인사할 때든 늘 느린편이었다.(웃음) 그래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김해숙 선배는 어떤 선배였는지.
원래 김해숙 선생님과 한 작품에서 작업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번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후 더욱더 팬이 됐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동등한 배우로서 날 배려해 주셨다. 볼 때마다 칭찬해주시고 그랬는데,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촬영장에서 저절로 힘이 나더라. 나도 나중에 선생님정도의 연차가 쌓였을 때 후배들을 배려하는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동료 배우들과 친해지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상대적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연기 호흡을 맞추는 데 있어서도 상대역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한 예로 <쎄시봉>에서는 절친으로 나온 진구씨의 경우 처음 만날 때부터 남자 답다는 느낌이 들었고 같은 동갑내기 배우지만 경험이 많은 친구였기에 내가 오히려 그 친구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다.

친근한 ‘동네 오빠’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앞으로 연기적으로 변화를 시도해볼 용의는 있는가.
내 이미지를 주변에게 물어보면 ‘편하다’, ‘친근하다’, ‘동네 오빠같다’는 말들을 대부분 한다. 이 외에 다른 이미지가 있는지 물어보면 딱히 나오는 대답이 없다. 나 역시도 배우로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매 순간 느낀다. 한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심지어 작품을 볼 때 대체적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맡는 역할이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맡겨만 준다면 멜로물이든 어떤 장르든 열심히 임할 자신이 있다. 또 이미지가 한정적이라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는 이야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내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이제 시작이다.
예비 관객들에게 <재심>은 어떤 영화인지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우리 모두 어떤 일을 하든 권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소중한 가족 때문이거나 혹은 스스로의 편안한 삶을 위해 그렇다. 그런 과정에서 때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는 받게 된다. <재심>은 바로 이런 상처를 껴안는 이야기다. 우리 영화는 단순히 ‘현우’라는 인물의 억울함을 변론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어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믿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나 역시도 이번 영화를 통해 성장했고 ‘준영’처럼 감싸 안는 게 바로 진정한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디 많은 관객 분들이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길 바란다.

이왕 정의로운 변호사 ‘준영’을 맡았으니, 억울함이 난무하는 요즘 사회를 향한 돌직구를 날린다면.
어떤 사회에서든 억울함과 상처는 있는 것 같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 중요한 건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말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한층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적이 있다면.
예전부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매번 ‘앞으로 행복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네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행복’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컥했는데, 요즘은 엄청난 ‘행복’을 찾기 이전에 일상 속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영화 촬영을 하면서도 사고가 많았지만 정말 운이 좋게 여기까지 오게 돼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시간이 이토록 빨리 흘러 어느덧 개봉을 맞이한 것 또한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행복하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이 인터뷰 자리 또한 내겐 감사하고 행복한 것 같다.

2017년 2월 20일 월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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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오퍼스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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