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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보통사람> 손현주
2017년 3월 27일 월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김수진 기자]
”나조차도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겠냐며 감독에게 묻기까지 했다”

캐스팅 이후 크랭크인까지 2년이란 시간을 기다린 손현주가 과거를 회상하는 말이다. 영화에 대한 투자가 여의치 않아 든 걱정만은 아니었다. 내용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다수 포함됐었고, 2년 전만 해도 영화의 정서가 시대정신과 다소 부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혼란의 시국을 한 단계 넘어선 지금, <보통 사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87년 당시 청년 손현주를 떠올리며 가족이냐 정의냐 갈등의 기로에 놓인 ‘성진’을 완벽히 소화하며 영화의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배우 손현주. 그와의 인터뷰는 여러모로 추억에 취하는 시간이었다.


<보통 사람>이 드디어 개봉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3월 달이 성수기라는 말이 있는데,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최근 내한한 스칼렛 요한슨의 <공각 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나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리고 <프리즌> 등등 연이어 훌륭한 작품들이 개봉돼서 기자들도 바쁠 것 같다. 걱정이 앞서기보단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관객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각 개인의 취향에 맞춰 영화를 선택하여 감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어떤 관객이 <프리즌>을 봤다고 해서 우리 영화를 못보는 것도 아니니… 라이벌로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웃음)

영화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고... 감독님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조만간 감독판을 제작할 거라고 하더라. 그도 그럴게 삭제된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극중 최윤소 씨가 맡은 ‘지숙’이라는 캐릭터와 관련된 시퀀스가 대거 생략됐다. 너무 아깝더라. 아마 그 부분들이 포함됐다면 우리 영화가 내용적으로 한층 더 풍부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지숙’은 뭔가 사연이 있는 여인처럼 계속 화면에 잡히기도 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끝까지 내막이 밝혀지지 않아 의문이었다.
사실 ‘지숙’은 권력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캐릭터다. 요정에서 일하는 여성이지만, 그곳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듣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생략돼 안타깝다. 아쉬운 마음을 감독판으로 달래봐야 할 듯싶다.

영화 크랭크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출연을 포기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일단 함께 작업을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어길 순 없지 않는가. 내가 기다리는 동안 시나리오 초고를 상당 부분 고쳤다고 들었다. 시간적 배경도 1970년대에서 1987년도로 바뀌고 제목도 원래는 <공작>이었는데 변경됐다. 촬영을 시작하기까지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뭐 내 입장에선 기다린다고 해도 그동안 다른 작품 카메오로 출연도 하다 보니 손해볼 건 없었다. 말이 2년이지 금방 지나가더라.(웃음)

시간적 배경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아쉽지 않았는가.
글쎄, 아쉽지 않았다. 시대가 언제든 전달하고자 하는 영화 속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사회 모습을 그리는 게 좀 더 경직된다고 해야 할까, 80년대를 그리는 것과 확실히 다르다. 난 87년도에 연극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는데, 아무래도 70년대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프로야구도 그때쯤 시작됐고 말이다. 물론 그런 사회 분위기의 저변에는 항쟁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변함없이 존재했다. 제목을 ‘보통 사람’으로 지은 것도 그런 관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스태프 회의 끝에 전반적인 분위기, 스토리와의 조화를 생각해 80년대로 바꾸기로 했다. 아마 70년대를 배경으로 뒀다면 정치 권력 관계에 대해 한층 더 디테일하게 그릴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지점에 대해선 감독님이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을 것 같다. 나중에 물어 보길 바란다. 난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 영화가 갖고 있는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떠나 그저 말 못하는 아내와 온전히 걷지 못하는 아들, 이를 지키는 한 가장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출연을 마음 먹었던 것이다.
87년도에서 타임슬립을 했다고 믿을 정도로 완벽하게 ‘성진’에 스며든 모습이었다. 특히 헤어스타일이 인상 깊던데.(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80년대 아버지와 오늘 날의 아버지는 어떻게 다를까 내 자신도 궁금했었다. 또 그런 차이점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게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연기하다 보니 어떤 시대든 아버지는 아버지다. 크게 다르지 않더라. 다만 1980년대는 장발 단속이 끝난 시점이라 남성들이 한창 머리카락을 기르고 그랬다. 자꾸 머리를 옆으로 넘기게 되는 것도 연기라기보다 실제로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내려와서 했던 제스처였다.(웃음)

소품 같은 디테일한 요소도 눈길을 끌던데, 본인의 아이디어도 포함돼 있는지.
꽤 있다.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바나나를 활용한 것도 그렇고, 담배 하나 선택하는 데도 그 시대와 맞도록 신중하게 선택했다. 실제 기억을 떠올려보면 바나나는 80년대 당시 접하기 어려웠던 아주 비싼 과일이다. 바나나 껍질까지 먹는 디테일 등으로 당시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이키 운동화도 함부로 신을 수 없는 신발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학생 때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동기를 부러워한 기억이 난다. 아 이거, 촌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인데.(웃음)

공간적인 배경도 그 시대를 잘 느낄 수 있게끔 현실적이었다.
당시 지어진 실제 가정집에서 촬영했다. 80년대 배경으로 지어진 집들이 이제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스태프들이 부산, 인천, 불광동 일대 할 것 없이 돌아다니며 그 시대 지어진 집들을 찾아 섭외하고 그랬다더라. 대부분 재건축 중이라서 찍고 나면 헐어 버렸다. 재촬영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곳에 살던 분들에게는 추억이 사라지는 거니까, 안타까웠다.
연기한 입장으로서 ‘성진’은 정말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인 ‘성진’을 연기할 때 감정이입이 가장 잘 됐었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통사람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아내는 나로 인해 그런 불행한 삶을 숙명처럼 받아 들이며 살고 있고 아들 역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밝게 살아간다. 연기지만 그런 가족들의 모습이 실제로 한스럽고 가슴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가족을 위해 가지 말아야 했던 선을 넘는 ‘성진’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임은 분명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제목을 <공작>에서 <보통 사람>으로 바꾼 것도 ‘보통 사람’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고, ‘보통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 바꾼 것이다. 오늘 날 평범한 사람이란 무엇인지 정답을 빠르게 찾기 어렵지만, ‘보통’까진 아니고 최소한 사람 냄새라도 일깨울 수 있는 영화를 완성시켜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뛰어들었던 것 같다. 심지어 장혁 빼고 출연 배우들 대부분이 평범하게 생겼지 않았나.(웃음)

잘생긴 얼굴이다. 자신감을 가져라.(웃음)
에이, 우리 엄마 눈에나 그렇게 보일 거다.(웃음)

외모 이야기를 하다 보니, 노인 분장도 했었다. 못 알아 볼 정도였는데, 힘들진 않았는지.
분장하는 데 6시간이나 걸렸다. 내가 힘든데 분장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더라. 특수분장을 전문으로 하는 팀이 미국에서 와서 도와줬다. 진짜 실력 있더라.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할아버지처럼 보여 지길 기대했는데,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너무 신기해서 사진도 찍어놨는데, 문득 30년 후 내 모습이 이럴까 싶어 씁쓸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성진’과 비슷한 시절을 보냈는지.
내 모습과 가깝기보단, 어린 시절 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과 가까운 것 같다. 당시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87년도 가정이 있는 가장을 연기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지금 세대들이 영화 속 ‘성진’을 보면 가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성진’처럼 사는 사람들이 중산층이다. 그땐 중산층이 그렇게 많았다. 일부 잘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옆집이고 앞집이고 사는 환경이 비슷비슷했다. 요즘은 반대로 중산층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혹시 극중 ‘성진’처럼 가족의 안위를 지킬지 아님 옳은 길을 갈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경험이 있는가.
물론 있다. 돈 때문이었다. 1997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라는 드라마 <첫사랑> 메들리 음반이 나왔을 때 지방의 여러 유흥업소들이 드라마 출연료의 10배를 현찰로 주겠다며 날 섭외했다. 순간 고민했다. 사실 그런 식으로 돈을 벌다 보면 조만간 더 넓은 집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 신길동 20평짜리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때였는데 굉장히 갈등했었다. 그러나 결국 제안을 뿌리쳤다. 갑자기 큰 돈에 대한 거래가 들어오니 선뜻 겁부터 나더라.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뒤로 유흥업소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3-4년 뒤 몇 번 무대에 서긴 했었다.(웃음) 그렇지만 그 일에 지속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2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불편한 게 뭐가 있었겠나. 불편한 점이라고는 13층이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걸어 다녀야 했던 정도였다.(웃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오늘 날의 세대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어렵게 개봉돼서 더 그렇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영화를 기획할 때만해도 이런 시국을 예상하지 못했다. 스태프 모두 마찬가지다. 듣기론 투자 받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더라. 이해는 한다. 나도 감독에게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 그 누가 됐든 문화는 문화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이번 <보통 사람>을 통해서 영화 하나 만드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무슨 거창한 개혁을 꾀하자는 것도 아닌데 투자 받는 것이나 개봉에 있어서 여러모로 순탄치 않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작품 그 자체, 이야기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는 건 인정하지만, 그 이상으로 간섭을 한다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를 전환해서 얼마 전 <해피투게더> 15주년 특집에 출연해 다중이 캐릭터를 얻었는데.(웃음)
(웃음) 영화 홍보한다고 나가서 프로그램을 망친 건 아닌지 미안하더라. 공교롭게도 예능 프로그램에 가끔 출연하면 항상 유재석이 MC를 맡는 프로그램을 나가게 되더라. 이번 <해피투게더> 녹화를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그 친구도 정말 치열하게 사는 사람인 것 같다.(웃음) 꼭 날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남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인들은 대단한 것 같다.

과거 본인도 다수의 작품에서 희극인 같은 면모를 뽐낸 바 있지 않나.(웃음)
확실히 그랬다. 예전에는 처가살이 하는 사위 같은 웃기고 가벼운 역할을 많이 맡았었는데, 드라마 <추적자> 이후 무겁고 진중한 역할을 주로 연기했다. 사실 처가살이 하는 사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편하다. 그게 내게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비슷한 캐릭터에 치중하기보단 이 캐릭터도 해보고 저런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 이번엔 다소 어두운 캐릭터를 맡았으니 다음 번엔 밝은 캐릭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보겠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말해달라.
이번에 딸이 대학생이 됐다는 게 가장 기쁘다. 다행히 본인이 좋아하는 과를 가서 만족스러워 했다 그 모습에 아빠로서 뿌듯하더라. 물론 끝이 아닌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의 삶이 순탄치 않을 테지만 대학 생활을 충분히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7년 3월 27일 월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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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sidus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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