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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꼰대 아닌 어른 <대립군> 이정재
2017년 5월 26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정재는 배우인 동시에 하정우, 염정아, 고아라 등 스타급 배우와 함께하는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의 공동대표다. 배우 생활 24년, 어느덧 누군가에게 조언을 건네기에 부족함 없는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자신이 건넨 말 한마디가 무례한 훈수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면? 누군가를 ‘후배’라고 말하기 전에 ‘동료’라고 부를 줄 안다면? 그야말로 사려 깊은, 꼰대 아닌 어른일 것이다.

지난해 가을 상당히 뜨거운(!) 반응을 불렀던 <인천상륙작전>(2016) 이후, 첫 작품이다.(웃음)
(감탄하며)와. <인천상륙작전> 때는 악평이 굉장했었다.(하하) 하도 악평이 많으니 기자들 만나면 “어떻게 보셨어요?”부터 물어보는 게 일이었다. 망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작 개봉을 하고 나서는 관객들은 좋은 반응을 보여주더라. 마치 “이정도가 뭐 어때서?”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웃음) 며칠이 지나도 관객 스코어가 떨어지질 않아서 ‘이 상황은 대체 뭔가…?’하는 의아한 기분도 들었다. 앞으로 다시 겪기 쉽지 않을,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웃음)

<대립군>은 그 당시에 비하면 다소 무난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다.
아직 개봉 전이기 때문에 관객 반응까지 체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번 주가 지나 가보면 정확히 알게 될 것 같다.

시사회 때 완성된 버전을 처음 관람했다고 들었다. 만족스럽던가.
영화를 하는 사람은 “이번 작품은 정말 내 마음에 쏙 든다!” 싶은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어떤 영화를 만나도 아쉬움이 남는다. <대립군>도 후반 작업을 좀 더 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대선이 이렇게 앞당겨질 줄 몰랐기 때문에… (웃음)
촛불 정국부터 초유의 ‘장미대선’까지… 정치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서 많은 영화 작품의 개봉 시기는 물론 흥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연하게도 영화를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 대선은 가을이 지나서부터라고 생각했으니까 (정치적 변화에 맞춰 대응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웃음)

정국은 안정화 되어가니 이번에는 <원더우먼>과 개봉일이 겹치는 게 문제다.(웃음)
어떻게든 해봐야지. 우리한테는 (여)진구님이 계시니까.(웃음)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한 주 앞에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개봉하고, 같은 주에는 <원더우먼>이 개봉하고, 그다음 주에는 <미이라>까지…(웃음)

당연히 흥행 문제가 신경 쓰일 것이다.
솔직히 이전보다 요즘 흥행에 더 신경이 쓰인다.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지 않나. 전에는 제작비가 아무리 높아 봤자 60억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그보다도 훨씬 높은 예산이 책정된 영화도 많고, 또 홍보비도 워낙 많이 들어가니까.
건투를 빌어보자.(웃음) <대립군>이라는 제목은 마음에 드는지. 신선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단어였다. 맨 앞장에 한자가 아닌 한글로 ‘대립군’이라고 쓰여 있어서, 도대체 누구랑 대립을 하는 이야기지?(웃음)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누구와 누가 대립하는지 안 나오더라고.(웃음) 나중에 정윤철 감독님께 물어보니 ‘대신 군대 가는 사람’을 뜻한다고 했다. 한자 병기를 보고 나서야 ‘아, 그렇구나’ 했다.

‘지도자는 어때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현 상황에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보내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를 고증하면서, 지금 현재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문제들을 어느정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당신이 맡은 ‘토우’ 역은 대립군 일행을 이끌고 ‘광해’와 함께 험준한 산을 넘어 강계(지금의 평북)지역으로 향한다. 실제 촬영이 상당히 고됐다고 들었다.
촬영 현장이 산이다 보니 오죽하면 밥차가 못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반은 올라오고, 반은 못 올라오고.(웃음)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데다가 높은 산은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없으니 늘 걸어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와야 했다. 감독님이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에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묻길래 “이거다”라고 했다.(웃음)

그래서인지, 극 중에서는 평소보다 날씬해 보이더라.(웃음)
살 찔 시간이…(웃음) 물론 내가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면 당연히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불렸겠지.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팔굽혀펴기도 하고.(웃음) 그런데 아무리 전투 경험이 많은 대립군이어도 전란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인데 근육이 울퉁불퉁한 몸매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암살> 때만큼 철저하게 체중 감량을 하진 않았지만 살이 붙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관리했다.

언론시사회 때 <관상>의 ‘수양대군’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당신의 남성성을 제대로 발굴해낸 매혹적인 캐릭터지만, <대립군>에서 비슷한 모습이 반복될까 걱정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상대를 제압하고 위협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느낌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까지는 피해갈 수 없더라. ‘토우’는 대립군으로 뽑혀 온 사람들을 쥐고 흔들며 인솔하는 수장이니 당연히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관상>의 ‘수양대군’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지점에 변화를 줬다.

예를 든다면.
‘수양대군’은 손동작도 고귀한 척하는 느낌이고, 왕족답게 말도 천천히 한다. 강해 보이기 위해 애써 여유를 부린달까. 하지만 ‘토우’는 강인한 모습 뒤로 전쟁터 앞에 선 두려운 인간의 눈빛을 감추고 있다.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면 재미없었겠지만, 어느 시점에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토우’의 삶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가난한 삶이다.
흠. 그렇지. 나라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하고, 에브리바디 가난한 상황이다.(하하) 연기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나도 가난 때문에 힘든 감정을 전혀 못 느끼고 산 사람은 아니니까.

정윤철 감독은 극 중 ‘토우’를 비롯한 대립군 무리를 요즘의 비정규직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더라.
사실이다. 그들은 정규 군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립군 생활을 열심히만 하면 나중에 포졸도 시켜주고, 군관도 시켜준다는 달콤한 말에 유혹된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써 준다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나.(웃음)

메시지도, 캐릭터도 지극히 지금 현재의 상황을 비유하는 듯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 그런 지점을 말하고 다니는 건 너무 1차원적인 홍보방식인것 같다.(웃음) 영화를 본 관객이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또 그 느낌을 어떤 공간에 한 편의 글로 표현한다면 상당히 좋은 일이지만, 이미 영화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메시지를 굳이 출연 배우인 내 입으로 또 말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평소에도 정치, 사회에 대한 공개적인 의사 표현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웬만하면 자제하려고 한다. 물론 배우도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정치 혹은 종교 등 여러 주제에 대한 자기 생각이 있다. 다만 그것이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런 기준에 맞춰 작품을 고르면 선택의 폭이 좁아져서, 내 가능성을 스스로 꺾어버리는 격이 된다.

애국을 말하는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평범한 백성의 가치를 부각하는 <대립군>을 선보이는 걸 보면 맞는 말 같다.(웃음) 한데, 둘 다 숨겨진 영웅을 조명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요즘에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관객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제작사 쪽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기획하려고 한다. 시나리오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대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웃음)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선택지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들어 멜로 장르는 거의 기획되지 않으니 말이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문제의식을 많이 공유한다. 소위 제작비 40억 전후를 오가는 영화들이 BEP를 넘기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빅버젯’ 느낌의 시나리오만 기획되는 상황이라 상당히 아쉽다. 멜로 시나리오 자체를 보는 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됐다. 많이들 기획해줬으면 좋겠다.
함께 호흡을 맞춘 여진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아주 진중하고 열정적이다. 진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촬영이 끝난 후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반주를 걸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편이다. 그럴 때는 선후배 관계가 아니라 동료같은 느낌이었다.

그에게 연기적 조언을 건네기도 했는지.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거나 경험치가 조금 더 있다는 이유로 상대의 연기에 함부로 훈수를 두는 건 굉장한 실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면, 배우 당사자보다는 연출자에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광해가 저 부분에서는 더 여려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혹은 “그 부분에서는 좀 더 의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는 식이다.

에둘러 말하는 편인가 보다.
누군가에게 조언 할 때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질문 형식으로 바꿔서 말하는 편이다. 선배니까 “야, 이렇게 하는 게 좋은 거야”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게 진짜 좋은 건가?”(웃음) 하고 말한다.

어떤 걱정 때문인지, 이해된다.
직접 가르쳐주는 것보다 그게 정말 본인에게 좋은 건지 찾아보게 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짜 그 사람 것이 된다.
당신의 멘토가 되어주는 사람도 있나.
생활 속에서 늘 모두가 멘토가 되는 순간이 있다. 어떨 때는 여진구, 김무열이 멘토다. 오늘처럼, 인터뷰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를 보고 “저런 질문은 참 배울 만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절친 정우성과 함께 ‘아티스트컴퍼니’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부터는 과거보다 더 많은 배우와 교류하게 됐을 텐데.
아무래도 배우들끼리 모여서 고민을 공유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설립한 회사이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배우에게는 다 고민이 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장르를 맡아야 하나, 어떤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나, 그 모습을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지금의 나는 무엇을 바꿔야 하나, 내가 한 선택이 맞는 건가 틀린 건가… 그럴 때 동료끼리 상의를 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어도 센스가 있거나 직관이 좋은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과 대화를 하는 거다.

‘아티스트컴퍼니’에 소속된 배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어떻게 나눠 쓸 것인지는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다. 그에 따라서 행복이 많이 좌우된다. 그저 성공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시간을 계획하고 사용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주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웃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행복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때?
회사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웃음)

어서 적극적으로 자랑해달라!
회사를 만들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 참 행복하다. 많은 배우가 사무실을 찾아준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저녁 되면 같이 밥 먹으러 다닌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대본을 같이 읽고 각자 시각에서 해석한 캐릭터에 대해 토론한다.

마치 스터디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 회사에 소속된 신인 배우들은 늘 연기 수업에 참석하는데, 그 수업에서 받은 대본을 기성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읽어본다. 누가 먼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서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생기는 것 같다.

기성 배우는 도움을 주는 입장이지만, 그러면서 얻어가는 수확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많다. 가르쳐주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일단 설명을 해주려면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해야 하니까, 그러면서 무언가를 깨닫기도 한다.(웃음)

2017년 5월 26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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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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