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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운아!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2017년 9월 2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1920년대 일제강점기 무정부주의자 독립운동가 ‘박열’(<박열>, 2017)로 분해 ‘개새끼’ 시를 읊던 이제훈.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100여 년의 세월을 너머 5대5 가르마를 한,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으로 돌아왔다. ‘이준익의 남자’였던 그가 ‘김현석의 남자’로 변신한 것이다. 시대와 외양, 성격 모두 판이하지만 두 영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를 담고 있는 것. 이제훈은 휴먼코미디이자 감동드라마인 <아이 캔 스피크>에 참여한 것에 감사하다며, 그간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을 ‘행운아’라 자처한다. 목소리 크지 않지만, 조용히 소신 있는 그를 만났다.

작품 선택 기준은.
작품이 주는 재미, 이야기를 보고 선택하는데 그 이야기에 수긍이 가야 한다. 그래야 연기할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의 매력보다는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본다. 또, 어떤 캐릭터, 어떤 이야기이든 같이하는 연기자들과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이 즐겁다.

위안부 소재가 민감할 수 있는 문제인데, 작품 합류 계기는.
아직 해결이 안 된 문제이기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생존해 계신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됐으면 했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뜻이 너무 좋았고, 나도 그 취지에 동의했다. 배우로서 작은 힘이나마 참여한다는 의의도 있다. 사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김현석 감독님과 영화사 '시선'의 강 대표님께 감사하다. 영화라는 게 잘 만드는 건 기본이고 그 후 마케팅의 영향도 크고, 무엇보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더라. 김현석 감독님의 ‘결’ 이라면 이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상업영화로 포장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또, <건축학 개론>에서 함께 했고, 이번 영화에 제작사로 참여한 명필름 ‘심재명’ 대표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같은 소재인, 작년에 개봉한 <귀향>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반가운 일이다. 이 소재가 그간 고통스럽고 힘든 정공법 접근이 대부분이었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대중에게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다. 그렇다고 가벼운 게 아닌 진정성 있게 접근했으니,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여,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
불이익?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다. 젊은 세대가 역사적 인식이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 관심도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막연하게 ‘옛날 이야기’처럼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특히, 극 중 ‘미국 청문회’ 현장을 담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슈화에 도움 되지 않을까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평소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한 적이 있나.
사실 인식은 있었지만 직접 참여는 못 했다. 이번 작품 준비하면서 많이 알게 됐다. 서른 다섯분이 생존하시는 거로 알고 있다. 금전적 보상 이전에 진정성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본다.
시나리오를 본 첫 느낌은.
처음에 단순한 코미디 영화라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놀랐다. 극 중 ‘옥분’ (나문희 분)할머니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말이다. 사실 ‘옥분’ 할머니가 헤어진 동생과 만나는 스토리로 흘러갈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시나리오를 끝까지 보면서 조심스럽고 어려울 수 있는 소재를 참 잘 표현했다 싶더라.

전작 <박열>(2016)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연기했다. 이번 <아아 캔 스피크>는 위안부 문제를 표면화시키고, 노골적으로 일본을 저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신이 느껴진다.
매번 소신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양질의 콘텐츠가 있다면 지속해서 참여하고 싶다. 게다가 이준익, 김현석 감독님과 함께 한 건 나에겐 정말 행운이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 점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 열심히 달려보고 싶다.

극 중 ‘옥분’역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미리 캐스팅된 상태였는지.
시나리오를 한 3페이지 정도 보는 순간 ‘옥분’은 나문희 선생님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들한테 말하니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 다행히, 수락하셨다. 정말 나문희 선생님 외 다른 분을 생각할 수 없었다.
‘민재’ (이제훈 분) 캐릭터를 소개한다면.
음... 그는 원리원칙의 9급 공무원. 옷차림도 깔끔, 반듯하고 심지어 헤어스타일도 5대5 가르마일 정도. 이런 식으로 외적인 캐릭터 라이징에 의견을 내기도 했다. 초반에는 사무적이고 딱딱한데, ‘옥분’ 할머니가 영어를 가르쳐 달라니까 안 가르쳐 주려고 꼼수를 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민재의 따뜻함이 드러나는데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싸가지? 더 없게 행동하기도 했다.

민재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이전에는 계획적인 연기? 감정선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이 많았다. 이번에도 촬영 전까지는, 나문희 선생님과 둘이 붙는 장면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선생님의 행동과 말투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전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부분이 이번에는 쉬워지더라.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민재와 닮은 점, 그리고 차이점은.
약속 지키는 걸 중요시 하는 점이 유사하다. 지키지 못할 것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나의 그런 부분이 민재 캐릭터에 묻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민재’가 처음에는 안 가르치겠다고 밀어내지만 동생을 계기로 가르치게 된다. 그 후엔 열과 성을 다하는데 그 부분도 비슷하다. 목표가 있다면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옥분’ 할머니에게 How are you?’ 이 말 한마디 하려고 미국까지 가지 않나. 그런 모습에 공감되더라.

극 중 영어가 아주 자연스럽더라. 전작 <박열>(2017)에서는 일본어를 구사했는데, 준비 과정은.
<박열>에서는 일본어를 아주 완벽히 잘해야 해서, 역할이 역할인지라, 고생했다. 이번에 영어는 그래도 읽을 수는 있으니까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했는데, 네이티브처럼 해야 해서 역시 어렵더라. <박열> 때처럼 문단을 통째로 듣고, 외우고, 악센트 등 따라하며 계속 연습했다. 괜찮아 보였다니 다행이다.(웃음)

단편적인 대화가 아닌 상당히 긴 얘기도 잘 하던데.
‘옥분’ 할머니와 함께 호프집 갔다가 벤치에서의 대화를 말하는 건가? 맞다. 그 부분이 ‘민재’가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고 속 얘기를 주절주절하는데, 음...어쩐지, 영어 선생님이니까 영어로 하면 어떨까 했다. 사실 촬영 시에는 영화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긴 대사로 길게 얘기한다. 상영 시간상 편집돼서 그렇지. 부끄럽지만 그 장면을 되게 좋아한다.

대 선배인 나문희 선생님과의 호흡은.
내가 한참 어리고 부족한 게 많지 않나. 만나 뵙기 전에는 무섭지 않을까, 하늘 같은 선배님인데 하고 걱정이 좀 됐었는데, 만나고 나니 전혀 다른 거다. 첫 만남에서 반갑다고, 얘기 많이 들었다고, 잘해보자고 하시는데 그동안 가졌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어져 버리더라. 촬영하면서 칭찬을 많이 해주시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 거다. 선생님 곁에서 계속 있고 싶었다.

아직은 ‘후배’의 입장인 경우가 많겠지만, 앞으로 어떤 ‘선배’가 되고 싶나.
따뜻한 선배. 현장에서 연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당황할 때 등등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내가 받았던 것처럼 후배들을 이끌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배가 있다면 .
<고지전>(2011) 촬영 때 완전 신인이었는데, 당시 신하균 선배가 많이 챙기고 조언해 주셨다. 까마득한 후배인데 정말 친동생처럼 챙겨주셔서 힘을 많이 받았다. ‘전쟁 영화라 험한 씬이 많은데....잘 해보자’ 이러시면서 말이다. 한석규 선배와는 두 작품을 같이 했는데 정말 배우로서의 아우라와 작품을 이끌어가는 힘이 대단하시더라. 또, 드라마 <시그널>(2016) 때는 김혜수 선배가 현장과 스태프를 아우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고 많이 배우고 느꼈다. 스태프와 저렇게 따뜻하게 서로 힘내면서 하니까, 정말 안되는 것도 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더라. 뭐, 진웅 형과는 원체 가까운 사이라.(웃음)
김현석 감독님과의 호흡은.
이번이 첫 만남인데 마치 전작에서 함께 했던 느낌이었다. 감독님 전작을 좋아했고 함께 하고 싶었는데, 내가 ‘김현석의 남자’에 들어가게 돼서 너무 기뻤다.(웃음) 정말 눈빛만 봐도 척척 알 수가 있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호흡 척척이라니, 당연히 현장 분위기도 좋았겠다.
일단 의미있는 작품에 함께 하게 된 것이 너무 행운인데, 감독님 그리고 나문희 선생님과도 너무 호흡이 잘 맞는 거다. 그 전에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한테 집중했었는데, 이번에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더라. 그렇기에 촬영 기억이 오래갈 거 같다.

예능 ‘삼시 세끼’에 출연했는데, 참 편해 보이더라.
정말 내추럴하지 않았나. 일상적 모습인데, 이제는 좀 꾸미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그래도 배우인데 말이다. (웃음)

삼시 세끼 식구들이 잘 챙겨주던데.
아무래도 남자 게스트에, 처음 만나는 거라 뭔가 썰렁할 것을 예상했었다. 처음에는 진짜 음식 만들기에 바빴는데, 점차 말을 자주 걸고 나를 챙겨줘서 금세 편안해지더라. 그래서 아마 긴장 안하고 더 풀어진 듯하다. 세 분다 정이 많다. 처음 뵀는데도 막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릴 때, 학창 시절 개구지게 놀던 추억이 생각나고, 한편으론 음식이 너무 맛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힐링하고 왔다.

실제 성격은.
약속, 시간, 해야 할 일 등등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배우 이제훈’에게 원하는 일이 있다면 나를 던지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뭐라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일 할 때는 프로답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을 힘내서 열심히 하자, 이런 식이다.
극 중 공무원 풍자가 많다.
그럼에도 열심히 주민을 도와드리는 부분도 많지 않나. 공무원을 비꼬려 한 것보다는 나름 헌신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란다.

동료 공무원인 ‘아영’ (정연주 분)이 ‘민재’에게 하는 대사가 색다른 웃음 포인트다.
정연주와는 학교 선, 후배 관계다. 현장에서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외 구청 직원인 박철민 선배, 이지훈 선배, 모두 너무 잘 해주셨다.

실제 ‘아영’ 처럼 다가오는 이성이 있다면.
‘민재’ 처럼 당황하겠지만, 음... 실제 그렇게 다가온다면 ‘저한테 왜?’ 하고 물어볼 거 같다.
흥행에 대한 기대는.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선택하지만,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겸허하게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활동 계획은.
9월, 10월은 <아이 캔 스피크> 홍보로 바쁠 거 같다. 지난 1년 동안 세 작품을 연달아 해서 많이 소진된 상태다. 보통 한 작품 하면 빨리 쉬면서 재충전해야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번에는 연달아서 하니까, 이상하게 작품이 주는 충족감 때문인지, 뭔가를 하고 싶은 감정이 더 커지는 듯하다. 빨리 다음 작품이 나를 찾아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 (웃음)

작품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니고, 시사회 때 눈물을 참고 참았다. 특히 산소 장면에서, ‘옥분’ 할머니도 누군가의 딸이었구나, 절절히 다가오더라. 그 연기와 감정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더라.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마디.
음... <아이 캔 스피크>는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탁월한 영화로, 웃고 즐기다가 따뜻한 마음으로 나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 영화에 관심 많이 가져 주시길!

2017년 9월 2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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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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