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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티격태격, 애드립 금지! <공작> 윤종빈 감독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윤종빈 감독이 대북공작원 ‘흑금성’ 실화를 모티브로 한 첩보극 <공작>으로 관객을 찾았다. 작품적으로 상업적으로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던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이후 4년 만이다. 90년대 실재했던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게 놀라워 개인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공작>. 이후 신념의 차이로 대립각을 세우던 두 남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윤 감독. 오로지 대사를 무기 삼아 긴장감을 조성하고 유지한 채 137분을 끌고 나가기 위해 그가 배제한 것은 액션만이 아니다. 알콩달콩, 티격태격, 애드립은 자체 금지했다는 윤 감독. 긴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얘기한다. 이런 노력 끝에 절제력 빛나는 그의 설욕작 <공작>을 완성했고, 올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된 것에 이어 국내 영화 관계자들에게 호평 받았다. 흔한 프랜차이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닌 나름 장인이 되고 싶은 자신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 좋다는 윤종빈 감독을 만났다.

마침 <공작> 개봉일이다. 지금 기분은.
뭐, 긴장되고 일희일비하게 되고 다른 때와 비슷하다.

시사 이후 <공작>에 호평 일색이다.
다행이지만, 일반 관객 반응이 아니라서... 이제 개봉했으니 한 일주일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칸국제영화제 공개 후 재편집했다. 재편집 이유와 전후 차이점은.
장면은 다 그대로이고 처음 보는 관객 입장에서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을 덜어냈다. 내레이션의 경우 잘 안 들린다는 반응이 있었기에 다시 녹음했다.

‘흑금성’(황정민)의 내레이션으로 극을 진행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영화의 큰 로드맵 안에서 즐기는 영화도 물론 있지만, <공작>은 스토리 예측이 안 돼야 스릴있고 흥미로울 거로 생각했다. 따라서 주인공의 심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데, 이에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하겠더라. 또, 스파이 ‘흑금성’의 세계관 자체가 변하며 서사가 진행되기에 시나리오 단계부터 1인칭 회고 형식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한국형 스파이극을 표방, 액션을 완전히 배제했다. <공작>에 액션을 기대하는 관객도 분명 있을 거다.
액션 없는 첩보물이라고, ‘구강 액션’이라고 근 5개월 동안 얘기했는데, 만약 액션을 기대하면... 액션이 꼭 필요하다면 <미션 임파서블>을 봐야 하지 않을까. (웃음) <공작>은 드라마니 말이다. 사실 첩보물이 곧 액션물은 아닌데, 최근 첩보물 하면 자연스레 액션이 따라오며 첩보액션물로 자리 잡은 거 같다.

<공작>에서 절제력 있는 연출이 돋보였다. 한 번쯤 끓어 넘칠 만도 한데 말이다.
처음 생각했던 게 다른 신념을 가진 두 남자가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이야기를 만들자 였다. 대립각을 세우다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안 하려고 했던 게 있다. 자체 금지한 거라고 할까.

뭔가.
알콩달콩, 티격태격 그리고 웃길 순 있겠지만, 지저분해 보이는 애드립을 하지 말자 였다. 쭉 긴장을 유지하고 싶었거든.

<공작>을 만들게 된 계기는.
다른 대본 준비로 취재하던 중 우연히 ‘신동아’에 실린 ‘흑금성’ 관련 특집기사를 발견했는데,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 너무 놀랐었다. 한국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었고 너무 궁금해서 더 알아보고 싶었다. 이런 일차적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그 후 진척 상황은.
국정원 전문기자를 통해 실재 ‘흑금성’ 박채서 선생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고 당시 수감 중임을 알았다. 이후 수감 중인 선생께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혹시 회고록을 써주실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후 3권 정도 분량의 내용을 펜으로 써주셨다. 이번에 회고록이 출간된 거로 알고 있다.

회고록을 처음 접한 사람이겠다. 느낌이 어땠나.
충격이었다. 출판된 회고록이 어느 정도 편집됐는지 모르겠지만, 회고록보다 영화가 훨씬 순하다고 보면 된다. 너무 센 내용과 팩트 체크가 불가능한 것도 많았다. 사실 김정일을 만난 것 등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지 않나. 국정원 전문기자한테 물어보니 당시 준비했던 대북공작작전이 대략 300여 개 정도고 그 중 진행된 것들이 150여 개 되는데, 그 중 ‘흑금성 작전’은 상위 10개 안에 들어가는 A급 작전이라고 하더라. 그 소릴 들으니 나머지 9개 작전이 궁금해졌었다.(웃음) 사실 ‘흑금성 작전’도 안기부가 공개 안 했으면 국가기밀로 남아 몰랐을 것 아닌가.

‘흑금성 사건’을 영화화를 결정하며 사회·정치적 고민이 없었나.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나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영화 한 편 만드는 게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거든. 다만 우리끼리 너무 소문나지 않게 ‘공작’이라는 가제로 시작했는데, 결국 제목이 됐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블랙리스트가 공개되고, 말로만 듣던 리스트가 정말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됐다.

<공작>을 시작할 때와 남북 관계가 많이 달라졌다. 화해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단 국민으로서 지금 분위기가 너무 좋다. 남북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더라. 대치 상태 혹은 화해 모드, 어느 쪽에서 <공작>의 가치가 클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것 같다.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적 상상력이 더했졌을 거다.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영화의 큰 흐름은 모두 사실이다. 군인에서 발탁되어 공작원이 되고 이후 대북사업가로 위장하여 북한 인사와 접촉한 것, 이후 북한에서 광고 촬영을 비롯해 여러 사업을 꾀한 것 등은 모두 실재했던 일이다. 물론 세부적인 부분은 상상과 각색의 작업을 거쳤다.

롤렉스 시계 선물과 김정일이 키우는 개의 견종은 사실인지, 허구인지.
롤렉스 시계를 선물로 준 건 사실이다. 북한 간부가 롤렉스를 진짜 좋아한다더라. 또, 작전 당시 실제로 짝퉁 롤렉스를 선물했다고 들었다. 김정일의 개를 말티즈로 선정한 이유는 실제 그가 말티즈, 시츄 등 여러 견종의 개를 키웠고, 말티즈의 경우 털을 길게 늘어트려 놓으면 아주 고급스럽다. 예전에 내가 키우기도 했었고! 하하

극 중 ‘흑극성’(황정민)이 작전 수행 중에는 안경을 쓰고 평소에는 쓰지 않는다. 신분 위장을 위한 소품으로 특별히 안경을 선택한 이유는.
박채서 선생이 실제로 눈이 좋은데 ‘흑금성’으로 활동할 때는 사업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안경을 착용했다고 들었다. 거기에 착안하여 안경을 극 중 ‘흑금성’의 감정 포인트로 잡아, 공작할 때와 안기부 직원일 때 모습을 차별하려 했다.

극 중 북한 풍경이 매우 사실적인데, 그 부분은 어떻게 작업한 건가. 또, 엔딩 부분에서 가수 ‘이효리’가 나오는 장면은 예전 영상 자료를 이용한 것인지.
북한 영변 장면 등은 실제 남한 태백 지역에서 촬영했고, 평양을 비롯한 북한 경관은 사진 소스를 구해 CG 작업을 한 거다. 가수 이효리가 나오는 부분은 예전 영상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 촬영한 것으로 분장과 CG의 합작품이다.

극 중 ‘김정일’(기주봉)이 우리가 익히 아는 ‘김정일’과 아주 유사한데, 특수 분장인 건가.
정말 여러 번 한 얘기지만, 또 하자면 (웃음) 극 중 ‘김정일’이 잠깐 등장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그것도 꽤 길게 나오기 때문에 관객이 ‘김정일’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게 중요했다. 처음에는 CG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힘들다고 판단하고 특수 분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후 할리우드 분장팀을 섭외해서 김정일과 키가 비슷하면서 평소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펼치는 몇 분을 추려서 분장팀에게 제안했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기주봉 선생님을 선택했다. 캐스팅부터 분장 본뜨고 촬영까지 총 6개월이 걸렸다.

<공작>을 진행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2시간이 넘는 첩보 영화를 만들면서 액션 없이도 긴장과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안 해본 거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물론 배우들 모두 힘들었다. 우리가 그린 그림은 확실한 데 해본 적이 없으니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후 조금씩 수정해 나갔다.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이 ‘윤종빈 감독은 집요하고 디테일하다’고 하는데, 본인 생각은. 또, 재촬영 시, 특별하게 디렉션을 주기보다 그냥 와서 모니터 보라고 한다던데.
더 했어야 하는 데 대충 넘어가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집요하고 디테일하지 않은 편이다. (웃음) 와서 모니터 보라고 하는 건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스스로 보면 어떤지 너무 잘 알거든. 일방적으로 디렉션을 주는 것보다 같이 대화하는 걸 선호하는 것도 있다.

함께한 배우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흑금성’을 연기한 황정민 배우와는 첫 호흡이다.
‘흑금성’ 박채서 선생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되게 우직하면서도 선악이 불분명한 느낌을 받았었다. 바로 정민 선배가 떠올랐기에 시나리오 단계부터 ‘흑금성’ 역에 정민 선배를 염두에 뒀다. 선배는 정말 열정적이고 부지런하시다. 매일 촬영 시작하기도 전에 오셔서 기다리곤 하셨다.

‘정무택’ 역의 주지훈 배우 역시 첫 호흡이다. 주지훈 배우가 말하길 당신이 세 보이지만, 내심은 연약하고 섬세한 안아주고 싶은 남자라고 하더라.
나 섬세한 남자 맞다.(웃음) ‘정무택’은 원래 더 나이 있는 배우로 가려했었다. 그런데 우리 PD가 극 중 ‘정무택’은 북한판 금수저라고 할까, 엘리트 출신 군 장교 컨셉이니 좀 젊은 배우로 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이성민과 황정민 배우의 기에 눌리지 않을 배우를 찾으니 별로 떠오르는 배우가 없었고, 옆에서 PD가 한 달간 주야장천 ‘주지훈’ 배우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합류했는데,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세 아재(이성민, 황정민, 조진웅) 사이 환기구하고 할까, 극에 싱그러움을 더한다. ‘주지훈’은 한마디로 <공작>의 채소 같은 존재다!

이성민 배우도....
성민 선배와는 <군도>(2014), 내가 제작자로 참여한 <보안관>(2016) 등 그간 작업을 여러 번 했었다. 모든 배우는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선배님 역시 예민하지만, 티를 전혀 안 내신다. 아주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이다. 다만 술을 전혀 못 하셔서 아쉽다. 그래도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서 파이팅해주신다.

이성민 배우는 <공작>과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하는 <목격자>의 주인공이다. 감독 입장에서 어떤 기분인가.
뭐, 요즘 배급사들이 배려가 없다. (웃음) 그래도 예전에는 동일 배우가 나온 영화의 경우 2주 정도 간격을 두었는데, 요즘에는 얄짤없더라. 우리끼리 만나면 다 같은 동료인데 서로 응원해주자고 한다. 당장은 경쟁 구도일 수 있겠지만, 한국 영화 풀이 좁으니 다른 조합으로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거든. 이게 사실 제3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게 재미있는 상황인 것 같다. 나도 작년 겨울 <신과함께- 죄와 벌>과 <1987>(기자 주 두 작품 모두 하정우가 출연함)이 붙었는데, 멀찍이 지켜보니 흥미진진하더라.

개인적인 질문이다. 평소 관심 분야는.
UFC 등 스포츠 중계, 정치 비사 다룬 프로들을 주로 본다. 전형적인 아재들 취향이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 들수록 <제3공화국> 같은 정치 드라마가 재미있고, 멜로에는 관심이 사라진다. 온전히 사실적인 멜로가 아니면, 그러니까 판타지 요소가 조금만 가미돼도 오글거려서 못 보겠더라.

당신이 연출한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비롯해 재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춘몽>(연출 장률, 2016)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는데, 배우로서 활동 계획은 없는지.
향후 20년간 할 생각 없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경우 머리 깎을 사람이 없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했는데, 요즘 온갖 곳에서 패러디되고 있더라. 그때만 해도 유튜브 시대가 올지 몰랐으니.... 우리 아이가 6살인데, 그 애가 성인 될 때까지 안 하려고 한다. 사실 <춘몽> 이후로 와이프가 앞으로 연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걱정하는 것만큼 많은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얘기해 줬다. <춘몽> 당시 주인공을 감독 세 명(양익준, 박정범, 윤종빈)으로 한다기에 내가 망한다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장률 감독님이 괜찮다고 어차피 예술 영화 보는 사람들만 볼 거라고 하시더라. 결과야 뭐, 알다시피....망했지.

제작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일단 나 혼자 제작하는 게 아니라 한재덕 대표님이 계시고, 조감독 데뷔를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제작 쪽에 포부가 있다거나 하지 않고, 제작자 마인드도 아니다. 내 정체성은 감독이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난 직업 감독이니 영화란 직업이자 아주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고 싶은 일이다.

현재 실력 있는 감독으로 손꼽히는 당신인데, 스스로 만족도는.
잘하고 싶은데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예전에 꿈꿨던 영화와 비슷한 수준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더하다가 안 되면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평생 스트레스 받을 순 없으니 말이다.

차기작은.
몇 가지 중 고민하고 있다. 우연히 만난 어떤 분은 <범죄와의 전쟁>(2011)이 너무 좋았다고 비슷한 영화 만들어 달라고 하시고, 또 다른 분은 <비스티 보이즈>(2008) 같은 거 더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그런 류를 다시 한번 만들지 아예 완전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지 생각 중이다.

최근 인상적인 일이나 행복한 순간을 꼽는다면.
음, 칸에 가서 좋았다. 그간 노력에 작은 보상을 받는 듯했다. 그리고 이번 <공작>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이 좋게 평해줘서 기쁘다. 흔한 프랜차이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닌 나름 장인이 되고 싶은 내 마음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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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홍보사 앤드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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