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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처럼 밀려오는 이념을 은유하고 싶었다 <스윙키즈> 강형철 감독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배우들의 격동하는 탭 댄스에 정수라의 ‘환희’, 베니 굿맨 버전의 ‘Sing Sing Sing’이 어울려 흐른다. <스윙키즈>는 시청각을 사로잡는 춤과 음악의 흥겨움이 가득한 영화다. <과속스캔들>(2008)과 <써니>(2011)로 웃음과 감동을 섞은 음악 영화에 출중한 실력을 보여온 강형철 감독의 신작인 만큼, 관객의 기대치가 낮지 않은 작품이다.

의외의 대목이 있다면, 영화가 예상치 못한 속도와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6.25 전쟁 발발 이듬해의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스윙키즈>는 묵직하고 비극적인 드라마가 되어, 폭풍처럼 밀려드는 이념이라는 존재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주인공의 열정 가득한 춤판을 헤집는 듯한 이 흐름은 마치 “중간에 다른 영화가 한 편 더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인데, 강 감독은 그것이 그토록 급작스럽게 몰아치는 이념을 은유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였다고 고백한다.


탭 댄스를 무기로 한 흥겨운 작품 <스윙키즈>로 돌아왔다.
지인 소개로 ‘로기수’라는 뮤지컬을 알게 됐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였다. 어릴 때부터 남북한이 왜 서로 갈라져 지내는지 궁금했다. 3년 전쯤 <스윙키즈>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다시 한번 이념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듯하기도 했다.(웃음)

설명만 들으면 묵직하고 비극적인 드라마가 떠오르는데, 정작 춤과 음악이 가득한 영화다.
총이나 칼 대신 춤으로 싸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마치 미국 한 도시의 ‘핫’한 햄버거 가게 앞에서 춤 대결을 벌이는 피 끓는 청춘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좀 유치해 보여도, 그런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존 트라볼타와 그 친구들이 온갖 유치한 짓은 다 하고 돌아다니는 <그리스>(1978)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시절을 소환하고 싶었다.

수많은 장치 중 왜 탭 댄스를 영화의 주요 장치로 활용하게 됐는가.
일단 뮤지컬 원작이 탭 댄스를 다루고 있다. 물론 필요하다면 다른 장치로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탭 댄스는 시청각을 모두 만족시키며 관객의 심장을 때릴 수 있는 최고의 춤이다. 악기로 치면 드럼 같은 것이다.

브로드웨이 탭 댄서 자레드 그라임스가 합류했다. 극 중 ‘로기수’(도경수)와 친구들에게 탭 댄스를 가르쳐주는 미군 ‘잭슨’역을 맡아 수준급 춤 실력을 보여준다. 섭외 과정이 궁금하다.
에이전시를 통해 북미와 유럽 쪽 배우들의 오디션을 봤다. 그쪽 배우들은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매번 오디션을 거쳐 작품에 합류한다. 우리 쪽에서는 탭 댄스를 잘 추고 연기 실력도 받쳐주는 흑인 배우가 필요하다고 전했던 차였다. 자레드 그라임스와는 영상 통화와 이메일로 최초 의견을 주고받았고, 이후 그가 한국으로 왔다. 춤에 관해서는 날아다니는 배우더라. 안무 연습을 할 시간이 따로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무색할 만큼 단번에 극 중 동작을 소화해버렸다.

도경수, 박혜수 등 젊은 배우를 주인공으로 기용했다.
영화를 봤으니, 당신 역시 왜 그 배우들을 캐스팅했는지 알겠지.(웃음) (도)경수는 만나자마자 그 가능성을 알아봤다. 소년과 청년 사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로기수’라는 인물과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눈빛이 맑고 춤도 잘 춘다. 박혜수는 눈에 쌍꺼풀이 없다. 당시 시대에 어울리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외모에, 외국어 실력까지 갖췄다. 무엇보다 ‘양판래’라는 인물은 자기 삶을 책임져야만 하는 단단한 사람이다. 배우가 되기 위해 스스로 큰 노력을 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박혜수라는 멋진 사람과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인민 영웅 ‘로기수’, 생존형 통역사 ‘양판래’, 흑인 미군 ‘잭슨’, 아내를 찾아 헤매는 ‘강병삼’(오정세)까지 각자의 사연 모두를 고르게 다루는 편이다. 중공군 ‘샤오팡’(김민호)의 전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성장 과정에 좀 더 깊이 천착했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렇게 느꼈다면, n차 관람을 추천한다.(웃음) 특정 인물의 성장 과정에만 집중하려면 포로수용소라는 배경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인물을 한 카테고리에 담으려는 영화적 선택이었다. 유독 ‘샤오팡’이라는 인물만 비밀스러운 인물로 남겨놓은 건, 말 대신 마음으로 행동하면서 모든 사람을 뭉치게 하는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오팡’은 예컨대 ‘강병삼’이 댄스팀을 떠나가려 할 때, 턴테이블로 음악을 튼다.

선곡은 모두 직접 했는가.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Modern Love), 베니 굿맨 버전의 ‘씽씽씽’(Sing Sing Sing), 비틀즈의 ‘프리 애즈 어 버드’(Free As A Bird), 정수라의 ‘환희’까지 다채로운 곡이 등장한다.
영화적 배경과 일치하는 1950년대 음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음악 감독이 미리 준비해 온 내용을 바탕으로 몇천 곡의 음악을 듣고 직접 선택했다. 청춘만이 줄 수 있는 어설픔과 오글거림을 전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았다. 마이클 잭슨의 ‘비릿’(Beat It)을 넣을까 하다가, 비틀즈 곡까지 넣었는데 거기까지 넘보면 너무 염치가 없을 것 같아 자제했다.(웃음)

극 분위기가 명백하게 전환하는 순간이 온다. 이다윗이 연기한 ‘광국’역이 등장하면서부터 이념이 선두에 서는 시대적 비극이 도드라진다.
뻔한 영화를 찍고 싶지 않았다. 중간에 다른 영화가 한 편 더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실험적인 연출을 해봤다. 단순히 멋을 부리려던 건 아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광국’은 마치 폭풍처럼 이념을 끌고 들어온다. 서로 편을 가르고 사람을 죽게 만든다. 당시 사회를 살던 사람들에게 이념이라는 것은 아마 ‘광국’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것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의 등장을 통해 이념으로 급변하는 국면을 은유하고 싶었다.

초반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진다는 평가도 있는데.
영화의 배경은 전쟁 중의 포로수용소다. 그런 상황에서 즐거움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살얼음판 상황을 그리지 않을 거였다면 애초에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 중 하나는 ‘반전’(反戰)이기도 하다.

<과속스캔들> <써니>를 크게 흥행시켰다. <스윙키즈>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도 낮지 않은 상황이라고 본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웃음) 많이 받은 질문이긴 하다. 사실 나는 스코어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감독이다. (기자 주: <과속스캔들>은 820만 관객을, <써니>는 730만 관객을, <타짜-신의 손>은 401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렇다고 스코어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다. 굳이 심보 섞인 표현을 해 보자면, 지금까지는 잘 됐으니까 이제는 안 될 수도 있겠지 뭐.. 싶은 마음이랄까.(웃음)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 연출과 각본을 동시에 맡는 일의 장점은 무엇인가. 물론 단점도 있을 것이다.
단점은 체력 저하다. 진이 빠진다. 재능의 한계도 느낀다. 하지만 장점도 분명하다. 내가 찍고자 하는 장면을 모두 찍을 수 있다.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인물은 사실상 감독이나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한 면을 투영한다. 나에게서 나온 인물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상황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프로듀서와 함께했다. 작업 활동을 함께한 이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사는 편인가.(웃음)
그 프로듀서는 <스윙키즈>에서는 제작자 역을 맡았다. 물론 이번 작품에서 프로듀서와 조감독 역을 맡은 이들도 데뷔작부터 함께해온 믿을만한 이들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돈은 아니고…(웃음) 애걸복걸하고 생떼를 부리는 식으로 매달리는 편이다. 영화적 친구로서 마음이 잘 맞는 편안한 사이다. 그동안의 작업 결과물도 물론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실제로는 영화보다 맛집 이야기를 훨씬 많이 한다.

그런가.(웃음) 이번 작품으로 가장 크게 얻은 게 있다면.
10년째 영화를 하고 있다. 그동안 장편 4편을 찍었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서 배운 게 많다. 영화를 찍는 기술적인 면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떤 태도로 작품에 임해야 하겠다는 것들까지 배울 수 있었다.

예컨대.
조감독에게 짜증을 좀 덜 부려야겠다든가…(웃음) <스윙키즈> 작업을 하면서 내가 사람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게는 영화적 성공이나 사회적 성공보다 주변에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친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어린 아이들은 친구가 생기는게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은 일 아닌가. 어른이 됐어도 그 경험은 유효한 것 같다. 그들을 생각하면 체한 것처럼 맺혀있던 스트레스가 쭉 내려간다. 그럴 때 행복하다.(웃음)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인생은 신묘막측해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마 누군가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 아닐까 싶다. 물론, 언제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응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 (www.facebook.com/imovist)

사진 제공_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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