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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막연함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마약왕> 송강호
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 문주은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문주은 기자]
송강호는 어느새 우리 사회 소시민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택시운전사>에서는 비장한 사명감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고자 광주로의 목숨 건 여정을 떠난 ‘만섭’을, <변호인>에서는 돈만 밝히던 속물 변호사에서 사람을 위해 법과 상식에 호소하는 인물로 거듭나는 ‘우석’을 연기했다. 그런 그가 <마약왕>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인다. 그가 맡은 ‘이두삼’은 먹고 살기 위해 마약 세계에 발을 들였다가 결국엔 파멸하게 되는 인물이다.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모두 표현해야 함은 물론 후반부에는 독백만으로 극을 이끌어 가는 만큼, 아무리 송강호라고 해도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그는 “두렵고 막연했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답한다. 영화의 실험적인 결말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면 갈리는 대로 관객분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충무로 데뷔 23년 차 ‘국민 배우’ 송강호의 단단한 내공과 식지 않는 열정을 다시금 확인한다.

<택시운전사> 이후 1년여만이다. 완성본을 본 소감은.
전반부가 굉장히 경쾌하게 진행된다면 후반부는 긴장감이 상당하더라.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 달까. 끝나고 나니 기분 좋게 진이 빠진 느낌이었다.

‘이두삼’이란 인물의 흥망성쇠를 그리고 있는 작품인 만큼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요했을 거다. 소시민이었던 그가 부와 권력을 거머쥔 ‘마약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꽤 드라마틱하다. 변화 과정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을 극한으로 몰아가는데.
초반부터 하나하나 밟아가다 보니 조금씩 감이 잡혔다. 애초에 범죄 집단 자체가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지 않나. 물론 정상적인 과정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생존해 나가려 하다 보니 후반부의 감정도 자연스레 형성됐던 것 같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매질 당하는 순간이 변화의 결정적 순간인 듯싶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거꾸로 매달려 맞는다. 그만큼 촬영 당시 꽤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웃음) 하지만 이두삼의 증오심이나 이후의 행동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가 느끼는 공포심이 적나라하고 리얼하게 표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력층에 전화 한 통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게 되는 순간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관객이 심정적으로 공감하기는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그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이두삼’이란 인물도 처음부터 마약왕으로서의 야심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 거다.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하다 보니 마약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그 바닥이 한 번 수렁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곳이다 보니 파멸에 이른다.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이나 집착을 극대화해 보여준 인물이라고 보면 좋을 듯싶다.

그를 가장 잘 표현한 대사를 꼽는다면.
예고편 등에선 “이 나라는 내가 다 먹여 살렸다 아이가”란 대사로 주로 대표되는데 나는 오히려 영화 후반부 약에 취한 상태에서 부인한테 “내가 니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꼽고 싶다. 회한이겠지.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걸 그리워하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파멸의 중심부에 섰을 때 느끼는 좌절과 절망을 집약하는 대사인 것 같다.

약에 찌든 연기가 쉽지는 않았겠다.
참, 이게 실제 경험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보니 (웃음)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혼자서 연습과 연구를 많이 했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워낙 다 출중한 배우분들이다 보니 좋았다. 특히 조정석 씨나 배두나 씨 같은 경우는 이전에도 호흡을 맞춰봤기 때문에 마치 친형제, 친남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새롭게 만난 배우분들은 또 그분들대로 좋았고. 표현은 못 했지만 늘 정말 대단하다 느꼈다.

극 중 체중 변화도 있는 것 같은데.
초반 밀수꾼 시절은 젊을 때다 보니 좀 가벼운 느낌을 주기 위해 감량을 했다. 의상도 젊게 입었다. 후반부의 점점 피폐해지고 찌든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염도 기르고 살도 불렸다.

의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스타일리쉬한 옷들이 잘 어울리더라.
하하 고맙다.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런 옷이 어울릴까 걱정했는데 ‘이두삼’이란 역에 맞게 봐주시는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씬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낯설지만 강렬했다. 그래서 호불호도 갈릴 것 같다.
물론 기존 영화의 리듬과는 많이 다르다. 호흡이 길고 연극적인 느낌도 난다. 감독님이 용감하게 승부를 건 건데, 조금 낯설더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한 인물의 내면이 무너져 가는 경로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당 부분을 연기할 땐 어땠나. 이번 작품 하면서 외로웠다는 말을 했는데.
하하, 안 그래도 기자간담회 때 그렇게 말하고 난 뒤 감독님께 따로 전화까지 드렸다. 섭섭하게 생각하시지 말라고. (웃음)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이 작업 자체가 결국엔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다. 후반부 촬영은 특히 혼자만의 고독한 몸부림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랬겠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어려움이 아니었나. 캐스팅할 때 감독님이 뭐라고 하던가.
“당신이 이걸 어떻게 구현할지 저희로서는 궁금합니다.”라고 말했다. (웃음)

정말? 굉장히 외롭게 만드는 말 같은데.
맞다. 하지만 그런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앞부분이야 여러 배우와 호흡을 맞추지만, 후반부는 나 혼자서 이끌어 나가야 하니까. 그런데 내가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의 나의 것>을 세 번 거절한 뒤 네 번째 만에 하겠다고 직접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감독님이 마음을 바꾼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는데, 사실 거절했을 때와 이유는 같았다. 너무 막연하고 너무 두려워서 거절했지만, 막연하고 두려웠기 때문에 배우로서 한 번 도전 해보고 싶었던 거다. 이번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두려움과 막연함이 동력이라니. 그걸 어떻게 극복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궁금하다. (웃음) 그런데 말로 설명이 어렵다. 책에 공식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을 따른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니까. 반반인 것 같다. 대본을 읽고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서 얻어지는 이론적 측면이 있는가 하면, 현장에서 연기에 몰입할 때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감각이나 감정적 측면도 있다. ‘아 이런 상황과 감정에 처해있구나’하고 몸이 느껴 반응하는 거지.

역시 천재는 노력과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건가. (웃음) 그럼 개인적으로 느낀 <마약왕>만의 매력은 뭔가.
원래 작품을 선택할 때 전작에서 맡은 역할이나 이미지를 고려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거기에 맞는 작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참신한 관점을 담아낸 좋은 작품들을 선택하려다 보니 근래 십 년 동안은 좀 소시민적이면서도 정의를 갈구하는 인물을 많이 연기하게 됐다.

<마약왕>이 반가웠던 것은 하나의 작품에서 송강호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반부에는 <살인의 추억>과 <넘버3> 등 십여 년 전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유쾌한 모습이, 후반부에는 내가 여태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모습이 등장한다. 오래된 얼굴이 주는 반가움과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기쁨을 모두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겠나.
마약을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과 집착을 그리는 영화다. 한 인물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모두 다루고 있는 만큼 삶의 여러 단면을 보는 재미도 있다. 물론 후반부는 감정적으로 좀 세게 가긴 하지만, 한국영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호불호가 갈리면 갈리는 대로 관객분들이 영화에 대한 의견과 감상을 자유롭게 나누는 영화가 되면 좋겠다.

내년 계획은 어떤가.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백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기생충>과 세종대왕으로 분한 <나랏말싸미>가 잇달아 개봉한다. <마약왕>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오니 기대해 달라.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했던 순간은.
어제 무대 인사를 하며 조우진, 이희준 등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얼굴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니까 참 행복하더라.


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 문주은 기자(jooeun4@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_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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