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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라는 목표가 확실했기에.. 재밌었다! <돈> 박누리 감독
2019년 3월 25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 전공이 아니었지만, 영화가 하고 싶어 맨땅에 헤딩하듯 연출부 막내로 시작했다.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그리고 ㈜사나이픽쳐스가 제작한 작품 등 남성 중심의 장르영화에 참여해 현장부터 개봉까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지켜봤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화를 찍기까지 당연히 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기에 초조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았냐고? No! 감독이라는 목표가 확실했기에 촬영 현장을 지켜보며 (자신이라면) 어떻게 찍을지 상상하고 대입해본 덕분에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입봉작 <돈>으로 관객에게 첫인사를 하는 박누리 감독 이야기다.

여의도 증권가를 무대로 한 <돈>은 주식으로 장난쳐 부당 이익을 노리는 지능화된 ‘작전’을 그리지만, 박 감독이 주목한 부분은 주식도 작전도 아닌 주인공 초보브로커 ‘일현’의 성장이었다.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인물의 변모와 성장을 통해 서사를 풀어내고 싶다는 박 감독.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성장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해본다.


# <돈>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등의 연출부를 거쳐 이번 <돈>으로 데뷔했는데, 진심으로 축하한다. 의도한 바가 잘 표현됐나.
개인적으로 얼추 비슷하게 나온 것 같은데,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본다.

그간 남성 중심의 선 굵은 장르 영화에 참여했었고, <돈> 역시 장르성이 강한 범죄오락물로 ㈜ 사나이픽쳐스 제작인데, 데뷔작을 준비하며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혹은 작품의 주인으로 간택(?) 당한 것인지?(웃음)
아, 하! 어떤 의미의 질문인지 잘 알겠다. 내가 선택한 거다. 평소 범죄오락물을 좋아하지만, <돈>은 장르를 보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장르를 떠나서 사건보다 인물이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원작 소설을 보고 주인공 ‘조일현’(류준열) 캐릭터가 그냥 좋았다. 어딘가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범죄오락물의 틀 안에 성장드라마를 쓰고 싶었나 보다.
정답! 인물의 성장에 관심이 많다. <돈>에서 보면 첫 출근을 하던 ‘일현’의 희망찬 표정이 일련의 경험을 겪은 후 많이 변한다. 나쁜 방향이 아니라 ‘일현’ 스스로도 그를 보는 관객도 성장했다고 느낀다면, 일단 성공한 거다. (웃음)

여의도 증권가를 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빅쇼트>(2015)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와 유사성을 기대한 관객이 많을 것 같은데, 전문성과 들끓는 욕망이라는 점에서 다소 강도가 약해 보인다. 마치 뼈를 우린 진한 사골국이 아닌 고기로 끓인 맑은 곰탕처럼 가볍고 깔끔한 느낌이다.
그런가. 아마 증권가 그 자체보다 그 속에 있는 ‘일현’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주식에 대해 사전 지식 없는 이가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려고 했다.

극 중 삼각구도의 두 꼭짓점인 ‘조일현’(류준열)과 사냥개 ‘차지철’(조우진)은 각각 돈을 버는 것과 금융범죄자를 잡는 것이라는 목표점이 뚜렷하다. 하지만 작전설계자인 ‘번호표’(유지태)의 목적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뭘까. 돈일까 아니면 설계하는 행위 그 자체일까.
사실 번호표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 그 규모에 대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의 동력에 대해 배우와 많이 얘기했었다. 그는 무엇에 움직일 것이며 그의 재산은 얼마일까 등등에 대해 말이다. 그 결과 우리가 내린 결론이 있다.

결론은.
현재 가진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중요한 건 그가 언제든지 원하는 돈을 만들 수 있는 인물이란 거다. 즉 돈 자체보다 설계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한마디로 그에게 작전 설계는 게임이자 놀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극 중 번호표가 ‘재미있잖아!’라는 대사를 하는데, 유지태 선배와 이야기하다 나온 대사다. 즉 그는 자신이 짠 판위에서 사람들이 노는 것을 보며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 한마디로 돈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돈> 스틸컷
<돈> 스틸컷

일각에선 ‘일현’의 입사 동기이자 금수저 친구 ‘전우성’(김재영)과 선배이자 애인 인 ‘박시은’(원진아) 캐릭터가 후반부 소멸(?) 된다는 지적도 있다.
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현’을 중심에 놓고 그와 반대편의 양 끝에 사냥개와 번호표, 즉 삼각 구도와 간격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다음 ‘일현’의 주변 중요 인물이 ‘전우성’과 ‘박시은’이다. ‘전우성’은 후반부 ‘일현’의 선택에 크게 일조하는, 처음부터 동료이자 친구이고 끝까지 ‘일현’을 놓지 않는 인물이다. ‘박시은’의 경우 ‘일현’에게 자극을 주고 한편으론 선배로서 롤모델이 되기도 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분량이 적을지 모르나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적당한 시기에 퇴장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결말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요즘 말로 사이다도 고구마도 아닌 듯한 인상이다. ‘일현’의 후사는 어떨 것 같은가.
말했듯 ‘일현’은 잘 살고 싶고 돈을 많이 벌길 원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데, 장르적 쾌감을 더하고자 억지로 통쾌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 그가 지닌 기본 속성을 헤치고 싶지 않았다. ‘일현’의 후사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딘가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그가 증권가를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웃음) 또 뭘 하더라도 원체 열심히 하는 친구이니 여의도에서 겪은 일을 교훈 삼아 더 맹렬히 땀 흘리지 않을까 한다.

<돈>이 지닌 여타 범죄오락물과 차별화 점이라면. 혹은 관람 포인트는.
평범한 주인공과 공감하고 이후 공감대를 지닌 인물이 위기에 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 그 부분이 매력적인 지점이 아닐까 한다.
 <돈> 스틸컷
<돈> 스틸컷

장현도 작가의 소설 ‘돈’이 원작으로 평범한 주인공에 끌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외 느낀 점이 있다면.
소설을 읽고 ‘일현’을 만나기 전까지 미처 몰랐던 부분을 깨달은 게 내가 일정 부분 돈의 노예라는 것이다. 월세와 생활비 등등 걱정하며 풍족하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돈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고 돈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

직접 각색했는데, 취사선택한 부분은.
소설의 경우 작가가 직접 현직에 몸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데다 활자로 표현했기에 주식과 작전에 대한 설명이 아주 상세했다. 이를 영화로 모두 표현할 수 없기에, 주식과 작전을 인물들이 대립하게 되는 도구로 단순하게 활용하고자 했다. 주인공 ‘일현’(류준열)과 작전 설계자 ‘번호표’(류준열) 그리고 그들을 쫓는 사냥개(조우진), 삼각 구도를 집중적으로 차용했다. 때문에 곁가지처럼 느껴질 수 있는 주식과 그들이 펼치는 작전 거래에 관한 설명은 될 수 있는 한 배제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주식과 작전 관련 해설 자막이 따로 없었군! 영화 보는 내내 궁금했었는데 이제 그 의문이 풀렸다. (웃음)
그게 궁금했었나? (웃음) 주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주인공이 뭔가 이상한 거래를 하네, 돈을 벌었네 위험하네 등등 쉽게 분위기만 봐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끔 했다. 그래서 따로 자막은…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은.
극 중 몇 차례 나오는 작전 그 자체보다 작전을 거치며 느끼게 되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그리고자 했다. 영화적 리듬감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현’은 초보 주식브로커라 일 처리가 능숙하지 않는데, 그가 업무 처리하면서 맛보는 낭패감 등 감정과 경험을 관객이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연출에 신경을 썼다.


# 박누리

만약 당신에게 ‘조일현’과 같은 기회가 온다면? 즉 위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는 어떤 제안을 받는다면.
음…떨치기 힘들겠지만, 내가 겁이 많고 게다가 의심도 많아서 감당 못했을 것 같다. 사실 소설을 읽고 자문해 봤었다. 평소라면 No라고 말하겠지만 만약 사고나 병 등등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거절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평소에 주식을 하는지? <돈>을 준비하면서 주식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전혀 관심 없다가 영화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증권사 가서 계좌 만들고 책 보고 매도 매수를 따라 했었다. 이 정도면 실패해서 날려도 될 법한 쌈짓돈으로 시작했는데 수익 내는 게 목적이 아니고 자료 조사차 한 거였는데도 틈틈이 자꾸 보고 집착하게 되더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초반엔 좀 벌었었다. 이익금 얼마 이런 것보다 숫자가 올라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숫자에 끌려가게 되는 거다. 또 이익을 봤더라도 그 돈이 내 손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자꾸 사람들 만나서 내가 쏘고, 그러다 보면 며칠 후에 주식이 떨어져 돈은 사라져 있고… 진짜 허무하더라. 몸소 느끼고 나니 주식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 후 바로 접었다. 아마 앞으로 돈이 생겨도 안 할 것 같다. 내게 주식에 적합한 기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길이 아니다.(웃음) 당시 산 주식은 떨어진 채로 기념 혹은 작은 희망? 으로 현재 보유 중이다.

영화계 입문은 어떻게?
영화 전공이 아님에도 영화가 하고 싶었다. 동아리에서 단편 영화 만드는 등 마치 맨땅에 헤딩하듯이 문을 두드렸었다. 연출부 구한다는 모집공고를 보고 현장에 지원해 연출부 막내로 시작했다. 감독이 되고 싶었거든.

‘막내’가 참 쉽지 않은 위치다. 또 입봉하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현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확실했기에 촬영장에서 나라면 어떨까 한 컷 한 컷 상상하다 보니 힘든 것도 몰랐었다. 또 시간이 걸릴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기에 문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여러 감독을 옆에서 지켜봤을 텐데, 혹시 공통된 성공 인자가 있던가. (있다면) 당신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어려운 질문을! 확실한 것은 굉장히 뛰어난 분들이라는 거다. 단지 너무 뛰어나서 그냥 바라볼 뿐이다.

감독으로서 당신의 장점을 꼽는다면.
알다시피 이제 한편을 찍었을 뿐이라…감독으로서는 모르겠다. 다만 영화 현장 경험을 통틀어 생각한다면 끈기인 것 같다. 일단 연출부로 들어간 작품의 경우 시작부터 개봉까지 끝까지 함께했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차기작 계획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개봉한 후 <돈>에서 좀 헤어나야 다음 작품 계획에 집중할 수 있을 듯하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장르와 서사는 다르겠지만,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첨밀밀>(1996)<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등 극 중 인물이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성장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돈>에서 ‘일현’의 성장 이야기를 그렸지만,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최근 행복한 일이 있다면.
<돈>이 잘 돼서 주변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돈> 공개 후 고생했다는 격려도 받고 이런저런 평을 들었는데 개중에 공감했다는 평도 있었다. 공감했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살짝 좋더라. (웃음)


2019년 3월 25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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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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