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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게임에서 오는 다이내믹함, 그게 매력 <리틀 드러머 걸> 박찬욱 감독
2019년 4월 8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국내 관객 420만 명 동원과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관객과 평단 모두 만족시켰던 <아가씨>(2016) 이후 박찬욱 감독의 선택은 BBC 방송 6부작 드라마였다.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틀 드러머 걸>은 70년대 팔레스타인 대 이스라엘의 테러 첩보 작전 한복판에 휘말려 들어간 여배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파이 스릴러물이다. <레이디 맥베스>로 인지도를 높인 신인 배우 플로렌스 퓨와 알렉산더 스타스가드 그리고 마이클 섀년 등 유명 배우들이 함께했다.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 방송에 이어 감독판으로 왓챠플레이를 통해 한국 관객을 찾은 <리틀 드러머 걸>, 총격 액션 없어도 감정적 다이내믹함이 충분하다는 박찬욱 감독을 만나 드라마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왓챠플레이 공개에 앞서 <리틀 드러머 걸> 시리즈 전편(6편)의 관객 대상 공개 시사가 진행됐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비록 소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했지만, 아주 중요하고 희귀한 경험이었다. 시리즈 전체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나로서도 처음이었는데, 작업이 끝났다는 실감이 비로소 들더라. 드라마였지만,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요즘에는 가정에서도 큰 스크린으로 시청이 가능하기에 작은 화면 구도를 취하지 않았으니 극장에서 최고로 좋은 상태로 볼 수 있었을 거다.

기존 영화와 제작 과정에 차이점이 있는지.
영화의 경우 후반 작업을 마치고 기술시사 이후 언론시사를 거쳐 개봉까지 한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마무리가 된다. <리틀 드러머 걸>의 경우 방송판을 작업해 납품(?)한 후 일단락 짓고, 바로 감독판에 착수해 크리스마스 휴가 시작 바로 전날까지 수정을 거쳐 마무리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볼 기회가 없었는데 모두 마친 후 귀국해 다른 작업을 하다 보니 아주 새롭다.

드라마가 지닌 장단점이 있다면.
장점은 명확하다. 분량 문제로 아쉽게 잘라낸 부분이 없다는 거다. 원작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정해 각색에 들어갔는데 막상 하다 보면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가령, <박쥐>의 원작이었던 '테레즈 라깽'의 경우 정말 좋아했던 점을 반영하지 못했었다. 또 촬영 후 편집하면서 조금씩 잘라내게 되는데 통상 조연들의 장면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그런 점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물론 극장에서 못 본다는 단점도 있다.(웃음)

영국 공영 방송인 BBC와의 협업이 이례적이다. 그 시작과 과정이 궁금하다.
원작자인 '존 르 카레'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그 프로덕션과 접촉을 한 것이고, 당시 이미 BBC 방송이 확정된 상태였다. BBC와 프로덕션이 손잡고 제작한 6부작 미니시리즈 <나이트 매니저>(2016)가 성공을 거둔 전적이 있기에 이번 <리틀 드러머 걸> 역시 같은 포맷으로 가기로 한 거지.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사실 BBC 예산이 좀 짠 편이다. 아, TV 드라마치곤 짠 게 아니라 합리적인 건가...(웃음) 총 450억 원 정도였다. 처음엔 더 적었는데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좀 커졌다. 현대가 배경인 <나이트 매니저>보다 <리틀 드러머 걸>이 70년 대 배경과 스토리 면에서 돈이 더 많이 들겠다고 판단한 거지.

완성작을 본 BBC 반응은 어땠나.
좋아했다.

한국의 경우 왓챠플레이를 통해 공개가 결정됐는데, 일부에선 스트리밍 서비스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거부감은 없는지?
당연히 오픈돼 있다. 사실 공영 방송인 BBC는 괜찮은데 미국 AMC는 공영 방송이 아니라서 중간에 광고가 많이 삽입된다. 솔직히 감독 입장에서는 '뭐지?' 이런 생각이 들거든.

요새 스트리밍 서비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정체성에 대해 논쟁이 뜨거웠다.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창작자나 영화제 측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거나 바람직하냐 그렇지 않냐를 따질 거리가 아니다. 단지 대세이고 현실일 뿐이다. 마치 한국에 산이 많고 사계절이 뚜렷하니 그 자연환경에 맞춰 사는 것과 같다고 할까. 단지 감독 입장에서 극장 공개를 못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극장용이 아닌 플랫폼의 경우 정말 그 방법이 아니면 안 된다 싶을 때의 마지막 선택으로 남겨두고, 가능한 한 극장용을 만들고 싶다.
 <리틀 드러머 걸> 스틸컷
<리틀 드러머 걸> 스틸컷

'매우' 슬플 정도로 극장 상영이 지닌 매력은 뭘까. 대략 유추되지만 말이다. (웃음)
무엇보다 오롯이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 나만 해도 극장 외 다른 경로로 영화를 보는 경우 자꾸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또 몇 달 동안 미묘한 컬러의 차이와 미세한 소리까지 좀 과장하자면 목숨 걸고 뽑아냈는데, 영상과 사운드 면에서 규격을 갖춘 극장 스크린과 TV와 스마트폰 관람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니 극장 상영을 못한다는 건 정말 허망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위로 삼는 건 가끔 TV나 아이패드로 (내 것 아닌) 타 영화를 보는데 좋은 작품은 어떻게 봐도 좋더라. 역설적이지만, 작은 화면용 영화이기에 대충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극장에서처럼 강제할 수 없으니 집중을 끌어올리려면 말이다.

<박쥐>(2009), <아가씨>(2016) 등 여성을 중심으로 내세운 영화가 많았다. 이번 <리틀 드러머 걸> 역시 마찬가지다.
꼭 여성 중심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아가씨> 사이사이 준비했다가 미뤄진 것이 있는데 그것들은 남성 중심 영화였지만... 다른 감독에 비하면 여성주의에 강하게 끌리는 건 사실인 듯하다.

주인공 '찰리'역이 매우 중요한데, 신인 플로렌스 퓨가 맡았다. 국내에는 최근작 <레이디 맥베스>(2016, 연출 윌리엄 올드로이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레이디 맥베스>를 보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윌리엄 감독을 만날 정도였고, 영화에 이견이 있을지라도 '플로렌스 퓨'의 연기에 대해선 모두 칭찬할 거다. 나이가 어림에도 표정은 성숙하고 젊은 배우가 지니기 힘든 묵직한 분위기를 지녔다. 아주 독보적이다. 아, 그리고 극 중 '찰리'가 버나드 쇼의 연극을 공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연극 시퀀스는 윌리엄 감독이 연출했다.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소설이 원작으로 70년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반목과 스파이 활동을 주 내용으로 한다. 요새 흐름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느리면서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신을 사로잡은 부분은? (웃음)
바로 그 점이 르 카레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첩보 이야기지만 액션이나 총질이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해도 통쾌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 <리틀 드러머 걸>도 마찬가지로 그 템포를 가져가야 했기에 다른 부분에서 긴장과 서스펜스를 만들려고 치중했다. 총싸움과 스릴 넘치는 추격전 대신 감정의 소용돌이와 마치 심리적 게임 같은 관계에서 오는 다이내믹함을 끌어내고자 했다.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

심리적 게임?
극 중 인물들이 다 같이 속고 속이고, 속이다 스스로 속게 돼 감정의 혼란을 느끼는 지경에 이른다. 가령 '찰리'(플로렌스 퓨)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사랑해서 첩보 활동에 끼어들지만, '베커'는 '찰리'에게 하나의 픽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자신을 '미셀'이라고 상상하라고 요구하고 '미셀'이 되어 그녀를 대한다. 그러다 보니 '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베커'인지 '미셀'인지 헷갈리고, '베커'역시 '찰리'에게 실제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인 양 행동하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점이 어떤 액션보다 역동적이고 스릴 있는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찰리'는 한 사람이지만, 두 사람 '베커'와 '미셀'을 상대하는 셈인데 인물 간 차별화를 위한 영화적 장치가 있다면.
텍스트보다 TV 혹은 영화가 우월한 부분이 아마도 시각적인 요소일 거다. 복장과 말투 그리고 태도를 달리 갔다. 특히 이번 한국 버전은 자막으로 구분을 했는데 그가 '베커'일 때는 존댓말을 '미셀'일 때는 반말을 사용한다. 소설보다 훨씬 더 감각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한다.

원작을 재해석해 배경을 한국으로 하든가 혹은 시기를 현재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박쥐>와 같이 시간적 공간적 무대를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즉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국의 개입과 간섭 그리고 지원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라 그 무대와 배경이 중요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리 역시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 끼어 고통당한 역사가 있기에 비교하며 볼 수 있으리라 본다.

감독판과 방송판에 차이점이 많다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하도 많아서 몇 개를 꼽기 힘든데, 대표적인 게 1화의 오프닝이다. 감독판은 폭탄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방송판에는 없는 장면이다. 또, '쿠르츠'(마이클 섀넌)가 '칼릴' 형제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이 그 네 형제 중 두 명을 어떻게 제거했는지 밝히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인데 방송판에는 없다. 6화에서 극 중 '찰리'가 가지고 다니는 시계라디오의 배터리를 빼는 장면의 경우 감독판은 회상으로, 방송판은 현재 시점으로 보여주는데 아주 결정적인 차이다. 흥미롭고 특이한 롱샷 롱테이크 역시 매회 시간 상 잘라야 했었고...뼈 아팠다. (웃음)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

70년대 유럽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로케이션에 공들인 모습이더라.
그 시대가 우리에겐 생소해도 유럽인 입장에선 실제 지나온 시간이기에 이질감이 느껴지면 안됐다. 미술감독을 맡은 친구가 부모님이 체코와 구 유고 출신으로 중서부 유럽을 잘 아는 친구인데다 여행 경험이 풍부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 고증에 충실한 것은 물론 캐릭터와 소품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가령 '찰리'는 활력 충만하고 용기 있는 배우이기에 그에 걸맞게 패턴 없는 비비드한 색상의 의상을 주로 활용했다. 또 전화기와 램프 등도 아주 대담한 색을 취하고 있다. 당시가 지금보다 디자인적으로 훨씬 우월하게 아름답던 시기다. 자동차만 봐도 그렇고 단순한 소품이지만 마치 예술품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 요소가 드라마에 생동감을 부여했다고 본다. 반대로 건축물은 콘크리트 위주로 삭막하고 황량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박찬욱'하면 미장센이라는 말이 이번 <리틀 드러머 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더라. 화면 구성과 영상미가 뛰어나던데 비결이 무언가. (웃음)
음.. 좋은 미술감독과 촬영감독을 선발하는 것? 이후 그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를 끌어올리고 북돋아 주면서도 한편으론 마음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 것 같다. (웃음)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그들이 큰 그림 안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거든. 디테일하게 들어가면서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화하는데 그 작업이 참 즐겁고 재미있다.

이번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을 꼽는다면.
좀 전에 잠시 말했듯 1화에서 '쿠르츠'(마이클 섀넌)가 테러리스트인 '칼릴'과 얽힌 과거사를 말하는 부분이다. 네 형제 중 일부를 어떻게 제거했는지 꽤 길게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아주 끔찍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직업인의 세계를 말한다고 할까. 평범한 업무처럼 말이다. 그런 세계에 몸 담다 보면 사람 죽이는 일에도 무감각해지지 않을까. 그런 디테일한 표현이 좋았다. 작지만, 유독 좋아하는 지점이다.

뜬금없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일단 직업이라는 생각이다. 직업인으로서 직업적으로 즉 프로로서 제대로 하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허세와 자의식 과잉에 빠지지 않고 주어진 일을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작품을 만들고 싶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좋아한다.

영화감독을 희망하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음.. '영화의 미래가 불투명하니 배를 옮겨 타라!' 는 농담이고, 감독이 된다는 게 실력은 물론 운도 필요하고 매우 힘든 길이다. 간혹 출퇴근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어떤 일이 힘들지 않겠냐마는 그래도 퇴근하면 잠시 일을 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젊을 때는 영화 찍는 재미에 잘 못 느끼는데 나이들 수록 머리를 싹 비울 수 없으니 힘들다. 선뜻 이 길을 권하긴 힘들지만, 꼭 갈 생각이라면 비울 수 있는 능력? 혹은 기술을 잘 습득하길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근래 원안 있는 작업을 주로 했는데 오리지널 각본으로 작업할 계획은.
준비 중인 작품이 몇 개 있다. 일단 로맨스가 가미된 수사물을 먼저 선보이지 않을까 한다.


2019년 4월 8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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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주)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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