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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의 예술, 배우는 그 위에 피는 꽃 <비스트> 이성민
2019년 7월 9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무언가를 하지 말자 혹은 하기 싫다는 어떤 규정을 짓지 않고 물 흐르듯이 살아왔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시나리오가 미흡해도 감독에 믿음이 있다면 반대로 완전 신인 감독이라도 시나리오가 좋다면 기꺼이 함께했다. 그렇게 달려온 결과 이성민 앞에는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감사하고 고맙지만, 한편으론 캐릭터를 결정하는 데 신중해졌다는 이성민. 이번 <비스트>에선 형사와 범죄자의 경계에 선 인물 ‘한수’로 이정호 감독과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다. 무엇보다 감독에게 믿음이 컸다는 그. 평소 지론대로 감독이 가꾼 정원 안에 어둡고 깊은 꽃을 피웠다.

극 중에서 참 지친 형사의 모습이었는데 (인터뷰하는) 지금도 많이 피곤해 보인다. (웃음) 촬영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는지.
그런가. 오늘은 어제 행사 때문에 피곤해 보이나 보다. 촬영하면서 잠은 잘 잤는데 당시 감기가 유행해 감기약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영화가 무겁고 침전되는 게 있어 촬영 끝나고 숙소까지 일부러 걸어 다니곤 했었다. 연기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비워내려고 말이다. 촬영 직후 아내가 건강 검진하자고 했는데 바로 가면 어디든 재검사가 걸려도 걸릴 것 같아 좀 기다려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영화 개봉 때마다 매번 생각과 감정이 다를 것 같다. 이번엔 어떤가.
늘 비슷하다. 일단 개봉 전에 하는 인터뷰라 영화에 대한 반응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니 긴장되고 어떻게 홍보하고 알릴지에 집중한다. 영화가 완성도 있게 잘 나오면 아무래도 자신감이 붙고 생각보다 별로이면 더 겁이 나고 그런다. <비스트>는 촬영 때 느낌보다 잘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관객이 어떻게 볼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비스트>의 강점과 약점은.
전작인 <목격자>(2017)가 일상에서 벌어지는 스릴이었다면 이번 <비스트>는 관계에서 오는 서스펜스가 주가 된다. 강점이라기보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연기한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웃기지만, 연기 보는 맛이 있지 않을까. 이정호 감독이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특이한 재주가 있다. 데뷔작 <베스트셀러>(2010)부터 그랬다. 지금 쟁쟁한 연기자로 성장한 당시 참여했던 조연급 신인이 여럿 있다. 또, 스릴러가 여름에 어울리는 장르이고 특유의 쫀쫀함을 즐긴다면 볼만할 것 같다.

약점은 스토리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거? 처음보다 인물 간의 전사와 스토리를 많이 거둬냈는데, ‘한수’(이성민)와 ‘민태’(유재명) 두 인물의 심리와 감정을 따라 집중한다면 충분히 납득하리라 본다.

‘한수’(이성민)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사회에 범죄가 없어야 한다는 이상을 지닌, 흉악범을 제거할 수 있다면 적당히 타협하고 (범죄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인데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현실에 지칠 대로 지친 형사다. 그가 애용하는 주요 수사 방법의 하나가 정보원의 활용인데 극 중 오마담과 ‘춘배’(전혜진) 등이 그들이다. 어느 정도 선을 그은 채 적절히 조절하며 이용하는 거지. 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와 주변인과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인물 간의 관계와 전사를 소개한다면.
‘춘배’의 경우, 아주 어릴 때부터 정보원 노릇을 한 친구로 ‘한수’가 충분히 커버 치지 못해 감옥에 가게 됐다. 때문에 그의 무리한 요구를 대체로 들어주는 상황이다. 오마담은 서로 솔직하게 충고를 나눌 수 있는 오랜 동료 같은 사이로 그녀가 운영하는 레드 바는 ‘한수’가 잠시 쉴 수 있는 휴식처 같은 공간이다. 라이벌 형사인 ‘민태’(유재명)는 과거에 파트너였지만,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틀어지고 서로 경원시하게 된다.

<비스트>는 웃음기 싹 거둔, 요즘 보기 드문 형사물이다. 비스트화 돼 가는 형사 ‘한수’는 배우로서 욕심나는 캐릭터였을 것 같다.
이 정도일지 몰랐다. 처음 시나리오 볼 때 관계와 사건이 물리고 얽히고설켜 너무 복잡해서 어이없기도 했었다. 아직 출연 결정하기 전이었는데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 건가 싶더라. 감독님께 <아수라 2> 같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정호 감독 특유의 언어와 문체가 있는데 그게 여실히 느껴져 좋았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나온 지금 버전을 보니 사건을 따라가면 괜찮겠다 싶었다. 막상 들어가니 인물의 스트레이트 한 감정을 보여주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 감독님께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비스트> 스틸컷
<비스트> 스틸컷

힘들었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연기 호평과 각종 상을 휩쓴 <공작>(2018)에서 ‘리명운’의 감정 연기 역시 어려웠다고 했었다.
감정 연기라도 톤과 결이 다르다. <공작>은 절제된 냉정한 연기라면 이번엔 불도저처럼 뿜어내야 했기에 에너지 소비가 더 컸다. 또 ‘한수’가 원체 여러 감정을 표출하기에 하나만 가닥 잡고 집중해 몸을 던져야 했었다.

<공작> 이후 ‘연기 잘하는’ 수식어가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부담감은.
좋고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캐릭터를 고르는데 신중하게 된다. 영화는 누가 뭐래도 감독의 예술이고 배우는 그 위에 꽃 피는 존재다. 스토리가 좋고 캐릭터가 멋져야 배우가 빛나지, 캐릭터 자체가 보여줄 게 없으면 아무리 배우가 연기 잘해도 빛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작>은 선물 같은 영화였다.

상대역인 유재명, 전혜진 배우 등 내공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촬영하면서 배우 간에 기싸움?도 있다던데..이번 현장은 짱짱했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이나 정서가 워낙 딥해서 쉴 때 웃고 떠들면서도 긴장감이 흘렀다. 아무래도 유쾌하게 있다가 갑자기 몰입하기 쉽지 않으니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상태에서도 감정을 이어가야 했었다.

현장에서 의견이 다른 경우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편인가. 이번엔 어땠는지.
흠..생각보다 수위가 높은 것을 요구했었다. (웃음) 그래도 대체로 감독님의 의견을 따라가는 편이다. 등급을 고려해 편집했겠지만, 등급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가벼운 질문 하자면, 격렬하게 치고받는 장면의 경우 촬영 끝난 후 감정 정리?를 어떻게 하는지.
아무리 연기지만, 때리는 건 긴장된다. 특히 ‘춘배’(전혜진)는 가뜩이나 연약한 데다 평소 김치를 공유할 정도로 친한 가족 같은 사이니 더 그랬다. 매번 마음 졸여 찍고 끝나면 안아주며 꼭 한의원 가라고 당부했었다. 나뿐 아니라 다들 한의원 갔다더라. (웃음) 또 살인마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있는데 앵글이 타이트하게 들어와서 실제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께 너무 죄송하다.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싸우는 장면이 많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하는 게 자칫 흥분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겨울에 액션 신 촬영이 위험한데 다행히 큰 부상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비스트> 스틸컷
<비스트> 스틸컷

상대역인 유재명 배우와 첫 격돌인데, 호흡은.
<마약왕>(2017) 때 비리 저지른 형사로 포승줄 묶여 나가는 장면에서 잠시 부딪혔었다. 첫 만남이었는데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유재명) 역시 부산 출신에 연극 무대 활동 등 나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이번에 처음으로 길게 작업했는데 굉장히 섬세한 연기를 하는 친구로 서로 빌드 업시켰던 것 같다. 대기 중에도 캐릭터에 몰입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촬영 장소는 어딘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주로 인천에서 촬영했다. 뻘과 벌판이 많은 곳이 필요했거든. 실종 여고생의 시체 찾는 장면 촬영할 때 발이 뻘에 빠져 고생했었다. 또 영화에 안개가 자주, 짙게 등장하는데 안개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마지막 엔딩 시퀀스 촬영에서는 좁은 상가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데 먼지가 장난 아니었다. 안개, 먼지, 추위 3박자 골고루 갖췄던 거지.

특별히 기억나는 건.. 보통 촬영 시작하며 고사를 지내는데 <비스트>는 출정식을 했었다. 당시 영화의 톤앤 매너를 미리 보여줬었는데, 거의 그대로 영화에 구현됐더라. 미술팀과 촬영팀 덕분인데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보안관>(2016)으로 인터뷰할 당시 메인 재료로서 시험 무대라는 표현을 했었다. 지난 2~3년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주연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주· 조연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 인상이다. 역할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는 내려놓는다고 표현을 하기도 하던데 당신도 뭔가를 내려놓은 경험이 있나.
글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고 살면서 특별한 기준을 두고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안 한다거나 혹은 싫다거나 그런 규칙을 안 만들었다. 그러면 스스로 옮아 맬 거 같았거든. 흘러가는 대로 살되 나쁜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자, 그리고 규칙을 지키고 선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역할의 크기도 마찬가지인 게 내가 큰 역만 고수했다면 지난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나. 영화가 어설프고 마음에 안 들어도 감독에게 믿음이 있으면 하고, 반대로 완전히 신인 감독이라도 시나리오가 좋으면 참여하는 거다.

순리대로라.. 무명 시절을 견디게 해준 동력인가 보다. 요즘 극단 차이무 출신 동료들이 잘된 모습을 보면 뿌듯하겠다.
신기하다. 지금 (박) 해준이랑 같이 작업 중인데, 잘 된 모습에 안도감이 든다. 또 슬슬 부각 중인 송재룡, 이중옥 등도 같은 차이무 출신이다. 그 친구들도 점점 얼굴 비추고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직 자리 못 잡은 후배들도 어떻게든 기회가 돼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 후배 챙기는 모습 보니 <보안관> 인터뷰 당시 예능 출연이고 인터뷰고 배정남 배우를 밀어주기로 했다던 게 기억난다! 덕분인지 요즘 한창 잘 나가고 있다.
(배) 정남이야 <보안관>이 만든 스타 아닌가!(웃음) 그렇잖아도 모 예능에서 우리 불렀다가 구박 좀 당했다. 누나들은 해외여행 시켜주고 우린 서해안으로 엠티 데리고 가냐고 말이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로봇, 소리>(2015)의 로봇에 이어 개와 호흡을 맞춘 <미스터 주>(연출 김태윤)는 지금 CG 작업 중이다. 아마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라고 느낄 거다. 앞으론 식물과 이야기하는 게 남지 않았나 싶다. <남산의 부장들>(연출 우민호) 역시 후반 작업 중이다. 현재 촬영 중인 오컬트 장르인 <8일의 밤>(연출 김태형)은 3분의 1 정도 남았고, 극 중 전직 스님을 연기하다.

마지막 질문! 최근 관심사는 무언가.
관심사라기보다 신경 쓰는 건 건강이다. 주변 형과 동생들이 아프다는 얘기가 하나둘 들리니 남 얘기 같지 않다. 40대까진 특별히 아픈 데 없고 건강하다 싶었는데 50세를 넘어가니 슬슬 신호도 오고, 원래 운동을 잘 안 했었는데 이젠 좀 해야겠더라. 희한한 게 샷 들어가면 안 아픈데 컷 하면 무릎이고 어디고 아프기 시작하더라.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리 잘해 오래 일하려 한다. (웃음) 또 웬만하면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하고!


2019년 7월 9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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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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