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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인정받게 해준 영화 <아워 바디> 최희서
2019년 9월 28일 토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준익 감독의 <박열>(2017)에서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12개의 상을 거머쥔 최희서는 배우 경력에 화려한 수를 놓았다. 그런데 정작 감동의 눈물을 쏙 뺀 건 <박열>의 다음 작품인 <아워 바디>로 받은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이었다고 고백한다. 유명 감독의 명성을 떼어 놓고 작업한 결과물로도 인정받았다는 안도의 마음이었을까. 수많은 상 앞에서도 담대하던 그가 통곡에 가까운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에 매니저마저 의아해 했다는 말을 전하는 끝에, 그가 멋쩍게 웃는다.

<아워 바디>가 최희서에게 각별한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박열>로 이름을 알리기 전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찾아가 직접 자기 프로필을 돌렸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에 짧게 출연한 뒤 일거리가 없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기회가 필요한 때였다. 그때 그의 프로필을 받아 들고 소중하게 보관한 사람이 <아워 바디>의 한가람 감독이다. 이 인터뷰에서는 최희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섭외를 성사시킨 한가람 감독과의 대화도 살며시 곁들인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열>의 차기작으로 <아워 바디>를 택했다. 작품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최희서(이하 ‘최’): <옥자>(2017) 촬영을 끝낸 당시 차기작이 없는 상황이었다. (기자 주: 최희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통역사’역으로 잠시 출연했다.) 내 프로필 열 부를 들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찾아갔다. 그중 하나를 당시 재학생이던 한가람 감독님이 보셨다.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장편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한가람 감독(이하 ‘한’): 전화를 걸었는데 본인이 직접 받아서 좀 놀랐다. 사실 전화를 걸 자신이 없었다. 내가 장편 영화를 찍으려고 할 때는 이미 그가 <박열>로 성공한 뒤였기 때문이다. 4~5개월을 고민만 했다. 동기들은 당연히 코웃음 쳤다. 연락을 해도 캐스팅은 안 될 거라고.(웃음) 후회를 남기기는 싫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본인과 바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최: 매니저가 자주 바뀌던 때라 프로필에 내 번호를 써놨다. 감독님이 내 목소리를 듣고 “어? 배우님 번호인가요?” 물었던 기억이 난다.(웃음)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12관왕에 올랐다. 이후 여러 작품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을 텐데.

최: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지 않고도 출연 제안을 받기 시작한 시기였다. 여러 시나리오를 받았지만, 가장 끌린 건 <아워 바디>였다. 일 년 반 전 내가 두고 온 프로필을 보고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줬다는 사실이 큰 의미로 작용했다. 운명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아워 바디>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게 됐을 때는 (통곡을 할 정도로) 크게 울었다. 매니저가 이상하게 쳐다보더라. 이미 그 해에 <박열>로 열 몇 개의 상을 받아놓고, 왜 이제 와서…(웃음)


그만큼 <아워 바디>에 남다른 감정을 느꼈다는 뜻이겠다.

최: 처음 맡은 단독 주연이다 보니 고생도 했고 그만큼 애정도 컸다. <아워 바디>에서 연기한 ‘자영’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20대를 공무원 준비에 다 쓴 인물 아닌가. 목숨 걸고 준비해온 일을 포기한 뒤 낙오자가 된 것 같은 절망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게 부담스러운 때가 많았다. 동시에 몸까지 만들어야 해서 육체적으로도 피곤한 날이 많았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큰 용기가 되더라.


고시를 포기한 ‘자영’은 동네에서 또래 ‘현주’(극 중 안지혜)를 만나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조금만 뛰어도 호흡 곤란에 걸음마저 버벅대던 ‘자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하게 달려 나간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변화를 조명한다.

최: 달리기를 하기 전 ‘자영’은 늘 책상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 두리뭉실한 살덩이 같은 체형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어깨에 솜을 넣고 복대를 찼다. 바지도 두 겹 이상 입었다. 하지만 ‘현주’를 만나고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스스로가 좀 더 건강하고 생기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 제목이 <아워 바디>이듯, ‘자영’은 점차 몸에 관한 관심과 욕망을 갖는다.



함께 달리는 ‘자영’과 ‘현주’는 30대에 막 접어든 여성이다. 내심 두 사람이 어느 정도의 공감과 연대를 나누리라고 기대했는데… 영화는 돌연 ‘현주’의 죽음으로 향한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감독님,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나.(웃음)

한: 이 이야기는 내 경험에서 나왔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하다가 접기로 했을 때쯤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려보니 확실히 건강에 좋고 삶에도 이롭더라. 힘든 운동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을 대신해 어떤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에서 그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자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더라. ‘자영’이 운동을 시작하고 몸이 건강해지면 결국 구질구질한 삶에서 벗어나게 될까?


어찌 됐든 고민은 계속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가.

한: 몸이 건강해지는 게 전부는 아니다. 현실의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걸 보여주려면 ‘현주’ 같은 인물이 필요했다.


예컨대 ‘자영’의 가족이 보이는 반응은 어떤가. ‘자영’의 엄마(극 중 김정영)는 딸에게 끝까지 재시험을 권한다. 합격만 했으면 날개를 활짝 피고 날아다녔을 거라며 못내 안타까워한다.

최: 연기인데도 그런 말을 들으니 엄청 서운하더라. 눈물을 참으면서 연기했다.

한: 어쩌면 엄마 인생에서 맏딸이 큰 오점이 된 거다.(웃음)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를 배반하고 자기 길을 걷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자식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는 생각이다.

한: (끄덕끄덕). 부모님이 자식의 어떤 행동을 더 이상 말릴 수도 없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내가 영화를 찍겠다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을 때 내 부모님도 딱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30대가 되어서도 뚜렷한 직업이 없는 마당에 뭘 한다고 해도 말릴 이유가 없으셨겠지. 다행히도 <아워 바디>를 완성해 보여드리고 나니 안심은 하신 것 같다. 뭔가는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웃음)


앞으로 ‘자영’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최: 영화의 마지막에서 ‘자영’은 호텔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현주’를 잃고 난 뒤 방황하던 그는 앞으로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아나갈지 고민하게 되겠지. 그래도 이제는 자기 앞에 많은 기회가 놓여있다는 건 알지 않을까. 나이나 학력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정규직이 아닌 자리부터 시작할지도 모른다. 감독님과는 아마 ‘자영’이 택배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얘기했었다. 나는 그 부분이 영화의 세 번째 챕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장은 어디쯤에서 나뉘었다고 보나.

최: 첫 번째 장은 서른한 살이 될 때까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공무원 시험만 준비한 ‘자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달리는 ‘현주’를 쫓아가다가 너무나 힘이 들어서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다. 두 번째 장은 그 후로 마치 갓 알에서 깨어나온 존재처럼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자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 아닐까.



작품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해내는 느낌이다.

최: 영화를 시작할 때 내가 맡은 인물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동기부여와 장애물은 무엇인지 전부 글로 쓴다. 그리고 극의 기승전결과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그래프로 그린다. 아, 영업비밀을 드러내는 건가.(웃음) 가끔 이런 작업을 전혀 하지 않고 연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성향의 차이인 것 같다. 너무 철저하게 준비하기보다는 현장의 분위기와 자신의 동물적인 감각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도 있더라.

최: 나는 철저하게 공부해야 자신감이 생긴다.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은 시나리오를 정독한 뒤 현장에서 그 모든 걸 다 잊어버린 채로 연기하는 거다. 완전히 유(有)였다가 완전히 무(無)가 되어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싶다. 그러려면 장인이 되어야 하겠지. 60살 정도 되면 가능할 것 같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한: 운동할 때.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그럴 때 기분이 좋다.

최: 어제 오랜만에 엄마와 둘이서만 외식을 해서 좋았다.(웃음)


사진 제공_웅빈이엔에스


2019년 9월 28일 토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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