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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자, 부산의 정서 <퍼펙트맨> 용수 감독
2019년 10월 2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부산에서 태어나 25년을 살았다며 “부산은 누구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나의 무기”라고 말하는 용수 감독이 첫 장편 영화 <퍼펙트맨>을 선보인다. 연기 잘하는 설경구와 조진웅의 만남을 성사시킨 점, 그들이 각각 전신 마비의 까칠한 변호사와 부산 날건달을 연기하며 감정을 나눈다는 점만으로도 작품은 일단 관객의 이목을 끈다. 용수 감독은 그런 중에서도 부산이라는 공간적 배경 자체가 작품의 주요한 정서가 될 거라고 덧붙인다. 영화 속 장면으로 꼽자면, 해운대 마천루의 자본 그림자 아래 여전히 존재하는 부둣가 포장마차의 허름한 풍경일까. 그러니까 <퍼펙트맨>은 하나의 오락 영화이기 전에,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위를 축축하게 적신 바닷물 따위는 괘념치 않고 노상 위 소주잔을 기울이는 ‘부산 남자’를 향한 용수 감독의 로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가 첫 장편 영화 <퍼펙트맨>을 연출했다.
여러 글을 썼지만, 영화화된 건 거의 없었다. 시나리오를 끝까지 지키려고 했지만 (영화화 단계에서) 전부 엎어졌다. 그게 내 탓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못 써서 그런가 싶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는 글 외에도 수많은 요소가 작용하지 않나.
글 쓰는 사람은 다 자기 탓을 한다.(웃음) 이번 영화는 내가 쓴 글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물론 시나리오 한 편을 써냈다는 자체로 만족하는 분도 있지만, 나는 거기까지만 일하고 작품을 더 키우지 못한다는 게 허무했다. 연출 욕심이 생겼다. 끝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해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퍼펙트맨>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전신 마비된 까칠한 변호사 ‘장수’(극 중 설경구)와 껄렁대는 부산 날건달 ‘영기’(극 중 조진웅)의 관계를 그린다.
군대 제대 하루 전에 큰 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팔과 다리를 못 쓰게 되는 마비 상태로 휠체어 생활을 했다. 회복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렸고 지금도 오래 걷지 못한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이 그때 생겼다. 그렇게 누워있으면서 <퍼펙트맨> 같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말이다.


시한부 삶을 사는 ‘장수’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영기’는 ‘장수’의 사망보험금을 얻게 된다. 영화는 판이한 두 인물이 우정을 나누는 내용의 버디 무비이자 일종의 버킷리스트 영화로 받아들일 지점이 많다.
영화는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성향과 정서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다. ‘장수’라는 인물은 요양원에서 뵈었던 분에게 얻은 이미지를 정리해 만들었다. 정장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구두를 가져 와라, 넥타이 색이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말을 하는 그분을 보고 과연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반면 영화의 화자인 ‘영기’는 나처럼 완전한 부산 사람이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마음에 안 들면 상대를 때린다. 요즘 세상에서는 그러면 안 되지만.(웃음) 비호감이 되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영기’에게 관객이 대리만족하길 바랐다.

‘영기’가 몸담은 건달 조직의 두목 ‘범도’(극 중 허준호)가 등장하면 영화는 빠르게 누아르로 변모하고, 이내 코믹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돌아온다. 장르를 종잡을 수 없는 느낌도 있는데.
드라마, 누아르처럼 내가 장르를 정하기보다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맡기고 싶다. 다만 누아르 캐릭터에 대한 욕망은 좀 있는 편이다. 이번에는 불안하고 결핍이 있는 인물을 유쾌한 드라마 안에서 풀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지점이 오히려 인물을 다채롭게 보여줄 수도 있다고 본다.

‘영기’역에 조진웅을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제일 먼저 캐스팅된 뒤 작품에 대한 믿음을 갖고 영화 촬영까지 1년 정도를 기다려 줬다. 그 덕에 설경구 선배 캐스팅을 마치고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조진웅 선배는 현장 경험으로 치면 웬만한 감독보다 능숙한 사람이다. 본인도 연출에 대한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쓱 다가와서 해결점을 분명하게 제시해줬다.

조진웅의 까불대는 건달 연기를 보는 맛이 좋더라. 정작 본인은 흥을 돋워가며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고 하던데.
촬영장에 나올 때쯤 되면 저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기분을 띄우려고 미리 음악을 틀고 나타나는 거다. 분장할 때도 신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다. 어디 가서 (태연하게) 춤추거나 할만한 분은 아니지 않나.(웃음) 그럼에도 역할에 충실하게 젖어 들어 찰떡같이 잘 소화했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관객도 충분히 보고 싶어 할 거로 생각한다.


‘장수’역의 설경구는 전신 마비라는 설정으로 온몸의 움직임이 제한됐다. 언론시사회 당시 “얼굴로만 연기하려니 제약이 80%였다. 그만큼 한계가 있었고 답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민이 컸다. 처음에는 고개도 못 돌리는 정도로 ‘장수’ 캐릭터를 설정했다. 그러고 나니 연기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너무 힘들더라. 2~3회차 정도 촬영을 하면서 설경구 선배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에 관해 협의했다. 본인이 적당하다 싶은 가동 범위와 그렇게 연기할 경우 생길 수 있는 표현의 한계를 직접 보여주시더라. 어떨 때는 마치 (휠체어에서) 일어설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인물 설정상 그럴 순 없지 않은가. 그 부분에서만큼은 미리 정해둔 설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배심원들>(2019)에서 판사 역으로 줄곧 상반신만 출연한 문소리 역시 제작보고회 당시 너무 많은 게 제한된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설경구 또한 그런 어려움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끄덕끄덕) 배우 입장에서는 표현의 무기가 묶여버린 거겠지. 한편으로는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상으로 생각해온 배우를 너무 고생시킨 것 아닌가 싶었다. 설경구 선배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던 건,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촬영 없이 앉아있을 때도 그렇게 앉아서 다리 한번 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작품을 본인 구상대로 흘러가게 하면서 배우의 역량도 최대한 끌어내는 게 연출자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첫 장편인 만큼 그 과정이 힘들게 느껴진 순간도 있었을 텐데.
제일 힘든 점이었다. 내 생각과 배우의 성향이 다를 때가 특히 힘들었다. 예를 들면 조진웅 선배와 설경구 선배의 성향도 다르다. 조진웅 선배는 첫 번째나 두 번째 촬영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가장 좋다. 시작부터 에너지를 품고 가는 편이다. 반면 설경구 선배는 연기하면 할수록 야릇한 연기가 나온다. 그게 참 보석같다. 이런 두 배우가 붙어서 연기하는 순간 가장 좋은 장면을 뽑아내려니 정말 힘들더라.

두 배우와 당신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합을 끌어내는 게 굉장히 어려웠겠다.
오죽하면 조진웅 선배는 첫 컷, 설경구 선배는 나중 컷으로 편집해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배우가 주고받는 진짜 호흡이 살지 않을 것 같았다. 촬영 전에 최대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분위기를 잘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통해 보여준 건 두 배우의 합뿐만 아니라 부산이라는 지역성이라고 본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뒤 그곳에서 첫 영화를 찍었다.
부산에서 25년을 살았다. 갈 때마다 풍경이 바뀐다는 느낌이다. 마린 시티를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부산이야?’ 싶은 생각도 들더라. 내가 살았던 곳은 엄청 변두리다.(웃음) 그래서인지 부산하면 촌스럽지만 따듯한 고향의 느낌이 든다. 영화에서는 부산의 그런 정서를 보여주는 배경을 많이 썼다. 특히 두 배우가 연기한 포장마차 신은 감격이 컸다. 내가 생각한 그 정서를 이렇게나 잘 표현해주는구나!

앞으로도 부산을 배경으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 예정인가.
솔직히 말하면, <퍼펙트맨> 다음 작품도 부산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게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 쓰다 보니 자기 복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 작품에 몇 년을 젖어있다가 보니 완전히 다른 작품을 쓴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작과 비슷한 정서가 나오는 것 같다. 스스로 안주하려는 것 같아 묻어두고 다른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상황이 내게는 가장 큰 과제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운 걸 찾고 싶다. 자기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쉽지 않으니 옆에서 잘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럴 땐 주로 누구에게 조언을 얻는지...
일차적으로는 아내다. 탈고했던 차기작을 본 아내의 첫 언급은 “자기야, 이건 쓰레기야”였다.

(웃음) 아무리 가까운 사이지만 그정도로 센 말에는 심정적 타격이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삐친다. 잠깐이지만 밥도 안 먹는다.(웃음) 그런데 두고 보면 그 말이 맞다. 그 상태로 외부에 내놓았으면 공식적인 평가를 받게 됐을 거다. 아내는 그 전에 맘껏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아닌가. 그러니 항상 귀를 열어두려고 한다. 그래도 <퍼펙트맨>을 내놓고 나니 아내가 엉덩이를 몇 번 두들겨 주더라. 뿌듯했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언론시사회를 마치고 아내랑 침대에 누워서 만화책을 봤다. 요즘 바람이 선선하지 않나. 창문을 열어두고 군것질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뒹굴뒹굴했다. 그때가 소박하게 좋았다.

사진 제공_쇼박스

2019년 10월 2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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