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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으로 떠나볼까? 진짜 로컬 영화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2020년 6월 2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청인(들리는 사람)은 농인(들리지 않는 사람)이 소리의 세계를 동경할 거라고 으레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소리를 잃고 싶은 코다(CODA 농인 부모를 둔 자녀) 소녀 ‘보리’가 있다. 듣지 못하는 엄마와 아빠, 동생 간에 오가는 완벽한 수어 소통을 보면서 때때로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만이 다르다는 생각에 외롭다. 고요의 세계에 동참하고 싶다.

<나는보리>는 ‘나’, ‘날다’, ‘본다’의 여러 함의를 담고 있는 타이틀에 꼭 부합되는 영화다. 가족 내 낯섦을 자각한 ‘보리’는 조금 이른 사춘기를 통과하며 달라도 같아도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층 성장한 보리는 가족들을 더 잘 ‘보려’한다. <나는보리>는 진정한 로컬 영화이기도 하다. 강릉 주문진에 거주하는 김진유 감독은 자신이 아주 잘 아는 공간을 영화 곳곳에 오롯이 담아낸다. 주변 지인들이 흔쾌히 로케이션에 응해줬고 게다가 몇몇 출연자는 큰엄마, 작은엄마, 큰고모 등 친척들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공존을 밝고 친근하게 담아낸 김진유 감독을 만났다.


드디어 개봉이다! 소감은.
2018년 2월부터 5월까지 촬영했었다. 꼭 2년 전인데, 계절적으로 비슷한 시기라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그간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생각에 변화가 있다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할 때는 관객의 대다수가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후 농커뮤니티에서 여러 차례 시사회를 가졌다. 이전 관객들이 ‘보리’(김아송)에 집중했다면, 농시사회 때는 동생 ‘정우’(이린하)에 더 집중하고 애정 하는 모습이었다. 리뷰에도 많이 언급하고 말이지. 영화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느꼈는데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다.

‘정우’를 떠올리니 그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수어 연기가 참 자연스럽더라.
사실 수어를 배울 때 집중을 잘 못 했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면 따라 하고 연습해야 하는데 잘 안 하더라. 연출부 친구가 촬영할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걱정이 안 됐다. 예전 영화 수업할 때의 경험상 안 듣고 있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 린하도 그러리라 생각해 친구에게 막상 촬영하면 잘할 테니 믿으라고 했다. 정말 잘했다. 연습을 많이 해온 것 같더라. 신경 써준 (린하)어머니께 감사하다.

청인은 으레 농인이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결여를 느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보리>는 청인 나아가 비장애인이 지닌 오만한 편견을 전복한다. 영화의 시작은.
2014년 연출한 단편 <높이뛰기>가 계기가 됐다. <나는보리> 속 옷가게 시퀀스를 다뤘는데 이후 코다(CODA, 농인 부모를 둔 자녀) 친구와 농인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때 경험한 새로운 생각과 사실을 영화 속에 넣고 싶어 다양한 인물을 만들었다. 아빠는 선천적, 엄마는 후천적 농인, 정우는 인공와우를 고민하는 농인으로 말이다. 농인과 청인의 가교 역할로 보리를 설정했다.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다고 알고 있다.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의 조각을 살짝 보여준다면. 또 극 중 보리와 동일한 상황이었나.
보리의 경우는 남동생이 농인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다만 동생은 지적장애 판단을 성인이 된 후에 받았다. 좀 느리고 말도 소신 있게 잘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눈치 없어 보이는 정도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능이 낮았던 거였다. 지금은 장애 등급을 받고 지원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좀 더 주의를 기울였을 텐데 그 점이 미안하다.

어릴 때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엄마와 아빠가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잠든 밤이 되면 말할까 싶어 한 3일 정도 잠을 안 자기도 했었다. (웃음) 내 잘못 때문이 아니고, 부모님이 못 듣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한 것은 초등 6학년 때 정도였다. 친구들의 부모님과 다르다는 사실을 크게 인식하진 않았었다. 처음 자각한 것은 유치원에서 갔던 소풍에서다. 사회를 맡아 앞에 나가 이야기했는데 엄마가 내가 말하는 내용을 캐치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혼란스러웠다. 이후 큰 문제는 없었다. 극 중 보리네 가족처럼 고모와 사촌 형, 누나가 가까이 살아 궁금한 것은 그때그때 풀 수 있었거든.

<나는보리>를 부모님도 보셨나. 뭐라고 하시던가.
보셨다. 원래 주저리주저리 표현이 많은 분이 아니다. 영화 보고 나오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는데, ‘잘 봤어’ 정도의 제스처다.
 <나는보리>
<나는보리>

강릉 단오제, 보리가 걸어 다니는 해안도로, 소원을 빌곤 하는 서낭당 등 바닷가 마을 풍경이 정겹더라.
지금도 주문진에 거주하고 있고 강릉은 내가 잘 아는 공간이다. 다른 도시에 가면 잘 몰라 헤맬 수 있어 예산을 고려해 강릉에서 찍은 것도 있다. 하지만 예산보다 강릉은 내가 상상한 모든 것을 품은 공간이라는 점이 더 주효하게 작용했다. 주문진에서 촬영 장소를 섭외할 때 다 아는 분들이다 보니 흔쾌히 허락한 것은 물론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개인적 경험을 투영하면서 형제를 남매로 바꾸었다. 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까닭은.
형제를 남매로 한 것은 좀 더 많은 사람이 보고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보통 독립영화가 진지하고 어둡고 깊은 느낌이 많은데, 그보다는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가볍지만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자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했다.

독립영화가 난해하다는 인식이 한편으론 강하게 존재하긴 한다.
독립영화를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다. 대부분 사회문제를 다루거나 한 인물을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니 어둡고 딥한 영화가 많았다.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이걸 보고 나면 힘들 텐데 꼭 봐야 하나’ 이런 마음도 있었다. 쉽게 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야 하는 거지. 앞으로도 그런 후벼 파고 아프게 하고, 괴롭히는 영화는 못 할 것 같다. 자신 없다. <나는보리>는 농인을 다루는 데다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 슬프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영화의 스토리를 듣고 진지하고 힘든 영화로 예상하는 분이 많다. 보고 난 후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관람을 선택하기까지 망설임이 큰 것 같다.

보리네 가족의 식사 시간을 보면 그런 우려는 단번에 날아갈 텐데 말이지! 동그란 밥상에 앉아 어떤 날은 된장찌개, 또 특식으로 짜장 탕수육 세트를 먹는데 어찌나 맛있어 보이든지.
내게 <나는보리>는 나름의 판타지다. 현실이 꼭 그렇게 아름답고 해피하지는 않거든. 농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 그렇게 묘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미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니까 허용될 거로 생각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보리는 엄마와 아빠, 동생 간에 오가는 완벽한 수어 소통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낀 나머지 일부러 농인인 양 연기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시퀀스는. 감독의 코멘터리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겠다. (웃음)
옷 가게 신이다. 보리와 엄마가 함께 들어간 옷 가게에서 못 듣는다고 생각한 주인이 직원에게 원래 가격보다 오천 원을 올려 받으라고 하는데, 직원이 올려 받고는 천원을 거슬러준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엄마는 (잘못 준 줄 알고) 보리에게 천원을 돌려주고 오라고 시킨다. 영화 속 상황 그대로 내 경험이었다. 예전에는 거스름돈이 잘 못 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복기하니 직원이 미안한 마음에 (올려 받은 돈의 일부를) 돌려준 게 아닌가 싶더라. 비록 손님을 차별해 가격을 달리 받지만, 마음 한편에는 미안해하는 마음을 보여줘 선한 영향을 주고 싶었다.

또, 동네 주민들이 걸어가는 보리 남매를 가리키며 ‘보리도 안 들린대’, ‘어째’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 장면과 슈퍼 앞 평상에서 대화하는 장면에 나오는 출연자가 큰고모, 큰엄마, 작은엄마였다. 친척이 주문진에 살고 있어 촬영을 부탁했는데, 평상복을 입고 내추럴하게 오라고 했건만 모두 화장하고 빼입고 오셨더라. 화장지우고 우리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촬영했다. 가족과 친척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참 재미있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나는보리>
<나는보리>

청인이 농인을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보리 엄마와 아빠를 연기한 허지나, 곽진석 부부와 동생 ‘정우’역의 이린하의 수어는 전혀 연기같지 않고 자연스럽더라. 수어 디렉팅 혹은 연출 시 신경 쓴 지점은. 처음에 허지나, 곽진석 배우가 수어를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래서 따로 자막이 나가니까 좀 틀려도 좋다고, 편하게 감정선을 따라가라고 했다. 두 배우가 부부 관계라 평소 집에서 연습해서 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당시 일주일에 한 번 만났는데 헤어지면서 다음 미팅까지 수어로 대화하는 미션을 서로 부여했다고 하더라.

수어와 홈사인을 병행했다고 들었다.
정식 수어는 동작도 많고 복잡해서 최대한 간단하게 하고 싶었다. 또 동작이 어려운 수어가 있다면 보리네 가족이 합의해 편하게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 가족 간의 약속, 일종의 홈사인이다. 우리 부모님이 어릴 때 농학교를 다니지 않아 정식으로 수어를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소통하기 위해 상용하는 손동작과 제스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홈사인이다. 보리 아빠의 수어는 대부분 홈사인이었다. 또 정우가 짜장면과 짬뽕을 말할 때 사용하는 수어도 정식은 아니고 홈사인으로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거다.

‘보리’역의 김아송 배우 캐스팅에 고심했다고 들었다. 청인과 농인을 번갈아 연기하며 그 또래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보인다.
오디션을 통해 200여 명의 배우를 만났고, 그 가운데 글을 쓰면서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천진한 미소가 한눈에 들어오는 김아송이 있었다. 연기하는 게 처음이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이 정말 좋았다. 특히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로 현장 분위기를 살리곤 했다.

하루 8시간 촬영을 준수하려 노력했다고.
상업영화 스태프로 일할 때 노동 시간이 엄수되지 않는 환경이다 보니 영화가 싫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번에 조감독이 친척 동생이라, ‘한 번 미친 척하고 시간을 준수해보자’고 최대한 의견을 모아 나름의 결심으로 들어갔다. 더구나 아이들과 함께하니 집중력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밤 촬영 있는 하루, 이틀을 빼고 지킬 수 있었다. 연출부와 스태프 모두 동의해서 가능했고 이후 신뢰감이 더 강해졌다.

첫 장편을 끝내니 어떤가. 잘 한 점, 후회되는 점 등 여러 생각이 들 것 같다.
시나리오를 썼을 때 주변 선배나 동료에게 동의(지지)를 받지 못했다. 장편으로 하기엔 너무 작은 이야기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사건과 갈등이 없다 보니 관객을 설득하기 힘들 것이고, 당연히 제작하기 힘들 거라는 거였다.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 더 하고 싶고 한편에선 오기도 생겼다. 그러다 운 좋게 강원영상위원회에서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무래도 예산 부분이었다. 스태프와 배우에게 일한 것에 대한 대가나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예산이 적어 조금밖에 돌려주지 못하니 말이다. 그게 너무 미안하다. 수익이 생긴다면 꼭 나누겠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예산 규모는.
1억이다. 1억을 확보한 후 영화 하는 친구들에게 인건비로 5,000만 원을, 나머지 반을 영화 연출에 쓰겠다고 하니 대체로 ‘미쳤냐’는 반응이었다. 영화의 퀄리티와 비용이 꼭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영화를 잘 만들려면 그만큼 비용을 들여야 한다. 때문에 제작비의 대부분을 몰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스태프에게 최소한의 대가를 주고 싶어 예산을 오픈하고 똑같이 250만 원씩 나누자고 했다. 다행히 모두 동의해줬다. 사실 연출부는 준비 기간까지 하면 2개월간 매달린 셈인데 그 기간을 250만 원으로 생활해야 했다. 따로 프로듀서가 없어 이런 부분을 내가 직접 얘기하고 조율했는데 참 민망했다. 나중에 부족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충당했는데 다행히 못 메꿀 정도는 아니었다.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흔히 ‘갈아넣는다’고 한다. 부족한 경비로 영화를 완성하려면 쥐어짤 게 인건비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당신의 선택을 지지한다! (웃음) 영화일을 길게 이어 가기 위해선 그 대가가 (적더라도) 당연히 따라야 한다.
도와준 분이 너무 많고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그 어머니께도 정말 감사하다. 아이들 데리고 오고, 데려가고, 촬영 내내 곁에서 기다리고 어머님들이 많이 애쓰셨다. 적은 출연료에도 기꺼이 참여를 결정해 주셨고 말이다. 지금도 무대인사나 관객과의 대화(GV)가 잡히면 다 참석해 주신다. 그만큼 영화에 애정을 지니셨다. 마치 가족 같다.
 <나는보리>
<나는보리>

영화사 ‘진진’이 배급을 맡은 것도 큰 힘이 됐을 것 같다. 진진 측은 장애와 비장애의 공존을 밝게 그린 점에 매료됐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 개봉 지원을 받긴 했으나 진진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분이 볼 수 있는 형식으로 개봉을 준비하지 못했을 거다. 혼자서 어떻게든 했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겠지. 선택해준 진진에 고맙다.

타이틀 '나는보리'가 지닌 의미를 짚어준다면.
영화와 바로 맞닿는 것은 ‘나는 보리’, 즉 ‘I am 보리’의 의미다. 또 수어를 잘 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나는 보리(See)’ 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보리가 날다’는 의미다.

세상에 이야기를 꺼내 놓는 매개체로 영화를 선택한 계기 혹은 이유는.
고등학교 기말고사 때 350명 중 349등을 했다. 350등을 누가했는지 궁금해 알아보니 운동부 친구였다. 사실상 내가 꼴찌였던 셈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에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영화를 떠올렸다. 강릉시네마테크를 알게 되고 정동진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일하며 독립영화를 접하게 됐다. 정말 실험적이었다. ‘이것도 영화?’, ‘나도 만들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영화의 개념을 확장해줬다. 관심이 생기니 막 찾아보게 되고 매일 영화 보고 공부하게 되더라. 당시엔 <파이트 클럽>, <메멘토>, <이탈리아 잡>, <오션스 일레븐> 등 대중적인 영화를 많이 봤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상업영화도 해보고 싶다. 굳이 독립과 상업, 구분 지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준비 중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두가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하나는 20대 여성 농인이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이다. 다른 하나 역시 로맨스로 서핑 하는 남자와 해녀 간의 이야기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요즘 강릉에 있다. 11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동료이자 선생님이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펼치고 시간 보내다 지루하다 싶으면 신영극장에 가서 영화 본다. 그러다 <나는보리> 음악을 맡은 감독님이 운영하는 라이브바에서 술 한잔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또 사회적 협동조합 ‘인디하우스’ 독립영화 지원센터(이름만 거창한)의 센터장을 맡아 시나리오 피드백, 촬영 지원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강릉에 영화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길 희망하고,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아, 서핑을 최근에 시작했는데 파도 좋은 날 서핑 하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2020년 6월 2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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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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