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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차 소리꾼이자 새내기 배우, 달릴 준비 완료! <소리꾼> 이봉근
2020년 7월 1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전통음악이 ‘귀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좋아서 좋은 것’이라는 문화를 넓히고 싶다. 26년차 소리꾼이자 연기 새내기 이봉근의 바람이자 포부다. 다만 전통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그 맛을 제대로 못 느끼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한 그는 크로스오버공연,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예능까지 나름의 방법으로 전통음악의 대중화를 꾀해 왔다. 스크린 연기 첫 도전인 <소리꾼>은 그가 걸어온 행보의 연장이자 새로운 발견이다. 현장의 치열함, 의도한 연기에서 맛보는 희열, 의도와 다른 데서 오는 의외성 등 영화 현장이 지닌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그는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달려갈 준비를 이미 완료했다.

첫 스크린 도전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촬영하면서 가벼운(?) 부상도 입었다고 들었다.
즐겁다. 영화는 처음이나 그간 연극, 무대 등의 공연은 많이 했었다. 하지만 스크린 연기는 형식미가 주인 연극 무대와 달라 그 간극을 좁히려 노력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기대한다는 것도 욕심이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재미있게 촬영했다. 앞으로 행보를 기대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촬영 당시 갈비뼈에 살짝 금이 갔는데 지금은 멀쩡해졌다. 극 중 크게 맞는 장면이 있다.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맞았지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처음이라 신나게 맞았는데, 막연히 ‘보호대를 착용해도 아픈 거구나’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금이 갔더라!

스크린을 통해 클로즈업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또 연기 준비는 어떻게 했나.
음악 프로에 출연한 경험이 있어 클로즈업하는 것에 어색하거나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다만 소리 연기에 익숙하다 보니 생활 연기 같은 자연스러운 부분은 스스로 어색했다. 앞으로 모니터링을 많이 해야겠더라. ‘학규’ 캐스팅이 확정된 후 한국영화 중 사극을 많이 찾아봤다. 확실히 판소리 창극과는 달라 그 연기를 쓰면 안 되겠더라. 사극을 보면 두 가지 연기 톤이 있다. 하나는 정말 옛것 그대로의 말투에 리듬을 붙여서 하는 사극 연기이고, 또 하나는 현재의 어투로 말하는, 리얼한 생활 연기다. 감독님께 어떤 쪽이 좋을지 여쭤보니 가장 ‘학규’(이봉근)스럽게 하라는 거다! 멘붕(멘탈붕괴)이었다. (웃음)

‘학규’ 스럽게… 무서운 말이다. (웃음) 캐릭터 소개와 접근법은.
개인적으로 학규는 의존적인 인물이라고 파악했다. 첫 장면이 학규가 소리판을 열고, 그에 대해 대접(대가)을 받는 장면인데, 이게 흔한 광경이 아니었을 거다. 왜냐면 조선 후기 영조 10년이 배경인데 당시 소리판 자체가 흔치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니 소리꾼이 대접받을 일도 드물었을 것이고, 자연히 경제적으로 삯바느질하는 아내 ‘간난’(이유리)에게 의존했겠지. 정신적으로도 아내와 딸 ‘청이’(김하연)에 많이 기댄, 유한 인물일 거로 생각해 캐릭터적인 장치로 구시렁대는 말투를 사용했다. 또 영화가 1년 전과 1년 후로 구분되는데 1년 후의 모습은 내적으로 스스로에 집중했을 거로 파악했다. 아내가 인신매매단에 납치되고 딸의 눈이 먼 것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에, 말을 크게 할 수도 없고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할 것 같았다. 술을 마시느라 집을 비운 사이 가족이 그렇게 됐으니 당연히 죄책감이 심했겠지. 그래서 연기할 때 대사를 최대한 작게 쳤고, ‘학규’가 그렇게 안으로 쌓고 묵힌 감정을 소리판에서 토해낸다고 생각했다.

조정래 감독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디션에서 긴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결정했다고 하던데, 당시 상황을 좀 들려 달라. (웃음)
오디션 공고가 떴고, 소리하는 일인으로서 스스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선배와 후배 여럿이 지원했었다. 나름대로 준비해서 들어갔는데 심사위원이 스무 분 가까이 매우 많았다.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소리 먼저 하겠습니다” 했더니 “소리는 됐고, 연기 먼저 보자”고 하시더라. 그때부터 파르르 떨면서 그야말로 멘붕 모드였다. (웃음) 연극 톤도 스크린 톤도 아닌 애매하게 연기한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바닥을 보여드린 것 같다. 그때 많은 분의 이야기가 그 와중에 학규라는 인물의 눈빛과 닮은 점을 찾았다고 하더라.

영화의 어떤 면에 끌렸나.
소리꾼 입장에서 보자면, 평소 음악 하는 친구들과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다 음악과 의성어나 의태어 등이 결부돼, 즉 여러 소리가 합쳐져서 판소리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 ‘판노래’가 아니라 소리가 어우러졌다는 의미에서 ‘판소리’라고 부르지 않았겠냐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이 영화 속에서 구현된 것 아닌가. 그 기쁨이란…(웃음)

조정래 감독이 직접 북을 치며 연기지도 했다고.
감독님께서 고법(기자 주: 판소리에서 북을 치는 방법) 이수자이자(최근엔 고법협회 이사가 되시기도), 명인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잘 치신다. 현장에서 (박) 철민 형과 소리북 쟁탈전을 했을 정도. (웃음) 그만큼 철민 형도 정말 잘 친다. 북은 누구나 칠 수 있지만, 그 소리에 감정을 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데 형은 그게 가능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현장 녹음으로 완성했을 정도였다. 중간에 부르는 ‘갈까부다’를 제외하고는 전혀 후시 녹음이 없었다.

<소리꾼>은 ‘학규’가 노래로 들려주는 ‘심청전’ 이야기를 액자처럼 삽입한다. 보통 극 중 인물이 액자 속 인물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청이’역의 김하연 배우처럼 말이다. 한데 심청전 속 심봉사는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
처음 받는 질문이나 중요하고 받고 싶던 질문이다. 학규라는 인물이 심청가를 만든 이유는 (말했듯)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서 비롯된다. 모든 죄를 뒤집어쓴 인물이기에 자신이 직접 아버지를 연기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극 중 학규와 심봉사를 동일 인물로 갈 수 없다고 감독님과 이야기했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심봉사와 학규가 동일화되고 청이 인지 심공주인지 모호해지는데 상당히 연출적으로 깊은 의도가 있는 지점이다. 나중에 감독님께 관련 이야기를 들어도 흥미로울 거다.

나만의 한 컷을 꼽는다면.
처음 보고 마음에 든 건 학규가 청이와 ‘대봉’(박철민)에게 아내 간난을 찾아 길을 나선다고 이야기 꺼내는 장면이다. 심청전 이야기인 것을 눈치채게 되는, 아마도 우리 영화에 대해 흥미를 높이는 순간일 거다. 또 많은 분이 꼽겠지만, 후반부 심봉사가 눈뜨는 장면이다. 영화의 백미가 아닌가 한다. 당시 보조출연자만 200여 명에 스태프까지 하면 거의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동원됐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부담 갖지 말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가자고 했는데 슛이 들어간 후에는 정말 영화 속 현장에 있는 것 같았다. 집중한다, 소리한다, 연기한다 이런 감정이 아니라 그냥 학규로서 그 장소에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소리꾼>
<소리꾼>

<소리꾼> 촬영하면서 판소리의 원형을 경험했다고 했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한다면.
무대 위에서 공연할 때는 음향, 조명, 마이크 등 여러 설비와 장치에 익숙해지다 보니 형식적인 구조를 많이 따랐던 거 같다. 이번 부안 세트장에서 촬영할 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앞뒤 옆으로 소리판을 에워싼 상태였다. 무대는 앞만 보여주는 것에 비해 나를 중심으로 관객이 원형으로 둘러싼 형태인 거지. 예전 소리꾼은 이런 환경에서 공연했겠구나 싶었다. 형식적인 소리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정서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소리를 하다 보니 그 형식이 바뀌더라. 좀 더 심플하고, 전달력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영화 촬영 후 스스로 소리가 바뀐 것을 느낄 정도다.

주변에서 소리의 변화를 감지하던가.
느끼더라. 지난주 온라인으로 비대면 공연을 진행했는데, 관람한 관객의 댓글과 리뷰를 보니 대체로 이전의 소리보다 전달력이 좋아졌고 정서가 진하게 느껴진다는 평이었다. 한 모녀는 ‘심청가’를 들으며 우셨다고 한다.

전통 음악 쪽에서 이미 굳건히 자리 잡은 상황인데 연기를 하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있나. 또 해보니 어떤가.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이번에 촬영하면서 연기의 매력을 더 체감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현장의 치열함, (모니터링하면서) 의도한 대로 잘 나올 때의 희열, 또 의도하지 않은 데서 오는 의외성 등 음악과 닮은 듯 다른 매력을 절감했다. 연기를 진지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사실 처음엔 샷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다행히 적응이 빠른 편이라 2회차부터는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판소리하면서 반복적인 훈련에 익숙한 덕분에 연기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전통 음악, 소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권유하셨다. 중학교 때 시작했으니 벌써 26년 차다. 사실 별로 꿈이 없는, 남들이 겪는다는 중2병도 없이 순종적인 아이였다. 남원이 고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리를 접하긴 했지만, 아버지가 처음 권유할 때만 해도 ‘왜?’ 이런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판소리의 다양한 매력에 빠져들더라. 특히 어려운 기교와 시김새(기자 주: 판소리에서 소리를 하는 방법이나 상태 또는 국악에서 주된 음의 앞과 뒤에서 꾸며 주는 꾸밈음) 등을 하나씩 익혔을 때 오는 성취감과 기쁨이 어마어마했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체험하게 되거든. 기회 될 때마다 주변에 배우는 것을 권장하곤 한다.

‘청이’를 연기한 김하연 배우도 현장에서 가르쳤다고.
촬영하면서 하연에게 ‘선배님’이라고 불렀는데, 농담 같지만 연기 선배이니 맞는 호칭이다. 내가 실수하면 살짝 와서 ‘아버지’ 하며 지적해 주고, 또 어떻게 감정을 잡느냐고 물으면 ‘그냥’ 한다고 말한다. 엄마 ‘간난’에 꽃을 꺾어 주는 장면 등도 현장에서 즉시 한 거로 과연 연기 천재다 싶었다. 소리적으로도 귀가 매우 정확한, 타고난 신동이다. 영화 개봉 후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 레슨비는 바나나 우유 2개와 초콜릿 1개로 하연이가 직접 가져오기로 했다. (웃음)

TV 음악 프로 ‘불후의 명곡’에서 서예가인 아버지가 손수 글씨 쓴 부채를 들고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아버지가 아주 엄했다고 하던데.
아버지와의 관계는… 고등학교 때까진 매우 서먹했던 것 같다. 서울로 대학 진학한 것도 어느 정도 떨어져 있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에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고, 아버지가 이렇게 작았나 싶더라. 남원에 지역 축제가 몇 개 있는데 대학교 2학년 때인가 본의 아니게 아버지와 둘이 가게 된 적이 있다. 서로 말없이 걷다가 용기 내서 아버지의 손을 잡았는데, 그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거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제 손을 놔야 할지 난감해 한 시간 정도 잡고 걷다가 아버지가 문득 술 한잔하겠냐고 물으시더라. 그때 처음으로 당신에 대해 이야길 하셨던 것 같다.

이번 <소리꾼>을 보면 매우 기뻐하실 것 같다.
말도 마라. 요즘엔 아버지와 하루 두 번 정도 매일 통화한다. 자주 하니 내 스케줄을 다 꾀고 계시면서 일부러 목소리 크게 해서 자꾸 물어보신다. 주변에 지인들이 계시니 들으라는 거지. 자랑하려고 말이지! 아마도 스피커 폰 모드인 듯하다. 영화 보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실 아버지가 남원 유일의 극장(메가박스) 앞에 플랭카드를 걸 수도 있다고 어제 인터뷰 때 반 농담으로 얘기했는데, 바로 저녁에 만들었다고, 내일부터 걸린다고 문자가 왔다!

<소리꾼>의 관람 포인트는. 마음껏 자랑해 달라. (웃음)
우리 영화가 12세 이상 관람가다. 감독님께서 그에 걸맞게 자극적이지 않고 예쁘게 담으려 노력하셨다.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충분히 즐길 요소가 풍성하다. 요즘 부모님과 자녀가 손잡고 다니는 경우가 드문 것 같은데, 우리 영화 보고 손을 맞잡고 귀가하지 않을까 한다.

판소리 영화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 이다. 그 주역인 오정해 배우가 은사라 이번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이번만이 아니라 선생님께서는 항상 도움 주셨다. 음악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손을 잡아 주셨다. 선생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이 있다. “사람이 가장 잘 될 때나 가장 힘들 때 항상 담고 있어야 하는 말이 있다, 봉근아. 바로 겸손이다”라면서 그 말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 그대로 실천하는 분이시고, 나 역시 닮으려 노력한다. 선생님은 무대 위나 아래 어디서든 아주 아름답고 훌륭한, 인간으로 예술가로 지표 같은 분이다.

TV 음악 프로 출연과 크로스오버 공연 그리고 이번 <소리꾼> 등 국악의 대중화에 힘쓰는 모양새다.
전통음악이 귀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좋아서 좋은 거라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문제는 접할 기회, 보여줄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부른다. 최근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해 BTS의 노래를 부르다 판소리를 접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젊은 세대 친구들에게 전통음악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국내에서 랩과 힙합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지 한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고 생각하고, 이에 음악 프로 <쇼미더머니>가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전통 음악도 마찬가지다. 매체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얼마나 노출할지가 관건이다.

이제 막 데뷔한 연기자 ‘이봉근’으로서의 각오 한마디!
말 그대로 이제 시작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뭐든 부딪쳐 하나씩 쌓아가려 하고, 밑천이 드러날 게 없으니 겁날 것도 없다. 단역이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불러만 준다면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이 있다면.
비록 비대면으로 했지만 지난주 오랜만에 공연했다. 코로나 이후 서서히 재개의 움직임이 보여 기쁘다. 무대를 늘 밟다가 못하니 진짜 병날 것 같더라. 요즘 감정적으로 말랑말랑해지고 정신적으로 유연해진 나 자신에 놀라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리하고, 사진 찍고 평소 하던 일을 하는 데도 행복하고 즐겁다.


2020년 7월 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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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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