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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린다는 말은 사치다, 3년만에 복귀한 <이웃사촌> 오달수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2018년에 개봉하려던 <이웃사촌>이 2년을 훌쩍 넘어 관객을 찾는다. 주연을 맡은 배우 오달수가 미투 의혹에 연루되면서 당연하게 영화의 개봉도 미뤄졌기 때문이다. <이웃사촌>은 <7번방의 선물>로 천만 영화에 등극한 이환경 감독이 오달수와 다시 뭉쳐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가택 연금 상태인 야권의 유력 정치인 ‘의식’(오달수)과 그의 옆집에서 불법 도청하며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업무를 맡은 정부 요원 ‘대권’(정우) 사이에 형성되는 우정을 웃음과 온기로 그린다. ‘의식’으로 분한 오달수는 올곧은 정치인의 면모만이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이웃인 평범한 모습을 선보인다. “개봉하게 돼 정말 너무 다행”이라면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떨리지만 한번은 해야 할 일이라 용기 냈다는 오달수를 만났다.

영화를 어떻게 봤나.
감독님이 본의 아니게 다듬을 시간이 많아서인지 편집 등 후반 작업이 꼼꼼하게 잘 돼 있더라. 일부러 (시간을) 벌어 드린 건 아닌데… 감동적으로 잘 봤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픽션이라고 하나 실제인물을 모티브로 했는데 선뜻 수락했나.
시나리오를 받고 읽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이 누가 되지 않을지였다. (알다시피) 워낙 큰 분 아닌가. 망설여지더라. 그래서 고사 아닌 고사를 했는데 이환경 감독이 ‘형,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거다. 휴먼드라마고 가족 이야기가 8할 이상이라 정치적인 부분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연기를 위해 참고한 점이 있다면.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는 그분의 어록을 듣고 자란 세대라 굳이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정보가 많았다. 그런데 연설 등을 다시 보니 익히 아는 어른인데도 새롭게 다가오더라.

연기 주안점은.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할지에 대해 감독님과 가장 길게 얘기했었다. 그 결과 사투리 구사가 어색하든가 그로 인해 연기가 부자연스러우면 오히려 누가 될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의식’은 야권의 유력 정치이지만, 한 가장이자 누군가의 이웃인 평범한 인물이다. 일상성을 위해 의견을 보탠 점이 있다면.
이환경 감독의 작업 스타일이 어떠냐면, 현장에서 배우와 스탭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편이다. 한마디로 의견을 많이 존중해 준다. 그래서 큰 무리 없이 떠오른 생각이 있으면 던졌었다. 꽤 오래전이라 영화 속 어떤 지점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건지 잘 구분이 안 가지만, 촬영하면서 첨삭한 부분이 꽤 있었다.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해 주연에 버금가는 기여를 하곤 했는데 조연과 주연 사이 연기에 있어 차이점이 있을까.
연기적으로 차이는 없다. 이번엔 캐릭터상 친근하면서도 무게감을 가져가려고 했다. 아들, 딸 등 식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장면이라도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웃기고 유머러스한 것은 좋지만 보는 입장에서 ‘왜 저래?’ 이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 영화 속 웃음과 유머는 옆집 도청팀이 우왕좌왕하면서 담당해주니, 나까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감독님이 역할 분담을 잘한 것 같다.
<이웃사촌>
<이웃사촌>

후반부 ‘의식’이 한 대의를 위한 선택에 공감되던가.
당연하다. 그분이라면 당연히 그랬을 거고, 영화로 봐도 그래야 할 상황이다.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87년 학번이라 1학년 때 거리에 몇 차례 나갔었다. 최루탄도 마셨고, 며칠이지만 구류를 산 경험도 있다. 당시 국민들 모두 거리에 나간 학생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줬다.

절친의 죽음과 딸의 사고를 연달아 겪으며 ‘의식’은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지만, 국민들 앞에 선다. 그 감정을 표출하는 데 있어 수위조절이 중요했겠는데 어떻게 가져갔나.
의식의 심정이야 말이 아니겠지만, 중심을 잡지 않는다면 그를 바라보는 동지와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나. 지도자라면 이런 아픔을 감내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연기기적으로 몰입되다 보니 ‘시대가 참 야속하다, 우리가 정말 가혹한 시절을 겪었구나, 없어도 될 희생과 비극이 너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도청팀을 이끄는 ‘대권’과 의식이 나누는 우정은 영화의 중요한 감정축이다. 대권을 연기한 정우 배우와의 호흡은.
정우 씨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배우다. 얘기를 나눌 때 그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실하면서 때 묻지 않았고 또 살아있다. 연기를 주고받는 데 아주 좋은 친구였다. 촬영 후에는 밝고 쾌활해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미덕을 지녔다.

나만의 컷을 꼽는다면.
질문이 나올 것 같아 미리 생각해 봤다. 다 좋지만 한 장면을 꼽는다면 ‘의식’이 친구이자 동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도 조문을 가지 못해 문을 앞에 두고 서 있는 장면이다. 그를 감시하는 경찰들이 집을 나갈 수 없다고 하니 의식이 “나가겠다는 게 아니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친구를 배웅하는 거다”라고 이야기한다. 대사도, 감정도 아주 좋아하는 장면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다. 소회 한마디 부탁한다.
감독님과 스탭 그리고 배우들이 고생해서 찍은 영화가 개봉할 수 있어서 너무 뜻깊고 감사하다. 개봉이 지체되면서 제작사의 손실이 너무 커서 마음이 너무 무거웠는데 늦게라도 하게 돼 다행이다. 코로나 시국에 상황이 여의치는 않지만, 모쪼록 관객이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오달수의 복귀를 바라보는 시각이 갈린다. 충분히 자숙했다, 아직 이르다, 진실은 뭔가, 왜 대응하지 않았나 등등 여러 시선과 물음이 따른다. 당시 그는 불거진 의혹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지 않은 채 자숙의 시간에 들어갔다. 그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촬영 중이던 경황없는 와중에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덤프트럭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이었다고 오달수는 그때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미투 의혹이 불거진 후 공식적인 인터뷰는 처음으로 알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IPTV 등에서 내가 출연한 영화를 왕왕 방영해줘서 관객 입장에서는 내가 크게 낯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떨린다. 슬기롭게 귀향살이하자는 생각으로 거제도에 머물다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근 3년 만이다. 사실 떨린다는 말은 사치스러운 표현이다. 무섭다는 말이 적합하다. 그러나 무섭다고 도망친다면 이 무서움은 점점 커질 것이다. 언젠가는 기자들을 만나, 내 생각과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한번은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라운딩 인터뷰 자리에 앉아 (기자들이) 자판치는 소리를 들으니 몇 년 전에 인터뷰하던 게 마치 어제처럼 익숙하고 좋다.

의혹 전 ‘천만요정’이라는 애칭을 달고, 작품마다 존재감을 뽐냈었다. 쉬기 전후 연기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있다면.
지난 3년 쉼의 시간이 불행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농사짓고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도 마음 한편이 항상 허전했다. 뻥 뚫린 마음이랄까. 늑골 한구석이 휑했다. 내가 있을 자리가 어디인가 싶고 그동안 내가 참 많은 사람을 받으며 연기했고 그게 참 행복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또 열심히 하면 응원해주지 않을지 기대를 하면서도 걱정도 되고 그렇다. 요정은 무슨…두 번 다시 그런 소리는 못 듣겠지. 한편으로 부와 명예는 한순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거제도에서 보낸 일상을 짧게 들려준다면.
혹시 하는 마음에 가족이 항상 옆을 지키더라. 거제도에 사는 형님과 형수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가족의 걱정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나도 가능한 한 단순하게 생각하고 생활하려고 노력했었다. 텃밭 농사를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물 주고, 그러면서 노동주 한잔하고, 또 낮에 밭일 좀 잠깐 하다가 하루해가 저물면 하루를 마친 기념으로 막걸리 한잔하고 뭐 이런 일상이었다.

미투 의혹 관련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려면 당시에 했어야 한다. 지금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의혹 제기자와 해결이 된 건가.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오래전 이후 한 번도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 서로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찾아가면 충격일 수 있어 (만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두 차례 입원하면서 내가 충격을 치료하고 귀향 간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시간을 보냈듯 그분도 일상을 잘 영위하길 바란다.

당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고 일이 그 정도까지 커졌는지도 몰랐다. <이웃사촌>에서 매우 중요한 신을 촬영하던 중 처음 소식을 들었다. 영화 속 마포대교 신인데, 실제 마포대교는 아니지만, 지방의 유사한 지역을 로케이션해 촬영 중이었다. 보조출연자만 2~300명인 규모가 매우 큰 신이라 서울 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나가 애가 타서 전화를 걸었더라. ‘왜 가만히 있냐고’ 말이지. 그러면 나는 촬영해야 한다고, 끊자고 대꾸했는데 며칠 후 서울에 오니 마치 내가 변호사 등을 동원해 작전 짠 것처럼 왜곡돼 있더라. 한마디로 덤프트럭에 받힌 것 같은 충격이었다. 언론에 나간 대로 대책 회의라도 했다면 그렇게 충격받지 않았을 거다.

<이웃사촌>이후 독립영화 <요시찰>에 참여했다.
<이웃사촌>은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었고, <요시찰>은 의혹 이후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다. 감옥이라는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아주 흥미롭다. 영화제에 출품한다고 들었는데 성과가 좋으면 보람 있을 것 같다. 두 달 이상 쉰 적이 없다가 한 2년 만에 작업하니 ‘영화란 게 이런 재미가 있구나’ 싶었다. 독립영화라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삼시세끼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그래 이 맛이야’ 했었다.

복귀에 반감의 시선도 있다.
물리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화를 보고 판단해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의혹 이후 촬영한 <요시찰>이 진정한 의미의 복귀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마지막 질문!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요새 술 마시는 느낌이 달라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마시면 술이 쓰고 독이 된다. 다행히 요즘엔 그리 나쁘지 않다. 한해 한해 주량은 줄지만 말이다.


사진제공_씨제스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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