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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삶은 ‘그냥 달리는 것’ <새해전야> 김강우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김강우는 새해를 일주일 앞둔 연인과 가족의 에피소드를 두루 다룬 홍지영 감독의 <새해전야>에서 이혼 4년째인 강력반 형사 ‘지호’역을 맡아 유인나와 함께 연기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작품 개봉일이 지난 연말에서 올해 2월로 연기됐고, 같은 이유로 배우 김강우의 지난 한 해 일정도 각종 지연과 변경으로 가득 찼다. 예상치 못하게 늘어난 물리적인 시간 안에서 그가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배우란 뭘까’라는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답을 내렸냐고 물으니 “진부한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 듣는 이의 기대치를 낮춘다. 그의 말처럼 아마 그건 뻔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듣는 입장에서 정말 관심이 가는 대목은, 평범하고 흔한 의미에 머물지도 모를 이야기를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전하는 그의 어떤 태도일 것이다.


기자와의 화상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일 것 같다. 낯설지 않은가.
지난해 모두가 큰일을 겪지 않았나. 그러고 나서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언제 또 다 같이 집에 갇혀 있는 경험을 하겠나. 언제 또 혼자서 화상 인터뷰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을 혼자 읽고, 혼자 답하고, 혼자 미친놈처럼 웃겠는가.(웃음)

지난 한 해는 어떻게 지냈나. 코로나19로 여러 신작 제작이 중단되면서 배우로서의 삶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제작 편수가 매우 많이 줄었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도 확연히 줄었고. 자영업자가 많이 힘든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도 <새해전야>를 찍고 작년 11월까지 다른 작품 촬영을 못 했다. 여러 이유로 일정이 지연되고 취소됐다. 그런데 누군가 의도해서 생긴 상황은 아니니까, 다 같이 이겨내야 한다. 한편으로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 배우가 뭘까.

배우가 뭘까.
이렇게 힘든 시기를 살 때는 굳이 사람들에게 영화가, 배우가 없어도 되지 않나. 그렇게 (생존에) 중요한 건 아니까. 그런데,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느낌이었다. 배우가 해야 할 일은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거니까. 그게 이 직업의 가장 큰 역할이다. 더 열심히, 더 신념을 가지고, 더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해야 한다. 그런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되더라.


극장이 아닌 OTT 플랫폼으로 영화 소비가 집중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집에서 TV로 채널을 돌리며 영화를 보는 게 얼마나 편한가. 한동안 공포감도 있었다. 사람들의 삶이 아예 이렇게 바뀌어버리면 어떡하나. 하지만 극장에 가는 것과 OTT 관람은 다르다. 극장으로 가기까지의 설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성, 뒤돌아 나와서의 여운, 이런 영화관의 경험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 과정이 생략된다면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기억에 잘 안 남을 것 같다. <새해전야>가 새해를 시작하면서 개봉하는 첫 한국 영화인 만큼 다시 관객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돌리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홍지영 감독은 ‘지호’와 ‘효영’이 <새해전야>에서 유일하게 ‘어른스러운’ 커플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겉으로는 “네” 했지만 사실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목소리를 깔며) “효영씨” 이럴 순 없잖은가.(웃음) 어른이 됐다고 표현법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나도 20대 때와 똑같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다. 어른스럽다는 건 큰일이 닥쳤을 그간의 경험치 덕에 좀 더 여유롭게 일을 해결하는 것 아닐까 하고. ‘지호’에게서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으면 했다.

이혼한 지 4년 째인 강력반 형사 ‘지호’는 막 이혼을 앞둔 ‘효영’의 신변 보호를 맡게 된다. 당신의 실제 삶과는 영 괴리가 있는 인물이다.
물론이다. 난 이혼남이 아니니까.(웃음) 그렇다고, 이혼남이라고 뭐가 크게 다르겠나. 어차피 ‘지호’라는 인물은 대본에 모든 게 쓰여있었다. 집에서는 잠만 자느라 침대 비닐 커버도 뜯지 않은 사람이고, 또 좀 지저분했다. 어딘가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현실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오히려 어려웠던 연기는 전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이었다.

전 아내가 ‘지호’의 삶을 응원하더라. 참 쿨~ 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너무 쿨하다고 생각했다. 외국 영화에서 많이 보는 장면같았다. 감독님과 이야기해보고, 검색도 많이 해봤는데 의외로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 아마 원수가 되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있을 텐데,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 단계에서 이혼하면 그렇게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는 것 아닐까. 두 사람의 전사를 모르긴 하지만 그다지 나쁘게 헤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더라.

114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여덟 커플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할당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당신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는데 아쉬움도 있을 것 같은데.
여러 멋있는 인물이 있는데 꼭 나까지 매력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을까.(웃음) 연기하다 보면 아쉬운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커플별로 시간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긴 호흡을 보여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관객 입장에서는 상상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이연희X유연석, 염혜란X천두링X이동휘, 수영X유태오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커플은.
사실 현장에서는 다른 커플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촬영 장소가 다 달랐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나에 간 이연희, 유연석 커플은 말로만 듣고 영화에서 처음 봤고.(웃음) 국제결혼을 하는 (이)동휘 씨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진짜 그런 경우가 있을 것 같더라. 태오와 수영의 이야기도 가슴이 아련했고. 그런데 제일 재미있었던 건, 가끔 출연한 카메오들의 활약이다.(웃음)

한 차례 개봉을 미룬 <새해전야>가 2월 관객과 만난다. 이후 당신의 작품 일정은 어떻게 되나.
<새해전야>라는 제목 때문에 작년 말부터 개봉일을 두고 전전긍긍했다. 2월 구정 전에 개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소임은 다 한 것 아닐까 싶다. 올해는 일을 많이 하려고 한다. 작년에 일을 많이 못 했다.(웃음) 계획은 그런데, 실행은 어떨지 모르겠다.

제안받은 작품 안에서 출연작을 골라야 하는 만큼 고민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출연 여부는 주로 누구와 상의하나.
제안이 들어오는 작품 안에서 골라야 되는 건 배우로서 숙명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출연할까, 말까를 가족과 상의하기도 좀 힘들고.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재미있을 것 같냐”고 묻는 정도다. 결국은 오랜 시간 날 알고 함께 작품을 선택해온 매니저와 상의한다.


가끔 외로운 기분이 들 것 같다.
외롭다. 많이. 그런데 그걸 즐겨야 한다. 그래야 이 직업을 진짜 사랑하게 된다. 예전에는 내 팔자가 어떻길래 이렇게 힘들고 지긋지긋한 일을 해야 되는지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징글징글하던 연기가 점점 소중해진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듯, 어떤 일이든 첫 10년 정도는 미웠다 좋았다 하는 반복인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이것 아님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는데 지금은 그런 단계다.

<새해전야>의 대사처럼 ‘내 인생의 비수기’ 혹은 ‘내 인생의 성수기’를 이야기해본다면.
항상 비수기라서.(웃음) 배우라는 직업은 성수기와 비수기를 나누면 아마 너무 골치가 아플 거다.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42.195km를 뛰는 마라톤에서 지금껏 몇 킬로미터를 왔을지 생각해야 한다. 한 작품, 한 작품 평가받으려 들면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뛰다 보면 언덕도 나오고, 갑자기 해가 비추기도 하고, 내리막도 평지도 나온다. 난 지금도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진부한 표현이다.(웃음) 그런데 인생 내 맘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지 않나. 그냥 달리는 거다.

그렇게 달리다가 쉴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운동선수가 한 경기를 뛰고 나면 엄청 피곤한데도 몸이 뜨거워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우리도 그렇다. 배우는 육체노동자이자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니까. 연기하고 난 뒤 에너지가 바닥나면 너무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만큼 버닝이다. 그러면 ‘쿨타임’이 필요한데, 그럴 땐 아주 조용~하게 가만히 있는다. 여행을 가도 음악도 안 듣고 말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

가족의 이해가 필요한 순간도 있겠다.
혼자 사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가정이 있는 경우라면 상대의 이해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우는 좀 이기적인 직업이기도 하다. 대신 일 하지 않을 때는 가족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오래 붙어있으면 싸우더라.(웃음) 사람은 적당히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작년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웃음) 집에서 의자를 뒤로 제끼고 책을 보다가 잠들었는데, 난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 한동안 그걸 많이 못 했었다.

사진 제공_에이스메이커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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