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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그리고 영원히, 콜린 퍼스-스탠리 투치 <슈퍼노바> 해리 맥퀸 감독
2021년 5월 12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캠핑카로 여행길에 나선 두 남자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 샘은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챙기려 하고, 터스커는 그런 샘에게 혼자 할 수 있다고 도움을 거부한다. 조기치매에 걸린 터스커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샘은 터스커의 곁에서 그의 최후까지 돌보겠다고 호소하지만, 터스커는 남겨질 샘이 걱정된다.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는 오랜 시간 최고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두 남자, 샘과 터스커로 각각 분해 관록에 걸맞게 절제된 연기로 깊은 감정을 길어 올린다. 주연과 연출을 겸한 <힌터랜드>(2014)로 주목받은 신예 감독 해리 맥퀸은 두 남자의 마지막 여정을 담담하게 따라가며 유한과 무한, 삶과 사랑, 그리고 관계에 대해 질문 던진다.


(* 해당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타이틀 ‘슈퍼노바’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직접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만 본다면, ‘초신성’(슈퍼노바)은 죽어가고 있지만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서 터스커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작은 작품에는 영화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고, 우주보다 더 광대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존엄성을 고민하는 ‘터스커’(스탠리 투치)가 광활한 우주의 존재 자체를 탐구한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타당해 보였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각본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영화는 정말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속 복잡하고 섬세한 이야기는 사실 감정적으로 시각적으로 무한한 주제를 담고 있죠.

샘-터스커 두 사람 간에 오가는 감정, 사랑과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 등을 오롯이 담는 영화인만큼 캐스팅이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스탠리 투치 배우가 먼저 캐스팅됐다고 들었습니다. 배우의 어떤 면이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나요?
스탠리 투치는 정말 다재다능한 배우입니다. 유쾌한 사람인 만큼 감동을 주는 사람입니다. 터스커라는 역할은 그에게 두 요소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아주 훌륭히 연기해 주었습니다. 터스커라는 역을 준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촬영 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탠리는 캐릭터가 가진 뉘앙스와 그가 겪는 질병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스탠리는 자료 조사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영화에서 그려지는 심오한 감정선을 완벽히 표현해냈죠.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실제 삶에서 또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콜린 퍼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두터운 신뢰와 믿음이 바탕있었고, 이는 촬영 내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죠. 저와의 관계에서도 셋이서 두터운 신뢰를 가지고 작업에 임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공동 작업이었죠.

원래는 콜린 퍼스 배우가 ‘터스커’를, 스탠리 투치 배우가 ‘샘’ 역을 연기하려다 배역을 체인지했다고요. 배역이 바뀌면서 시나리오나 연출에 있어 변경되거나 추가한 점이 있다면요.
배역을 바꾸기로 한 시점은 초반쯤 결정된 사안이었습니다. 영화 작업을 위한 계약을 맺은 후 2주 정도 지난 후였죠. 가장 잘한 결단 중 하나라 생각하지만, 두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았어도 훌륭히 소화해 냈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터스커를 미국인으로 그리기 위해 연출적 변화를 염두에 두었지만, 사실 큰 노력이 필요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두 배우와 함께 작업한다는 게 신인감독 입장에서는 기쁘면서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촬영 현장의 분위기나 나눈 대화 등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제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었습니다. 솔직히, 두 배우가 유명한 배우라는 사실을 5분 만에 잊어버렸을 정도였죠! 한순간에 가까운 친구이자 공동 작업자가 되어, 모든 순간 한 팀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우부터 제작진까지 모두 같은 숙소에서 지냈고, 촬영이 끝날 즈음에는 하나의 대가족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촬영이 끝난 오후, 스탠리는 매일 저녁 콜린을 위해 저녁을 손수 요리했고, 저도 가끔 함께 했습니다. 다음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스탠리의 유명한 칵테일을 맛볼 기회도 있었죠.
<슈퍼노바>
<슈퍼노바>

초반 샘-터스커는 아주 오래된 부부 같은 사실적이고 생활감이 묻어나게 투닥거리는데요. 혹시 참고로 한 인물이 있을까요.
아니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새롭게 창조한 인물로 쓰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 영화 또한 제가 살아온 인생에서 모든 영감을 얻었겠지만, 각본을 쓰며 가장 노력한 부분이 캐릭터의 오리지널리티입니다. 이런 작업 방식에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창작한 캐릭터로부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죠.

‘인생을 내 의지로 살 수 없는 것은 싫다’고 터스커는 스스로 죽음을 준비합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자기 의지로 최후를 결정하는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에서도 때때로 등장했는데요. 치매를 소재로 한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치매를 판정받게 되었고, 이 경험을 통해 얻은 영감이 <슈퍼노바>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선택한다는 주제에 치매라는 소재를 더하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였으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채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논점에서 확실히 치매라는 질병이 가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서서히 자아를 앗아가는 병을 안고 산다는 점에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에 더욱 마음이 갔던 것 같습니다.

만일 감독님이 그 상황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 평소의 견해가 궁금해 여쭙는 것이니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영화를 제작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탐구와 여정이었다고 볼 수 있죠.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터스커 혹은 샘 어느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상대방에게 가능한 가장 쉬운 삶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싶습니다.
 <슈퍼노바> 촬영 현장
<슈퍼노바> 촬영 현장

음악과 영상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로케이션과 해당 지역을 소개해주세요. 또 촬영 시 신경 쓴 지점은요.
네, 영국 북부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이곳의 자연 풍광은 영화가 흘러가면서 스토리가 대조되는 포인트마다 이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죠. 광활한 대자연 한가운데에 조그마한 벤을 위치시킴으로써, 시각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고 감정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샘은 피아니스트, 터스커는 작가인데요. 예술가로 설정한 이유와 특히 피아니스트와 작가로 설정한 까닭은요.
터스커가 앓는 치매는 후두피질 위축증 (Posterior Cortical Atrophy)로 기억 손상이 시작되기 전에 눈에 보이는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과 복잡한 활동을 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희귀병입니다. 빠르게 읽고 쓰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병이죠. 작가라는 설정은 터스커가 치매를 통해 겪어야 할 비극이 더 극대화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후두피질 위축증 환자는 자아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생계 위협을 먼저 마주하게 되죠.

샘의 경우는 항상 섬세한 손길로 연인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나누는 인물로 상상해 왔기에,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한 직업에 관심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었고, 각본을 쓰며 자연스럽게 샘을 피아니스트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샘이 터스커의 몸을 피아노 삼아 연주를 하던 장면은 여기서 떠올리게 되었죠. 또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콜린 퍼스가 연기한 라이브 연주 장면은 저를 완전히 매료시켰습니다.

콜린 퍼스가 엔딩에서 엘가의 곡을 직접 연주하는데요.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영화 마지막 신에 등장하는 피아노 연주 장면은 라이브로 담고 싶었고, 콜린은 실제로 이 장면을 위해 라이브로 연주했습니다. 이 장면을 위해 염두에 둔 여러 음악 중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마지막의 감정선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고, 동시에 콜린 퍼스가 실제로 연주할 수 있을 만한 곡이라 생각했습니다. 콜린 퍼스는 연주 장면을 위해 밤낮으로 연습한 끝에 촬영 마지막 날 100명의 관중 앞에서 라이브로 피아노 연주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천재적 재능이죠.

관객이 주의해서 봐줬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짚어주세요.
이런 종류의 병을 앓고 살아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환자 주변 모두가 영향을 받고 함께 힘든 시간을 겪게 되죠. 연인에서 간병인이 되어야 하는 인물에게도 병을 앓고 죽음을 향해가는 인물만큼 집중하려 노력했습니다.

영화를 위해 치매 관련 자료 조사를 거치며, 일반적으로 불치병으로 알려진 이 질병이 사랑, 관계, 인간 역학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매우 놀랐습니다. 천천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면서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서로 간의 관계가 바뀌어 가는 과정이 저를 사로잡았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많은 감정을 느끼고, 절망적인 현실과 서로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변화하는 관계의 흐름을 꼭 영화로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감독님이 생각하는 두 사람의 후사를 살짝 들려줄 수 있을까요. (웃음)
영화가 담지 않은 두 사람의 후사는 영화감독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각자 그들만의 터스커와 샘의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말이죠. 두 사람의 미래에 관한 제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열린 결말이 가진 의미를 타락시키겠죠.

한국 영화를 좀 보시는지요? 좋아하는 작품과 감독, 배우 등이 궁금합니다.
영화 <기생충>의 성공은 최근 많은 사람이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 할 수 있죠. 사실, 한국 영화산업은 수십년 동안 독창적이고 훌륭한 작품들을 제작해 왔습니다. 정부의 검열이 이루어지던 시대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각기 다른 시대를 거치며 변화해온 영화 역사 또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영화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의 역사를 더욱 심도 있는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 또한 제가 좋아하는 영화이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의 글로벌적인 활약을 보며 자라왔습니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모든 필모도 좋아합니다.

배우로도 활동 중인데요.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네! 연기 활동도 더 이어가고자 합니다. 이번 봄에 촬영하기로 한 작품이 있었으나 연기된 상태입니다. 연기 활동은 항상 영광이며 즐거움입니다. 행운을 빌어주세요!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진심으로 몇 년 동안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매료되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집에서 한국 요리를 해 먹기도 합니다. 영국에 살면서 좋은 점은 한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초대만 해주신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국에 <슈퍼노바>를 상영하게 되어 영광이며 또 다른 작품을 만들게 된다면 한국에서 여러분과 함께 영화를 관람할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사진제공_찬란

2021년 5월 1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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