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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F] 미투운동의 방관자 <준호> 부석훈 감독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미투’ 운동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방관하거나 외면하고 혹은 동조했던 여러 얼굴이 복잡한 양상으로 얽혀 있다. 강릉국제영화제 국제장편경쟁부문에 초청된 <준호>를 통해 부석훈 감독은 어떤 담론을 던지고 싶었다.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치유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명료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까. 사회의 대다수가 방관자인 상황에서 돌아볼 건 돌아보고 마주할 건 마주해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지 않을까. 심사숙고하고 충분히 책임질 각오로 민감한 소재를 빼 들었다는 부 감독을 만났다.

영화는 연극계를 중심으로 ‘미투’(#MeToo) 운동의 여파를 다룬다. 어떤 계기로 작품을 만들었나.
아끼는 후배가 극 중 ‘준호’처럼 힘든 상황에 처했었다.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친구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나리오를 쓴 게 시작이었다. 그래서 초고를 보면, 마주할 건 마주하고 돌아볼 건 돌아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편지같이 느껴진다.

주인공 ‘준호’(조원준)는 자기가 속한 극단 대표의 성추문이 불거지면서 오랜 시간 꿈꿔온 연극배우의 길을 접고 미국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동료의 상황을 살피지 못했던 미안함과 후회, 무대를 향한 그리움 등의 복잡한 감정으로 괴로워한다.
<준호>는 방관자에 대한 이야기다. 기획하면서 피해자가 아닌 방관자를 부각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방관자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여성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성과 관련된 두려움이나 공포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성 입장에서 가장 진솔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 싶었다.

공감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테니…솔직한 인정이다.
불거져 나오는 미투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웠던 게 피해자와 가해자에 초점을 맞춰 그들만 부각한다는 점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처우는 어떻게 보면 명료하다. 잘못한 사람은 재판을 통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사회는 피해자가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해와 피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게 상황의 개선에 무슨 도움이 될까. 방관자가 가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방관’했다는 면에서 죄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화를 통해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고자 한 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성 착취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걸 전하려 했다.
 <준호>
<준호>

주변에서 뭐라고 하면서 만류했고 또 어떤 각오로 진척해 나갔는지.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담론을 던지고 싶었다.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시기와 적절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준호>를 기획한 2019년에는 미투운동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때라 이야기를 꺼내 들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 또 하나는 미투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여러 양상을 띤 복잡한 사안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이에 대해 다루는 게 필요하지만, 남성 감독이 다룬다면 여러모로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성폭력 피해자분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2차 피해를 방지할 자신이 있냐고 묻더라. 확신이 없어 서너 달 작업을 보류한 후 숙고하면서 얻은 결론은 두 가지였다.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건 없으니 충분히 책임질 각오가 있으면 하자는 것,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꺼내듦에 있어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다.

준비과정에서 유사한 경험이 있는 여러 사람을 만났을 텐데, 어떤 반응을 받았나.
방관자를 만났을 때는 열띤 양상이 되는 게 그 안에서도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억울하게 피해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안함과 자조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여러 양상을 극에 녹아내려고 노력했다. 피해자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했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영화 작업 중간쯤 안도한 일이 있다. <준호>의 PD 중 한 분이 작업 도중에 하차했는데 그 이유가 그분도 비슷한 피해 경험이 있어서 작업을 끝까지 서포트하지 못할 거 같아서였다. 1차 편집본을 보더니 영화를 통해 방관자에게 감정을 이입해 어떤 미화를 시키지 않았고, 이런 담론을 던진다는 데서 볼 의미가 있겠다는 의견을 주더라. 그 말을 듣고 자신을 좀 얻었었다.

‘준호’의 내밀한 감정이 세세하게 표현됐다고 느꼈다. 개인적인 경험이 묻어난 건 아닌지 문득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후배의 경험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캐릭터에 상당 부분 투영될 수밖에 없었고, 처음 미국에 간 준호의 모습엔 내 경험이 많이 반영됐다. 준호 역의 (조) 원준과는 늘 함께 작업하던 사이로 만나서 영화보고 주기적으로 스터디 하고 때때로 단편영화를 찍곤 했다. <준호>는 민감한 주제라 조심스러웠지만, 할 얘기는 하고 가자고 의견을 모아 처음부터 함께 기획하고 완성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농담처럼 잘 안되면 다른 일을 알아보자고 하면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집착 아닌 집착이 있기도. (웃음)

극 중 성추문에 휩싸인 극단 대표를 보면 실제로 ‘미투’ 당한 특정인이 떠오른다. 의도한 건가.
사전 정보 없이도 극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큰 틀 안에서 평소 작업한다. 영화를 보고 특정인을 떠올린다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다만 특정 사람과 집단에 한정되는 건 피하고자 했다. 원래는 한 극단을 모티브로 해서 시작했지만,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연극인을 만나며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과 견해를 접했고 이를 극에 반영했다.
<준호>
<준호>

하이라이트를 꼽는다면, 준호가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미국인들 앞에서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일 것인데, 하얀 분장에 담긴 의미는.
두 측면을 생각했다. 준호는 전통극을 주로 하는 극단에서 양반 역을 맡아 (배우로서) 크게 될 가능성을 보인다. 그가 맡은 양반을 통해 겉보기에는 점잖아 보이나 그 속에는 백정이나 무당 등의 기운을 지닌, 즉 한 인물 안에 최상층과 최하층이 혼재하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또 하얀 분칠은 한국의 전통적인 화장이 아닌, 일본 가부키 같은 인상을 준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구조적이고 환경적인 폐단은 한국 근현대사가 유교의 부정적인 관습과 일본이 행한 억압의 잔재로부터 출발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하얗게 분칠한 얼굴’로 표현해 봤다.

주인공 ‘준호’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쓴 것도 어떤 의도가 있을 것 같다.(웃음)
메인 PD가 남성 감독이 남성 방관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OK.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니까 제발 제목만이라도 바꾸자고 하더라.(웃음) 그럼에도 ‘준호’로 한 건 그가 느끼는 실제의 시간을 관객이 그대로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영화를 보는 당신이 준호와 같은, 우리 사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방관자일 수 있다는 걸 한 번쯤 상기시키려 했다. 그래서 보편적이면서도 너무 느낌이 세지 않은, 즉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름을 생각한 끝에 ‘준호’라고 붙였다. 남자 이름이 명확하면서도 어떤 선입견이 담기지 않은 이름, 외국 영화에서 신원미상을 말했 때 쓰는 ‘존 도’(JOHN DOE)나 ‘제인 도’(JANE DOE) 같은 느낌으로 선택했다.

장편 데뷔작인 <준호>로 올해 강릉국제영화제 국제장편경쟁부문에 올랐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다. 처음 영화를 접한 건 대학교(동국대)에 입학하면서부터다. 다른 공부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음을 느끼고 학교를 그만둔 후 쉬엄쉬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뭘 할지 고민했었다. 그렇게 늦게 영화 공부를 시작해서 졸업 후에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2년간 공부하면서 사이사이 단편을 찍고 또 다른 영화의 스탭으로 참여했다. 졸업 즈음부터 기획하고 준비한 작품이 <준호>다.

엔딩크레딧을 보니 배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스탭이 외국인인데 미국에서 제작한 건가.
총 20여회차 촬영했는데 주로 미국에서 찍다 보니 기술 스탭의 대부분이 현지인이었다. 한국에서는 8일 동안 촬영했고 이때는 배우들이 스탭을 겸하며 찍었다.

영화제 기간 중 GV를 통해 관객과 대면하는데 영화를 어떻게 봤으면 하나.
편견없이 봐줬으면 한다. 혹시라도 미리 접한 주제나 스토리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직접 보고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차기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코로나로 인해 일이 끊기다 보니 잠깐 한국에 들어온다고 들어온 게 벌써 1년이 지났다. 그간 시나리오 작업을 몇 편했으나 아직까지 좋은 소식은 없다. (웃음) 굉장히 막연하지만 어떤 제안을 받아서 다음 주 미국에 들어가게 됐고, 가봐야 알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요즘 코로나 관련 뉴스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백신 접종률은 오르고 확진자는 감소한다는 소식에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 ‘위드 코로나’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렌다.


사진제공. 강릉국제영화제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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