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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에서도 동료를 만들 수 있다”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박소현, 송영윤 감독
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꽃 기자]

 박소현 , 송영윤 감독 (가장 오른쪽, 가장 왼쪽)
박소현 , 송영윤 감독 (가장 오른쪽, 가장 왼쪽)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긴 여정을 떠나는 대안학교 로드스꼴라 학생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다.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한국의 입시 중심 교육과정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은 역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각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시도를 해나간다. <야근 대신 뜨개질>(2015)로 ‘회사생활 이외의’ 대안적인 삶을 직접 고민했던 박소현 감독은 이번에는 동료인 송영윤 감독과 함께 “학교 밖에서도 동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들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큐멘터리 <야근 대신 뜨개질> 이후 새로운 작품을 개봉한다. 대안학교 로드스꼴라 학생들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탑승한 여정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를 촬영하게 된 계기는.

박소현 : <야근 대신 뜨개질> 당시 나는 2년 동안 조직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긴 조직 생활이었다.(웃음) 그때 다니던 회사가 로드스꼴라라는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17~19세 학생들이 가장 많았는데 ‘이민’, ‘세계화’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달간 여행을 하고 그 후에는 관련된 글을 쓰거나, 음반을 내거나, 영상을 만드는 매체 작업으로 결과물을 내어놓는 식이었다. 당시 영상 매체 담당 교사 일도 함께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작품에서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시에 퇴근 후 동료들과 뜨개질을 하며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내용을 다뤘다. 이번 작업은 어떤 목적으로 시작됐나.

박소현 : 로드스꼴라를 졸업하고 20대 중후반이 된 청년들이 다시 로드스꼴라의 교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고, 학교 밖에서도 동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실험(프로젝트)을 해나간다. 동시에 자립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하고있더라. 그 친구들이 로드스꼴라의 10대 청소년을 데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려고 하는데, 내게 그 과정을 기록해 달라고 했다.

송영윤 감독이 공동 연출로 이름을 올렸다.

송영윤 : 정규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는 일반적인 코스를 겪은 입장이다 보니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낯설더라. 어떤 이들일까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다. 다만 그런 개념에 매몰돼 그들을 특별(특이)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안 된다는 생각을 안고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다. 교육 과정이 달라도 사람이 다른 건 아니니까. 어떤 틀에 묶어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실제 여행을 다니면서 겪어본 그들은 너무 사랑스러웠고, 나이 차이는 거의 20살 가까이 차이 났지만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서 장난스럽게 먼저 다가갔던 기억이다.

박소현 : 송영윤 감독은 <구르는 돌처럼>(2018) 작업 당시 촬영을 맡았던 홍효은 감독님에게 소개받았다. 홍 감독님이 내 성향과 세계관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송 감독님이 그걸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권해주신 것 같다. 송 감독님은 촬영 전공은 아니지만 장편 극영화 현장에서 프로듀서, 조연출 등으로 많이 일하셨기 때문에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들을 다루는 꼼꼼함을 보여주셨다.

영화에서는 ‘평화’가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다만 ‘평화’가 의미하는 게 남북의 평화인지 혹은 인간으로서 내면의 평화로움인지 구체적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소현 : 촬영 당시 출연자들은 ‘서울역을 국제 역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역 앞에서 공연을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분단의 시대에서 평화를 외치는 활동이라고 했다. 다만 ‘평화’라는 건, 그들의 외침일 수는 있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본질적인 메시지는 아니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그들이 도대체 왜 1년 동안 그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을까? 였다.


‘평화하다’라는 영화 속 표현이 다소 구호적으로 느껴졌는데.

박소현 : 그래서 나도 인터뷰를 하면서 그 질문을 여러 번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평화’라는 게 뭐냐고. 그때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가 ‘내 일상이 지금처럼 계속 유지되는 것’이었다. 로드스꼴라에서 하는 여러 활동이 결과적으로 (대단하게) 무언가를 바꿔 놓지는 않아도,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무언가를 통해 무력감이나 불안감은 잠재우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아마 그게 그들이 말하는 ‘평화하다’에 가장 가까운 상황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출연자들의 무력감과 불안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박소현 : 로드스꼴라에는 여러 사정으로 자발적으로 대학에 가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 입시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게 항상 너무 문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서 출연자들이 퍼포먼스를 끝내고 나면 거리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다가와 물어본다. “어디 학생들이야?”라고. 아무리 ‘평화하는 청년들’이라는 표현으로 자신들을 소개해봐도 사람들에게는 ‘어디 대학에서 온 사람들’로 인식된다. 20대라는 이유만으로 대학생 그룹으로 획일화되는 것이다.


<야근대신 뜨개질>에 이어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영화로 봐도 되겠다.

박소현 : 학교 밖에서도 충분히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동료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출연자들이 친구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그림을 그려주는 장면도 많이 넣었다. 입시 위주인 한국의 일반적인 학교생활에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무대 앞으로 나와 일상적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상상하기 힘들지 않나. 다큐멘터리 만들기 수업을 하러 학교에 가 보면 “사실은 시를 좋아해요”라거나 “아직 ‘성덕’은 되지 못했지만 덕질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고백을 해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마음을 표현을 하는 순간 ‘오그라든다’는 이유로 친구의 무리에 끼기 어려워지는 상황 아닐까 싶더라.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렴풋이 ‘그래 이렇게 사는 친구들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다만 감독의 의도가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박소현 : 나도 아쉬운 점이 많다. ‘평화’라는 키워드의 힘이 너무 셌던 것 같다.(웃음) 그러다 보니 영화를 다 보고 난 사람들이 혼란스럽거나 모호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광주여성영화제 김채희 집행위원장님이 이 영화를 보고 ‘대안적인 삶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라는 표현을 써주신 걸 봤다. 그 표현이 참 반가웠다.


해외 촬영을 하는 동안 실무적 어려움은 없었나.

송영윤 :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지원받은 장비를 들고 해외로 간 상황이었다. 그런 경우에는 (관세 없이 임시 통관을 가능케 하는) ‘까르네’ 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기차를 타고 각 나라의 국경을 지날 때마다 카메라부터 메모리, 배터리 하나하나까지 우리가 빌려 간 모든 촬영 장비를 보여주고 도장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모스크바에서는 현지 가이드가 아무리 찾아봐도 까르네 담당자가 없다며, 그냥 가도 될 것 같고 하는 거다. 그렇게 이동했다가 벨라루스에서 ‘빠꾸’를 먹었다.(웃음)

이런!

박소현 : 모스크바로 13시간을 다시 돌아가서 까르네 도장을 받아 왔다.(웃음) 출연자들은 먼저 벨라루스로 떠나게 한 상태였다. 그들에게 카메라를 주고 (알아서) 찍으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영화에 모스크바 이후 베를린까지 가는 과정의 환승 장면이 담기지 못한 게 그 이유 때문이다. 우리 영화에서는 국경의 경계를 넘는 장면이 가장 중요한 지점인데 볼 때마다 (생략된 부분이) 아쉽다.

영화를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건.

박소현 : 대륙을 기차로 여행한다는 ‘감각’을 관객이 함께 느끼게 하고 싶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모스크바에 도착하기까지 열흘이 걸리고, 그동안 시차가 7번 바뀐다. 그 안에 있으면 시공간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느껴진다. 백야가 계속되면 한국의 ‘빨리빨리’ 같은 건 너무나 무의미하다. 방금 아침을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다시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 감각을 실제로 느끼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더 지루하게 연출하려 한 대목도 있다.


‘더 지루하게’라니…(웃음)

박소현 : 작품을 연출하고 주변의 피드백을 받아 보니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발랄할 거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기차 안에서 뭘 하면서 노는지, 그런 게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식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보는 이들의) 욕망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중점을 뒀다.

송영윤 : 언어라는 게 사람의 생각을 가두는 것 같다. ‘10대니까’, ‘20대니까’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기대 심리가 분명 있었던 것 같고, 우리는 그 인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 점이 우리 영화의 특별한 지점일 거라고 본다. 출연자들이 여행 이후 직접 썼던 책을 영화의 형식에 반영하기도 했다. 실제로 장을 넘기며 책을 읽듯이 화면을 구성했고, 감성적인 텍스트를 직접적으로 넣은 부분도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출연자들이 느꼈던 감정을 대리하고 싶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나.

송영윤 :출연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역 앞에서 퍼포먼스를 열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며 여행을 한 건지, 또 이 영화를 찍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한 건지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셨으면 한다. 극장에서 나왔을 때 약간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박소현 :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경험이 더 필요할까, 그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됐으면 한다.

사진 제공_ 씨네소파

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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