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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글의 산업적 가치를 찾았다’ 팩트스토리 고나무 대표
2022년 1월 28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꽃 기자]


실화 기반 원천 스토리 기획사 팩트스토리 고나무 대표

한겨레 사내벤처로 2018년 설립 후 오리지널 웹소설 15편 기획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포함 5편 영상화 계약 성사

영화, 드라마 제작사에 ‘취재 컨설팅’ 제공하며 역할 확장

2022년 영화, 드라마 공동제작까지 진출할 것



한겨레 기자로 일하다가 2018년 팩트스토리 사업을 시작했다. 언론매체에 소속된 기자가 사내벤처를 꾸리고 성공적으로 자립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지존파에 납치됐다 풀려난 여성의 이야기를 기사*로 쓴 적이 있다. 당시 자주 읽었던 미국 기자들의 논픽션 기사를 의식적으로 흉내 내서 써 봤다. 예를 들어 비교하자면 와이어드, 뉴욕타임스같은 매체에 글을 쓴 제시카 브루더의 <노마드랜드> 같은 식이었지. 그 기사가 나간 뒤 영화사 네 군데에서 전화가 왔다. 그 중에서는 (<관상>을 제작한) 우주필름도 있었다.

* (‘지존파 토막살인’ 유일 생존자 20년만의 증언 “믿기지 않았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8528.html)


아마도 기사의 내용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연락이었겠다.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하면 안 나오는 내용이 기사에 상당히 많이 담겼으니 그걸 매력적으로 느꼈을테고, 영상화 아이템이 되겠다고 판단했을 거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다들 저작권 개념이 부족했다. 나 역시 기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당시 영화사들의 요구는 ‘당신 기사를 돈 주고 사고 싶다’보다는 생존 여성을 연결해달라는 종류였다.

그때 경험이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했나 보다.
일단 시장을 전망하는 계기를 줬다. 그전까지 나는 긴 호흡의 글을 쓰는 데 관심이 많은, 르뽀를 잘 쓰는 기자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니 영화사 네 군데에서 전화가 온다는 걸 알게 됐고, 상업 스토리 시장이 ‘조’ 단위로 움직인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상업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80억부터 시작한다는 것도.

내 글이 ‘팔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겠다.
2003년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유료 구독 모델로 성공한 언론사는 없다고 봐야 한다. 기사는 네이버에서 공짜로 보는 콘텐츠다. 사실상 공공재인 셈이다. 여건이 이러니 내 글의 시장 가격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없었던 거다. 영화사로부터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주고 난 뒤에는 (원 기사를 쓴 내가) 해당 콘텐츠에 관여할 여지가 전혀 없더라.

영화, 드라마 제작사 입장에서는 단지 취재를 했다는 이유로 영상화 기획 과정에 언론사 기자를 끌어들일 이유나 명분이 없었을 거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공부가 됐다. 내가 기자 개인이 아니라 별도 법인을 갖추고 활동하면 그 영역이 굉장히 넓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다.

팩트스토리 설립 이후 지금까지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2017년 12월 한겨레 사내벤처로 팩트스토리 법인을 설립했고 실질적인 영업활동은 2018년 1월부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쭉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약 4년 동안 웹소설 같은 원천 스토리 15편을 만들었고, 그중에서 5건은 영상화 계약을 성사시켰다.

4년 동안 원천 스토리 15편을 만들고 그중 5편을 영상화 계약에 성공한 거면 대단히 승률이 높은 편이다. 유능한 영화, 드라마 제작사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성과인데.
그에 비하면 돈은 잘 못 벌었다. 다만 그간의 실적을 좋게 본 회사 엠스토리허브로부터 지난해 여름 1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을 수는 있었다. 한국의 웹소설 에이전시를 700개 정도 추산하고 있고, 1인 출판사를 포함한 종이책 출판사도 7,000개 정도 되는 거로 안다. (기자 주: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사 검색시스템에 따르면 영업중인 출판사는 73,322개다.) 그중에서 1년에 안정적으로 10편 이상의 원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중 5편 이상의 영상화 계약까지 성사시킨 회사는 더욱더 없을 것이다.

‘실화 기반 전문직물’에 중점을 두고 원천 스토리를 개발하고 있다. 예컨대 경찰, 세관 밀수 조사팀, 유명 가수 등이 주인공이다.
실화 그리고 전문직 소재. 이렇게 두 가지가 우리의 주력 아이템이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다른 회사는 해본 적 없는 일도 진행하고 있다. 실화 기반의 영화나 드라마를 개발하는 규모 있는 제작사에 취재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이다. 총 6건 정도 수행했는데 원천 스토리 기획사로서는 독특한 실적이었다고 본다. 대표적인 파트너가 <택시운전사>를 제작한 더 램프였다. 지금 개발 중이거나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작품도 포함돼 있다.

취재 컨설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나.
대부분의 영화, 드라마 제작사 인력은 전문적으로 취재 훈련을 받아본 분들이 아니다. 예컨대 실제 범죄 사건을 영화화할 때 관련된 판결문을 구하려면 어떤 절차로 구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구글 검색으로는 안 나오는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 같은 게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쉽지 않은 그런 유, 무료의 특정 자료를 제공하는 게 우리 서비스다. 거기에 ‘팩트 리포트’라는 이름을 붙여 제공하는데, 단순히 ‘전달’만 하는 게 끝은 아니다.

어떤 역할을 더 하나.
‘팩트 리포트’를 들고 영화, 드라마의 기획 회의까지 함께 들어간다. ‘여기 있으니 알아서 소화하세요’가 아니고 함께 회의를 하는 거다. 이때 취재 결과는 물론 시나리오의 방향성과 캐릭터에 대한 의견까지도 드린다. 그에 기반해 이미 만들어뒀던 캐릭터의 비중이 작아지거나 전에 없었던 캐릭터가 생겨나기도 한다.

기존에는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나눠 분담했던 취재의 영역이 팩트스토리라는 집단을 통해 보다 전문화된 셈이겠다.
그렇게 봐주면 고마운 일이고. 새로운 시도도 있다. 우리가 기획하지 않은 실화 기반 원천 스토리도 취급하기 시작했다. 아직 조회 수가 낮은 웹소설이나 판매 부수가 높지 않은 종이책을 빠르게 포착하고 발굴해 제작사 대표에게 연결하는 일종의 ‘딜링’ 사업이다.

어떤 작품이 발굴 대상인가.
대표적인 게 회고록이다.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돈 주고 사서는 잘 안 읽는 분야다. 그런데 그중에 원석이 숨어 있다.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로 콘텐츠화된 경우다. 시중에 나와 있는 회고록 몇백 권을 작정하고 싹 훑었더니 괜찮은 한 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경찰관의 수사 회고록이었다. 해당 출판사를 찾아가 영상화 매니지먼트 권한을 명시하는 계약을 맺고, 그 회고록을 스튜디오N에 제공했다. 정리하자면 실화 기반 원천 스토리를 발굴해 제작사에 연결해준 거다.

항상 새로운 이야기에 굶주려 있는 영화, 드라마 제작사로서는 구미가 당길 만한 만남이겠다.
현재 실적은 스튜디오N과의 계약 한 건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이 역할을 더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팩트스토리의 원천 스토리를 기반으로 영상화한 작품이다. 본인이 직접 쓴 동명의 책이 원작인데.
고나무가 작가로서 쓴 마지막 작품이자 팩트스토리가 영상화 매니지먼트를 한 첫 번째 실적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님과 함께 경찰청 내 프로파일러 팀의 탄생과 지난 수사 과정을 정리했다. 권일용 교수님과 거의 1년 반 동안 매일 만나 의견을 나눌 정도로 의기투합해 썼다.


책에는 권일용 교수와 공동 저자로 올라 있다. 역할 분담은 어떻게 했나.
권일용 교수님이 인터뷰를 통해 당시와 관련된 팩트를 전해주면 내가 원고를 쓰고, 그 결과물을 그가 다시 감수하는 식으로 집필했다. 90년대 말 경찰들이 쓰던 용어, 당시 형사들의 외모, 사무실 환경, 범행 현장에 형사가 갔을 때 행동하는 방식 같은 것들을 주로 알려 주셨다. 자신이 맡은 사건 중 현재 한국 대중에게 의미 있을 만한 범죄 사건이 무엇인지 골라냈고, 나는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구하거나 당시를 증언할 만한 관계자를 추가 인터뷰했다. 책의 구성과 내용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다.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2018년 카카오페이지에 ‘악의 해석자-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논픽션’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공개했다.

드라마화 된 과정도 궁금하다.
카카오페이지에서 공개되자마자 거의 바로 현재 제작사인 스튜디오S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조회 수가 아직 높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적극적으로 드라마화 의지를 밝혀와서 판권 계약을 맺게 됐다. 기분이 무척 들떴다. “이게 되네?” 싶었지.(웃음)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한 번 정도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3년 안에 각본 집필, 캐스팅, 촬영, 편집까지 다 된 거다.

취재가 잘 된 실화 기반 웹소설을 내놓으면 빠른 시간 안에 영상화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비즈니스 모델에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겠다.
큰 응원이 됐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영상화 판권 계약과는 좀 다른 부분도 경험했다. 예컨대 팩트스토리는 해당 작품과 관련한 여러 취재 결과물을 모두 보관하고 있고, 우리와 계약하는 제작사는 원한다면 이런 추가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순수 창작물이었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가 다루는 원천 스토리가 ‘실화’ 기반이기 때문에 생기는 독특한 지점이다. 그래서 표준 계약서에 두 가지 조항을 새롭게 넣었다. 첫 번째는 ‘팩트스토리의 취재물을 추가로 제공한다’, 두 번째는 ‘제작사가 원한다면 기획 회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작사들의 호응이 좋았다.

범죄 사건을 영상화할 경우 피해 사실에 대한 묘사나 범죄자에 대한 접근 면에서 조심해야 할 지점이 많을 것 같다. 이 경우 팩트스토리가 사전에 참고할 만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맞다. 지금 당신이 팩트스토리 투자 제안서에 들어갈 이야기를 대신해 준 셈이다.(웃음) 범죄 실화를 모티브로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에 대해 팩트스토리가 ‘대응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게 우리 피칭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때 ‘이런 식으로 묘사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조언을 구체적으로 준다는 건가.
그렇다. 아주 디테일하게 조언한다. 대개 대중적인 영화, 드라마가 범죄에 가장 손쉽게 접근하는 방식은 ‘엽기’나 ‘고어’다. 심지어 ‘코미디’로 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묘사를 잘해야 한다. 비슷한 문제로 <암수살인>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되지 않았나. 그게 범죄를 다루는 모든 상업 영상 제작자들의 핵심적인 과제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민형사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팩트스토리는 실화 소재 영화나 드라마가 관련된 한국과 미국의 판례를 많이 공부한다. 어떤 묘사는 되고, 어떤 묘사는 안 되는지에 관한 법률적인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다. 변호사를 고용한다고 하더라도 판례와 관련된 ‘디테일’을 제공하지 못하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본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이어 앞으로 팩트스토리의 어떤 원천 스토리가 영상화될 예정인가.
원천 스토리 중에서는 듀스 김성재 사망과 관련한 이야기가 영상으로 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원천 스토리가 아닌 것 중에서는 앞서 스튜디오N과 계약한 경찰 회고록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미 초고가 나왔다고 한다.

2022년 계획은.
사업 콘셉트의 핵심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전략은 소폭 수정했다. 웹소설 시장의 매출이 연간 4,000억 정도로 추산되는데 (주로 판타지, 로맨스물의 인기가 많고) 팩트스토리가 다루는 실화 기반 이야기의 시장 점유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더라. 때문에 기존웹소설 중심에서 웹툰의 비중을 높이려고 한다. <모범택시>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같은 드라마의 원작 웹툰이 취재 기반 범죄 스릴러물이었으니까. 또 다른 목표도 있다. 현재 단계에서 팩트스토리가 영화, 드라마 제작의 기획 회의까지 진입했다면 이제는 공동제작 크레딧을 얻을 수 있는 방향을 고민 중이다.

공동 제작은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아직 원천 스토리가 없는 상태에서 영화, 드라마 제작사와 공동 제작 계약을 맺고, 팩트 스토리가 실화 소재의 웹소설을 만들어 내면 제작사가 영상화에 대한 독점권을 갖는 형식이다. 이런 방식의 계약을 1월 첫 주에 이미 실행했다. 앞으로는 (실화 취재가 가능한) 언론사 소속 기자들과의 협업도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미국은 이미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자가 속해있는 언론사 법인에 팩트스토리 출판 수익 일부같은 일정한 대가를 주되, 기자 개인은 취재 및 글 쓰는 시간을 안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형식의 계약을 생각 중이다. 그다음 목표는, 글로벌 진출이다.(웃음)

사진 제공_팩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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