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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보다 중요한 건 책임 <지금 우리 학교는> 이재규 감독
2022년 2월 9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퍼져나가는 바이러스 이름은 ‘요나스’다. 이재규 감독은 그게 “생명에 대한 책임”을 말한 독일 학자 한스 요나스에게서 따온 이름이라고 말한다. 좀비 떼로 아비규환이 된 세상에서 어른들은 자기의 생존에 골몰하고, 구조대로부터 외면받은 10대 청소년들은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머물며 친구들과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나간다. 나라가 겨우 좀비를 진압하고, 세상이 어느 정도 잠잠해진 뒤에, 친구를 잃고 또 잃은 뒤 자신의 의지로 혹은 우연의 힘으로 기어코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떤 말을 건넬까. 책임지지 않는 어른이 모여 있는 이 세계를 향해서 말이다.

편당 러닝타임이 1시간이다. 전체 에피소드가 12편이니 총 12시간에 달한다. 넷플릭스 <킹덤>은 시즌1을 여섯 편으로 구성했고, <오징어 게임>이나 <D.P.>는 회당 4~50분 내외로 끊어 편집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러닝타임도 에피소드도 ‘꽉꽉 눌러 담은’ 느낌인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길고 많은 이야기를 구성했나.

처음 기획 때부터 몇 회가 가장 적합할지 고민했다. 대략 8~14회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과연 10개 에피소드에서 이야기를 끝냈을 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초반부에서는 이야기를 ‘웜업’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시청자가 이야기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아이들이 변화하고, 절망하고, 다시 희망을 찾아 행동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무엇이 남았는지까지 이야기하려면 12개 정도 에피소드는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한 회를 40여 분으로 할지 아니면 50~60분으로 끌고 나갈지도 고민스러웠다. 기획 초반에는 방송국 같은 레거시 미디어에서 상영할지 OTT에서 스트리밍할지 편성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작했다. 처음부터 (OTT에 적합한) 40여 분으로 구성하고 나중에 20분을 늘리는 것보다는 (레거시 미디어에도 통용되는) 60여 분 구성으로 12회에 맞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두고 (필요할 경우) 정리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연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작품만의 정서는.

물론 스펙터클이다. 다만 12개 에피소드를 통해 매 순간 시청자를 긴장하게 만들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스펙터클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도 어렵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걸 재미있게 소화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시청자가 일단 이야기에 몰입한 뒤에는 웃었다가, 울었다가, 긴장됐다가 하는 정서적 파동을 느꼈으면 했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균형을 맞췄다. 어떤 분들에게는 긴 러닝타임과 회차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훨씬 더 깊고 울림 있게 다가서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극 초반 ‘청산’(윤찬영)이 “이거 부산행 아니야?” 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장르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의한 좋은 대사라고 생각한다.

기획 초반에는 무의식중에 ‘좀비’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나 좀비라는 단어를 알게 됐고,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현대적인 배경의 극을 만들면서 그런 상황을 배제할 수는 없겠더라. 천성일 작가님께 아무래도 ‘좀비’라는 단어를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당신이 애초부터 좀비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해서 그걸 피해 이야기를 쓰느라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왜 이제와서 마음이 바뀌었냐고 하더라.(웃음) 이후 대본 과정에서 “이거 <부산행> 아니냐”는 라인(대사)이 들어가게 된 거다.


국회의원 역을 맡은 배해선이 “전쟁이 나도 안 없어지는 게 학교야, 전쟁에서 이겨도 학교가 없으면 지는 거라고!”라고 소리친다. 그만큼 10대라는 주인공과 학교라는 공간이 그 자체로 작품의 메시지가 된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궁금하다.

시스템이 붕괴되면 청소년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불판 위에 놓이게 된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더 교육받고, 더 사회화되고, 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우리 어른들이 자신을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데 극 중에서 보다시피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도 많다. 그리고 그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이 생긴다. 그런 대비를 통해 과연 청소년들이 우리보다 더 ‘어리(석)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게 어른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했다. 그게 하나의 메시지였다.

10대 출산, 동급생간 성 착취 등 자극적인 요소를 몰아넣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청소년이 아이를 낳고, 폭력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고, (친구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실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피해자가 시원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불행한 사람이 다시 행복을 되찾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조금은 (보기에) 불편하지만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방식도 있다. 그걸 통해 그런 고통을 누군가에게 줘서는 안 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불행한 장면 그 자체에 노출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두 방식 중에 하나만 취해서는 이야기가 완성될 수 없다. 예를들면 극중 옥상에서 죽으려 하던 ‘은지’(오혜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지를 생각해보려면 말이다.


그런 장면을 넣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아이가 어릴 때 “왜 너는 말을 그렇게 하니”라고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집사람과 깨달았다. 나와 집사람도 말을 딱 그렇게 하고 있더라. 그래서 흔히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는 거다. 마찬가지로 학교는 사회의 거울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그 모든 일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회에서는 더 크고 나쁜 일이 많이 발생한다. 학교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가장 많이 한 조언은 무엇인가.

본인이라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지,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놀랄 것 같고, 어떻게 서 있거나 앉아있을 것 같은지 물어봤다. 예를 들면 ‘지민’(김진영)이가 모니터를 통해 엄마, 아빠의 흔적을 봤을 때 진짜 나로서 나올 수 있는 호흡이나 감정을 표현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식이었다. 로몬에게도 네가 ‘수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거기에 답이 있다고 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반응하는 양식은 배우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더라. 그 덕에 재미있는 영상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바이러스 이름은 ‘요나스 바이러스’다. 어떤 의미인가.

한스 요나스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굉장히 강조한 학자다. 바이러스 이름을 ‘요나스’라고 명명한 건 그 점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극을 보고 나면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가 좀비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고 조금 더 나은 사회와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내 가치관은 기본적으로 성선설에 가깝다. 모든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희망 역시 인간에게 있다. 극 중 사람들이 살기 위해 싸우고 다투듯, 우리도 이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다. 그러나 생존에 대한 의지보다 더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책임, 그리고 존재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규모 있는 액션 신이 다수 연출됐다. 가장 많은 노력이 들어간 장면을 꼽는다면.

출연자가 가장 많이 투입된 장면은 3부에서 경찰 차벽으로 달려드는 좀비 그룹을 찍을 때다.

많은 훈련이 필요했던 신은 2부 초반에 등장하는 급식실 장면이다. 200명에 가까운 스태프와 배우가 수많은 계획과 준비 끝에 촬영했다. 실제 소품이 아니라 박스 같은 안전한 물품을 두고 촬영 테스트를 하면서 동선을 잡았다. 배우들도 의상(교복)을 입기 전과 입고 난 다음 등, 여러 차례 다양한 리허설을 거쳤다. 좀비가 들이닥친 상황을 바로 앞에서 목도하는 듯한 기분, 혹은 본인이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롱테이크 촬영을 했는데 기술적으로 이어 붙인 지점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원테이크 성격의 샷이다.

도서관 신도 기억에 남는다. 5일 동안 지은 세트다. 도서관 높이는 얼마로 할 건지, 서고는 몇 개를 놓을 건지, 서고 위에서 액션 신을 찍어야 하는 만큼 전등의 높이는 어떻게 할 건지, 서고와 서고 사이의 거리는 얼마여야 하는지… 또 안전장치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중요했다. 계속해서 회의와 협의를 거쳐야 했다. 그러고 나면 스태프끼리 리허설, 무술 연기자가 투입돼 리허설, 배우가 (평상복을 입고) 투입돼 리허설, 이후 배우가 의상을 다 갖춰 입고 진짜 촬영을 하는 반복을 거쳤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노력이 들어가 있는 신이다.

야외 장면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고생스러웠던 촬영은 언제인가.

기억에 남는 건 옥상 장면이다. 블랙호크(작전 수행용 헬리콥터)가 날아오지만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신인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헬기를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 그 헬기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촬영하고 나중에 CG를 더해 완성했다. 그런데, 당시 날씨가 너무나 추웠다. 게다가 헬기가 날아오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강풍기 4~5대가 바람을 불어야 했다. 아이들은 ‘컷’ 소리가 나면 마치 펭귄처럼 달라붙어 얼싸안고 몸을 녹였다. 나도 굉장히 안타까워서 그때 기억이 많이 난다. 아마 그때 촬영이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으로 치면 35km쯤 되는 지점이었을 거다. 달리기에 가장 힘들다는 시점 말이다.

언급한 것처럼 CG 장면이 대규모로 투입됐는데.

<지금 우리 학교는> CG는 4천 컷이 넘는다. 대한민국의 어떤 드라마보다 분량이 많고 난도도 높다. 그러니 나로서도 가장 고민이 많은 부분이었다. 담당 슈퍼바이저와 여러 다툼도(웃음) 있었고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있다. 다만 작업하는 분들이 그 분량을 전부 소화하기 위해 겪었어야 할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의 결과치를 냈다는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말 힘드셨을 거다.

연출 크레딧에 김남수 감독과 함께 올라 있다.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한 건가.

김남수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제자이고 후배이자 <완벽한 타인>의 조감독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주어진 시간 안에 제작을 마치려면 물리적으로 나 혼자 전체 촬영을 다 할 수 없는 분량이었기 때문에. 기획 때부터 믿고 일부 촬영을 맡길 수 있는 유닛B 연출자가 필요했고 그게 김남수 감독이다. 두 연출자가 같은 목표를 두고 약간의 다른 감수성으로 접근한다면 더 다양한 시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주된 판단은 거의 내가 했고 촬영의 70% 정도도 내가 진행했다. 나머지 30% 정도는 김남수 감독이 맡았다.

OTT 시리즈의 각국 순위 집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릭스패트롤 사이트에 따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이 여러 전 세계 국가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공개 이후 9일 동안 내내 1등이라는데, 너무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아주 친한 친구 사이라 전화 통화를 했다. <오징어 게임>이 너무 잘 돼서 <지금 우리 학교는> 공개를 앞두고 너무 부담된다고 했더니, 그는 부담될 게 뭐 있냐면서 자기한테 고마워하라고 하더라.(웃음) <오징어 게임>이 어떤 문을 열어 놔줬으니 너는 거기에 들어가서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들을 때는 잘 못 느꼈는데, 지금은 안다. <오징어 게임>이 한국 콘텐츠에 정말 큰 문을 열어줬다는 걸.

물론 좀비물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학교는>이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안다. 다만 그중에서도 K-좀비물이 사랑 받는 이유를 묻는다면, 서양의 좀비물보다는 좀 더 뜨겁기 때문 아닐까 싶다. ‘뜨겁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등장하는 인물의 정서가 주는 느낌이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훅’ 다가서는 것 같다.

시즌2에 대한 계획도 있나. 마지막 회에서 ‘남라’(조이현)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데.

아직 공식적인 계획은 전혀 없다. 다만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물리면 감염되는 좀비만 있는 게 아니라 돌연변이도 나온다. ‘은지’나 ‘귀남’(유인수)처럼 살아 있는 상태에서 좀비가 되는가 하면, ‘남라’같은 면역자도 있다. 우리끼리는 ‘은지’나 ‘귀남’을 ‘임모탈’(immortal) 이라고 불렀고, ‘남라’는 ‘이뮨’(immune) 개념으로 칭했다. 만약 시즌2가 나온다면 그들과 인간 그룹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 확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좀비를 제외한 인간, 임모탈, 이뮨 세 그룹의 이해관계나 대립 혹은 갈등이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들의 생존기였던 시즌1을 넘어 아이러니하게도 ‘좀비들의 생존기’로 부를 만한 시즌2가 나오게 되지 않을까. 시즌3까지 간다면 이들 사이의 ‘대전쟁’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2022년 2월 9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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