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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기분! 좀 더 단단해졌기를” <둠둠> 정원희 감독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기획부터 개봉까지 한 편의 영화가 완성돼 관객을 만나기까지는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각본과 연출(때로는 촬영과 편집까지)을 도맡은 신인 감독은 그 여정이 특히 길다. 메이드에 필요한 투자이든 지원이든 발 벗고 유치해야 하는 감독은 끊임없는 타인의 설득과 자기 확신이라는 쳇바퀴를 돌곤 한다. <둠둠>은 정원희 감독이 2016년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를 토대로 만든 가족·음악 영화다. 첫 장편으로 관객 앞에 선 기분을 묻자, 한마디로 ‘오묘하다’고 답하는 정 감독을 만났다.

프랑스의 한국계 이방인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프랑소와>(2013)와 <벨빌>(2016), 파리 현지 코디네이터로 상업영화에 참여한 이력 등 프랑스와 인연이 깊어 보인다. (웃음)
20대 때 연출부로 현장에서 일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뭘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며 보낸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웃음) 감히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감독은 대단하고 멀리 있는 존재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에 무모하지만, 프랑스로 유학 가기로 결정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떠났다. 영화 이론을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밟는 과정에서 단편을 만들었고, 그중 <벨빌>은 꽤 좋은 평을 받았다. 8년 정도 공부하고 2017년에 한국에 돌아왔다. <둠둠>은 2016년쯤 처음 생각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2021년 5월에 한 달 정도 촬영해 완성했다.

2016년부터 구상했다니! 영화 한 편이 완성되어 관객을 만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이다. <둠둠>은 음악을 꿈꾸는 딸 ‘이나’(김용지)와 불안증으로 딸에게 집착하는 엄마 ‘신애’(윤유선)를 주축으로 한 가족 영화이자 음악 영화다. 청춘, 꿈, 성장, 치유를 키워드로 하는데 특히 포커싱한 부분이 있다면.
꿈에 대한 아주 작은 이야기로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기의 전부를 걸고 싶은 꿈을 방해해서 상처받는 상황이면 어떨까 싶어, 엄마와 딸의 애증 관계로 가져갔다. 신애는 이나의 음악을 점잖지 못하다고 폄하하고, 이나는 상처받으면서도 엄마를 두고 떠나지 못한다. 음악을 하려는 딸과 갈등하는 엄마라는 두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화합하는 이야기가 됐으면 했다.

테크노 비트가 새롭게 느껴지더라. 일렉트로닉, 특히 테크노 음악이 <둠둠>을 만들게 한 주요 동인이었다고.
음악을 원래 좋아했고, 전자 음악도 그중 하나였다. 테크노를 접하고 인간의 감정선과 매칭되는 면이 오묘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중국 시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평화로운 화면 속에 흐르는 전자 음악이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이렇듯 평범한 드라마 위에 기계음이 감정을 툭툭 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테크노의 매력 포인트를 짚는다면.
테크노 음악은 리스너의 주체적인 감상이 가능한 음악 장르다. 다시 말해 음악을 듣는 사람이 오롯하게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기분이 좋으면 기쁘게, 우울하면 한없이 딥하게 빠져들 수 있다. 발라드 락 팝 같은 다른 장르의 음악도 물론 리스너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달리 다가가는 면이 없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정서가 있고 이에 영향을 받게 된다. 반면 테크노는 음악 자체가 지닌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테크노는 사람들과 부딪치며 즐길 수도 있고, 서로 터치하지 않고 본인의 공간에서 홀로 감상할 수도 있다. 극 중 ‘민기’(김준엽)와 ‘준석’(박종환)이 하는 디제잉의 온도차처럼 감상도 리스너에 따라 다르다.

음악 영화는 소위 (흥행이) 어려운 영화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 대중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테크노 음악이라 제작을 결정하기까지 난관이 많았겠다.
아무래도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반대하는 분이 많았다. 이점이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다. 시나리오상에는 음악이 표현되지 않는 데다 락이나 포크같이 대중적인 음악도 아니다 보니… 설명하기 어려웠다. 글로만 보면 엄마와 딸, 모녀 이야기로밖에 안 보여서 특별함이 없는 진부한 이야기로 보이겠더라. 게다가 상업성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예술영화는 아닌, 경계가 애매해서 더 지원받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내 단편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친한 제작자분이 (진심으로)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였다.(웃음) 주변을 설득하다 좌절하고, 여러 지원 사업에 지원해 낙방을 거듭하다가 일단 최소한의 비용으로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고 준비하던 중,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 지원작에 선정됐다.

테크노 음악에 대한 이해는 필수인데 제작진들과 어떻게 맞춰 나갔나.
우선 스탭들에게 음악을 자주 들려줬다. 인물의 감정 안에서 음악을 어떻게 장치하고 활용할지 비주얼적으로 그리고 사운드적으로 설득했다. 음악 자체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는 동시에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일렉트로닉과 테크노 음악을 어떻게 다루고 표현했는지 레퍼런스를 많이 찾았다.

일렉트로닉 뮤지션이자 다방면으로 활약을 펼치는 아티스트 하임(haihm)과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IDIOTAPE)의 멤버 제제(ZEZE)로 알려진 신범호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 초 저예산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씬에서 유명한 분들 아닌가. (웃음)
간절함이 통했다고 할까. (웃음) 수많은 서칭을 통해 영화의 콘셉트에 맞다고 생각한 하임 님께 SNS를 통해 제안드렸다. 다행히 일렉트로닉&테크노 음악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로 반기며 흔쾌히 수락해 주셨고, 제제 님을 연결해주기까지 했다. 두 분이 각각 ‘이나’와 ‘준석’ 캐릭터를 맡아 인물에 맞게 음악을 완성했다. 잘 보면 두 사람이 추구하는 음악이 테크노 안에서도 결과 스타일이 다르다. 테크노 하면 흔히 클럽을 떠올리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도 있지만, 아주 진지하게 음악을 하는 분이 훨씬 많다.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이 도와줘서 촬영 장소인 클럽 등을 적은 비용으로 섭외할 수 있었다.

음악과 서사의 균형을 잡는데 주안점은.
음악이 워낙 튀고 독특하니 인물의 감정과 드라마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음악을 극 안으로 끌고 오는 게 관건이었다. 인물의 감정이나 드라마를 깨지 않도록 여러 번 조율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생기면 대화를 통한 설득과 수정을 여러 번 거쳤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 감독님과 점차 공감대가 커갔다.

강렬한 비트로 박동수를 높였다가, 마무리는 배인숙 가수가 부르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로 차분하게 숨결을 고르게 하는 인상이다. 글을 쓸 때부터 염두에 뒀던 곡이라고.
이전에 작업한 단편에도 삽입한 적이 있다. 뚜렷한 클라이맥스 없이 얘기하듯이 담담하게 부르는 그 톤이 좋았다. 엄마(윤유선)도 같은 마음일 것 같았거든.

‘이나’역의 김용지 배우가 첫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엄마이자 딸이라는 삶의 무게를 짊어진 방황하는 청춘의 여러 얼굴을 잘 그려냈더라.
극을 책임져야 하고 때때로 내면 연기가 필요한, 쉽지 않은 역을 소화할 20대 여배우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용지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밝고 쾌활한 와중에 ‘이나’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두세 번 만나면서 이런 느낌이 강해졌고,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용지 배우 입장에서도 첫 영화에 주인공, 게다가 디제잉을 해야 하는 등 준비할 거리가 많은 도전이었을 거다. 긴 호흡으로 연기한 경험이 부족한 부분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대화와 연습의 시간을 통해 해결했다. 촬영 스케줄 상 감정이 폭발하는 씬을 여러 번으로 끊어 촬영해야 했는데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특히 후반부에 신애와 이나가 싸우는 장면은 찍으면서 소름 끼칠 정도였다. 후르륵 눈물이 떨어지며 두 배우의 에너지가 확 올라가는데, 몇십번을 리딩했던 장면인데도 압도당했다.

2016년 아이디어 구상부터 개봉까지 <둠둠>을 손에서 떠나보낸 기분은. 또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오묘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극 중 이나의 말처럼 ‘주변 환경은 변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가짐은 단단해진 거겠지!’ 정도다. 준비 중인 작품은 대략적인 초고만 나온 상태다. 두 여성 캐릭터를 주축으로 한 이야기로 좀 더 장르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정원희는 어떤 사람인가.
글쎄, 영화를 사랑하고 진심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 낯가림도 있고 내성적인 편이라 처음에는 ‘응?’ 이러던 사람도 오래 알고 나면 ‘이런 면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평소 빈말을 잘하지 못해서 그런지 무언가를 얘기하면 좀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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