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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은 배우“ <나를 죽여줘> 배우 장현성
2022년 10월 25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캐나다 작가 브레드 프레이저가 쓰고, 국내에서도 공연되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연극 <킬 미 나우>가 영화화됐다. <나를 죽여줘>는 선천적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과 유명 작가였지만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가 서로에게 특별한 보호자가 돼주는 이야기를 담은 휴먼 드라마다. 연극에 이어 <나를 죽여줘>에서도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 장현성과 나눈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처음엔 영화화를 반기지 않았다고.
사실 이 연극을 영화화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는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무대 언어에 대한 원칙이나 문법이 어느 정도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대본을 영상 언어로 풀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다.

연극은 일회성, 현장성이 특징이지 않나. 그게 배우 입장에선 장점이면서도 아쉬운 점이다. (웃음) 그 지점을 높이 사서 연극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시대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데 이걸 연극으로만 남기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한 켠에 있긴 했다. 그러던 중에 김진수 프로듀서와 최익현 감독이 만나서 얘기 좀 하자더라.

당신을 어떻게 설득하던가.
최 감독님이 말하는 게 특이하다. 서울대 언어학과를 나왔다는데, 그래서인지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표현을 써서 사람을 설득할 줄 안다. (웃음) 잘 들어보면 큰 욕망이나 에너지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런 점이 오히려 더 좋았다. (웃음) 가끔 상대방의 에너지나 분위기에 휩쓸려서 일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괴로워지는 일이 더러 있지 않나. 그런 것보다 차라리 꼭 필요한 언어로 정돈해서 얘기할 줄 아는 연출자가 이 작품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작자이자 친구이기도 한 진수가 어디서 돈을 정말 딱 필요한 만큼만 끌어왔는데, 요즘 들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대기업 중심의 사업이 되지 않았나. 그런데 진수의 맑고 열정적인 마음을 보니 말릴 수가 없겠더라.

대부분의 장면이 집, 그리고 주변 공원 등을 배경으로 해서 예산이 적다는 게 짐작이 되더라.
다른 영화처럼 로케이션을 여러 군데에서 한 게 아니라 거의 춘천에서만 찍었다. (웃음) 그래서 2년 전 찍은 작품이지만 비교적 기억이 선명하다. 예전엔 이런 식으로 한 지역에서 영화를 찍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영화 제작 패턴이나 시스템이 많이 바뀐 탓에 한 군데 푹 절여져 있다가 나오는 거 같은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배우들, 제작진과 숙식을 같이 하면서 하루 24시간 영화만 생각하고,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참 좋더라. (웃음)

영화는 장애인들의 성적 욕구, 존엄사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극중 지체장애인 아들 ‘현재’를 위해 꿈을 포기하고 아들에게 헌신하는 ‘민석’을 연기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어떤 분들에겐 부담스럽고 불편한 이야기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지금 영화와 같은 그런 일들이 실제로는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지 않나. 사실 많은 분들이 ‘내 인생에는 ‘현재’와 ‘민석’이 겪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노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살 수는 없을 거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달려가는 버스를 잡는 일이 더 이상 평범한 일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노화 역시 신체적 장애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그리고 아픈 사람,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는 이들의 삶 또한 힘들다. 나도 아버지를 모시면서 느꼈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에 대해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선천적 장애를 지닌 ‘현재’를 돌보던 ‘민석’ 또한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데. 점차 몸이 굳어가는 ‘민석’의 모습, 그리고 섬세한 감정 연기가 인상적이더라.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기 때문에 실제로 공연할 땐 아들(‘현재’) 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공연 없는 날은 항상 치료를 받으러 갔다.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버거운 작품이다. 한 작품, 한 회를 할 때마다 감정 노동이 너무 힘들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과 가장 기쁜 순간을 압축해서 2시간 남짓의 한 작품 안에 녹여내지 않나. 짧은 시간 안에 극단적인 감정을 끌어내다 보면 확실히 정신적인 데미지가 온다. 몸이 불편한 건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공연을 한다 해도 하루에 2~3시간, 촬영을 할 때도 하루에 연기하는 순간만 따지면 4~5시간쯤 된다. 실제 장애인 분들은 그게 삶이지만 우리는 하루 중 일부만 불편할 뿐이니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자로 호흡을 맞춘 안승균 배우는 어땠나.
안승균은 정말 대단한 배우다. 연극은 배우가 수 개월, 수년동안 한 배역을 연기하면서 연기가 몸에 붙는데 승균이는 연습할 시간이 그보다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승균이에게는 특유의 천진난만함, 그리고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는 집중력이 있다. 그 덕에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더라. 안타깝게도 승균이가 군대 간 사이에 영화가 개봉하게 됐는데, 승균이에게 감사하고 박수 쳐주고 싶다. 앞으로도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원작 연극인 <킬 미 나우>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앞서 말했듯 연극을 영상화하는 데 회의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작품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문화 콘텐츠, 그 중에서도 영화 같이 자본집중적인 엔터테인먼트는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예산이 큰 작품이 더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는 게 당연해졌고 자본이나 인재도 그런 영화에 치중되고 있다. 반면에 자본을 회수하기 어려운 작품들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창작자 입장에선 더 균형 잡힌 판이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연극, 독립영화가 나온다 한들 관객 입장에선 상업영화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나. 예전에는 <패왕별희>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같은 작품이 단관 개봉했다. 그런데도 관객 수가 20만 명이 넘고는 했다. 그건 그런 영화에도 수요층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런 관객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연극을 할 때와 영화를 할 때 연기가 어떻게 다른가.
예전엔 연극 연기는 과장된 연기라는 일종의 편견이 있었다. 실제로 처음 드라마, 영화 작업을 했을 땐 ‘연극처럼 연기한다’는 지적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연기에도 유형이 있어서, 7~80년대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우리가 말하는 연극 같은 연기를 한다. 연극 연기의 경우도 극장 규모에 따라 톤이나 발성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건 기술적인 부분의 차이지 감정이나 연기 본질의 차이라고는 하기 어려울 거 같다. 다만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카메라가 가까이서 촬영할 때면 집중력이 더 요구된다는 정도가 아닐까. (웃음)

보통 연극은 본인 연기를 스스로 볼 수 없지 않나. 영화로 보니 색달랐을 거 같다.
사실 연극을 좋아하는 건 내 연기를 내가 볼 수 없어서다. (웃음) 연극은 다 끝난 뒤에 후련한 마음으로 털어낼 수 있는데 영화는 내 연기를 직접 봐야하지 않나. 게다가 이런 영화는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하고. 부끄럽게도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웃음)

최근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데.
예능은 많이 하고 있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절반도 모르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웃음) 내가 말을 가려서 하거나 특별히 조심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함께하는 분들이 대부분 예능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라 나까지 나서서 한 숟가락씩 더 얹는 게 선뜻 되지 않더라. 웃기지 못하면 어쩌나 부담도 되고. 그래서 아직도 그런 프로그램이 쉽진 않다. 그래도 가끔 초등학생들이 방송국에 ‘방송 잘 봤다, 고맙다’는 편지를 보낼 때면 그렇게 뿌듯하고 기쁠 수가 없다.

올해에만 드라마 세 편에 출연했고, 고정 예능도 여러 개다. 힘에 부치진 않나.
시간이 어떻게 흐른 건지 모를 정도로 바쁜 한 해였다. 건강 검진을 받을 시간도 없지만 찾아주는 곳이 많으니 기쁘다. 나는 운이 좋은 배우다. (웃음) 나보다 훨씬 재능 많고 성실한 분들도 아직 원하는 작품을 만나지 못한 분이 많다. 사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가족 건사하며 살 수 있는 50대가 많지 않다. 내 동력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어떤 순간에도 놓고 싶지 않다. 재밌는 걸 만들어내고 싶고, 재밌는 이야기에 끼고 싶고, 새로운 걸 배우고 만들어내는 게 제일 즐거운 거 같다.

사진제공_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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