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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뛰어들 준비 완료! <심야카페: 미씽 허니> 정윤수 감독
2022년 11월 29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부터 <아내가 결혼했다>(2008), <두 여자>(2010)까지 성인의 연애를 다룬 도발적인 작품을 연이어 선보인 정윤수 감독이 오랜만에 영화로 복귀했다. <심야카페: 미씽 허니>는 감독이 시즌2.3의 연출을 담당한 웹드라마 <심야카페>를 스크린으로 확장한 작품.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라는 테마로 상실과 그리움, 회복의 정서를 기저에 녹여낸 힐링 드라마다. 자정이 되면 문을 여는 시간을 넘나드는 카페를 무대로 저마다의 사연을 펼쳐낸다. 정윤수 감독을 만났다. 언제든 현장에 뛰어들기 위해 고정직을 마다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왔다는 감독,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해야 할 일을 놓쳤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영화를 향한 열정은 흔들림 없어 보인다. 실제로 ‘광화문 순댓국’에서 보조 셰프로 일하는 식당의 하루하루가 시나리오 그 자체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내가 결혼했다>(2008), <두 여자>(2010) 이후 웹드라마 <심야카페> 시즌2와 3을 연출하기까지 휴지기가 길었다.
국내 영화업계라는 게 프리랜서에게 다음 작품이 보장되든가 혹은 이후 몇 년을 버틸 만한 파이가 만들어지는 시장이 아니다. 전체 규모의 크기 자체가 작아서 생기는 구조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게 (알다시피) 소재, 장르, 캐스팅 등에 따라서 투자를 유치하는 게 쉽지 않다. 매우 어렵지.(웃음) 준비하던 것들이 엎어지고 홀딩되면서 광고나 작은 드라마를 찍고 간간이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다 ㈜케이드래곤(K-Dragon) 대표와 인연이 닿았다. 대표는 부산에 터를 잡고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웹드라마로 접근해 <심야카페>를 제작했다. 시즌1은 신인 감독이, 시즌2와 3은 내가 연출을 맡게 됐다.

‘밤 12시에 여는 시간을 넘나드는 카페’라는 세계관이 매력적이지만, 시즌3까지 나온 웹드라마를 오리지널 스토리의 영화로 확장한 건 드문 사례다. 어떻게 메이드 된 건가.
케이드래곤이 부산 영화 공동체에 뿌리내려 자리 잡은 후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할 영화 풀을 만든 덕분이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으로 웹드라마를 제작하고 나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었고, 규모가 작아도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원소스 멀티유스(OSMU)의 최고봉은 영화와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하니 말이다. 내가 웹드라마를 직접 연출해서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있는 데다 영화 경험이 많아서 프로듀서의 역할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도할 만하겠더라. 서울에서의 제작 플로우와 기술적인 작업을 내가 주도할 수 있어, 대표가 믿고 편하게 맡긴 부분도 있다.

사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부터 <아내가 결혼했다>, <두 여자>까지 사실적인 성인의 연애를 다룬 문제적인(?) 영화였지 않나. (웃음) 그래서 이런 발랄한 판타지 로맨스와 언뜻 매칭되지 않았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논쟁은 늘 있어 온 주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순수한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계급 간의 결탁이나 관계 형성의 수단이기도 하고, 도덕적인 관념에 발목을 잡혀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당시에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바뀌면 어떨지 제안하고, 또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는 왜 불가능한지 물음을 던져보고 싶었다. 사실 데뷔작인 영화 <예스터데이>(2002)가 SF 스릴러였다. 비단 성인의 연애만이 아니라 시간이나 판타지 등에 관심이 많았고, 요즘에도 젊은 친구들이 주로 보는 프로그램이나 게임 등을 즐기는 편이라 어색하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영화의 각본도 손수 썼다. 셔플댄스 3인방, 램덤챗(Random Chat) 등과 같은 트렌디한 아이템이 눈에 띈다.
이번은 기획부터 코지(cosy)한 미스터리로 방향을 잡았다. 심야카페라는 환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너무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는 지양했다. 제작사 대표가 원하는 따뜻하고 예쁜 영화와 내가 원하는 판타지 사이에서 조율을 거쳐 지금의 톤을 잡았다. 3인방의 셔플댄스는 그 원곡에 맞춰 젊은 친구들이 많이 따라하고,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공유되는 춤이다. 우린 저작권 때문에 다른 곡으로 대체했지. 랜덤챗도 그렇고 얼리어답터는 아니지만, 따라 하다 보면 너무 재밌다 보니 트위터나 유튜버 등 SNS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게 되더라. (웃음)

주인공 ‘윤’역의 채서진 배우와 연인 ‘태영’으로 분한 이이경 배우의 케미가 좋더라. 더욱이 이이경 배우는 최근 영화 <육사오(6/45)>로 큰 사랑을 받은 직후 아닌가.
솔직히… <육사오(6/45)>가 흥행에 성공해서 우리 영화에도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두 배우를 캐스팅한다고 해서 아주 반갑고 기뻤다. 두 사람은 영화 <커튼콜>(2016)을 함께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호흡이 착착 맞더라.

오빠를 찾는 동생 ‘동백할머니’ (문숙), 윤의 무당 엄마(정영주), 셔플댄스 3인방 등 조연들의 활약이 빛난다.
윤의 엄마는 강한 이미지의 배우를 우선 고려했다. 이러한 강함이 딸인 윤과 부딪쳐, 딱딱한 겉껍질이 깨지면서 말랑한 속내를 보였으면 했는데 정영주 배우가 딱 걸맞았다. 동백할머니는 젊었을 때 어려운 시절을 거쳐 지금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품위 있는 모습이길 바랐다. 셔플댄스 3인방은 ‘고하나’(송병훈), ‘고두리’(구교민), ‘고삼이’(유준혁)이다. 이들 중 막내가 부산에 거주하는데, 그 아버님이 손수 나서서 춤과 연기를 연습시켰고, 직접 단역으로 출연까지 했다. 그리고 카페 내부에 비치된 앤틱한 소품들과 커피 액세서리 등은 부산커피박물관 김동규 관장님이 찬조해 줬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영화는 마냥 발랄한 판타지 로맨스가 아니라 ‘심야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실향민, 이산가족 등과 같은 굴곡 지닌 현대사의 한 단면을 담았다. 또 심야카페가 있는 부산 산복도로는 서민의 애환이 서린 곳인데, 공간이 지닌 의미를 짚는다면.
부산항을 중심으로 바다를 등지고 보면 산이 둘러싸여 있고, 산을 둘러서 굽이굽이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산복도로라고 한다. 원래는 일본인 무덤이었던 곳도 있는데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그 무덤 위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향도 피우고 꽃도 갖다 놓기도 했다고. 부두 노동자, 자갈치 시장 상인, 행상 등 서민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좁고 경사가 심한데도 시내버스가 다녀서 오죽하면 산복도로 버스기사가 대한민국에서 운전을 제일 잘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또 우리집 마당이 앞집의 옥상이 되는 재미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모노레일이 두 곳 설치됐고, 감천마을은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다만 급격히 관광지화되면서 필요 이상으로 예뻐진 것 같아, 그러니까 삶이 녹아 든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니라 인형처럼 예쁘기만 한 것 같아 아쉬움도 남는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던데, 언제 촬영했나.
딱 1년 전, 지난해 10월에 촬영했다. 23회차에 완성해야 해서 좀 더 공을 들여야 했는데 그냥 넘어간 부분이 있어 아쉽다.

산복도로 풍경에 어울리는 심야카페의 공간 콘셉트를 잡는 것도 관건이었겠다.
처음에는 방공호 안을 세팅해서 찍으려고 했다. 중세 벽돌 건물 안에서 수도사들이 식사하는 느낌으로, 더 들어가면 고대 그리스의 어느 카타콤(지하 묘지) 같은 공간이었으면 했는데 조명과 동시 녹음 등의 문제가 따르고 비용도 많이 필요해 계획을 바꿨다. 미술팀에게 일단 천장이 좀 높고 명도와 채도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스터와 손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많은데 이때 동선이 부자연스러우면 재미가 없으니 바를 최대한 길게 만들어 달라고 했지. 욕심만큼 길게 나오지는 않았지만…(웃음) 유심히 보면 ‘윤’이 처음에는 입구 쪽에 앉다가 점점 주방과 가깝게 옮겨 앉는데 이 같은 거리감으로 카페에 대한 친숙함을 표현했다.

웹드라마에 이어 신주환 배우가 ‘마스터’로 출연했다. 마스터는 심야카페 세계관의 핵심인데, 단편적인 조각들로 인해 마스터의 정체에 대해 더욱더 궁금해졌다. 스핀오프가 필요하다!
사실 영화로 확장하면서 좀 더 나이든 모습의 마스터를 고려하기도 했다. 신주환 배우에게 어떤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스터’하면 중후한 이미지가 필요할 것 같아 서니 오해하지 말길! 심야카페의 의인화된 현현인 만큼 중요한 캐릭터인데 결국 구관이 명관이더라. (웃음) 마스터가 어떤 형벌로 인한 불멸의 하이랜더 같은 존재 혹은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경험 등 세대를 이어 살아온 인물 관련해 아이디어는 몇 가지 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다. 영화가 잘 돼서 스핀오프로 나온다면 기쁘겠다. 한편으로는 ‘심야카페’라는 세계관은 이야기 확장에 있어서 한계점도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 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심야식당’이면 거나하게 술도 한잔 먹고 여러 가지 사건과 사연이 나올 구석이 많은데 카페는 너무 예뻐서 소재에 제약이 따른다. 청춘드라마로 착하게 갈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그렇다고 카페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게 되면 심야카페라는 공간이 퇴색하고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구분하는 관객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는 관람료 인상도 크게 한몫하는데, 이러한 시류에서 <심야카페: 미씽 허니>를 극장에서 봐야 할 포인트를 꼽는다면.
사실 별로 없다. (웃음) 하지만 당위는 있다. 무슨 말이냐면, 극장용과 그렇지 않은 영화를 구분하는 소비 형태의 변화는 이미 십 년 전부터 예상됐던 바이다. 개인 미디어가 발달하고, 디지털 노마드가 증가하는 데다 개인 전자 기기로 업무를 처리하는 시대 아닌가. 이미 예견됐던 일로 팬데믹이 그 시기를 급격히 앞당겼을 뿐이다. 라디오와 TV가 사라지지 않았듯이 극장도 마찬가지겠지만, 극장 방문은 일상이 아닌 이벤트가 될 거고 이벤트에 걸맞은 영화를 찾겠지. 다만 소비자가 문화를 향유하는 취향이 좀 더 발달하고 분화된다면, 호러 로맨스 액션 등 다양한 영화에 대한 욕구 또한 증가할 거로 본다.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슴슴한 게 먹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부산 산복도로를 찍은 영화를 찾아서 오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동백할머니의 사연은 가족 영화로서 의미 있지 않을까 한다. 여러 세대가 즐길 요소가 곳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당위를 희망해 본다.

마지막 질문이다. 정윤수는 어떤 사람인가.
흠… 그냥 인생이 낭패!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해야 할 일을 놓친 사람이랄지. 삶의 영위와 삶의 목적 추구가 일치하지 않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영화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같은 프리랜서는 보통 고정적인 일, 가령 대학 강사라든지 교수 같은 일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예전에 여러 차례 권유 받았지만, 결국 안 했던 이유가 그 일을 중심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허투루 할 수 없으니 학기 중에는 촬영할 수 없는데, 촬영이라는 게 꼭 방학 때만 잡힌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결국 언제 어느 때든 영화를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고정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다음 작업이 잡혀 있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 먹고 살아야 하니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더라.

사실 요즘 ‘광화문 순댓국’에서 보조 셰프로 일하고 있다. 재미있는 게 사장은 영화 <두 여자> 제작사 대표였던 분이고, 메인 셰프 역시 배우다. 설거지 아르바이트는 뮤지컬 테너이고, 이외에도 서빙 아르바이트 두 명도 배우 지망생이다. 요즘 영화 투자 받기가 원체 힘드니, 우리끼리 돈 벌어서 만들어 보자! 하고 있다. 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시나리오가 저절로(?) 구상되는 기분이다. 식당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것만으로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더라!

심야국밥의 탄생인가! 웹드라마 연출도 해봤으니 우선 매일의 에피소드를 모아 웹툰부터!


사진제공. 영화특별시SMC

2022년 11월 29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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