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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송이 장미를 피웠다” <소풍> 나문희 배우
2024년 3월 5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열두 살 손자와 그 친구들이 사인을 받아 가고, 가수 임영웅이 콘서트에서 손수 읽은 ‘어느 노부부 이야기’의 주인공!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일산 호박고구마’로 전 국민적 사랑을 받은 캐릭터! 영화 <영웅> 이후 노년의 삶을 솔직하고 묵직하게 다룬 <소풍>으로 다시 관객을 찾은 나문희 선생 이야기다. 지난 2월 7일 개봉 후 조용히 흥행을 이어가는 중인 영화에 올인했다는 선생을 만났다. 지난해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를 떠나보냈지만, 아낌없이 사랑했기에 어떤 노래가사처럼 ‘백만송이 장미’를 피운 것 같다며 그립지만 여한 없는 마음을 표하는 선생이다. 동시에 ‘훌쩍 어딘가에서 원 없이 연기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도 걸릴 것이 없다’고 다시 한번 연기 열정을 불태운다.

김영옥 선생과의 호흡으로 진실성이 더욱더 느껴진 작품인데 평소 교류는 어떠신가.
다른 친한 배우도 많지만 호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분이라면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겠더라. 여러 편의 드라마 또 예능도 같이 했었고 그때의 경험이 좋아서 이번에도 제안했다. 우린 상당히 배고픈 시절부터 이 일을 해서… (웃음) 개인적으로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만나면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처음엔 언니가 살짝 고사했는데 내가 ‘언니가 안 하면 나도 안 한다고, 기다릴 것’이라고 하니 바로 수락하더라. 친하지만, 서로 조심할 건 조심하고 필요할 때는 꼭 곁을 지켜줬기에 지금까지 우정을 잘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김영옥 선생은 ‘금순’(김영옥)이 ‘은심’(나문희) 바라기 인 것 같다 했는데, 실제로 두 분의 우정과 닮으셨나.
처음 들어가며 내가 ‘금순’ 역을 해도 좋다고 했으니, 그런 ‘바라기’와는 무관한 것 같다. 연기하다 보면 슬쩍슬쩍 암투(?)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건 그간 함께한 우정의 깊이에 스르륵 녹아나게 된다. 언니는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배우가 아닐까 한다. 게다가 이번 <소풍>에서 찰지게 노래하는데 이전에는 보지 못한 모습이라 깜짝 놀랐다.

매니저의 부인이 원작자인데 이 작품의 어느 점에 끌리셨나.
매니저와 20년 넘게 함께했고 선구안이 좋아 내가 내비게이션이라고 부를 정도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 플러스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고 또 <와니와 준하>(2001) <분홍신>(2005) 등의 김용균 감독이 연출을 맞는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막상 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이정도로 열중할 줄 몰랐다. 촬영 당시 남편이 살짝 아픈 시기라 동생과 딸에게 남편을 맡겨 놓고 현장에서 살았었다. 심지어 집의 수도가 고장났는데도 영화 개봉 후 고쳐야지 하며 미루기까지. 그만큼 영화에만 모든 걸 집중했다. 그 외에 분산되는 것이 싫었거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소풍>

생로병사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노년 삶의 단면을 세 친구(나문희, 김영옥, 박근형)를 통해 향수 어리면서도 현실적이게 보였는데, <소풍>의 차별점은 뭐라고 보시는가.
우리 나이가 되어야 그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연기했다기보다 카메라에 대들은 느낌이었다. 또 김영옥, 박근형 그리고 나는 연극을 베이스로 한 클래식 배우라고 자부한다. 지금도 무대에 서는 박근형은 매번 매진이라고 자랑하던데 한 번 가보려 한다. (웃음) 우리 셋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짠한 인생과 현실을 살았고 이를 카메라가 담았을 뿐이지 않나 싶다.

은심은 아들을 향한 죄책감으로 한없이 퍼 주다 가도 현실을 직시하는, 또 자기는 욕해도 남들이 욕하는 건 못 참는 보통의 엄마인데 이런 현실감은 어떻게 일구어 내시는가.
일단 상황에도 공감하고 또 연기하면서 아주 보편적인 사람을 연기하려 한다. 보통의 엄마, 평범한 이웃 같은 모습을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충당할 수 없으니 <인간극장> <여섯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보면서 보통 할머니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하다못해 그분들이 입은 내복을 유심히 살피기도 한다. 영화 속 인물과 비슷해야 할 테니 말이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는 부분이 많고, 특별히 수련하는 건 딸에게 받는 노래 레슨 정도다.

연기하면서 주안점은 두신 부분은.
항상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 현장에 오래 머물렀고, 대본을 보며 항상 인물을 떠올렸었다. 연기자는 적당히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번에는 상당히 과감하고 솔직하고 용기 있게 표현한 것 같다.

특별히 공감한 대사나 상황을 꼽으신다면
딸만 셋이라 아들을 키워본 적이 없고, 우리 영감님(배우자)도 아들을 목욕시키는 게 소원이었던 분인데 <소풍>하면서 아들이고 딸이고 그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가끔 기억을 깜박하곤 하는 은심이 그 이유로 아들을 들면서, ‘내가 오죽하면 딴 세상에서 살겠냐’는 대사가 기억난다. 나도 그런 적이 있거든. 자식도 남편도 내 마음 같지 않으니까! 다만 ‘은심’은 나보다 면역력이 좀 약했던 것 같다. 그렇게 훌쩍 떠났다 오는 걸 보면 말이다. (웃음)

열 여섯 은심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셨나. 혹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너무 배고팠던 시절이라 돌아가고 싶지 않다. (웃음) 너무 예쁜 배우가 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아무리 원해도 (지금) 내가 열여섯을 연기할 수 없지는 않나!

<소풍>이 던지는 묵직한 화두인 연명치료나 존엄사에 관한 견해는 어떠신가.
회복할지 못할지는 병원에서 다 알 거라 생각하기에 연명치료에는 부정적이다. 지옥이 멀리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아픈 남편을 보며 느꼈었고 때문에 길게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다. 다만 하늘에서 주신 생명이라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팡이를 짚고 움직일 수 있다면 다행이고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함부로 죽음을 고려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소풍>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9) <영웅>(2022) 등 좋은 작품으로 꾸준하게 관객을 찾고 계신데 그 비결은 무엇인지.
배우가 건강하고 연기할 수 있는 상태면 기회는 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집에서 꾸준히 스트레칭하고 있고 요즈음에는 천수경 등 불경을 외우며 몇 가지 자세를 꾸준히 하니 허리 등이 좀 나아졌다. 대중탕에 가서 기껏해야 요구르트 정도를 나눠먹는 사이지만 이러면서 감정의 소통을 배우고 유지해 나가고 있다. 또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TV를 보는데, 방송을 통해 많이 배운다. 방송통신대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이렇게 바깥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영광을 차지한 윤여정 배우,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에 얼굴을 알린 김영옥 배우 등 연기 무대가 그만큼 확장했는데 해외를 베이스로 한 작품에서 제안이 온다면.
어느 감독님이 교포 이야기라 할머니 역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단 좋다고 답한 상태다. 이제는 우리 영감이 세상을 떠나 집에 혼자 있으니 어디에서든 날개를 달고 연기하다 그 자리에서 죽어도 되는 여건이 됐다 <아이 캔 스피크> 미국 촬영 당시 그 시스템을 이미 경험한 터라 뭐 말(영어)이 크게 안 통해도 주어진 역할은 현장에서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촬영 중 부군이 세상을 떠났는데, <소풍>을 개봉하며 그 빈자리가 크시겠다.
영화 찍는 동안 매일 ‘사랑해’ 하고 잠들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위중한 줄 몰랐었다. 촬영하던 중 상황이 나빠졌지만, 다행히 그다음에는 내가 충분히 사랑할 시간을 주었다. 5월 촬영 종료부터 임종까지 오롯이 우리 영감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 꽃은 핀다’라고 한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런 꽃을 피워본 것 같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024년 3월 5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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